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04
교랑의경 104화
주씨 가문 대문 앞에는 여전히 마차가 끊이지 않았지만 주 부인의 객청은 텅 비어 있었다. 처음엔 그래도 안주인인 주 부인에게 인사하러 오는 이가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자 곧장 정교랑에게로 가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게다가 정교랑은 과연 몸이 안 좋은 듯했다. 기껏해야 하루에 몇 명 보는 게 전부였다.
“몸이 안 좋아서 집중할 수가 없네요. 제대로 진료하지 못할 바에야 진료를 안 하는 게 낫죠.”
깍듯하면서도 이치에 합당한 말이었다.
“하긴, 경성의 태의들도 진료를 늘 보는 건 아니잖아.”
“맞아. 성 서쪽에 있는 그 여도사는 질문도 오전에만 받는대.”
“아휴, 정 아씨는 여도사가 아니잖아.”
“여도사나 마찬가지지. 침도 안 놓고 그저 듣기만 하잖아. 그냥 듣기만 하고 무슨 병인지 알다니 여도사나 박수무당과 비슷하지 않아?”
“맞아. 정 아씨는 이 진인 밑에서 수학한 제자란 말도 있잖아.”
뒤에서 두 여종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앞서가던 부인이 걸음을 멈췄다.
“부인, 주 부인부터 만나러 가시겠어요?”
여종이 물었다.
“방금 보니까 마차가 벌써 마차가 여러 대 왔더구나. 더 지체할 순 없지.”
잠시 머뭇거리던 부인이 말했다.
“우린 정 낭자를 보러 온 거잖아. 어차피 주 부인이 진료할 것도 아닌데.”
거길 만나러 가서 뭐해, 시간만 지체되지. 따지고 보면 주 부인 때문에 지체된 시간이 얼마야? 다들 내심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여종들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은 지체하지 않고 곧장 정교랑의 처소로 향했다.
이제 주씨 저택에서 가장 떠들썩한 곳은 정교랑의 처소가 됐다. 정교랑의 마당엔 여종이 여럿 서 있었고 회랑 아래와 대청 안에도 사람이 있었다. 차를 올리고 물을 따라 주는 몸종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거처가 너무 좁네.”
부인 하나가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돈도 많은 노섬 주씨 가문이 이러면 안 되지.”
그 말은 곧 주 부인의 귀로 들어갔고, 주 부인은 울화가 치밀었다. 주 노야가 싱글벙글 웃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주 부인이 팔걸이 책상에 기대 두 몸종의 시중을 받으며 무언가를 먹는 모습이 보였다. 방 안에 약 냄새가 가득했다.
“정초부터 뭘 먹는 게요?”
주 노야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약 먹어요.”
주 부인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갑자기 무슨 약을 먹는단 거요? 손님도 많이 오는데 여기 들어앉아 약을 먹고 있다니.”
“그 손님들은 내가 신경 쓸 필요 없거든요.”
주 부인은 이를 갈며 약을 들이켰다. 입맛이 썼다.
“안주인이란 사람이 손님이 오는 걸 신경 안 쓴다고?”
“나보다 더 안주인 노릇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뭐 하러 나서요!”
주 부인은 열이 받는지 점점 언성을 높이며 약그릇을 쾅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몸종은 놀라 덜덜 떨며 엎드려 고개를 숙이고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어쨌거나 우리 주씨 가문 여식 아니오. 왜 애한테 신경질이야?”
주 노야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내를 쳐다봤다. 하여간 여인들은 식견이 짧다니까. 그저 시시콜콜 따지려고 들지.
“저 좋은 일 하면서 왜 날 나쁜 사람으로 만드냐고요.”
주 부인은 생각할수록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그 여인이 이 집에 들어온 후부터 자신은 점점 궁지로 몰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그 애가 뭘 했기에?”
주 노야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주 부인은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래, 뭘 했지?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데……. 하지만 사사건건 훼방을 놓지 않았는가. 어디가 잘못됐는지도 모르니 속수무책일 수밖에. 정상인과는 완전히 다른 여인이었다. 얼핏 보기엔 어리숙하고 멍청해 보이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간다. 잡히지도 않고 종잡을 수도 없이.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했다. 주 부인은 가슴을 움켜쥐며 격렬한 기침을 해댔다. 몸종이 얼른 다가가 등을 두드리고 가슴을 쓸어 주었다.
“대체 무슨 일이오? 교교가 집에 있으니, 무슨 병인지 그 애한테 봐 달라고 하면 되잖소.”
차라리 말을 말지. 그 말을 들은 주 부인은 더욱 울화가 치밀어 숨도 못 쉴 듯 기침이 나왔다. 주 부인은 옷깃을 움켜쥐며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그 애가, 그 애가 집에 있어서…….”
화병에 걸린 거라고요! 물론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진 못했다. 황당한 말이기도 했거니와 주씨 가문 안주인이란 사람이 외조카한테 무시를 받아 이 꼴이 됐다고 하면 웃음거리만 될 뿐이었다.
“성급히 굴지 마시구려. 교랑이 병을 잘 고치면 차차 명성이 높아질 거요. 그런 애가 우리 집에 있으면 결국 당신 체면도 올라가고, 우리 주씨 가문의 체면도 올라가지 않겠소.”
가슴을 두드리는 주 부인의 안색은 몹시 안 좋았다.
“그러길 바라야죠.”
그 여인이 이 집 문턱을 넘어선 그날부터 주 부인은 계속 불안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들이 종국에는 거대한 풍랑을 일으켜 주씨 가문을 덮칠 것 같았다.
“여봐라. 강주로 사람을 보내라.”
주 부인이 갑자기 소리쳤다. 여종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강주로 사람을요?”
“정씨 가문에 가서 알아봐.”
“뭘 알아보는데요?”
여종들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주 부인은 손수건을 꽉 쥐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 바보에 관한 모든 일을 알아봐라. 알아야겠다, 그 애가 정씨 가문에서도 이렇게 말썽을 부렸는지.”
* * *
정교랑이 문진(問診)을 시작한 지 사흘이 흘렀다. 정교랑의 거처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부인 하나가 휘장을 들고 나오자 대청에 있던 사람들이 일어섰다.
“뭐래요? 정 낭자가 약 지어 줬어요?”
사람들의 물음에 부인은 이해가 안 가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람들은 의혹의 눈길로 서로를 쳐다봤다.
“또 약을 안 지어 줬어요? 뭐라는데요?”
그 부인은 이번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도 똑같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뜻이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지난 며칠간 사람들은 바람대로 정 낭자를 만나 어딜 치료하고 싶은지 소상히 얘기했다. 정 낭자는 아들 얘기든 딸 얘기든, 남편 얘기든 다른 친척 얘기든 사람들이 얘기하도록 조용히 들어 주었다. 하지만 진지하게 경청하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다.
약을 지어 주지도 않고 무슨 병인지 알려 주지도 않는데 이게 무슨 진료야? 그냥 수다를 들어주는 거잖아? 사람들은 초조해졌다.
“다음은 어느 분 들어가시겠어요?”
시녀가 휘장을 들어 올리고 나와 물었다. 부인 하나가 시녀를 보고 일어섰다.
“내가 들어갈게.”
부인은 사람들에게 진정하라는 손짓을 했다.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뭐라고 하나 봅시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며칠간은 다들 귀부인인지라 예법을 중시하기도 했고, 정 낭자의 진료에 나름의 원칙이 있다고 여겨 좀 이상해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을 보니 물어보지 않고는 안 될 것 같았다.
부인이 측방으로 들어가자 팔걸이 책상에 앉아 책을 보는 듯한 여인이, 정확히 말하자면 소녀가 보였다. 자리에 앉은 부인은 정교랑과 인사를 나눴다.
“무슨 병인지, 환자의 나이는 몇인지, 소상히 얘기해 봐요.”
정교랑이 말했다. 부인도 법도를 아는지라 일단은 차분히 얘기했다. 얘기를 마친 부인의 눈에 여전히 책을 보고 있는 정교랑의 모습이 들어왔다. 얘기를 제대로 듣긴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부인, 얘기 다 하셨어요?”
시녀가 물었다. 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교랑을 쳐다봤다. 정교랑은 살짝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부인, 가세요.”
시녀가 일어나 길을 안내했다. 이번 부인은 순순히 따라 나가지 않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정 낭자, 우리 남편한테 무슨 약을 써야 할까요?”
정교랑이 고개를 들어 부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난, 몰라요.”
부인은 하도 어이가 없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낭자? 방금 뭐라고 했어요?”
“부군의 병은, 내가 못 고쳐요. 그러니, 어떤 약을 써야 할지 모르죠.”
정교랑이 말했다. 이게 무슨 뜻이지? 부인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바깥에 있던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우르르 들어와 정교랑을 둘러싸고 질문을 해댔다. 정교랑은 시종일관 고칠 수 없다는 말로 응수했다.
“낭자, 그럼 며칠간 우릴 갖고 논 거예요?”
“그러게요. 신의라고 하지 않았어요?”
“왜 못 고친다는 거예요? 딱히 희귀한 병도 아니잖아요.”
방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정교랑은 단정히 앉은 채 조용히 책만 봤다.
“이게 원칙이라고요.”
시녀가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원칙? 그래, 직접 찾아가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해서 우리가 왔잖아. 근데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차라리 말을 말 것이지. 며칠 동안 허둥지둥 달려와 기다렸던 걸 생각하니 열이 오른 부인이 소리쳤다.
“네, 저희 아씨의 치료엔 원칙이 있다고요. 다들 아시는 거 아니에요?”
시녀 역시 놀라며 반문했다.
“방금 말씀하신 건 첫 번째 원칙이고요.”
첫 번째? 그럼 두 번째도 있어? 사람들이 놀라 서로 눈치를 살폈다.
“두 번째는 뭐요?”
누군가가 물었다. 시녀는 잠자코 있고 정교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교랑은 긴 머리 사이로 보이는 커다란 두 눈동자로 사람들을 훑었다.
“죽을 사람이 아니면, 안 고쳐요.”
정교랑이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놀랐다가 곧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죽을 사람이 아니면 안 고친다? 장난해? 제정신인가?
마당에 있던 귀부인들은 주 부인의 거처로 우르르 몰려갔다. 처음엔 궁금해서 보러 왔더니 안 만나 줘서 실망하게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진료를 받는다면서 상냥하게 굴기에 다들 좋아하며 달려왔다. 하루에 대여섯 사람만 받는다기에 흥분된 마음으로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이제 와서 한다는 말이 죽을 사람이 아니면 안 고친다니!
이 여러 사람이 며칠 동안 실없이 놀아난 꼴이잖아! 실망이 놀람과 기쁨, 흥분과 초조로 이어졌다가 다시 실망으로 돌아왔다. 사람을 갖고 놀아?
대청이 발칵 뒤집어졌다. 언제나 온화하고 단정한 태도를 유지하던 귀부인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제대로 폭발해 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뜻이에요?”
“그동안 언니로 대우했는데, 동생을 이렇게 대하는 언니가 어디 있어요?”
“강구랑, 우린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랐잖아. 이제 진 상공 댁과 연줄이 닿게 됐다고,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거야?”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요?”
약을 먹고 막 잠들었던 주 부인은 갑자기 여러 사람이 몰려와 고성을 질러대자 머리까지 어질어질했다. 무슨 일이지? 대체 무슨 일이야? 머리도 아픈데 여인들이 뭐라고 따지는 건지 알 길이 없으니 주 부인은 말문이 막혔다.
“왜들 이러는 건지…….”
주 부인이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게요. 주 부인이야말로 우리한테 어떻게 이래요. 정초부터 이러면 재미있어요?”
부인 하나가 씩씩거리며 따졌다.
“그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인데요?”
주 부인이 가슴을 치며 물었다.
“이 댁 딸인데 주 부인과 상관이 없으면, 우리랑 상관있단 거예요?”
다른 부인이 따졌다. 이거 봐, 이거 봐. 그 계집 앞에선 웃는 얼굴만 보이면서, 문제가 생기니까 나한테 와서 따지네. 주 부인은 가슴을 쥐고 기침을 했다.
“그 애가 안 고친다고 하면 그 애한테 따져야지, 왜 나한테 이래요?”
주 부인은 열불이 났다.
“그런 원칙이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죠. 일부러 우리 골탕 먹인 거잖아요!”
부인들도 열을 냈다. 원칙이라니? 들을수록 알 수 없는 얘기에 주 부인은 머리가 웅웅 울렸다. 죽을 사람이 아니면, 안 고친다고?
“그건 나도 몰랐어요.”
주 부인이 말했다. 하지만 이미 분노를 주체할 수 없게 된 부인들의 귀에 그런 말은 들리지 않았다.
“아무튼 정말 잘났네요. 아주 제멋대로야. 우리가 자진해서 놀아나 줬으니, 누굴 탓해.”
격분한 부인들은 주 부인의 해명을 듣지도 않은 채 옷소매를 뿌리치며 가 버렸다. 주 부인은 손을 뻗어 붙잡으려 했지만 누굴 붙잡아야 할지도 알 수 없고, 계속 기침이 나오는 통에 그저 가슴을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어서 노야께 집으로 오시라 해라. 큰일이 났어!”
주 부인이 비틀비틀 자리에 앉으며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