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11
311화
47장 고려 제일의 상단(3)
“이번 기회에 상단 내부를 솎아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지금 용강상단은 규모가 커졌으나 그 내실은 아직 불안한 감이 없잖아 있다. 지금이야 그대가 문제없이 일을 처리하고, 그들에게도 큰 부담이 없으니 순종하고 있지만, 위기에 처하면 분명 평소 불만을 억누르고 있던 이들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그대는 그것을 솎아내 용강상단의 내실을 다져라!”
“…전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하교하시는 저의는 이해하오나 상인들은 신하들과 달리 결국 이문을 쫓는 이들입니다. 이문이 없다면 저들이 배신한다고 하더라도 감정과 별개로 납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포로 막는다고 하더라도 임시방편이며 골은 더욱 깊어져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곳에서 수습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 유구 출병의 군비 지원은 단순히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에 가깝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
“하오면?”
“지원으로 나가는 부담을 덜어내고 솎아낸 후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패를 너에게 주마.”
그리고 나는 정안연에게 준비한 궤짝 2개를 내밀었다.
“이것은?”
우선 하나를 열어 정안연에게 건네주었다. 그 궤짝에는 들어 있는 것은 유구를 정벌한 후 설치할 난전 시장과 포구, 무역에 대한 권리가 적힌 계권이었다.
정안연은 그것을 읽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이것은 큰 이문을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군비 지원에 입을 손해로 생기는 산하 상단들의 불만을 모두 달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옵니다. 전하께서는 유구를 정벌할 것이라 하였으나 아직 정벌 되지 않았고, 이 계획도 시도조차 되지 않은 일입니다.”
정안연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직 하지도 않은 일로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어려우며, 현 상단에는 해상무역과 중개 무역 외에도 요동과 갈라전, 혹은 아조 내에 무역에 초점을 가진 상단들도 늘어나고 있사옵니다. 전하께서 진정으로 나라의 상업을 활성화하시겠다면 해상무역과 중개무역만을 미끼로 달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정안연의 냉정한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궤짝을 열어서 보여주었다.
“이것은….”
함에는 삼(蔘)이 들어 있었다.
“예전에 재배를 시도한 것이 드디어 성공한 것이다. 현재 고려에, 아니, 세상 어디를 뒤져보아도 산삼을, 그것도 고려 산삼을 재배하고 증포하는 것은 우리뿐이다. 고려인삼의 명성은 상인이었던 그대가 그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향후 용강상단이 인삼 무역에도 나설 수 있다면 그 이문도 상당할 것이고, 이것이라면 해상무역만이 아니라 육지무역에 종사하는 상단들도 납득할 것이다. 물론 이 또한 국내 무역보다는 외국과의 무역이 초점이긴 하겠지만 이문은 충분히 들일 수 있지 않겠느냐?”
이것은 산에 씨를 뿌려둔 장뇌삼(長腦蔘)이 아니고 밭에서 재배한 가삼(家蔘)이다. 장뇌삼은 가삼의 수배는 비싸지만 파는 데 족히 10년은 이상 걸린다. 그에 비해 가삼은 3년에서 6년 근 이하로 팔아 비교적 빨리 만들 수 있는 삼이다.
그리고 내가 가삼과 장뇌삼을 비롯한 인삼을 재배하고자 시도한 것이 벌써 수년 전이다. 가삼은 슬슬 재배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분명 인삼을 재배할 수 있고, 그 재배와 증포 기술을 우리가 독점한 것이라면 앞으로 얻을 이윤은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라면 그들을 불만을 어찌 납득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정안연도 그 가치를 알기에 굳은 얼굴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인다. 그런 그에게 나는 또 하나의 패를 주었다.
“여기에 하나 더 있다. 좀 전 그대는 ‘공포로 막는다고 하더라도 임시방편이며 골은 더욱 깊어져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곳에서 수습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나도 크게 동의하는 바이다. 하여 나는 용강상단을 이전보다 더욱 내 통제에 두려고 한다.”
“그것은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거듭 말하지만, 이번 군비 지원에 나갈 양이 막대한 것은 나도 잘 안다. 그만한 거액이 한 번에 나간다면 용강상단이라도 자금압박을 받지 않을 리 없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제아무리 좋은 시장과 교역권을 준다고 하더라도 당장 그곳에서 장사할 밑천이 없어, 밑천을 마련하는 것에도 급급할 것이다. 그럴 테지?”
재원이 늘어나고 팔 곳이 늘어나도 그곳에서 팔 물건을 살 돈이 없다면 결국 말짱 꽝이다.
그리고 이것이 정안연이 가장 우려하는 불만 거리일 것이다. 용강상단 산하 상단주들이 이것을 물고 늘어지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사옵니다. 족히 1년, 혹은, 수년은 자금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평시처럼 수익을 얻지 못할 것이니 일부 긴축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전하! 설마!?”
말을 하던 도중 정안연도 나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놀라 바라보았다. 덕분에 나도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품에서 서찰 하나를 쥐여주었다.
“이번 출병이 끝나는 대로 호부에 관대금융(官貸金融: 호부, 호조에서 민간에 자금을 대출해 주는 것.)을 신청하라. 이 서찰을 보여준다면 용강상단에 흔쾌히 돈을 빌려줄 것이다.
너희가 지원한 금액을 일시에 전부 빌려주지는 못하겠지만, 당장 급히 장사할 목돈 정도는 충분히 대여해 줄 것이고, 분할로도 계속 대여해 줄 것이니 용강상단이 지원 후 한동안 겪을 자금압박으로 장사를 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번에 대출 되는 이자는 연 1할로 일반 이율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정안연의 얼굴이 굳었다. 내가 말하는 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하. 소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옵니까?”
“그대를 믿지 못할 리가 있느냐? 그대만을 믿기에 이러는 것이지.”
* * *
“…하여, 이번에 재배에 성공한 인삼 무역과 관대금융(官貸金融)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견이 있는가?”
정안연의 설명이 모두 끝나자 도방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삼 재배에 성공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궤짝에 들어 있는 작은 인삼과 그 인삼이 정말로 재배하고 증포한 것 사실이라면, 용강상단의 재원과 시장 영역은 크게 늘어날 것이 사실이다.
그 정도라면 유구 시장이 없더라도 이문을 남길 수 있을 것이 분명했고, 유구 시장이 망하더라도 상단이 재기할 때까지 피죽이나마 연명할 밥그릇(시장)은 만든 셈이리라.
문제는 후자 관대금융으로 자금압박을 해결하겠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전혀 믿을 수가 없었다.
관대금융으로 나라에서 돈을 빌려 장사할 밑천을 마련하겠다.
말이야 쉽지만 관대금융으로도 빌릴 수 있는 금액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설혹 빌려준다고 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투성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고려 내의 돈으로 본다면 용강상단이 대신 돈을 내고, 용강상단에는 조정의 호부에서 돈을 빌려주는 것이니 결국 국고에서 돈이 나가는 것은 매한가지요. 이는 일종의 명의만 다른 ‘돌려막기’였다.
심지어 용강상단 입장에선 돈을 내고, 돈을 낸 것에 비례하여 나라에 돈까지 빌려 빚까지 지게 된다. 이용만 당한 것 같은 감각인 것이다.
물론, 지원을 대가로 유구 시장에 대한 권리를 받았으니 이용만 당했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으나, 그것은 그것대로 상단에 즉시 대출해 줄 만큼의 돈이 있으면서 나라에서 자체적 해결을 하지 않은 것이다.
유구에 대한 권리를 민간 상단에 주는 이유, 혹은 거래에 응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조정에 빚을 진다는 것 자체에 불만이 있거나 꺼리는 도방들도 있는 것이다.
“지금 이 관대금융으로 빌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다. 이로 인해 조정은 우리의 지원을 받고 대출을 함으로써 본래 국고에서 고스란히 부담하고 잃을 군비를 줄이게 된 것이고, 우리는 시장이라는 실익과 나라에 군비를 지원한 상단이라는 명예도 얻게 되었으니 조정과 우리 상단 양자 모두가 이익인 것이다.”
“대방 어른께서 정녕 그리 말씀하시니 소인들은 따를 뿐입니다. 하나 여전히 걱정인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지?”
“관대금융으로 돈을 빌린다고 하셨는데 이번에 우리가 낸 지원금과 곧 있을 장사에 필요한 돈들을 생각한다면 그만한 거액을 우리에게 빌려준다는 것만으로도 국고에서 많은 돈이 나가게 됩니다. 이번 거래가 국고에서 한 번에 많은 돈이 나가는 것을 우려하여 일어난 일이라면, 관대금융으로 빌릴 수 있는 액수도 걱정해야 할 문제가 아닌지요?”
“옳은 지적이다. 하여 이번 관대금융으로 빌릴 수 있는 금액은 한 번에 전부 받는 것이 아니라, 시기에 맞춰 순차적으로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아무리 나누어 대출받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장사를 할 수 있는 액수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불안한 것도 이해한다. 그러나 이 불안을 해결해 주실 분이 계시니 너희들은 걱정할 필요 없다.”
“예?”
정안연의 말이 끝나자 방문이 열리면서 청년이 들어왔고 모두의 이목은 들어온 외인에게 집중되었다.
청년은 건장한 신체에 비해 다소 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방에 들어오자 거리낌 없이 정안연에게 걸어갔는데 그들은 눈을 의심해야 했다.
자신의 조카 혹은 아들뻘 되는 청년이 오자 용강후 정안연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청년에게 자리를 양보한 것이다.
거기서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아예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도방들도 눈앞의 청년이 보통 신분이 아닌 것을 깨닫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정안연이 말하였다.
“어서 자리에 앉으시지요. 태자 전하.”
“음!”
“흡!”
여기저기서 들리는 숨이 멎는 듯한 소리. 도방들은 그제야 이번 계획이 누구에게서 나왔고, 상단의 조직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얼 타고 있는 도방들을 향해 고려의 태자는 말하였다.
“나의 말로도 부족하느냐?”
“예?”
“용강상단에 대출되는 관대금융이 정상적으로 시행되리라는 것은 다름 아닌 내가 보장하려 한다. 이런 나의 말도 부족한 것이냐?”
조정에 돈을 빌리는 것을 꺼리거나, 용강상단 혹은 용강후 본인에게 불만을 가진 이들도 입을 다물어야 했다.
천하의 흑태자가 직접 나와 공언을 한 것인데, 면전에 대고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미친 짓거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소, 소인들이 어찌 그런….”
“하면 앞으로도 본 상단을 위해 일해준다 믿어도 되겠는가?”
그 말에서 도방들은 태자가 용강후의 용강상단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용강상단 그 자체가 태자의 통제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그, 그것이….”
“그대들 모두가 고려 상계를 이끌 동량(棟梁 마룻대와 들보)들이다. 향후 많은 기대를 하고 있겠다.”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모든 도방들은 고개를 숙이며 그저 그 말만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 * *
관대금융으로 돈을 빌리게 한 것과 순차적으로 나누어 대출시킨 것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돈을 빌려준 것에는 용강상단에 빚을 지워 공권력(내 영향권에 있는)으로도 간섭할 수 있게 하는 의도가 있다.
또한 분할 대출하도록 한 것은 전국에 있는 관을 통해 돈을 대출시키고 이용한다는 것 자체로 조금이라도 돈을 많은 지역에 이용, 유통한다는 계산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홍구라고 하였나? 그자가 우리가 퍼뜨린 거짓 정보에 놀아나며 우리 뜻대로 움직여 준 덕분에 상단을 통일하는 것이 쉽게 이루어졌구나. 그에 대해선 그대에게 맡겨도 되겠지?”
“물론이옵니다. 한 번 배신한 자가 두 번 배신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후환이 되지 않도록 제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음, 맡기도록 하지.”
어찌 되었든 이것으로 용강상단은 내 사설 상단인 동시에 나라의 상단이나 다를 바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려 태자의 뒷배와 함께 조정의 지원을 받게 된, 진정한 의미에서 부와 권력을 쥔 고려 제일의 상단이 탄생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