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13
313화
48장 확장되는 해동천하(2)
처음에 집을 올린 배들이나 성만 한 배들이 출몰했다는 어부들의 말에 호들갑이 심하다고 여기면서도 고려의 배일지 모른다는 이야기에 온 자마오리였으나, 바닷가를 메운 거선들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크다는 감정뿐이었다. 처음 본 순간 눈을 의심할 정도로, 어부들이 호들갑을 떨던 것이 납득이 갈 정도로 정말로 거대했기 때문이다.
어부들이 그러했듯 자마오리에게 있어서도 난생처음 보는 배였다. 이따금 오는 남쪽의 상선(남송선)과 비슷하면서도 더 크고, 웅장했다.
선상 위에 올려져 있는 누각은 어부들의 말대로 바다 위의 성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배들이 한 두 척도 아니라 수십 척이 넘게 해안에 떠 있으니, 자마오리는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무슨 배가 저렇게 크단 말이냐? 그리고 도대체 몇 척이냐?’
거기다 바다에는 그 거대한 배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배에 비한다면 절반 정도 크기의 배들도 상당히 있었다. 아니, 더 많았다.
그러나 그 작다는 배들마저 자신들이 만들고 타는 배들보다는 곱절은 컸다. 그러한 배들이 바다를 메우듯 떠 있었으니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저, 정말로 고려선이 맞는 거겠지?”
성에서 조만간 고려에서 대군을 보내올지 모르니 혹여라도 신경을 건든다거나 사고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기는 하였다.
자마오리는 그 당시만 하여도 호들갑이 심하다고 생각하였으나 이만한 규모라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아니, 그 언질마저 부족할 지경이다.
모르긴 몰라도 저 배들에 있는 사람들의 수가 성내 사람들보다도 많을 것이 분명하다.
떨리는 몸을 억누르며 해안가로 다가가던 자마오리는 결국 허탈하게 웃었다.
‘저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 성은 하루 만에 함락되겠군.’
배들이 있는 곳으로 접근하면 할수록 도저히 이길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해안가에 가니 저 배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작은 배들과 갑옷을 차려입은 무장들이 눈에 띄었다.
“크흠.”
떨리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명령은 수행하여야 했다. 자마오리는 헛기침을 하며 자신을 알렸고, 그들은 이내 자마오리를 발견하고는 자신들끼리 쑥덕이더니 무장을 하지 않은 사람을 불러 그의 앞에 두었다.
그러자 그 무장하지 않은 사내가 입을 열었다.
“혹 유구 성주의 사람이오?”
“유… 구?”
그 사내의 입에서 나온 자신들의 말에 자마오리는 말이 통한다는 것에 안도하였으나 이내 익숙지 않은 유구라는 단어가 들렸다.
자마오리는 순간 그게 뭐냐고 반문하기 직전, 가까스로 고려에서 자신들이 있는 곳을 유구라고 부른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그렇소. 나는 유구국 요노누시(世の主, 세상의 주인. 당시 아지, 테다와 더불어 호족들을 지칭하던 용어 중 하나.) 슌바쥰키 님의 부하요. 혹, 그대들, 아니, 당신들은 고려에서 온 이들이시오?”
자마오리는 역관으로 추정되는 자가 무장한 이들에게 자신의 말을 전하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그들의 얼굴이 화색이 되더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는 것을 보곤 그들이 고려인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일단 고려인이 맞았던 것이다.
‘고려는 우리와 적이 아니라고 했으니 그나마 안심해도 되겠지?’
작게 안도를 하는 자마오리에게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역관의 입을 빌려 말하였다.
“우리는 진위교위이자 유구 성주 순마준희의 청에 따라 유구를 구하기 위해 온 고려에서 온 천군이다. 그대가 성주의 가신이라고 하니 우리와 함께 배에 올라타 대장군을 만나 자초지종을 듣고 성주에게 전하라!”
다소 강압적이고, 다소. 아니, 대놓고 하대하는 고려인의 말에 자마오리는 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칼자루는 저기서 쥐고 있었고, 주군께서도 고려군이 오면 각별히 대하라는 명을 내린 만큼 그들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그리고 저 커다란 배에 한번 올라타고 싶기도 했다.
“아, 알겠소이다. 태워주시오.”
* * *
“아무래도 오랜 뱃길로 많이들 지쳐 있으니 이제 육지에 내려 진채를 차리고 태세를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 탐라 판관이자 이번 유구로 갈 탐라인들을 인솔한 감무관이 된 김구는 판옥선(板屋船) 위에 올라온 슌텐의 자마오리를 앞두고 이번 남벌군 총 책임자인 송문주에게 조언했다. 송문주도 그런 김구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소관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우선 주변이 안전한지만 확인하고 진채를 설치할 생각이지요. 다행히 이곳이 순마준희의 영토가 맞는 것 같으니 이만 사람을 보내 진채와 군촌(郡村)을 설치할 곳을 확인 후 축조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앞에서 바싹 긴장하고 있는 슌텐씨의 사람을 보며 말했다.
“이자와 함께 사람을 보내 성주에게 칙서를 받으라 전하고, 그 후 우리가 지낼 동안 부담할 식량과 진지를 설치하기 위한 목석(木石 나무와 돌)들을 받도록 해야겠소.”
이번 원정이 단순히 토벌만 하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남해의 동남아 교역을 위한 새로운 청해진을 설치하기 위함인 만큼, 이번 원정에는 식량 또한 많이 지원되었다.
따라서 고려군은 그만큼의 군량과 자원, 사람들을 실은 교역선들도 대동한 상태였다. 그러나 오키나와와 고려는 거리가 멀었고, 파도 또한 거칠어 보급은 쉽지가 않았으니, 가능하다면 지원을 받는 편이 좋았다.
송문주의 말에 주변 부장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대군까지 보내 도와주는데 잠자리와 식량 정도는 제공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김구만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말했다.
“지원을 청하는 것 자체는 동의하나 그 지원을 유구 성주에게서 전부 받아낸다 생각하시면 안 될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소?”
“이 사람은 탐라국에서 수년간 판관을 하였습니다. 탐라국은 땅이 넓으나 사람은 적어 만약 지금 있는 천군이 탐라에 주둔하여 식량을 차출하라 한다면 탐라는 나라 전체가 휘청일 정도로 큰 고욕을 얻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듣건대 유구 또한 성주 순마준희를 비롯한 여러 호족들과 성주가 제 성과 세력을 거두어 가히 전국시대와 태조께서 태어나신 신라 말에 버금간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성주가 소유한 식량과 자원도 당연히 한정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으음. 너에게 묻겠다.”
송문주는 역관을 통해 자마오리에게 말을 걸어 물었다.
“너희 성에서는 우리 군을 먹고 재울 식량과 이불을 지원할 역량이 되느냐?”
“그, 그것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서….”
“2만 5천이다.”
“거짓말!”
자마오리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직후 자신이 실례를 했다고 깨닫고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소, 송구하오나 그만한 대인원을 부담하기는 쉽지가 않사옵니다. 우선 주군께 전달토록 하겠사옵니다.”
“음. 알겠다. 그렇다면 우리 군이 성밖에 지낼 곳을 알아보는 것도 좋겠지. 성주에게는 우리가 성밖에 진지를 설치할 것이라 전하라.”
“아, 알겠사옵니다.”
* * *
“성주가 뭐라 답하던가?”
“성주는 환대하였으나 이내 규모를 듣고는 이렇게나 많이 올 줄은 몰랐던지 무척이나 당황하였습니다. 그리고 식량과 목석을 달라는 요구에 우리가 얼마나 있을지 묻다가 결국 전부 지원하는 것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그사이 정찰병들을 보내 둘러본 결과 해안가 인근에 있는 가택은 무척이나 적었다. 혹시 몰라 거대한 읍성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 성을 확인하였으나 유구 성주의 성도 매한가지였다.
그곳에 있는 주민들이 산다고 해도 1만도 안될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진채를 구축할 동안 군촌과 둔전을 할 땅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오늘 지낼 진영을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적어도 반나절은 걸릴 것이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성과 마을을 만들기 위한 목재와 나무를 채굴할 것이다.
진영 설치 후 곧이어 작업을 시키는 것은, 긴 항해로 시달린 병사들과 사람들 너무 고생시키는 꼴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성주는 식량과 석재는 얼마나 지원할 수 있다고 하더냐, 또 이곳 인근 지역의 반적들이 있는 지도는 구하였느냐?”
“그것이 너무 수가 많고, 갑작스럽게 와서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했으니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이런 이런. 이렇게 준비가 안 돼 있어서야. 식량과 자제는 우리가 들고 온 것이 아직 남아 있으니 그렇다 하더라도 지도는 안 되지. 너는 지금 가서 그들에게 어서 지도를 달라고 독촉하여라.”
“알겠습니다.”
산원이 군례를 올리고 다시 성으로 떠나기 무섭게, 별장이 찾아와 보고하였다.
“장군, 유구 성주가 사자를 보내왔습니다. 만나보시겠습니까?”
“보고를 올린 직후건만 벌써 사자를 보내온 건가? 어디 데려와 보게.”
* * *
성에서 나온 사자의 복장은 과연 고려에서는 보기 힘든 오키나와 특유의 복장이었다. 그는 송문주 앞에 오자마자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명성이 자자한 고려의 군대를 보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소인은 유구 성주의 신하 ‘린잔’이라고 하옵니다. 송구하오나 현 상황은 워낙 예상치 못한 일들이라 지금 알려준 지시를 다 지키고자 진력을 다하고 있사오니, 부디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옵소서. 그리고 황제 폐하께서 내리신 칙서를 우리 성주가 직접 받으라 하였는데 황상 폐하께서 내리신 칙서를 아무런 준비도 예도 없이 받는 것은 너무나 송구하고 부끄러이 여기시어 준비를 마치고 받고자 간청하옵니다. 이렇게 거듭 미처 예를 다 차리지 못함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이해하지.”
정확한 규모도 말하지 않고 수만 명이 대뜸 와서 칙서를 직접 받으라고 한 만큼, 공포와 경계를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송문주가 이해하겠다고 답하자 린잔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런데 이때 곁에 있던 김구가 그런 린간의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말하였다.
“너는 어딘가 낯이 익구나. 혹시 지난번 성주의 아들과 함께 온 자가 아닌가?”
“그러합니다. 대인. 소인, 지난번 대국에 입조한 린잔입니다.”
“역시 그러했어. 송 장군도 본 적이 있지 않사옵니까? 전에 태자 전하를 따라 서경에까지 올라온 유구 성주 아들과 함께 있던 자입니다.”
“…으음. 아! 기억나오. 서경 동궁에서 본 적이 있었지.”
“그렇사옵니다. 이렇게 두 분을 다시 뵙게 되어 참으로 기쁘옵니다.”
슌텐씨는 조금이라도 고려군의 사정과 저의를 파악하고자 고려에 직접 가본 린잔을 보냈고, 린잔도 최선을 다해 어렵사리 배운 고려말을 하며 살갑게 굴었다.
“그날 황제 폐하께서 저희 성주님과 그 아들이신 기본 님께 직첩을 내리신 이후 저희 유구는 고려의 번속이며, 신하가 되었습니다. 그때 태자 전하께서는 고려에서 군을 보내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 말씀하셨으나 이렇게나 대군이 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태자 전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나? 그대들의 어려움을 절대 관망하지 않겠다고 말이네. 그 말을 행한 것이니 그대들은 이제 안심하도록 하게.”
“가, 감사합니다.”
린잔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당황을 숨기지는 못했다.
사실 그럴 만한 것이 왕검이 돕겠다고는 하여 기대하여도 좋을 것이라고 말한 그였지만, 수만의 대군이 이토록 빨리, 그것도 대뜸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문제에 대해 논하기 위해 이곳 근방 지리와 천조(고려)에 거역하는 적도들과 밀상들이 있는 지도를 줄 수 있겠는가?”
“그, 그 말씀은 정말로 그들을 토벌하여 주시겠다는 겁니까?”
정말로 적극적으로 전의를 보여주자 린잔은 더욱 당황하며 물었고, 송문주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반문하였다.
“그러기 위해 나와 천군이 온 것이 아닌가? 이곳의 난세를 서둘러 진압하라는 폐하의 엄명이 떨어져 있었으니 어서 주게.”
혹시라도 고려군이 참전의 의사가 없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걱정하던 슌텐씨들의 입장에선 무척이나 반가운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슌텐씨의 성에서는 때아닌 성주의 노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너는 도대체 무얼 알아본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