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453
453화
51장 북방의 괴장(怪將)(3)
-적병의 모습을 제대로 살펴라. 그것은 적진의 상황을 살필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적들이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면 대처와 더불어 그 원인을 생각하라. 그것이 승리를 위한 단초가 될 수 있고, 이쪽에서 이용할 수 패가 될 것이다.
-수괴를 잃은 군은 토벌하기도 쉽다. 하물며 그들이 관군이나 제대로 된 병사가 아니라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창칼을 든 양민들로 이루어진 군대라면 수괴를 잃은 후 그 기세는 완전히 꺾였으니 기선을 잡고 복속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니 수괴를 잡은 적군에게는 항복과 종군을 권하라.
그것은 송문주가 군사훈련을 하거나, 혹은 전쟁에 동원되었을 때 하던 말들이었다. 송문주의 밑에 있던 임연은 그 말들을 잊지 않고 책에 적어놓고 외우고 언제 어떻게 써야 할지 궁리하고 또 궁리했다. 그리고….
“크하하하!!”
“어서 받으시지요. 장군님.”
고려의 관아가 설치된 발해서경에서부터 다소 거리가 있는 산에 있는 산촌에서는 때아닌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잔치의 상석에는 팔척장신(八尺長身)의 괴인 임연이 앉아서 제집처럼 술과 말고기를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술을 따르며 함께 말 고기를 뜯는 장정들은 모두 며칠 전 고려 마을을 습격하려다가 격퇴당한 마적들이었다.
“장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마적은 굽신거리며 술을 따랐고, 임연은 당연하다는 듯 받아 마시며 제 병사를 대하듯 대하였다.
“암. 너희들도 이제 모두 고려의 백성들이다. 지금의 죄는 종군하여 면하겠다고 한다면 감히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 하하하!”
임연의 설유에 넘어간 마적들이 귀부와 종군을 맹세하며, 이번에 격퇴당하였을 때 다친 말들을 잡고 술을 꺼내 임연을 대접한 것이다.
아직 귀부를 보고하지도 않았으면서도 그들과 술을 마시고 있으니, 방어판관 송의가 이런 그의 모습을 본다면 임연을 두고 마적들이 술에 취하게 만든 뒤 목을 벨지도 모르는데 느긋하게 마시니 참으로 어리석다고 하였을지 모른다. 그러고는 그 담력에 대해서는 혀를 내둘렀을지도 모른다.
물론 임연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겁을 먹고 잔치를 거절한다는 것은 그들을 귀부 시킬 수는 있을지라도 그들과 보다 가까운 거리가 되어 그들을 제대로 부리는 것은 어려워 질 수 있었다.
귀부만 시켜도 큰 공이지만 그가 여기까지 혼자서 온 것은 단순히 복속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출세를 위한 기반 중 하나로 만들어보고자 실패 시 죽음도 각오한 도박의 심정으로 온 것이기 때문이다.
‘황도에서 출세하는 것이 가장 좋기는 하나, 이제 권신들이 사라져 요행을 바라는 것은 어렵고 어쩌다가 요행으로 음서처럼 대뜸 자리를 얻는다 한들, 당대에 그런 것으로 높은 자리로 출세하는 것은 어렵고 요직을 받을 수도 없다. 그보다는 이런 조정과 태자 전하께서 관심을 가지는 북방에서 공적을 쌓고 능력을 보이는 것이 출세를 하는 지름길이로다.
그리고 이곳은 아직 조정의 교화가 덜 된 것이고 번인(蕃人)들도 많아 오히려 공을 쌓을 기회도 많고 잘하면 그 옛날 태조 황제의 공신인 충절공(忠節公=유금필)처럼 번인들을 부려 그들의 대추장(大酋長)이라고 불린다면 더더욱 내 이름과 능력을 천하에 드러낼 수 있으리라!’
그리고 유금필이 되기 위해선 유금필과 같이 대범함과 호탕한 모습이 필요하다고 임연은 판단한 것이다. 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느긋하게 대접을 받았지만, 무릇 오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는 법. 임연은 활구(闊口 고려 은병)을 2개 꺼내주었다.
“너희가 이렇게 없는 식량으로 나를 극진히 대접하는데 내가 아무런 보답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천하의 몹쓸 놈이 되는 거겠지. 이 은병이면 식량값으론 충분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장군! 참으로 감사합니다. 장군!”
자신에게 굽신굽신 대는 여진인들을 보며 임연은 속으로 귀에 입꼬리가 걸릴 정도로 웃으며 확신했다.
‘지금까지 모두 송 장군의 책략이 통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내가 송 장군의 밑으로 간 것이 틀리지 않았음과 송 장군의 전략과 지략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방증 아닌가!’
임연은 북방에 올라온 이후 자기가 송문주의 밑에서 배운 것들을 이용해 병사들과 마적들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뻤다.
이를 두고 대단한 것은 송문주고, 임연은 그런 송문주의 책략을 훔쳐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부족할 것 없는 호족의 자식으로서 송문주의 시양졸(廝養卒 밥과 나무를 하는 천역을 맡은 병졸)에 들어가 그의 군략과 지략을 습득하겠다고 행동하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지식으로 습득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책략을 실제로 실행하여 성공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임연은 집념과 노력으로 그 모두를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익힌 책력이 송문주 본인에 미칠지는 둘째 치더라도, 적어도 사용하여 성공하고 있다는 것에서 임연 또한 ‘장군’이라고 자부할 만한 책략을 갖추고 그것을 실행시킬 능력과 담력을 갖춘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 * *
개경.
“여태껏 번인 무리 중 아직도 아조에 복속하지 않은 자들은 대개 마적이 되어 약탈을 일삼는데 이번에 발해서경의 대정 임연이 마적들을 토벌한 것도 모자라 혈혈단신으로 그 소굴에 가서 그들을 설유하니 그들이 모두 귀부하여 종군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야인들도 잇따라 아조의 토관(土官 토착민으로서 그 지방의 소임을 맡은 사람)이 되기를 청하니 그 수가 이미 3백에 달한다고 하니 대정 임연의 공이 작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왕도 동의하였다.
“그렇다. 용병으로 적들을 토벌한 것만 하여도 가상한 일이거늘, 홀로 야인을 찾아가 설유하여 귀부에 성공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뛰어난 능력이로다. 대정 임연이라는 자는 누구인가?”
“대정 임연은 본래 대장군 송문주 밑에 있던 시양졸(廝養卒)인데, 그러나 이번 ‘무관 천거제(薦擧制)’에서 송문주가 대정으로 천거(薦擧)하여 발탁되었습니다.”
“과연 송 장군이 나라의 동량(棟梁)을 제대로 천거하였구나. 하나, 이만한 인재를 대정이라는 자리에 두는 것은 너무나 형평과 능력에 맞지 않도다. 대정 임연을 별장(別將 정7품 무관직)으로 승직(陞職)시키고, 아울러 그와 함께 공을 세운 군인들에게도 술과 고기를 내리도록 하라. 그리고 이번에 귀부하여 종군으로 속죄하려는 여진인들을 현지에 맞게 배속시키도록 하라.”
“폐하! 임연이 공을 세워 능력을 보이긴 했으나 아직 송 장군의 천거로 대정이 된 지 반년도 되지 않았는데 단순한 승직도 아닌 별장이라니요.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그렇사옵니다. 관작의 남용이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 부디 거두어주시옵소서!”
“이번 승급이 파격적인 것은 짐도 알고 있다. 하지만 승급에 어울리는 인재라면 어찌 승급을 하지 않겠느냐?”
강렬한 대간(臺諫)들의 만류에도 왕은 능력이 있고 공을 세운 이에게는 그에 걸맞은 상과 지위를 내려야 한다면 승급을 고집했다. 그러나 재고해 달라는 신하들의 반응은 결코 이상하지는 않았다.
종9품 대정이 정7품 별장으로의 승급한다는 말은 단 한 번의 공으로 5급이나 승진하는 것인데, 이런 파격적인 승급은 사례를 찾아도 무신정권 시절 산원(散員)이던 이고, 채원이 정변 이후 위위경(衛尉卿 종3품)이나 장군(정4품) 되거나 한 것 같이 국정농단으로 얻은 것들이 다수였다.
하여 신하들은 무신정권을 연상되는 이 사태에 더욱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이 임연이라는 대정이 태자의 입김이 있을지 모르고 그로 인해 끝내 승급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 자리에서는 대간으로서 간쟁(諫爭)해야 한다고 그들은 스스로 자부하며 격렬히 반대했다.
그리고 그런 강렬한 반대에 왕은 결국 문하시중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조신들이 이렇게 반대를 하는데 경들이 생각하기에는 어찌 생각하는가?”
“임연이 이번에 큰 공을 세운 것은 분명하나, 승패는 병가지상사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대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파격적인 승급을 내리시는 것은 후일 나쁜 사례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옵니다.”
“하나 그가 능력을 보인 것은 맞으니 그에 맞는 상급을 내리는 것은 가하다고 생각하옵니다.”
“으음.”
문하시중 최종준은 승급에 반대하고, 수문하시중 박서는 승급에 찬동하는 기색을 보이면서 문신과 무신의 정점에 오른 이들이 상반되는 말을 내놓은 것이다. 물론 그것이 문반과 무반의 대립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태자가 무(武) 또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신하들도 알고 무신들도 태자를 흠모하는 이들이 많은데, 둘 중 보다 태자의 사람에 가깝다고 인식되는 문하시중이 반대했으니 말이다.
그런 둘의 상반되는 의견에 왕도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자 그때 최종준이 제안하였다.
“폐하. 그를 잘 아는 자의 의견을 듣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잘 아는 자라면 누굴 말하는 것인가?”
“그를 천거한 것은 대장군 송문주라고 들었습니다. 송 장군에게 이번에 대정 임연이 거둔 공을 알리고 승급 문제에 대해 하문한다면 송 장군은 성실히 대답할 것입니다.”
“옳다. 그러고 보니 그를 대정으로 천거한 것은 다름 아닌 대장군 송문주이며, 그를 시앙졸로 삼아 오랫동안 함께 했다고 했으니 누구보다 잘 알 것이 아닌가? 당장 사람을 보내 의견을 듣도록 하라.”
하여 왕은 즉시 사람을 보내 송문주에게 의견을 구하니 송문주는 글을 올렸으니 그 내용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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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이 공을 세워 승급을 내리는 황은은 지극히 망극하오나, 지금 임 대정을 별장까지 올리는 것은 나라에도 그에게도 좋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초 소신이 그를 부릴 때 그는 소신의 병사들을 훈련하는 것을 지켜보고, 소신이 집에서 지내는 동안 부리는 일이 없으면 자기 알아서 수학(修學)과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이 가끔 상을 내리면 그것을 비축하거나 혹은 자기와 친하거나 이익이 되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거나 대접하여 이곳에서 (임)연의 지위는 높지는 않을지언정 그와 인연과 안면을 익힌 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힘이기도 한데, 지금 (임)연은 하루아침에 대정이 되어 그곳에서 아는 이가 적습니다.
이번에 공을 세우긴 하였으나 그의 진가를 드러내기 위해선 별장으로의 승급보다는 다른 상급으로 그가 그곳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이로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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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공을 세웠으니 승급을 시키더라도 별장은 과하고, 물적인 물건이나 식량, 돈 등으로 내리는 것이 변방을 통어하고 그가 성장하는 데 좋습니다.’라는 말이었다. 왕은 그런 송문주의 의견을 따라 임연의 관직을 별장이 아닌 산원(散員 정8품)으로 올리고, 옷과 칼, 그리고 은병 2개와 미곡 10석을 하사하였다.
비록 별장은 아니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히 파격적인 은사(恩賜)였기에 반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왕은 단호하게 대답하여 결행하였다.
“(송문주) 대장군이 올린 글은 그저 임연이라는 대정에게 큰 상을 내려달라는 것이 아니다. 이 상들을 임연이라는 자가 나라에 크게 도움이 되게 할 것이라는 말이니 주저할 이유는 없다.”
이런 왕의 예상은 정확했다. 임연은 상을 받자마자 기뻐하며 부하들과 여진인들을 불러 받은 미곡을 베풀며 잔치를 여니 따르던 번인들은 더욱 그를 따르기 시작했고, 임연은 그런 그들을 사사로이 부려 작은 규모의 부락들을 소탕하거나 복속시켰다.
“사, 살려주십시오, 항복합니다.”
“좋다. 그러나 여기는 장소가 척박하여 관리가 쉽지도 않고, 너희도 살기 힘드니 나를 따라오너라.”
그렇게 각 소부족을 멸하거나 부족민들을 고려의 요새나 마을 주변 완충지로 쓰일 만한 곳에 두어 나름 규모가 되는 마을을 만들어 고려의 새로운 촌락으로 편입하니 그 마을은 사실상 고려의 완충지요, 임연의 산하 부족이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이것을 여러 번 반복하고 나니 얼마 뒤 서북면 압록강 이북에는 여진인들과 식사와 잠자리를 하며 여진인들을 부리는 ‘흉악한 장수(怪將)’가 있다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