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uff RAW novel - chapter 217
참모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거듭한 끝에 에이센군의 의도를 추정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파츠 베이스군의 물자 소모를 유도해 결국에는 보급품 부족이 절정에 달했을때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방향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되었다.
“이거 걸려도 단단히 걸려든 것인지 모르겠군······”
암브로이츠 차수를 비롯한 파츠 베이스군 지휘부는 이번 작전의 상황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 보았다. 기나긴 회의 끝에 내려진 결론은 에이센군이 자신들을 상대로 거대한 유인작전을 썼다는 것이었다. 그 증거로서 전쟁이 벌어진 초반 에이센 함대가 기다렸다는 듯이 조직적으로 반격에 나섰던 점, 이런 조직적인 반격이 대규모 병력 동원에 여지없이 무너진 점, 그리고 로드 멜비스를 포기하고 철수하면서도 지상에 많은 수의 지상부대를 남겨 두고 간 점, 등이 지적되었다. 이상의 증거들을 종합하여 판단해 볼 때 자신들은 처음부터 에이센의 거대한 유인 작전에 말려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회의에서 내려진 최종적인 결과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사령부는 암담한 현실에 대해 걱정부터 앞세울 수 밖에 없었다.
에이센은 자신들의 뛰어난 정보망을 통해서 파츠 베이스의 공격 의도를 확실하게 알아낸 뒤, 장대한 전략을 세워 파츠 베이스군의 시선이 온통 로드 멜비스로 쏠리도록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보급함대에 기습을 가해 보급물자 부족 등을 유도해 한번에 30만 척이나 되는 파츠 베이스 함대를 격멸해 버리려는 전략을 수립한 것이라는 의견이 사령부 예하의 참모들 사이에서 그럴 듯하게 떠돌기 시작했다. 이런 참모들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카레트 중장도 자신들의 현재 상황을 분석해 보고 에이센의 이런 움직임을 파악해본 결과 자신들이 로드 멜비스 하나에 너무 집착하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카레트 중장은 자신들의 본래 계획은 일단 로드 멜비스를 함락시켜 이것을 거점으로 아이크를 공략하기로 한다는것이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에이센의 거대한 유인 작전에 걸려 들어 버리게 된 계기라고 판단했다. 에이센은 로드 멜비스에서 철수하며 정규 지상 부대와 행성 소속의 예비군 부대 대부분을 그대로 두고 철수해 버렸다. 이것은 행성이 쉽게 점령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고 곧 자신들이 이들을 구출할 수 있을 자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되어 졌다.
카레트 중장 이하 참모장과 대부분의 참모들이 암브로이즈 차수에게 철수할 것을 건의했다. 자칫 이 상태로 로드 멜비스 하나에 집착해 있다가는 에이센의 장대한 전략에 휘말려 들어 30만 척이나 되는 귀중한 함대 전부를 잃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만약 이곳에서 함대에 큰 타격을 받게 된다면 방어전력이 거의 없게되는 돌파한 에이센군에게 수도인 록세비엔이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록세비엔이······”
참모들의 보고를 받은 암브로이즈 차수는 즉시 이 사실을 국방장관 토리만 벤플리트 제국원수에게 통보하는 한편, 함대를 철수시키도록 명령을 내려 줄 것을 건의했다. 매우 시급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회답을 줄 것을 바란다는 추신도 함께 집어 넣었다.
에이센 특수 부대에 의해 수송함대가 11월 13일 전멸한 것을 알게 된 파츠 베이스 사령부는 마치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진 것처럼 되어 버렸던 것이다. 보급 간격이 4일 정도로 유지되고 있었는데 이것이 갑자기 8일로 늘어나게 되어 버려, 혹시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면 극심한 물자의 소모로 인해 마지막 1, 2일 정도는 절대적인 보급품 부족에 시달릴것이 분명했다. 비록 룸네에서 후속 보급함대를 예정보다 빨리 출발시켰다고는 하지만, 현재 에이센함대가 파츠 베이스 함대의 물자 소모를 유도하기 위해 공세를 취해오고 있는 상황에서는 물자 소모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밖에 없었다.
“좋지 않아······”
암브로이즈 차수는 전체 함대에 물자 소모를 줄이라는 명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최전선에서 에이센 함대가 강력하게 도전해 오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물자 소모를 줄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지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에이센군이 전 전선에 걸쳐 공격을 가해오는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제때 보급을 받지 못한 자신들은 마지막 1, 2일 정도에 대부분의 전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은 분명해 보였다. 또한 보급함대가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장기간 로드 멜비스에 버티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조금 늦출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암브로이즈 차수는 머리를 싸매며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고민하는 차수와는 별개로 참모들 사이에서는 그간 래리가 줄기차게 주장해 왔던 보급함대의 호위함 부족에 대해서 떠올리면서 서로간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눈짓을 통해 나눈 대화를 통해 이번 작전 실패에 대한 책임 소재 마저도 결정지어 버렸다.
암브로이즈 차수가 자신이 처벌 받을 것을 두려워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참모들은 이번 보급품 부족 문제를 군수지원 사령부 본부장 비쟌 로마리오 원수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암브로이즈 차수에게 주지시키면서, 로드 멜비스에서 병력을 철수시켜 후퇴하자고 계속해서 암브로이즈 차수를 종용했다.
래리는 다른 참모들이 적극적으로 철수를 주장하고 있을 때 묵묵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채, 자신들을 궁지에 몰아넣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에이센의 특수부대의 공격을 되짚어 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참으로 대단한 녀석들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에이센군은 자신들의 허술한 후방을 노려 보급선을 위협하며 룸네에서부터 이곳 로드 멜비스까지 이르는 보급선을 차단하려는 의도를 확실하게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보급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
이 상황에서는 래리로서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다른 참모들이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암브로이즈 차수에게 철수를 종용하고 있으니 그저 묵묵히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뿐이었다.
16일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록세비엔의 국방장관 토리만 벤플리트 제국원수의 후퇴 명령이 정식으로 하달 되었다.
이에 따라서 12시 30분부터 로드 멜비스에 강하해 있던 지상 부대에 대한 회수 명령이 떨어졌다. 정식 철수 작전 개시가 17일 00시를 기해 이루어 지도록 되었기 때문에 파츠 베이스군 함대 사령부는 지상 부대에 대한 회수를 서두르도록 했다.
13시 40분 로드 멜비스 행성의 레필 대륙 남부에 위치한 소비재 재생산업 단지를 공격 중에 있던 칼루야 상위는 사령부에서부터 갑작스레 내려온 철수 명령을 받고는 적잖게 놀랐다.
“철수 하라고?”
한창 소비재 재생산업 단지 내부에 주둔하고 있던 에이센 예비군 부대와 교전을 벌이고 있던 그는 처음에 이 명령이 에이센군이 자신들을 기만하기 위해서 내보낸 것이 아닌가 의심을 했었다. 그렇지만 거듭 확인한 결과 사실로 판명되자 그와 같이 작전을 수행중에 있던 강습해병대 연대장들을 불러들여 명령을 통보해 주었다. 갑작스러운 철수명령에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강습해병대 연대장들을 좋은 말로 설득한 칼루야 상위는 부대를 철수시키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전투 행위를 중지하고 철수하라고? 빌어먹을!”
갑작스러운 철수 명령에 이제껏 자신들이 열심히 싸운 것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어 버리자 강습해병대를 비롯한 바리스타 파일럿들 모두 크게 분개하고 있었다. 명령에 다르지 말고 이곳에 남아 적을 모두 쓸어 버리자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수송함으로 철수해 궤도상으로 올라오라는 지시는 로드 멜비스에서 함대가 철수할 것이라는 것과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크게 분개하면서 철수 준비를 서둘렀다.
‘빌어먹을 곳······’
엘레비아는 세라핀이 죽은 충격에서 벗어나 이제는 어느정도 진정이 된 것 같았다.
소비재 재생 산업 단지를 궤도 포격으로 완전히 날려 버리기는 했어도 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예비군 바리스타 부대와 예비군 보병부대를 섬멸할 수 없었다. 이렇게 제대로 결론도 지어 버리지 못할 것인데 왜 공격 명령을 내려 헛되이 병사들만 죽게 만들었나 화부터 났다.
‘망할······’
돌아가게 되면 부모님들께 세라핀이 죽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걱정 되었다. 아니 그 전에 전사 통지가 갈 것이 분명하므로, 그것을 보고 낙심해 하실것이 분명한 부모님을 어떻게 볼 것인가 걱정부터 되었다.
‘빌어먹을 놈의 전쟁!’
엘레비아는 계속해서 욕설을 입안에 담은 채로 묵묵히 자신의 중대원들에게 철수를 지시했다. 일단 철수하라고 명령이 내려졌고 지금 철수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당연하게 철수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적진 한가운데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헛된 희생들인가?’
철수하는 동안 에이센군의 반격을 걱정해 후속 부대부터 천천히 뒤로 빠졌는데, 칼루야 상위의 대대는 가장 처음부터 전투에 참가했기 때문에 그의 대대가 먼저 철수하기로 결정 되어졌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전선에서 후퇴중에 있던 엘레비아는 자신과 함께 뒤로 빠져 나가고 있는 부상병들의 모습을 모니터를 통해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팔다리가 찟겨지고 온몸을 붕대로 감싸고 있어도 저들은 후송되면 살아 남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하지만 세라핀은 단순히 꼬리표가 붙어 시체 담는 비닐 봉지에 담겨져 후송되어져 버렸다. 그 비닐 봉지에 담진 모양으로 보면 그것이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단순하게 둥그스름하게 뭉쳐진 고깃덩이처럼 보여, 도저히 그것이 동생의 시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나도······나중에 전사하게 된다면 그런 것 뿐일까?’
하지만 엘레비아는 자신이 죽게 되면 아마도 시체조차 찾지 못할 것이라 생각이 들자 피식 슨웃음을 지었다. 이 바리스타 세우터가 자신의 관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죽는다는 것을 두려워하며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악했었는데, 세라핀이 죽는 것을 보고나자 그런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의 생각이 어찌 되었든 엘레비아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묵묵히 철수를 위해 수송함쪽으로 기체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그러는 와중에도 주변에서 혹시 모를 적의 매복에 주의하기 위해서 레이더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허탈한 기분에 휩싸여 버렸다. 기분이 어떻든, 상황이 어떻든, 엘레비아는 이런식의 움직임이 거의 본능적으로 이루어 진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손으로 기계장치들을 조작하면서 눈으로는 주변에서 이상 상황이 있나 없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밀려드는 오한에 엘레비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려했던 적의 매복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모니터에 비치는 풍경은 마치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듯이 더할 수 없이 평화로웠다. 이것이 엘레비아에게는 참을 수 없는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17일 00시를 기해 로드 멜비스에서 파츠 베이스 함대는 철수하기 시작했다. 에이센 함대와 본격적인 결전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파츠 베이스 함대는 그 결전을 회피하고 자진해서 철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철수 작업은 매우 단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에이센 함대는 뻔히 철수하는 파츠 베이스 함대를 보고도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파츠 베이스 함대의 철수가 자신들을 유인하는 것이라 여겨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이들의 철수를 방관한 것이 적극적인 공격을 주저하게 된 큰 이유였다.
이런 에이센 함대의 태도 때문에 파츠 베이스 함대는 별다른 공격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로드 멜비스에서 병력을 완전하게 철수시킬 수 있었다.
07시가 될 때까지 로드 멜비스에서 파츠 베이스 함대는 완전히 철수해서 그렘벨 기지를 위시로한 국경 지역으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보급선을 짧게 하기 위해서 선택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12시가 다 될 때까지 파츠 베이스 함대의 행동에 대한 의문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에이센 함대는 파츠 베이스군이 버리고 떠난 로드 멜비스 행성을 간단히 탈환하고는 다시 함대를 전진시켜 그렘벨 기지가 보이는 곳까지 함대를 이동시켰다. 하지만 적의 정확한 의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이상 진격할 수 없었다. 일껏 힘들여 점령한 로드 멜비스를 너무나도 간단하게 버리고 철수해 버린 파츠 베이스의 태도 때문에 에이센함대 사령부에서는 수많은 억측이 나돌게 되었다. 하지만 파츠 베이스는 로드 멜비스를 버리고 국경 지역으로 자진 철수했다는 사실 하나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런 뜻밖의 승리에 에이센 함대 사령부는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경계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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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함대 하나를 까부순 여파치고는 꽤 큰가요? ^_^;
그만큼 보급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장면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이상하다고 생각되시면 가차없는 비판-근거없는 비난은 사양합니다-을 해 주십시요…
…이러다가 비판으로 코멘트가 도배되어 버리면….쿨럭~! ㅡ_ㅡ;
오늘도 한편 올립니다…Next-59…
‘azywolf’님께서 지적해 주신 ‘읍참마속’의 고사…에 대한 답변은 ‘테르미도르’님께서 해 주셨더군요…
솔직히 저도 쓰고나서야 ‘…이게 아닌가?’ 했었습니다만…본래 제가 의도했던 것이…그때의 ‘사건’이었습니다…핫핫핫…^_^;
…응? 뭐, 뭡니까? 그 믿지 못하겠다는 눈들은…ㅡ_ㅡ;;;
…아 소제목 바꾸기 구찮다…걍 냅둘래…ㅡ_ㅡ
11월 18일 파츠 베이스 함대는 로드 멜비스에서 철수하는 속도를 높여 그렘벨 기지를 축으로 하는 방어선으로 완전히 철수를 단행했다. 그렇지만 이것도 잠시 19일이 되자 파츠 베이스군은 기껏 점령했던 그렘벨 기지조차 버려둔 채 함대를 되돌려 버렸다. 이것은 완전한 자진 철수로서 한바탕 일전을 각오했던 에이센 함대로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결과였다.
20일 파츠 베이스 함대가 버리고간 그렘벨 기지를 재점령한 에이센 함대는 다시 전쟁전의 접경 지역까지 순찰 함대를 내보내 적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침공이후 곳곳에 방치된 채로 버려진 통신 중계 기지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것을 다시 정상가동 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적의 의도를 파악하랴 파괴된 통신 중계 기지를 복구할 계획을 세우랴 한참 정신없이 돌아갇고 있던 에이센군 사령부에 갑작스레 들려온 한가지 소식에 그저 웃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20일 14시 갑작스런 파츠 베이스군의 철수로 인해 혼란스러워질대로 혼란스러워진 접경 지역을 순찰중에 있던 100척의 경비 함대는 갑작스럽게 자신들의 측면에 300척 규모의 함대가 출현하자 패닉상태에 빠져들었다. 이 경비함대를 지휘하고 있던 비넨 사이러스 대위는 즉시 방어 태세를 갖추며 후방에 연락을 취하는 등 난리법석을 떨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나타난 정체불명의 함대가 뜻밖에도 자신들이 에이센군이라는 통신을 보내오자 잠시 멍하니 있어야 했다. 이미 지난번의 전투 이후로 상당기간 파츠 베이스의 손아귀에 들어갔었던 지역에서 갑자기 출현한 일단의 함대가 같은 에이센군 소속이라고 밝혀오는 것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넨 사이러스 대위가 떨리는 목소리로 재차 정확한 소속을 밝히라고 요구하자 그들은 자신들이 에이센군 함대가 분명하며, 크라우프 페트릴 중령 이하 옛 그렘벨 기지 소속의 경비함대라고 정식으로 소속을 밝혀왔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군 함대의 출현에 당항하던 비넨 사이러스 대위는 300척이나 되는 정체불명의 함대게 일단 정선할 것을 명령했다. 그의 우려와는 달리 300척의 함대는 순순히 명령에 따랐다. 비넨 사이러스 대위는 떨리는 마음을 굳게 다잡고 자신이 탑승한 경비함을 기함 마가렛 디어첼 호로 접근시켜 갔다. 자신들이 숫자에서부터 적었으니 상대가 적대적으로 나온다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비넨 사이러스 대위는 식은 땀을 훔치며 헌병인 루이스 데일 굿위크 중위와 함께 무장병력 50명을 이끌고 진위의 확인을 위해 마가렛 디어첼 호로 들어왔다. 긴장한 채 마가렛 디어첼 호로 들어오는 비넨 사이러스 대위와 루이스 데일 굿위크 중위를 맞이한 것은 총부리가 아닌 살았다고 환호하고 있는 같은 에이센군들이었다. 환한 얼굴로 다가와 악수를 건네는 크라우프의 손을 얼결에 잡게된 비넨 사이러스 대위는 상대방의 계급장에 눈이 가자 뒤늦게 부동 자세를 취했지만, 곧바로 달려드는 인파에 파뭍혀 허우적 대야만 했다.
한참만에 간신히 열광하는 인파속에서 빠져나오게 된 비넨 사이러스 대위는 300척이나 되는 함대가 파츠 베이스의 점령지에서 살아 남아 있었고 더욱이 이들이 많은 수의 파츠 베이스군 포로들을 획득해 있다는 사실을 통보받자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크라우프에게 그렘벨 이하 전 지역이 다시 에이센의 수중에 떨어졌음을 알리고 그에게 살아 돌아와서 축하한다는 말까지 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크라우프는 무사히 아군을 만나게 되어 무사히 귀환할 수 있게 되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사이러스 대위가 알려 준 사실을 통보한 후 괴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부하들을 바라보면서 얼굴가득 웃음을 지었다.
11월 23일 크라우프 페트릴 중령은 휘하 함대 300척과 함께 로드 멜비스로 귀환할 수 있었다. 그는 그 동안의 행적에 대해서 엄격한 추궁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크라우프가 파츠 베이스군 제 38번 기지를 점령해 장기간 은신해 있다가 마지막에는 파츠 베이스 보급함대 550척을 모조리 격침시키는 공적을 세웠고, 이 사실을 전 채널을 통해서 알려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자신들이 반신반의 하다가 결국 무시했던 괴 통신문을 이들이 보내왔다는 것이 밝혀졌고, 더욱이 그것이 사실이었다는 것으로 파악되자 에이센군 사령부는 충격에 휩사였다. 단 300여척의 보잘 것 없는 함대로 적의 보급선을 위협함으로서 적의 보급품 부족을 유도하여 철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로서 갑작스러운 파츠 베이스군이 단행한 갑작스러운 철수를 이해하게 된 에이센군 사령부는 그저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들이 일부러 룸네쪽으로 항로를 잡아 10척 정도의 수송함을 방기함으로서, 파츠 베이스 사령부가 보급선이 끊어 질지 모른다는 위협을 받도록 판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항로 데이터와 전투기록 등을 통해 밝혀지자 사령부는 아예 발칵 뒤집혀 버렸다. 이들의 활약때문에 이번 전투가 이렇게 쉽게 끝이나 버렸던 것이다.
이 때문에 로드 멜비스에서는 조사를 마치고 귀환한 크라우프를 환영하는 대대적인 환영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사령부가 판단하기에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이번 방어전와 반격 작전에서의 실패를 무마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겼기 때문이다. 사령부에서는 이번 작전에서 드러난 자신들의 잘못을 덮어 버리기 위해서 크라우프의 특공 작전을 부각시켰다. 사령부의 비밀스런 지시를 받은 크라우프가 소규모 함대를 이끌고 잠적하여 적의 기지를 함락시킨 뒤, 적의 보급함대를 격멸함으로서 아군의 반격작전을 보다 완벽하게 만들었다는 식으로 시나리오를 구성했던 것이다. 그들은 크라우프의 용기와 결단성을 높이 부각시키면서 그를 추켜세우기에 바빴다. 이렇게 함으로서 로드 멜비스에서 급하게 철수하면서 버려지게 된 많은 수의 지상군과 예비군 부대들에 대한 변명거리와, 특히 로드 멜비스의 거주민들에 대한 안전을 등한시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방편을 만들려 했던 것이다.
환영행사가 끝난 뒤 TV를 통해 발표된 사령부의 정식 기자회견에서 그 짜맞춘 시나리오가 발표되었다. 크라우프가 그렘벨 기지에서 철수하면서 아군 함대방향으로 철수할 수 없게됨을 알려오자 사령부에서는 그에게 오히려 파츠 베이스 영토내로 들어가도록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적당한 기지를 골라 점거한 뒤 때를 노리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크라우프에게 기회를 보아 적 보급선을 차단하도록 지시를 내렸다고 발표했다. 이런 명령을 받고 파츠 베이스의 영토내로 진입한 크라우프의 함대가 적의 보급선을 차단할 때를 기다려 반격에 나서 어렵지 않게 로드 멜비스를 탈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 설명하기를, 본래 전쟁 초반에는 파츠 베이스 함대를 끌어들여 결전을 벌일것을 상정했었지만, 적의 병력이 예상보다 많고 기세가 워낙 강력해 로드 멜비스를 잠시 적에게 내어 주게 되었다고 변명을 했다. 그렇지만 곧 크라우프가 적의 후방 보급선을 차단할 것을 예측하고 로드 멜비스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을 계획했다는 것이다. 작전의 일환으로 파츠 베이스 함대의 물자 소모를 극대화 시키기 위해 일부러 로드 멜비스 행성 내부에서 병력을 빼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어절 수 없이 민간인들을 끌어 들이게 된 것에 대해 아이크 군관구 사령관이 직접 나서서 사죄할 것이고 충분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 함으로서 비등해진 비난 여론을 무마시키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로드 멜비스에 있는 3개의 대륙 중 적도에 걸쳐 있는 아락 대륙에 있는 헤펠 네이트 시티 교외에 위치한 행성 사령부 건물로 들어서면서, 군의 이런 공식 발표를 듣게 된 크라우프는 적잖게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이어 행성 사령부 사령관을 만나게 된 자리에서 크라우프는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자신이 움직여 주기를 바라는 사령관의 은근한 압력에 어쩔 수 없이 승낙할 수 밖에 없었다. 정해진 각본대로 기자회견을 하고 난뒤 크라우프는 이곳 저곳을 불려 다니면서 25일까지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11월 25일 로드 멜비스 행성 사령관은 기자들이 잔뜩 몰려 있는 가운데 공식적인 행사를 열어 크라우프에게 한달간의 포상 휴가와 함께 2급 무공훈장을 정식으로 수여했다. 그리고 500만 다르크에 달하는 포상금을 전달했다. 그리고 그의 지휘하에서 특공 작전에 참가한 것으로 되어버린 함대 전장병 전원에게 계급에 따라서 포상금과 포상휴가가 주어졌다.
무엇보다 크라우프가 놀란 것은 이런 포상휴가와 2급 무공훈장과 500만 다르크라는 거액의 포상금이 아니라, 그가 262년 1월 1일 부로 대령 승진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포상 휴가를 다녀 오면 대령으로 정식으로 승진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선심을 쓰는 것처럼 그의 지휘하에 있던 주요 지휘관들이 대부분 한단계씩 지위가 오르게 되었음을 알게 되자 실소를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훈장을 수여 받고 포상금을 받고 자신이 지휘하던 장병들 전원이 포상금과 포상휴가를 받게 되니 크라우프로서는 어쩔 수 없이 사령부가 주는 것으로 고맙게 받아 들이기로 했다.
이렇게 일괄적으로 포상휴가가 주어진 것은 높아진 언론의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함이기도 했다. 특히 크라우프가 작전 지시를 내리고 지휘를 한 내용을 볼때 그가 지휘하고 있던 병사들에게 충분히 크라우프가 사전에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고 설명을 해도 믿을 정도로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는 침착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크라우프의 지휘 하에 있던 병사들 누구를 인터뷰 해도 먹혀들 정도로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만일을 위해 그가 사전에 병사들에게 모든 것을 알리지 않았다는 식으로 그의 행위가 사령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오히려 사령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가 내년 봄에 대령으로 승진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자 시에나와 다이레아는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진실을 알고 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되자 어쩔 수 없이 되었다고 말하며 웃기만 했다.
크라우프는 이 포상금으로 받은 금액 중에서 200만 다르크를 다시 자신을 따라준 함대 장병들에게 골고루 분배하도록 조치했고, 100만 다르크는 자신 때문에 포로가 된 파츠 베이스 장병들이 포로 수용소로 가게 될 때 부족한 것이 없도록 식료품이나 의복 의약품 같은 것을 사서 주도록 배려했다. 남은 200만 다르크 중 100만 다르크는 자신이 갖고 시에나와 다이레아에게 똑 같이 50만 다르크를 나누어 주었다. 시에나는 잘쓰겠다면 받았지만 다이레아는 다소 불퉁 거리면서 받았다. 하지만 전처럼 드러내 놓고 싫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11월 27일 크라우프는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함대 장병들에게 잠시 작별을 고하고 30일간의 포상 휴가를 받아 여행을 떠났다. 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함대 장병들이 포상 휴가를 받았다. 게리 쉐프턴 소령은 38번 기지에서 한 동안 있게 되면서 발레리와 무척이나 가까워져 이번에 같이 휴가를 즐길 것이라고 은근히 자랑했다.
크라우프는 크게 웃으며 잘 놀다가 다시 만나자는 말을 했다. 고생한 보람이 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함대 장병들이 흩어지고 나자 크라우프는 SUV를 빌려 시에나와 함께 바닷가로 떠났다. 하지만 차는 얼마 가지 않아 멈추었고, 문을 열자 다이레아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은 자신들만 따라 갈 것으로 예상 했었는데 뜻밖에도 크라우프는 에이린도 같이 데리고 가 버렸다. 에이린도 가족들이 베르베라에 있었기에 이곳에서 혼자 있게 될 것이고, 바르디아인이라는 것이 은근하게 소문나 있었기 때문에 어떤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를 일이라며 크라우프가 설명하자 시에나와 다이레아는 그저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구실이야 그럴 듯 하지만 기실 크라우프만 좋은 일이라는 것을 시에나나 다이레아가 모를리 없었다. 어색하게 변명을 하려는 그의 표정을 바라보면서 두 사람은 괜찮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래······그래 나야 뭐 코프만 좋다면 상관 없지 뭐!”
시에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으면서 에이린에게 잘 지내자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어디를 갈꺼야?”
에이린은 뜻밖에 두 사람이 함께 가자 적잖게 당황해 했었다. 그렇지만 크라우프의 은근한 설득에 어쩔 수 없이 포상 휴가를 이들 세 사람과 함께 보내게 된 것이다. 자신은 물론 크라우프가 다이레아와 시에나와 애인 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자신까지 껴 버리니 적잖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기실 마땅히 갈곳도 없었고, 자신을 잊지않고 챙겨주는 크라우프의 호의에 어느정도 마음이 기울기도 했었기 때문에 에이린은 순순히 차에 올랐다. 비록 차안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이것이 잘하는 짓인가하는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크라우프는 세 사람이 어색해 하는 것을 상관하지 않고 미리 알아둔 것처럼 헤펠 네케르 시티 서쪽으로 730km 떨어진 곳에 있는 해안가에 위치한 휴양림이 있는 쪽에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세 사람이 길게 따져보는 것 없이 그 자리에서 좋다고 대답을 하고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셋 모두 간단하게 위에 티셔츠 하나에 바지 하나 정도만 입고 있었다. 헤펠 네케르 시티가 적도 부근에 위치한 관계로 매우 더웠기 때문이었다. 시에나가 미리 준비해 놓은 음료수 등으로 간단하게 목을 축이면서 그들 네 사람은 어색하게 여행을 시작했다. 모두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는 않았다. 다이레아와 시에나는 오래 같이 지낸 사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많이 서먹했고 에이린은 갑자기 이들 사이에 끼어 들어 버린 것이다.
크라우프가 빌린 SUV는 8인승으로 꽤 실내가 넓고 시트도 고급 가죽시트도 푹신하고 좋은 것이었다. 하지만 서로 어색하게 앉아 있는 세 사람은 간간히 간단한 대화만 할 뿐이었다. 자동운전으로 가야겠지만 전쟁으로 자동 운행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아서 수동으로 운전해야 했다.
이들은 도심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펼쳐지는 주변 풍경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곳곳이 전쟁으로 파괴된 곳도 있었지만 전혀 전화에 휩쓸리지 않은 곳도 있었다. 아락 대륙은 밀림과 초원이 연이어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그 풍경이 매우 멋있었다. 별다르게 말이 없던 뒷좌석에 앉은 세 사람도 가끔 탄성을 지르면서 멋있는 풍경에서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속 도로 중간에 있는 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먹고 한참을 쉬었다. 시에나는 렌터카의 짐칸에 간단한 음식 같은 것들을 사 넣어 두었었고, 오는 도중 소비한 물과 음료수 및 출발할 때 미리 챙겨두지 못한 것들을 편의점에서 사두고 있었다. 전쟁의 여파인지 물가가 조금 비싼 감이 없지않았지만, 어차피 돈에는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 그들이었으므로 별다른 이의없이 필요한 것들을 구매했다.비록 바캉스에 갈때나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있는 자신들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편의점 주인의 시선이 조금 께름직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점심 식사 후 1시간 정도 쉰 다음 다시 출발 했는데 1시간도 채 못되어 비를 만나게 되었다. 간간히 떨어지던 빗방울은 이내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에 크라우프는 어쩔 수 없이 잠시 고속도로에서 옆길로 빠져 나왔다.
그들이 빠져 나온 일반 도로의 주변은 온통 숲들 뿐이었다. 비가 그칠 때를 기다려야 겠다는 크라우프의 말에 세 사람은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다. 크라우프는 혹시 모르니 일반 도로 옆쪽으로 난 샛길 가에 차를 주차시킨 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비는 전혀 그칠 기미도 없이 계속해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금 불안한데?”
다이레아는 이런 날씨는 처음이라고 말하면서 걱정했다. 크라우프는 차량에 있는 검색기로 기상 상황을 체크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곳에 열대성 저기압이 몰아쳐서 내일까지 비가 계속 쏟아질 것이라는 예보가 내려져 있었던 상태였다. 정신없는 일정을 보내고 있었던 관계로 전혀 알 수없었던 일이었다. 어쩐지 도로에 차가 거의 업었던 이유를 깨닫게 된 네사람이었다.
“뭐야! 비가 이렇게 쏟아진다는데······”
검색기에 출력되어져 있는 예보를 보면서 시에나가 투덜거리자 크라우프는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차를 움직이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바리스타가 아닌 이상 이런 지상 랜드카는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잠시 불퉁거리는 세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크라우프는 서둘러 자신들이 있는 곳이 안전한지를 체크했다. 다행히 안전한 곳 같다는 결론이 내려지자 모두들 하는 수 없이 이 차 속에서 비가 그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게 되자 크라우프는 SUV의 시트를 젖혀 넓은 공간을 만든 후 모두 그 자리에 둘러 앉았다. 그런 다음 서먹한 자리를 풀어 주기 위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즐거운 얘기들을 들려 주었다.
처음 말문을 꺼내기 힘들었지만 세 여성은 차츰 자신들에 대해서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알고 있던 즐거운 경험 같은 것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조금씩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이레아가 맨 처음 소변 때문에 차 밖으로 나가갔다가 비를 맞아 흠뻑 젖어 버렸다.
같은 이유로 시에나와 에이린도 다 젖어 버렸고, 마지막으로 크라우프도 똑같이 옷이 다 젖어 버렸다. 차량에서 난방기를 서둘러 작동시켰지만 잔뜩 젖어 버린 몸은 연신 추위를 호소했다. 하는 수 없게 되어 버린 세 사람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운전석에 걸어 말렸다. 몸에 묻은 물기를 말려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아입을 옷이 모두 SUV의 지붕에 있는 짐칸에 들어가 있던 관계로 본의 아니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크라우프의 앞에 앉게 되어 버렸다.
그제서야 시에나나 다이레아, 그리고 에이린은 크라우프가 바랬던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짐작해 낼 수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그가 유도해낸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가 바라는 것도 무엇인지 짐작해 냈다.
크라우프도 옷을 벗어 말리면서 부끄러운지 서로 알몸을 가리며 서먹해하는 이들의 분위기를 바꾸어 보고자 다른 이야기들을 꺼냈다. 그러면서 휴게소에서 실어둔 음식을 접혀진 시트 밑에서 어렵사리 꺼내 대충 그렇게 저녁 식사를 했다. 그런 뒤 다시 음료수를 마시면서 여러 가지 말들을 이었다. 중간 중간에 배설문제 때문에 차 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쏟아지는 빗속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차 옆에서 일을 해결했다. 처음에는 많이 부끄럽기는 했지만 얼마간 이렇게 지내자 많이 서먹했던 것이 누그러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안에다가 여벌옷을 넣어둘걸······”
다이레아가 잠시 투덜 거리면서 흠뻑 젖은 채로 차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크라우프가 벗어놓은 상의를 집어들더니 자신의 알몸에 묻은 물기를 천천히 닦아 내었다. 크라우프가 그 섹시한 모습을 흘끔거리며 바라보자 시에나와 에이린이 동시에 옆구리를 꼬집어 댔다. 이를 악불고 비명을 참는 크라우프의 모습에 세 사람은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15시경 본격적으로 쏟아 붓기 시작한 빗줄기에 차를 세우고 나서 23시가 다될 때까지 네 사람은 렌터카속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크라우프는 자연스럽게 세 명의 애인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섹스에 대해서 아직 남들보다 적극적이지 못하고, 이제껏 상대했던 사람이 크라우프 한 사람 뿐인 시에나는 이런 식으로 다른 여자들과 같이 크라우프와 함께 섹스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다이레아야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능숙하게 그와 어울렸지만, 시에나나 에이린은 조금씩 머뭇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부끄러운 기색이 남아있던 그녀들도 크라우프와 다이레아가 서로를 탐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게되자 뜨거워지는 자신들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새 그녀들은 부끄러움도 다 잊은 채 크라우프와 어울리고 있었다.
크라우프는 이번 차속에서 만큼은 다른 한 명씩 만날 때와는 달리 철저하게 자신이 즐기려고 들었다. 여자 세 명을 자신의 마음껏 상대할 수 있다는 것에 그는 세명의 여성에게 번갈아 가면서 자신의 욕정을 풀어 내 버렸다. 차창에 가득한 습기때문에 안이 잘 보이지 않는 차동차는 그들의 움직임에 맞춰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28일 02시 40분까지 한사람에게 두 번 정도 그의 욕망을 풀어낸 크라우프는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다. 좁은 렌터카 속에서 네 사람은 뒤엉켜 엎드린 채로 거칠게 숨을 몰아 내쉬고 있었다. 세 사람의 봉사를 한몸에 받은 그는 피곤하기는 했지만 매우 기분이 흡족해 졌다. 세 여성을 끌어 안고 그대로 렌터카 속에서 잠에 빠져 버렸다.
07시 30분 다이레아가 가장 먼저 눈을 떴다. 자신이 크라우프의 옆에 기대 잠자고 있었다는 사실에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여럿이 함께 끌어안은 채 잠이 들어서 그런지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그녀가 왼손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면서 이슬이 맺힌 차창을 손으로 쓸고 밖을 보니 아직도 비는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 밤에 비하면 기세는 많이 줄어든 것 같았다. 소변 때문에 문을 열고 나가고 싶었지만 잠자고 있는 사람들이 추울 것을 생각해서 운전석 쪽으로 왔다. 옷은 대충 말라 있었다. 다이레아는 약하게 틀어 놓은 난방기를 끄고 잠시 몸을 추스렸다. 그런 뒤 옷을 입으려다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슬쩍 밖을 살펴 보았다. 그녀는 도로에 아직도 지나다니는 차가 없자 밖으로 나와 차 옆에서 소변을 보았다. 다시 차안으로 들어선 다이레아는 시에나와 에이린을 끌어 안은 채로 곤히 잠들어 있는 크라우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이 왜 저런 사람한테 이렇게 적극적으로 몸을 허락하는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참 도대체······’
다이레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있던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빗으로 곱게 빗어 넘겼다. 자신이 이런 기분으로 머리를 빗어 본 적이 참으로 오래간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믿고 있던 그 남자와 섹스를 마치고 나서 그가 자는 옆에서 머리를 빗을 때의 기분과 같았다.
‘나는 도대체 뭐란 말이야?’
한동안 남자 없이도 살겠다 생각했지만 자신의 의지처가 될 크라우프를 만나게 됨으로서 그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렸다.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