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12
312화
48장 확장되는 해동천하(1)
“아니, 그러니까. 그냥 모른 척 좀 해주십시오. 북쪽(북큐슈)는 몰라도 남쪽은 우리가 장사를 하는 것이 큐슈의 고케닌(어가인 御家人)들께도 더 이롭지 않습니까? 어차피 신국에 도움이 되면 되지 손해는 없고 언제 우리 신국이 저 신라(고려) 놈들의 속국이었다고 저들의 말을 따라야 한단 말입니까요.”
남큐슈의 상인 이데미츠는 포구에서 오키나와 행을 단속한다는 관리에게 그렇게 사정하였다.
남큐슈 남부 상인들은 그 위치가 고려나 탐라 인근 등 타 지역보다 떨어져 있었다. 그 때문에 상대적 손해를 감수하고 남송으로 직무역을 선택하여 이윤을 얻어내고 있었다.
여기에 남송과 직무역마저 막혀 무조건 고려까지 거치게 되었다. 남큐슈 남부 상인들은 상대적으로 북방의 상인들보다 더 힘들어져 낭패를 본 것이다.
그런 와중에 근래 들어 겨우 오키나와에 중간시장을 노리면서 번성을 노리고 있었고, 실제로도 번성해질 것 같은 찰나에 이렇게 오키나와 행이 막히려고 하는 것이다.
“재차 말하나 너희가 남쪽 이국의 섬에서 당인(唐人:중국인)들과 밀무역을 하고 있다는 고려의 신고가 전해졌다. 본래라면 그 시점에서 너희들을 포박하고 엄벌에 처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나, 다자이쇼니(大宰少弐)께서 이번 한 번만은 여태까지 밀무역한 것을 불문에 부친다고 하셨으니 그만 단념하라. 향후 또다시 이런 일로 나라를 망신시킨다면 그때는 용서치 않을 것이다.”
아무리 실리가 따른다 한들 위에서 내리는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 관리가 내세우는 바였다.
이데미츠는 배알이 뒤틀리는 것을 간신히 참고 다시 설득을 시도하였다.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던 것이다.
“너무합니다. 신라의 땅에 몰래 들어갔거나 그들의 속국인 탐라에서 그들의 허락 없이 장사를 한 것이라면 모를까. 어째서 그들의 땅이 아닌 곳에서까지 눈치를 봐야 한단 말입니까! 나리. 이럴 수는 없습니다.”
“무슨 헛소리냐! 밀거래는 금지된 것이니 막은 것이거늘 고려의 눈치를 본다는 식으로 곡해한단 말이냐! 거기다가 네놈의 말대로 따지자면 그곳이 본국의 땅이기라도 하단 말이냐? 외국과 함부로 무역하는 일을 금하는 것이 본국의 방침이 된 게 하루 이틀도 아니거늘, 헛소리하지 말고 물러나라!”
이데미츠의 말을 관리는 헛소리로 일축했다. 이데미츠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나야 했다. 물론 그는 겨우 마련한 시장을 포기할 생각 따위 없었다.
‘오냐! 그렇다면 저 땅이 본국의 땅이 되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단 말이렷다!’
* * *
“그래서 밀무역을 통제한다는 지시는 각 고케닌들에게 전부 전했다고?”
큐슈의 무사들 코케닌(御家人)을 지휘, 통제하는 진서봉행이자 다자이노쇼니(大宰少弐)에 있는 쇼니 스케요시는 천천히 찻잔을 내리며 물었다.
고려는 남송과 일본이 교류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계점이다. 그렇게 대송 무역의 창구가 고려로 한정되면서 큐슈의 다이묘, 고케닌, 상인들은 고려를 통해 송에 가기 위해 고려와 직접 외교를 하는 다자이후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그런 만큼 고려 외에 밀거래의 가능성이 생기는 것은 쇼니 스케요시에게 있어서도 좋을 것은 없었다.
하지만 스케요시는 이 보고를 듣고도 남 큐슈에 강한 응징을 하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다.
“예. 지시하신 대로 지금까지의 밀무역은 눈감아줄 것이니 차후 유구로 가서 당인들과 밀무역을 하는 것을 금하게 하라 전달하였습니다.”
“유구… 유구라. 그렇군. 본국의 남쪽 아래에 그러한 섬이 있었던가. 그것은 몰랐던 일이야.”
스케요시는 찻잔을 다시 들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스케요시의 가신 소 시게히사(鎌倉時代)가 이어 대답했다.
“고려가 유구라고 주장한 그곳에 간 상인들의 말에 따르면 그곳은 각 성이나 부락을 지배한 이들만이 난립하고 있는 미개한 땅이며, 아직 제대로 된 군주도 없다고 합니다. 확실히 고려에 예속된 땅은 아닙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고려로서는 자신들을 무시하고 그 땅에서 본국의 상인들과 송상들이 교류하는 것을 좋게 볼 이유는 없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도 그것은 좋지 않고 말이야. 나를 통해 고려와 무역하게 되면서 큐슈의 모든 다이묘와 고케닌들을 보다 통제하고 견제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고려에서 얻는 재화도 작지 않은데 내 손 밖으로 새는 것을 관망할 이유는 없지. 거기다 고려 태자가 이렇게 밀무역을 통제하라고 서신까지 보냈는데 완전히 무시하고 눈 밖에 날 이유는 더더욱 없는 일이다. 안 그러느냐?”
“그렇사옵니다.”
왕검이 밀무역 통제 지시를 내린 서찰은 대마도와 다자이후에 보내졌고 그들은 즉각 반응하였다.
물론 큐슈와 비교하면 촌구석에 힘도 없는 대마도의 아비루 치카모토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다자이후의 쇼니에게 남큐슈를 통제해 달라고 설득, 동의하는 글을 보내는 것밖에 없었다.
사실 밀무역 통제에 대한 절박함을 따지자면 고려나 다자이후 이상으로 대마도가 절박하였는데, 안 그래도 독단적인 입조로 인해 쇼니와 큐슈에서 반쯤 눈 밖에 난 대마도는 그 밥줄이 고려에 달렸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하여, 고려로 가는 상인들이 줄어들거나, 혹은 고려가 그들을 버린다면 입을 피해 또한 다른 누구보다 심각했다.
“뭐, 남쪽 놈들도 갑자기 송과의 무역이 단절된 것이고 위치가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번 일은 크게 들쑤셔서 헤집기보다는 덕을 베풀 필요가 있어. 이 정도만 해도 고려 태자에게 체면치레는 해줄 수 있지. 이 이상 그들 종노릇 할 이유는 없고 말이야.”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자이후 쇼니 스케요시는 확실히 아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유구로 가는 항로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아두는 것도 좋아. 지금이야 큐슈 전역이 아직 완전히 내 통제에 들어가지 않아 유구의 무역이 내게 손해일 뿐이지만, 향후 큐슈 전부가 내 손에 들어온다면 그때는 유구의 밀거래가 내게도 이득이 아니겠느냐? 오히려 그때는 고려는 고려대로, 유구 무역은 무역대로 내게 이문이 올 것인데 유구를 버려서는 안 되지.”
“옳으신 말씀이시옵니다.”
즉, 스케요시는 유구로 가는 무역로를 완전히 단절시킬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큐슈 전부를 통일하고 난 뒤에는 큐슈의 밀무역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지도 모르는 행위였고, 이로 인해 고려가 손해를 보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
“우선 이번 일로 불만을 품거나 우려하는 남큐슈 놈들을 적절히 구슬려 줘야겠구나. 적선을 베풀어 내 사람으로 만든다면 아직도 불만을 가진 서쪽 놈들은 자연히 포위되어 더욱 내 통제 아래 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말한 스케요시는 다시 차를 마시고는 씨익 웃었다. 현재 전망은 나쁘지 않다. 유구라는 곳은 자신들에게도 먼 만큼 고려에서는 더욱 지배하기 힘든 땅이다.
그 말은 즉, 큐슈와 유구 문제는 시간의 문제였고, 시간은 스케요시에게 유리한 것이다.
그런 자신감 속에서 나온 미소에 가신 시게히사도 고개를 숙이며 주인의 현명함에 예를 표했다.
* * *
오키나와의 어부. 고와시리는 새벽 일찍 일어나 해안가로 향했다.
전근대 사람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찍 일어난다. 그래야 해가 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안가에서 걷는 세금은 주로 물고기나 조개 등 바다에서 나오는 어패류들이었다. 조금이라도 세금을 내고 풍족함을 느끼려면 일찍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해안가에 가보니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다른 어부들도 나와 있었고, 고와시리는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오늘은 많이 잡았으면 좋겠네. 그려.”
“그랬으면 좋겠구만. 오늘은 뭐 싸왔는가?”
“킁. 언제나처럼 소금에 절인 주먹밥이지. 안사람이 그토록 바라던 물 건너온 장신구라도 구해주면 뭐 찬이라도 추가될지 모르겠군.”
“거, 자네 집도 그런가. 우리 집사람도 전에 포구에 갔다가 비단옷 하나 입어보고 싶다고 극성이야. 참나. 비단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비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는 바다를 향해 배를 밀기 시작했다. 따로 약속하지는 않았으나 이제 함께 바다로 나가 함께 물고기를 잡는다.
혼자서 물고기를 잡는 일도 있지만 이렇게 만나면 함께 나가는 일도 빈번하다. 혼자면 따분한 일도 함께하면 따분한 시간도 그럭저럭 덜 수 있고, 바다 위에서 문제가 생겨도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혼자 나가는 것보다는 동행하는 것이 여러모로 안전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다로 배를 몰고 있는데 젊은 어부 하나가 말했다.
“저기 배가 들어오는데요?”
“응? 이 시간에 배가 온다고? 누구 어제 밤낚시 하러 간 치들 알고 있는가?”
“나는 들은 적 없군.”
“나도 들은 적 없어. 다른 곳에 사는 어부가 길 잃고 여기로 온 건 아닌가?”
“그럴 수도 있겠군. 아니면 밖에서 오는 장삿배일 수도 있고 말이야.”
밤낚시는 무척이나 위험하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만큼 해가 있는 동안에는 잡지 못하는 물고기를 잡을 수 있기에 간혹 시도하는 어부들도 있었다.
그리고 오키나와에는 근래 들어 외국에서 상인들이 오기 때문에 장삿배일 가능성도 있어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잠깐, 어선이나 장삿배… 치고는 뭔가 이상한데요. 너무 큰 것 같은…. 어, 뭐, 뭐야? 무슨 배가 저렇게… 거기다 숫자가….”
처음 발견한 젊은 어부가 말을 하다가 멈추자 고와시리를 비롯한 다른 어부들도 움직임을 멈추고 바다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눈을 의심해야 했다.
“뭐, 뭐야. 무, 무슨 배가 저렇게 크냐? 저 정도면 아예 집을 올린 것 아닌가?”
“지금 오는 배가 얼마나 되는 거야? 장삿배치고는 너무 많은데?”
어선은 저렇게 크지 않고, 외국에서 오는 장삿배조차 저렇게까지 크지는 않았다.
과장 좀 보태서 집을 올렸다는 평가는 틀리지 않을 정도로 난생처음 보는 거대한 배가 있었다. 게다가 그 수가 못해도 수십 척은 되어 보였다.
한 번에 많이 온다고 하더라도 서너 척 정도인 장삿배는 아니었고, 어선은 더더욱 아니었다.
거대한 선박들의 고와시리를 비롯한 어부들은 겁이 나면서도 신기해, 하던 일도 잊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저거 혹시 고려의 배인가?”
그 말에 주변 다른 어부들의 이목은 단번에 그 어부에게 향해졌다.
“아, 아… 니, 저, 전에 성에서 높은 사람이 와서 말하지 않았는가? 조만간 고려에서 군대를 보내올지 모르니 세금이 많다고 말이야. 그리고 포구에서 들으니 고려는 대국이라 배도 크고 많다 했으니 저게…. 고려에서 보낸 배가 아닌가 해서 말이네.”
해당 어부는 갑자기 몰린 이목에 자신 없어 하면서도 말했다.
그 말에 다른 어부들도 세금을 거두러온 성의 사람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건 너무 많지 않은가?”
과장 좀 보태 저렇게 바다를 메울 기세로 몰려오는 배들을 보면, 저 커다란 배 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우선. 돌아가서 보고하세. 저들이 고려에서 보낸 배든 아니든 간에 전에 바다에서 뭔가 보이면 바로 보고하라 하지 않았는가? 어차피 저렇게 많은 배가 바다에 떠 있으면 오늘은 일하기 글렀고 혹시라도 저들이 적이라면….”
그 말에 다시 선박들을 멍하게 바라보던 어부들도 어구와 어선들을 두고 육지를 향해 달렸다.
고와시리는 무서웠다. 오늘 일을 망쳤다는 짜증보다 저 집을 올린 배들도 그렇고, 그런 배들을 저렇게 많이 보내는 고려라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가 처음으로 무서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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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어….”
어부들의 보고에 헐레벌떡 해안가로 달려온 성의 관리. 자마오리는 해안가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이 다 뭣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