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51
551화
44장 사냥을 벌이다(1)
고려 고종 32년(1245년), 남송 순우 5년, 을사년(乙巳年). 6월 20일.
각궁의 아교가 불안하고, 상황에 따라선 화포의 대부분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비 많이 오는 여름의 장마철이 도래했다.
그래도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흐릴 뿐, 비는 오지 않았기에 예정대로 군사 훈련을 벌일 수 있었다. 다만 군사 훈련이라고 해봐야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은 소대, 분대 규모급으로 훈련 상태를 검사하는 것에 불과하다.
“검차는 정면의 적들과 기병을 막는 데 유용하여 잘만 다룬다면 어지간한 장창진과 견줄 정도라 따로 장창진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 그 형태상 평지가 아니면 이동이 불편하고, 지면에 장애물이 있다면 장창병 이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병을 상대할 때에는 검차만큼 유용한 무기가 없었으니 예로부터 북방의 기병들을 상대할 때에는 검차를 이용하였다. 또한 언덕이나 산에서도 평지처럼 운반은 힘들다고 하더라도 검차가 앞에 있다면 그것만으로 방벽이 되어 장졸들의 목숨을 구해주니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 그러니 검차를 운용할 때는 전장이 될 곳을 탐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맞는 말이다. 함정이라도 파여 있거나 진창길이면, 검차는 그 효능을 단번에 상실한다.
그 옛날 부여의 대소왕이 당시엔 부여보다 확실히 약했던 고구려로 친정했다가 죽은 것도 말이 진창에 빠져서가 아니었던가? 움직이지도 못하는 검차는 진군의 방해만 되는 족쇄에 지나지 않는다.
“음. 일부 병사들의 발걸음이 점점 뒤처지기 시작했구나.”
낑낑대며 뒤처지려는 병사들의 등과 손에는 저마다 거대한 총통(銃筒)이 짊어져 있거나 쥐어져 있다. 저건 저번에 만들어서 내 앞에서 시연하고 처음으로 개인화기라고 부를 만한 승자총통(勝字銃筒)을 연상하던 무기가 아니다.
그저 기존에 사용하던 화포들보다는 다소 작고 손잡이가 달린 것에 불과하다. 조선 시대로 치자면 천자총통(天字銃筒)보다는 지자총통(地字銃筒)이나 현자총통(玄字銃筒)에 가깝다.
“장정이 혼자서 들 수 있다곤 하나, 그 무게가 50근(약 30㎏)은 족히 넘습니다. 전투 중 신속하게 들 정도로 가볍지는 않으니, 이동이 계속될수록 뒤처질 것입니다.”
아무리 무겁더라도 장정 혼자서 들 수 있으면 홀로 운반이 가능하다고 봐서 휴대할 수 있는 무기로 취급한다.
즉, ‘휴대무기=개인화기’로 직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때문에 못 들 정도는 아닌 화포다 보니, 이번 훈련이 평지전만이 아니라 도중에 산악전이나 산악으로 퇴각 및 이동을 상정하여 개인이 들어서 이동하게 했다.
“차라리 화력은 약하더라도 ‘초총통(初銃筒)’을 들게 하는 것이 더 낮지 않겠습니까? 초총통의 무게는 약 8근(약 4.8㎏)입니다. 병사들도 수월히 휴대하고 현지에서도 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곁에 있던 척인사가 조용히 의견을 제시하며 말한 초총통은 지난번에 김기손이 내 앞에서 시연한 총통의 이름이다. 초(初)라는 이름에서 알겠지만 말 그대로 아직 처음 만들어진 개인화기인 총통이라는 의미로 붙인 것이다.
척인사의 의견도 틀리진 않았다. 실제 역사를 돌아봐도 대구경 화포와 거대한 화력 위주에서 소구경의 화기가 주력으로 바뀌던 것이 조선의 역사다.
대구경 화포가 화력이 강해도, 거리랑 명중률이 별로면 결국 많은 화약만 헛되게 소모하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는 단발 화력은 떨어져도 명중률이 높고, 화약 소모도 적은 소구경 화기를 주력으로 쓰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더군다나 수성전이 아니라면 화기를 들고 싸워야 하는데, 지금 눈앞에 보여준 것처럼 병사들이 무거운 화포를 장기간 들고 이동하는 문제점도, 소구경 개인화기라면 해결이 된다.
하지만 전에도 말했지만 나라고 개인화기의 중요성과 장점을 몰라서 안 쓰거나 개발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다.
“나라고 어찌 그걸 모르겠느냐? 화약과 화기는 분명 전쟁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 초총통의 명중률은 그리 좋지 못하며, 소량이라고 하더라도 억지로 대량 양산하여 병사들을 총통병으로 만든다면, 종합적으로 소모되는 화약량이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거기다 너도 알다시피 아조가 맞서 싸워야 할 적들에 비해 아조가 가진 화약은 많지가 않으니, 화약을 제대로 쓰되 화기에만 의존하다간 결국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래서 당대 아조에서 군사 훈련을 하거나 전술 화기는 보조하는 용도로 하는 것이다.”
그렇다. 현 고려의 화기 방침은 엄연히 화기의 화력으로 적을 소탕하는 것이 아니라, 화기로 적의 허를 찌른 뒤 기병이나 보병 혹은 궁병 등으로 처리한다는 방식이다.
왜냐고? 설마 화약의 화력으로 의존한 전술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에서 화약이 고갈되기 때문이냐고? 그런 이유도 있지만 한국의 기후도 문제다.
여몽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는 나도 모른다. 물론 몽골에게도 공격하기 편한 계절이나 시기가 있으니 그때가 편중되겠지만 특정 계절에만 일어날 것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그리고 강대국이 약소국과 전쟁을 할 때 얻는 이점 중 무서운 점은 그런 문제를 감내하고도 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한국은 여름 장마철에는 습하고 비가 많이 온다.
여기까지 말하면 무슨 이유인지 대략 감을 잡았을 것이다. 고려의 기술력으론 아직 장마철에 수월하게 화약을 쓸 수 있을 정도는 아니고, 화약도 모자라는데, 화기에 의존한 군대는 쌍령전투 꼴이 나올 수도 있다.
“물론, 최악의 상정만을 가정하며, 손에 있는 것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어리석은 것은 알고 있다. 하여 틈틈이 화기들을 위주로 할 수 있는 작전과 전술 교리도 준비하고 있으며, 지금도 초총통을 개량하여 명중률과 화약의 소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들을 연구하고 있지 않느냐?”
전에도 말했지만 이런 단점이 있는 상태에서도 개인화기를 만들 수 있다면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초총통이 만들어진 이후 이전보다 더 개인화기와 조총 제작에 신경 쓰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실제 휴대무기로 쓸 수 있는 세총통(細銃筒)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세총통은 조금만 거리가 있어도 상대가 두꺼운 갑옷을 입으면 살상하기 힘들어 총통병이나 총병 같이 따로 병종을 만들 무기라기엔 거리가 많이 멀지만 개인 휴대 총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포병만이 아닌 총병 내지는 총통병도 필요하긴 해. 현재 만들어진 총통이 조금만 더 개량된다면 포병과는 별개인 전문적인 총병과 총통병을 검토해야지.’
* * *
“이, 이런 썩을! 금수가 다 사라졌다며! 이 근방에선 다 사라졌다면서!!”
초로(初老)의 사내가 짧은 검을 묶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위협을 해보지만, 그 앞에 있는 늑대들은 전혀 물러나지 않고 천천히 틈을 엿보며 접근했다.
“아, 아바이….”
그 사내의 뒤로 한 소년이 겁에 질린 채 옷자락을 꼬옥 잡으며 부르며 떨고 있었다.
“너는 앞으로 나오지 마라! 절대 나오면 안 된다.”
아바이라고 불린 초로의 남성은 연신 눈을 움직이며 늑대 3마리 중 하나라도 놓치지 않게 주시하며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나려 했지만, 늑대들은 눈앞의 먹잇감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특히 두 마리의 늑대는 시종일관 사내의 뒤에 벌벌 떨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덮칠 생각이 만만이었다.
늑대와 개가 같은 조상을 두고, 늑대가 가축화된 것이 개라고는 하지만 늑대와 개는 엄연히 다르다. 굶주린 늑대 한 마리와 사람이 조우한다면 사람은 죽거나 살아도 중상을 모면하기 힘들다.
하물며, 무리 생물인 늑대는 무사히 정착하고 무리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호랑이와 둘 중 하나는 사라질 때까지 해당 산의 지배권을 두고 다투는 맹수였다.
그러한 늑대를 3마리나 만나고, 아니 습격을 받고도 운 좋게 살아서 대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부자의 행운은 몹시나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도 사내가 포기하지 않는 것도 자식을 지키고자 하는 부모의 사랑 때문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제아무리 유리하다고 하더라도 중상이라도 입는다면, 냉혹한 자연 속에서 앞으로도 무사히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알던 늑대들은 굶주림 속에서도 신중히 틈을 노리며 대치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공복이 한계에 도달하게 되면서 무너질 위기였다.
“크르르르.”
“컹. 컹.”
“그르르릉.”
그런 늑대를 보며 소년의 아비도 늑대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직감하며, 늑대를 주시한 채로 아들에게 유언을 남기듯 지시를 내렸다.
“다행히 포위되지는 않았으니, 이 아비가 신호를 주면 너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이대로 쭉 마을까지 가라.”
“아바이. 아바이는요?”
“나는 걱정하지 마라. 넌 당장 집으로 가서 엄마를 지킬 생각이나 해라.”
“…아바이. 싫어요. 아바이도 함께 갑시다.”
“이 녀석아! 아비 말 좀 들어!!”
덜덜 떠는 자식의 애절함을 느끼면서도, 자식만을 살리기 위해 호통을 치는 아바이. 그러나 겁을 떨쳐내기 위한 호통은 역으로 불행을 불러왔으니….
“크어엉!”
우연인지 아니면 호통에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달려든 것인지는 몰라도 늑대들이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놈!!”
초로의 남성은 반사적으로 지팡이를 들어 늑대가 물려는 것을 막았지만, 굶주린 늑대는 하나가 아니었다.
콰득.
“으윽!”
다른 늑대 하나가 달려들어 사내의 목을 노렸으나 사내는 기적적인 반응으로 피해 목이 아닌 어깨를 물렸다.
늑대의 치악력에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사내는 물러서지 않으려 했지만, 남은 늑대는 사냥꾼답게 그런 부모가 아닌 취약한 생물을 우선하였다.
“히, 히익.”
“어, 어서 도망가래도!!”
늑대에 겁에 질려 경직된 소년은 아버지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것일까 아니면 반사적으로 반응한 것일까? 뒤늦게나마 도망가려 했으나, 긴장한 나머지 소년은 제 발에 엉켜 넘어졌다.
그리고 늑대는 넘어진 먹잇감을 놓칠 정도로 어리숙한 사냥꾼이 아니었다.
휘이이잉! 팍!
“깨갱.”
펑!
연기를 꼬리처럼 흘리며 날아온 화살이 번개처럼 늑대의 옆구리에 박히고는, 곧이어 폭발하였다. 때와 장소에 맞지 않은, 작지만 강렬한 폭음에 그곳에 있던 모든 생물이 멈추어 그것을 확인하였다.
화살에 맞은 늑대는 몇 번 경련을 하였지만 일어나지 못하고 의식도 되찾지 못했다.
뛰어난 사냥꾼은 화살 하나로 맹수를 잡는다고 하지만 이것도 치명상을 입혀 결국 죽였다는 말이지. 즉사 시켰다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눈을 맞춰 그대로 뇌까지 박히는 경우라거나 쇼크사로 죽은 경우였다. 아니라면 보통의 맹수는 화살 하나로 쓰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늑대가 화살 하나에 맞아 끝난 것이다.
공복의 금수들이 공복마저 잃을 정도의 광경과 침묵의 상태는 곧이어 들리는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켕.”
“깨갱!”
화살 두 개가 각자 늑대의 목과 등을 맞춘 것이다. 각자 매타작을 당하는 개 소리를 내던 늑대 두 마리는 목에 맞은 늑대는 몇 번 캑캑대며 미친 듯이 여기저기 날뛰었고, 등에 맞은 늑대는 바로 숲속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일련의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도 어안이 벙벙하여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는 소년과 그 아비의 눈과 귀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낮에 길가에 금수가 나와 사람을 해치다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로다.”
“늑대를 보니 체구가 작고, 수도 고작 3마리인 것을 보아 저 늑대들은 근래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십중팔구 근방에 있던 범이 사라지자 온 것일 겁니다.”
“그런 것이 무엇이 중요하지? 우리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사람이 죽을 뻔하였어?”
산적이라고 하기엔 깔끔한 복장이었고, 사냥꾼이라고 하기에도 선두에 있는 이들의 복장은 깔끔하고 무리가 전부 규율이 서 있는 것이 군대를 더욱 연상시켰다.
특히 가장 선두에서 검고 푸른 비단의 옷(戎服)을 입은 청년은 자신들을, 아니 현 참상을 보곤 명백히 불쾌함과 안타까워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누, 누군지 몰라도 구해주셔서 감사하… 윽.”
감사의 인사를 하려던 초로의 사내는 늑대가 사라진 것으로 긴장의 끈이 풀렸기 때문일까? 늑대에게 물린 어깨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격통에 신음하더니 이내 쓰러졌다.
“아바이!!”
희미해져 가는 시선 속에서 저 멀리 달려오는 자식과 웅성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끝으로 의식은 점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