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46장 유구국(流球國)(4)
“자신을 유구국주(琉球國主) 순마준희의 아들 의본(義本)이라고 소개한 자와 그 일행들이 지금 탐라국에 와서 아조에 조공을 바치고자 건너가고 싶다고 하옵니다.”
전라도에서 이러한 내용의 보고가 강화도 조정에 올라오자 유구국에 대해 잘 모르던 신료들은 이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논의는 대왕이 넌지시 끼어들며 의사를 밝히면서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짐이 알기로 유구국은 본디 에서 나오던 탐라국보다 훨씬 남방에 있는 남국(南國)이로다. 그러한 먼 곳에서 아조에 공물을 바쳐오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구나.”
“하오나 폐하. 지금 입조하는 이들이 정말로 수서에 나온 그 유구국에서 온 것인지는 미처 확인되지 않았사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다. 그들이 진짜 유구인인지 아닌지는 둘째치더라도 탐라에 왔다는 것은 그들이 탐라보다 먼 곳에서 온 것은 분명하지 않느냐?
그리고 먼 나라 사람이 와서 공물을 바치는데 박하게 대우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하니 우선 들여보내도록 하라. 그에 대한 엄중한 대우는 이후 논의해도 늦지는 않다. 그리고 그자와 나라에 대해서는 용강후 정안연이 바다 밖 여러 제국(諸國)에 지식이 밝다 들었으니 그를 불러들여 지식을 구하여 해결토록 하라.”
“황명을 따르겠나이다. 폐하.”
* * *
유구국.
“너의 말대로 기혼(義本=의본)을 보내기는 했으나 그것이 여전히 개의치가 않아. 혹여라도 사고가 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기혼은 슌바쥰키의 하나뿐인 아들로, 장차 자신을 이어 슌텐씨를 이을 후계자였다.
그런 아들을 난생처음 듣는 고려라는 나라에, 그것도 조공이라는 굴욕적인 관계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다이누시(세상의 주인. 아지와 같이 오키나와에서 당시 호족을 부르는 말 중 하나.)로서, 아버지로서 마음에 들 리 없었다. 하지만 요루지는 그런 슌바쥰키를 위로하며 말했다.
“사랑하는 자식일수록 밖으로 내보내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우리가 있는 곳을 오간 탐라 상선에서 안전을 보장한다고 하였으니 믿어보시지요. 그리고 기혼 님께서 장차 주군을 이어 이곳을 통치하기 위해서라도 세상의 식견을 넓히고, 고려와 인연을 만들어두는 것이 좋다는 것은 주군께서도 납득하고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그랬지. 그래서 보낸 것이고….하나 이렇게까지 해놓고도 고려에서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많이 실망스러울 것이야.”
친자, 그것도 후계자에게 진상품과 함께 보낸 것이다.
고려가 얼마나 대국인지는 몰라도 이 섬에서 제일 가는 세력을 가졌다고 자신하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고개와 허리를 굽히는데도 무시하거나 도리어 모욕을 줄 시 자신이 받을 정신적 피해와 대외, 대내적 위신을 생각한다면 빈말로도 아무렇지 않다고 할 수 없었다.
“그때는 또 다른 계책을 강구하겠습니다. 우선은 고려의 답장을 기다려 보시지요.”
* * *
개경.
“여기가 고려의 황도인가!”
“탐라의 왕도도 크고 화려하다 생각했는데 그조차 이곳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군요.”
린잔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태어나 이렇게 큰 성벽과 활발한 거리는 본 적 없다. 우리 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넓고 산들을 통째로 둘러싼 거대한 성벽들과 득실거리는 건물들.
탐라에서 알려준 바에 의하면 이 고려 황도에는 자그마치 15만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했고 주둔한 병력도 4만(2군 6위를 말함)이 넘는다고 했다. 그만한 수면 우리 성은 물론 인근 섬에 사는 모든 사람을 불러보아도 만들 수 없는 규모다.
‘일개 도시의 인구가 우리 섬의 인구 전부를 넘는다니, 아버지의 말씀대로 세상은 정말로 넓었구나.’
“그대가 유구의 성주. 순마준희의 아들 의본과 그 일행인가?”
황도 거리를 지나 고려의 황성에 도착하니 어느 노인이 나와 물었다. 일개 시종이라기엔 무척이나 비싸보이는 부드럽고 반짝이는 비단 옷이 신경 쓰여 일단 말을 높였다.
“그렇사옵니다.”
“본래라면 이곳 황도에서 황상 폐하를 뵙는 것이 정상이나 아쉽게도 지금 황상께서는 심도에서 계시니 배알은 그곳에서 하게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이 노인의 정체는 누구인걸까? 생각하고 있을 때 사람이 와서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유수(留守). 태자 전하께서 이번에 입조한 유구의 성주 아들을 잠시 만나고자 하십니다.”
“뭐라, 태자 전하께서 말인가?”
유수라고 불린 노인은 그 말에 깜짝 놀라더니 나를 돌아보고는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본래 태자 전하를 뵐 수 있는 것도 황궁에서 황상 폐하를 뵙게 될 때나 그후에나 가능할 것이거늘, 이렇게 일찍 뵐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전하께서 관심까지 가시다니…. 자네는 참으로 운이 좋군.”
“예? 예.”
어째서 생면부지(生面不知)인 고려 태자가 자신을 찾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시키는 대로 가야 했다.
그렇게 몸수색을 받고 통역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까지 전달받았다.
그렇게 안내해 준 단련장에 갔는데, 들어가는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명쾌한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팍!
“중(中)이오!”
“왔느냐?”
“유, 유구국주 아들 기혼(=의본). 고려의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지만, 이 수려한 형상의 젊은이가 태자라니?
고려의 태자가 자신보다 어리다 하더라도 20에 가깝다 하였는데 얼굴만 보면 너무 젊어 보였다. 그래서 얼굴을 본 순간, 태자가 아닌 그의 조카나 동생으로 착각할 뻔했다.
“무예를 단련하는 시간이라 그대를 여기다 부르게 되었으니 섭섭하지 마라.”
“예, 예!”
하지만 젊은 얼굴에 비해 건장한 신체, 특히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벌레처럼 갈라진 상체의 근육들, 그리고 저 멀리 과녁 중앙에만 박힌 수십 개의 화살들, 그것만으로 눈앞의 태자가 비범한 용력과 무위를 갖추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도 무시하는지 아니면 둔감하여 모르는 것인지 고려 태자는 나를 쳐다도 보지 않은 채 재차 활시위를 당기더니 말했다.
“설마 성주가 친자를 보내 올 줄은 몰랐도다. 너희는 어째서 아조에 입조하게 되었느냐?”
그런 내용을 황제도 아닌 태자에게 먼저 말해야 하는가 순간 고민하였지만 그냥 말하기로 했다.
태자가 황제에게 잘 말해준다면 그게 더 낫지 않은가?
“중(中)이오!”
“우리나라와 대국에 멀리 떨어져 세상천지가 어찌 돌아가는지 많이 무지하였으나 오늘날 우리가 있는 곳 또한 해동천하(海東天下)에 안에 있다는 것을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하여 부친께서는 마땅히 세상을 해동의 천자께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문안과 인사차 올리고 그 성의를 확실히 진달하고자 소인을 보냈사옵니다.
만일 대국에서 소인의 부친에게 관복(冠服)을 내려주시고 번신(藩臣)으로 봉해 주시는 은혜를 내리신다면 어찌 번복(藩服·하사받은 옷)을 입고서 대국의 신하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후로는 길이 관계를 맺어 대국을 존숭하고, 번신으로서 대국의 변방을 수호하고 안정케 하는 의무를 성심껏 다하려고 합니다.”
준비한 대사와 말들을 늘어놓자 태자는 이쪽을 쳐다보지는 않지만 흥미롭다는 소리를 냈다.
“호오.”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알게 된 것은 고려라는 나라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고 대단한 나라다.
이런 나라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아버지와 우리 세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아버지! 소자 반드시 고려의 군대와 함께 돌아가겠습니다!’
* * *
서경에서 야율수국노와 이야기를 하다가 정안연의 오키나와에서 고려에 입조를 하러 사람을 보내왔다는 보고를 듣고 헐레벌떡 개경으로 내려왔다.
그냥 일행만 보냈다면 무시했을 건데 무려 유구국의 슌텐 세력의 후계자. 즉, 세자도 있다 하니 내가 직접 온 것이다.
엄밀히 말해 오키나와는 아직 통일은커녕 제대로 나라를 만들지도 않아서 지금 오는 후계자도 유구국의 세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있는 세력이 현재 오키나와에서 가장 강한 세력이란 것과 그가 그 세력의 후계자라는 점은 확실히 눈여겨 볼만하다.
거기다 군벌을 나라로 취급한다면 혹은 통일을 하게 된다면 세자에 준하는 위치인 것이다.
설령 나라 취급이 아니라고 해도 이후 오키나와에서 벌일 나의 계획을 생각한다면 그곳의 유력한 세력을 홀대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마침, 수국노와의 대화는 사실상 끝을 내기도 하여 이후의 수국노 대접과 대화 건은 갈라전에서 넘어온 왕희(원 동진국 재상)에게 맡기고 온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려와서 만난 유구의 기혼이라는 자에 대한 나의 소감을 말하자면….
마치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것 같은 신입생 같았다.
엄밀히 따지면 나보다 연상이고, 이 시기의 사람답게 삭은 얼굴이긴 하지만 몸은 마른 편에다 이 시기 평균 키보다는 조금 커 보였다. 즉, 풍체만 따지면 장군감이다.
다만, 무술의 소양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자가 진짜 현 오키나와 제일가는 세력. 슌텐가의 후계자인가?’
의본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슌텐씨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결국, 조공을 보낼 테니까 우리보고 다른 성주들이 남송과 일본의 상인들과 교류를 하지 못하게 하고, 나아가 자신들과만 교역하게 해달라는 거잖아?’
슌텐의 슌바쥰키가 지금 고려의 힘을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부지리(漁父之利), 차도살인(借刀殺人), 이이제이(以夷制夷) 여러 말이 있지만 결국 타력으로 외부 상인들이 다른 성주들과 교류하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다른 힘을 끌어들여 자신의 힘을 덜 쓰면서 목표한 바를 이룬다. 듣기에는 솔깃하고 참으로 부러운 방법이다.
실제 지금 내가 추구하는 개혁에도 타력이 필요하고 그것을 시도하고 있으니 내가 뭐라고 할 처지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 의본, 아니 의본의 입을 빌려 밝히는 슌텐씨의 언행에 대해서는 나는 코웃음밖에 안 나온다.
분명 우리가 힘을 빌려주면 슌텐이 바라는 것을 쉬이 얻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하지만 타인의 힘을 이용한다는 것에는 그만한 각오가 필요하다.
쉽게 이용할 수 있다고 얕보다가는 도리어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삼국시대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였다가 당나라가 신라까지 욕심을 부리자 일어난 나당전쟁도 그러했고, 보다 가까이에서 찾으라면 현재 여몽 관계도 그렇다.
대요수국이 쳐들어오고 조기 대응을 놓치면서 신속히 제거를 하지 못하게 된 고려가 몽골의 힘을 빌려 강동성 전투로 대요수국을 몰아냈으나 그 문제로 코를 단단히 궤인 것이 현재의 몽골과 고려의 군신 관계가 아니던가?
따라서 어부지리의 책은 생각보다 상당히 어려운 것이고, 혹 성사했다고 하더라도 끌어들인 세력과 적대하여 늑대를 몰아내려다가 호랑이를 불러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계획하고 시도를 하면서도 몇 번이고 사전에 다시 궁리하고 시도 중에도 긴장하는 것이며, 이후로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책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슌텐씨가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너무나도 낙관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설마 고작 입조만 해준다면 고려가 아무것도 안 하고 만족할 것이라고 믿었나? 아니면 바다가 있으니 군대를 절대 보내지 않을 것이고 통치하기 어려우니 무조건 가만히 놔둘 것이라고 믿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낙관적이고 어리석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일견 합리적이고 현명하다고 생각하며 내놓은 이 책략은 내가 보기엔 어설프게 지식을 가지고 내놓은 책략으로밖에 안 보인다.
차라리 반대로 바보였다면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이런 거라면 오히려 읽기가 쉽다.
물론 나의 이런 일련의 생각들을 의본과 그 일행들에게 털어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바라는 얼굴과 반응을 내보이며 입조를 하는 그들을 기특하다며 그들을 다독여주고 칭찬할 생각이다.
“과연 그대의 부친은 실로 갸륵한 성주라고 할 수 있도다. 내, 반드시 황상 폐하께 남방의 변경에 대해 잘 말해주도록 하겠다.”
이 오키나와가 어설픈 판단으로 수작을 부리는 것이 결과적으로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 같은데 내가 굳이 알려줄 이유는 없지 않은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나의 말에 의본과 오키나와에서 온 일행들은 내게 고개를 숙이며 거듭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고마워할 필요 없어. 유구가 고려에 조공을 바치고 고려가 그것을 받아주는 순간, 유구는 고려의 번국이 되며, 고려는 유구에 개입할 명분을 가지게 되는데 말이야. 나아가 너희들이 협력을 구하면서 이쪽에선 군대를 보낼 명분도 가지게 되고 그걸로 오키나와 정복은 한층 더 쉽게 가능하게 되는데 오히려 이쪽이 고맙지.’
오키나와가 나 잡아잡수 하고 상까지 차려주는데 이걸 거절하는 것은 송양지인(宋襄之仁)이지. 이번 문제에 있어서 그러한 아량과 자비는 일단 치워 둘 생각이다. 물론 이 순조로운 전개가 알고 보니 슌바쥰키의 함정이라는 반전일 경우도 충분히 경계하고 주의는 할 생각이다.
실제 너무 어설퍼서 의심스럽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의본 일행들이 정말로 오판하고 진심으로 쉽게 생각하여 이러고 있는 것이라면….
‘이번 기회에 오키나와를 반드시 잡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