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76
376화
2장 문제가 터지다(1)
‘벌써라고 한다면 벌써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이제라고 한다면 이제야려나….’
1241년. 내가 1231년에 고려에 넘어왔으니 내가 고려로 넘어오고 10년째에 돌입했다. 암울하고 숨이 턱 막히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한 걸음, 한 걸음 걷던 기분으로 시작한 ‘원 간섭기 없는 고려 만들기’가 ‘벌써 10년’, 동시에 ‘고작 10년’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내가 과거로 오고 10년 사이 고려는 많이 변했다. 평지에서 사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강남농법을 사용하는 곳도 늘어났으며, 화약과 거중기와 조선 시대 축성법, 중국 돼지와 목화 등, 원 역사에 없던 기술과 도구들도 사용하고 있다.
덕분에 원 역사 이 시기 고려에 비해 국력도 증진되었고, 인구도 늘어났으며, 그것은 현재 진행형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 이미 제대로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가를 둘째 칠 경우 인구 또한 10년 전보다 늘어났다.
물론, 1차 여몽 전쟁 전에 나라가 많이 혼란스러운 것을 감안하면 당시 호구 조사가 제대로 안 된 것도 있으니 그저 호구상 많은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국토에 대해선 솔직히 10년 전 나와 만나 설명하더라도 그때의 나라면 믿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여몽 전쟁기 고려가 갈라전을 수복하고, 서북으로는 요동에도 성 하나를 얻고, 동요국을 노리고 있으며, 남쪽은 탐라가 고려의 현에서 벗어나 나라로서 성격이 강화되긴 했으나 고려의 남쪽 영토가 줄어들기는커녕 그 너머 오키나와까지 강역이 넓어졌다.
무신정권으로 어지럽고, 몽골과 대전을 준비하는 것으로 한창인 고려가 그게 가능할 거라고 누가 믿겠는가?
외교는 탐라와 일본(실제론 큐슈, 대마도)와 여진 부락들에게 조공을 받으며 무신정권과 숱한 외, 내란으로 흔들린 황권과 국위를 굳히고 있고, 거란과 몽골과 전쟁에서 어찌 승전하며 자존심을 회복시켰다.
나아가 고려 100여 년 동안 단절되었던 남송과 공식적으로 재수교를 이루었다.
마지막으로 국력에 이르러선 화약량이 불안하다는 것만 뺀다면 화포를 보유하여 당대에서 손꼽히는 화력을 보유했다고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원 역사에 비한다면 중흥기도 이런 중흥기도 따로 없다 수준이 아니라, 아예 제2의 전성기라 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후우….”
가슴속 깊이 우러나오는 깊은 나의 한숨에 정안연이 걱정한다.
“전하께서 나라와 백성들을 아끼시는 성심을 모르는 이는 없사옵니다. 그러나 너무나 근심하시다 전하께 병이 생길까 소신들은 그것이 무척이나 두렵사옵니다.”
“근심하여 병이 생긴다고 하였느냐? 맞다. 나는 황상과 그대들이 이룩한 이 치세가 마치 일장춘몽(一場春夢), 사상누각(沙上樓閣), 누란지세(累卵之勢)와 같다는 불안이 언제나 내 가슴 속에서 사라지지 않으니 울화병이 언제 터지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다.”
정안연의 걱정에 괜히 푸념하는 형태가 되었지만 솔직한 감정이다. 아직도 불안하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지, 잔금 때처럼 내가 모르는 사이에 또 일이 터지지 않는지 시야 밖의 일들이 불안하다.
그리고 여몽대전이 일어날 경우 고려의 국력 신장에 피해가 없는 선에서 확실히 격퇴할 수 있겠는지? 등 아무리 강해져도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불안을 간직한 채 서경 팔관회를 무사히 끝을 내고 조정의 명령도 무사히 달성하여 올해 마지막 군사훈련을 준비할 때 심도에서 소환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래. 조정에서 소환령이 내려왔으니 가야겠지.”
이번엔 또 무슨 일로 부른 걸까? 아무쪼록 피곤한 일이 아니면 좋겠다.
* * *
“이 중 철은 서경에 계신 전하께서 개간하는데 특히나 요긴할 것이니 별도로 더 챙겨 병마사께 내리신 것입니다.”
이안사는 그리 설명하며 어지간한 부족 여럿이 1년은 충분히 먹을 수 있을 만한 양곡, 약간의 목재, 면포, 그리고 철 등의 수량이 적힌 표를 완안자연 앞에 내밀었고, 완안자연은 그 표를 받고 쭉 읽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허허허. 폐하와 전하의 성은에 변경이 이렇게 무사태평 번성할 수 있으니 이 성은에 어찌 답할지가 고민이군.”
“하하하. 병마사께서는 지금도 잘하고 계시는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쟁이 끝나 이후에도 이안사가 남과 북갈라전을 오가는 상인들의 표사행을 담당하며 오가고 있을 때, 완안자연과 이안사가 손을 잡은 것은 어디까지나 양자 모두 이용하려는 속내 때문이었다.
그러나 옷치긴 왕가와의 문제에서 흑태자의 밑에서 함께 싸운 전적은, 둘의 예상 이상으로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함께 싸운 망국 황실의 충신과 고려의 의병장 ‘두 호걸의 우정’이라는 구도는 여진들 사이에 금세 입소문이 퍼진 것이다.
이러한 소문은 그들도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지만 손해는 없었다. 손해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평판이 더 좋아졌기에 그들은 신속하게 소문처럼 하기로 ‘설명도 대화도 없이 눈치껏 합의’한 상황인 것이다.
“그리 말해주니 부끄럽군. 그나저나 북쪽의 노물과 전쟁을 피할 수 없다 생각해 전쟁 대비로 바빴는데 예상과 달리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어.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맥이 빠지기도 하는군.”
옷치긴과의 2차 전쟁을 대비한다고 시끄러웠던 것은 서경만이 아니다.
서경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갈 정도로 바쁜 곳이 바로 갈라전 지역이었으며, 최전선이다 보니 주민들의 전쟁 각오와 몽골에 대한 경계심은 서경과 서북면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전쟁 대비로 움직인다고 소모된 인력은 전쟁이 무산되면서 헛수고로 돌아간 것도 많았다.
“어느 누가 몽고의 왕(칸)이 죽을 것이라 예상했겠습니까? 그러나 몽고왕이 죽인 자들이 강을 메꾼다고 하니 이 모두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것일 수 있겠지요.”
“그렇긴 하지. 그러나 전쟁이 일어났다면 이 장군이 또 전공을 세웠을 것인데,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은 안타깝군.”
만약 그곳에 몽골인이 있었다면 감히 누굴 죄인으로 모냐고 길길이 날뛰었겠으나 다행히 장내는 물론 주변에도 몽골인은커녕 몽골에 호감을 가진 이조차 없었다.
그렇다 보니 둘은 마음껏 몽골을 비방하며 말하는데, 이때 완안자연의 얼굴에 농이 섞인 것을 읽은 이안사도 웃으며 가볍게 농을 던졌다.
“소인도 병마사께서 활약하실 것을 보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번에야 전쟁이 일어났다면 병마사께서도 늙은 여우의 왕족 한 명은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흥. 지난 전쟁에 그대가 잡은 것처럼 말인가? 예끼. 이제 보니 나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 장군의 공적을 자랑하고자 말한 거군?”
이안사가 잡은 것처럼이란 말은 1차 옷치긴 전쟁에서 테무케의 사위인 세늘부진을 이안사가 항복을 권유하여 잡은 것을 말한 것이다.
“그때 소장이 한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저 전하와 병마사께서 전부 다잡은 것에 소장이 가서 물은 것이 전부지.”
“뭐,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긴 하군.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이곳은 여전히 어수선하여 할 것이 많아. 북갈라전의 일이긴 하나 이 장군이 좀 더 노력을 해주었으면 좋겠군.”
“남과 북 모두 같은 갈라전이고, 같은 소속인데 필히 도와야지요. 거기다 아직도 번민하는 이들이 문제인 거지요. 번거롭긴 하나 여기까지 왔음에도 아직도 해동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모르니 확실히 알려줘야지요. 아무리 얌전한 부족이라 해도, 이쪽이 허술한 구석을 보이면 바로 소요를 일으킨다는 건 병마사께서 말씀하시지 않아도 이해하는 바입니다.”
여진인들을 통제하려면 단순히 보듬기만 해선 안 된다. 그들이 고려에 붙은 것은 고려에 붙는 것이 몽골에 붙는 것보다 편하다는 것과 고려를 건드렸다가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일찍 우가하나 동진국처럼 고려를 약탈할 것이 뻔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고려는 그들을 보듬는 동시에 힘도 보여주어야 했다.
완안자연과 이안사는 그 점을 분명히 알았고, 서경의 흑태자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도 둘은 확신하고 있었다.
“전하께서는 늘 남갈라전과 북갈라전 모두에 관심을 주고, 장성 이남에도 유사시 갈라전에 투입할 충분한 병력을 두고 계십니다. 장차 또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갈라전의 병력을 운용하실 것입니다.”
“그렇지. 그러니 이 장군도 다소 고생 좀 해야겠네.”
“고생이라니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병마사.”
“뭔가?”
“실례가 아니라면 남갈라전… 아니, 정확히 말해서 북청에서 온 승려에 대해 여쭤도 되겠사옵니까?”
방금까지만 해도 웃고 있던 완안자연의 표정이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 * *
강화도.
“…아바마마. 방금 하신 하문을 소자는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다시 하교하여 주시옵소서.”
귀를 의심하고 재차 물었다. 소환령이 떨어졌을 때부터 생각은 귀찮은 일일 것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아니다. 분명 내가 잘 못 들은 것이다.
“남조와 단교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잘 못 들은 게 아니다. 정말로 남송과 단교를 하는 것을 물었다니? 이게 무슨 소리냐? 그렇게 쌩쇼하면서 겨우 만든 돈줄. 아니, 수교국과 단교?
“태자가 보기에 남조와 단교를 한다. 이 경우 아조는 어떻게 되고, 어떻게 나아갈 수 있다고 보느냐?”
믿을 수 없어 당황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금 내게 묻는 왕. 너무나도 믿기 힘든 질문, 아니, 상황 자체에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억누르며 반문했다.
“아바마마. 설마 지금 남조와 단교를 생각하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
나의 질문에도 왕은 침묵했다. 답답하면서도 불안한 반응에 뱃속이, 위가 쓰라려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만 침묵하고 어서 설명해 달라고 묻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으며 다르게 물었다.
“소자가 우둔하여 아바마마의 성심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겠나이다. 부디 차근히 이러한 말이 나온 경위를 하교하여 주시옵소서.”
그제야 왕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입을 열었다.
“태자도 알다시피 이번에 남조 사신은 아조의 예상 밖에 방문한 것이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하여 소자를 소환시킨 것이 아니옵니까?”
“그렇다. 그리고 태자가 오기 전 심도에 도착한 남조의 사신은 아조가 연호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더구나. 그리곤 아조에 연호를 참칭이라 하며, 철폐할 것을 청하였다.”
여기서 나는 다시 싸함을 느꼈다. 지금 고려에서 쓰이는 연호 개원(開原)은 몽골이나 남송에서 쓰던 것이 아니라 광종 이후 처음으로 고려에서 만들어 사용하는 자체 연호다.
본래 연호는 황제만이 쓸 수 있는 것이라, 광종조차 중국 국가와 수교를 하기 위해 연호를 중단했다. 때문에 지금 고려도 몽골과 남송을 상대로는 연호를 숨기고, 일본이나 여진, 탐라 등에나 사용하는 사실상 해동 한정 연호다.
이런 연호를 사용한 것은 손상된 황실의 위엄과 나라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내부적으로 알려졌고, 몽골은 물론 남송에게는 절대 들켜선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몽골을 상대로 숨기고는 있으나 몽골은 아직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실제 그 번국인 동진국은 황제를 자칭하기까지 한 적도 있다.
물론, 그 동진국 또한 몽골에 복속하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연호는 취소했다. 즉, 몽골에서 정식으로 고려보고 연호 사용을 금지한 적은 없긴 한데, 들키면 껄끄러운 느낌이 없잖아 있는 건 사실이다.
반대로 남송 경우에는 연호 사용이 금지다. 물론 여기도 정식으로 금지한다는 국서가 온 것은 아니지만 ‘연호를 제후가 사용하면 참칭이다.’라는 상식은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 때문에 남송 조정에 들키게 된다면, 사대부들을 비롯한 학자들이 벌컥 반응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정작 남송의 황제는 대다수의 조정 신료들이 모르는 고려의 연호 사용을 알고는 있다. 왜냐하면 연호를 사용하기 전에 먼저 사용할 것을 상인외교로 몰래 말했으니까 말이다.
즉, 황제와 고려 사이에 밀약(密約)을 맺어서 ‘고려가 연호 몰래 사용하는 것을 허락’ 해줬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밀약은 앞서 종래의 남송과 고려의 관계와 달리 고려에 더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기보다는, 황제에게도 큰 이득이 있는 밀약이다.
왜냐면 고려가 남송 황제의 위상을 회복 내지는 강화할 때 ‘우연히 고려의 연호 참칭을 발견하나, 이를 부드럽게 훈시하여 달래자, 고려왕은 순순히 취소하는 것으로 남송 황제의 덕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창, 칼이 아니라 덕과 성언만으로 약소 부족도 아닌 해동의 강국을 설복, 교화시키는 것이 현실로 일어난다면 남송 황제는 그야말로 요순(堯舜 중국 고대 요 임금과 순 임금)에 필적하는 명군, 성군으로 추앙받을 것이 분명했다.
성리학의 나라에서 요순의 재래라 불리는 군주의 권위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이 경우 고려로선 고작 말 한마디에 취소했다는 것에 굴욕적이긴 해도 돈 하나 들이지 않고 남송과 지금처럼 그리고 향후로도 우호로 지낼 수 있는 격이라 남는 장사다.’
때문에 지금 상황도 정확하게 말하면 남송에서 드디어 우리가 연호를 쓴 것에 대해 눈치채고, 관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드디어 ‘남송 황제가 정치적 패를 쓰겠다고 알렸다.’고 하는 것이 맞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바마마. 아조에서 사용하는 연호에 대한 문제는 예전에 이미 소자가 설명하지 않았사옵니까?”
그렇다. 연호 사용 자체가 남송 황제의 정치적 패로 언제 폐지될지 모르는 것인 만큼, 연호를 사용하기에 앞서 아버지에게도 미리 설명하며 이 연호는 이후 폐지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연호 폐지 요구에 단교를 언급한단 말인가?
“알고 있다. 이 애비도 태자가 그리 말한 것을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말이다. 지금 남조가 필요하느냐?”
“…예?”
“아조는 이제 더 이상 무부들에게 휘둘리던 나라가 아니다. 중흥을 맞이하여 경인년(무신정변)이전의 국세를 회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니, 연호를 사용하고 만국과 교통하고, 북으로는 여진들을, 남으론 왜와 유구까지 설복하여 조공을 바치고 있으며, 유일한 몽고적마저 지금 그 수괴가 서정을 나가 전사하여 나라가 혼란스러운데 무엇이 두려운 것이 있겠느냐?”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