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05
교랑의경 105화
주씨 저택 대문 앞에 있던 마차들이 속속 빠져나가면서, 그 대담하고 오만방자하며 바보 같은 말도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한가한 정월은 사람들 사이의 왕래가 빈번한 때였다. 각 집의 안채와 사랑채에서 퍼지는 각종 유언비어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넓게 퍼졌다.
진 상공의 부친을 고쳤다거나 신선을 만났다는 소문이 먼저 퍼지긴 했지만, 그 황당한 말을 이기진 못했다. 더구나 이젠 정교랑을 직접 본 사람도 많아진 터였다. 아직 나이 어린 소녀였고, 바보로 보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영리해 보이지도 않았다. 의술을 배운 적 없으니 감히 그런 말을 내뱉겠지.
신선의 비술 같은 건 백성과 부녀자, 아이들이나 듣고 화제에 올릴 뿐, 고관대작이나 대갓집에서는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敬鬼神而遠之)’는 공자의 말씀을 따랐다.
“노섬 주씨 가문이 명성을 얻으려고 아주 발광을 하는군!”
“사람 하나 고쳤다고 주씨 가문이 그리 날뛰다니.”
“노섬 주씨란 이름을 너무 오래 쓴 것 같군. 여러 해가 되도록 발전이 없으니. 이참에 이름을 바꾸는 게 낫겠어. 이를테면…….”
“이를테면 아둔 주씨?”
“하하하…….”
주 노야는 앞에 있던 탁자를 확 밀쳐 버렸다. 대청 안팎에 있던 여종들과 몸종들은 목을 잔뜩 움츠렸다. 방 안에서 들리는 주 부인의 기침 소리가 점점 격렬해졌다.
“내가 뭐랬어요, 내가. 그래도 기어이 믿더니…….”
주 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주씨 가문을 망치려고 아주 작심한 애라니까요! 우린 이제 경성에서 못 살아요!”
주 부인이 여종을 재촉했다.
“어서 짐을 챙겨라. 짐을 챙겨. 당장 떠나자. 섬주로 돌아가야겠어.”
주 부인이 이런다고 당장 짐을 챙기러 갈 수도 없는 여종들은 바닥에 꿇어앉은 채로 주 부인을 위로하고 달랬다.
“저것이 여길 집으로 여기긴 하는 건지!”
주 노야가 발길질로 화분대를 엎어 버리며 소리쳤다.
“쟤가 여길 집으로 여기는 거 같아요?”
주 부인이 안에서 소리쳤다. 이어 격렬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저 앤 우릴 원수로 여기고 있어요!”
“천것 같으니라고, 당장 불러와라!”
주 노야가 호통을 쳤다.
“냉큼 불러와.”
여종 하나가 허둥지둥 뛰어나갔다가 얼마 안 되어 돌아왔다.
“저, 그게, 안 오겠답니다.”
여종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천것이! 주 노야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대청을 빙 돌더니 벽에 걸려 있던 보검을 집어 들었다.
“저런 화근덩어리를 남겨 봤자 어디에 쓰겠느냐!”
주 노야가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놀란 여종들과 몸종들이 무릎을 꿇고 팔다리를 붙잡고 매달리며 말렸다.
주육낭이 발로 문을 뻥 차며 들어오자 안에 있던 시녀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공자님.”
시녀는 얼른 웃는 얼굴로 일어섰다.
“마침 말씀드리러 가려던 참이었어요. 저희 아씨께서 나가신다니 마차를 준비해 주세요.”
굳은 얼굴로 따지러 왔던 주육낭은 그 말에 말문이 막혔다.
“정교랑, 당장 나와!”
주육낭이 휘장 뒤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웃고 있던 시녀는 주육낭의 표정을 보고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다른 몸종들처럼 불안해하거나 겁을 먹진 않았다. 그저 뒤로 몇 걸음 물러나 휘장 옆에 섰다.
휘장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자 시녀가 휘장을 들었다. 늘 입던 수수한 옷으로 도로 갈아입고 머리를 길게 내려뜨린 정교랑이 주육낭을 쳐다봤다.
“너 미쳤어?”
주육낭이 소리쳤다.
“아니요.”
정교랑이 대답하며 걸어 나왔다.
“안 미쳤으면서 왜 그런 미친 소릴 해?”
주육낭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죽을 사람이 아니면 안 고친다니, 무슨 원칙이 그래! 괜히 일 만들려는 거면 좀 그럴듯하게 지어내!”
정교랑은 주육낭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나한테 그런 원칙이 있는 거, 몰랐어요?”
“내가 어떻게 알아? 난 바보가 아니잖아!”
정교랑이 냉소 짓는 주육낭을 쳐다봤다.
“그쪽한테, 반근이 있지 않나요?”
정교랑이 천천히 말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반근이라는 이름에 옆에 있던 시녀는 하마터면 반사적으로 네 하고 대답할 뻔했다.
“가서, 물어봐요. 이 정교랑이, 멋대로 말을 지어내고, 날조하는 사람인지.”
정교랑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뭐라 묻기도 전에 천천히 말을 이으며 느릿느릿 다가가 주육낭을 쳐다봤다.
“가서, 물어봐요. 이 정교랑이, 원칙을 지키는 사람인지 아닌지. 나 정교랑은, 바르고 올곧은 사람이에요. 찾아가서 치료하는 일이 없고, 죽을 사람이 아니면 안 고쳐요. 내 말에 한 치라도 거짓이 있다면…….”
정교랑은 어느덧 주육낭 앞에 서 있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소년이 이제 막 피어나는 소녀 앞에 서 있었지만, 시선에서 결코 우위를 점할 수 없었다.
“난 벼락을 맞아 죽을 거예요!”
정교랑이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그 말을 듣던 주육낭은 귀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굳은 얼굴에 무안과 분노가 스쳤다. 정교랑은 벌써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교랑, 일이 커질까 겁나지도 않아?”
주육낭이 소리를 지르자 정교랑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주육낭을 바라봤다. 정교랑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 여인의 얼굴이 드러내는 유일한 표정이었다. 주육낭은 그 표정에서 기쁨이나 희열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지만 말이다. 무뚝뚝한 얼굴에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두 눈은 보는 이를 오싹하게 했다.
“난, 일이 커지지 않을까, 겁날 뿐이에요.”
정교랑이 말했다.
마차가 주씨 저택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이번 마부는 주육낭이 아니었다.
“길 알아요?”
시녀가 휘장을 걷고 물었다. 마부는 쭈뼛쭈뼛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大桶) 거리로 가면 더 가까워요.”
시녀는 길을 제대로 알긴 하냐는 눈빛으로 마부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 댁 육공자는 매번 멀리 돌아갔거든요.”
말을 마친 시녀는 휘장을 내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부는 입을 삐죽거렸다.
옥대교까지 가려면 대통 거리를 통하는 게 가깝긴 했다. 거기서 보초(寶鈔) 골목을 가로질러 가는 게 가장 가깝고 마차와 사람도 드물었다. 강주에서 온 촌뜨기가 그런 것도 알아? 상경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경성 토박이보다 더 잘 아네. 과랑 아씨의 여식이 신선을 만났다더니, 곁에 두는 몸종도 보통내기가 아니군. 마부는 채찍을 휘둘러 말을 재촉해 떠났다.
마차 안의 시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정교랑을 쳐다봤다.
“아씨, 주씨 가문으로 다시 돌아오실 거예요?”
“당연하지. 우리 아직 안 쫓겨났잖아.”
시녀는 풉, 웃음을 터뜨렸다가 얼른 표정을 수습했다.
“아씨, 장 노태야께서 돌아오셨나 가 볼까요?”
무언가 떠오른 듯 시녀가 물었다. 정교랑이 시녀를 힐끔 쳐다봤다.
“필요 없어. 아직은 내가, 막다른 골목에 몰리지 않았잖아.”
시녀가 헤헤 웃었다.
“아씨를 얕보려는 뜻은 없었어요. 아씨는 정말 대단하세요.”
“알아. 난 희망을, 남에게 거는 게, 내키지 않아. 그뿐이야.”
거기까지 말한 정교랑이 시녀를 쳐다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더구나, 지금은 모든 게, 내 뜻대로 되고 있고.”
시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네 하고 대답했다.
정교랑의 방문으로 옥대교 저택이 분주해졌다.
“누이, 이게 대체 며칠만이야.”
서봉추가 소리쳤다. 정교랑은 마중 나온 사내들에게 예를 표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직접 말을 끌고 가던 서봉추는 어안이 벙벙한 마부의 표정을 보고 소리를 빽 질렀다.
“뭘 봐!”
서봉추가 눈을 부라리며 채찍을 빼앗고는 말을 몰아 안으로 들어갔다. 정신을 차린 마부가 얼른 따라 들어가려고 했다.
“어이, 뭐 하는 거야?”
고개를 돌린 서봉추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질렀다. 마부가 놀라 걸음을 멈췄다.
“아니, 저, 저는…….”
마부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다.
“저리 가, 저리. 법도를 모르네.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서봉추는 턱을 쳐들고 마부를 훑어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예전 그 마부에 비하면 어림없네. 예전 그 마부는 법도를 잘 알아 문턱 한 번 넘는 일이 없었어. 귀퉁이에서 대기하고 있었지. 잘 좀 본받아.”
서봉추가 말을 끌고 안으로 들어가자 문밖에 남겨진 마부는 어리둥절했다. 예전 그 마부? 정 아씨가 출타할 땐 늘 육공자가 직접 데려다주셨는데. 육공자를 마부로 여기는 거야? 문턱도 안 넘으셨다고? 그리고 저 사내들은 뭐야? 여기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네.
다른 사람들은 누이에게 줄 식사를 준비하러 나가고, 안에는 범강림과 서무수, 서봉추만이 남았다. 정교랑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가격을 8천 관(貫)까지 깎았다고요?”
정교랑의 물음에 서무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고집 있는 녀석이 아니야. 그것도 며칠을 실랑이한 끝에 간신히 깎은 거야.”
범강림이 혀를 내둘렀다.
“8천 관이라니. 내 평생 그리 큰돈은 구경도 못 해 봤는데.”
“맞아. 그 자식이 아주 우리 덕에 한몫 챙기려는 거야. 그 식당에서 대박이 났다나. 목이 좋아서 돈을 엄청 벌었대.”
서봉추도 혀를 내둘렀다.
“일 년이면 투자금 회수할 거라는데, 그 정도면 재상 대인보다 돈을 많이 버는 거잖아.”
서봉추가 서무수를 쳐다봤다.
“셋째 형님, 재상 대인의 수입이 술집만도 못해요?”
서무수는 잠자코 있는데 정교랑 뒤에 꿇어앉아 있던 시녀가 입을 삐죽거리며 웃었다.
“평(平) 상공의 녹봉이 한 달에 3백 관쯤 되니까, 2년은 꼬박 모아야 술집을 살 정도겠네요.”
다들 깜짝 놀랐다.
“재상을 해도 그것밖에 못 벌어? 딱해라.”
서봉추는 놀란 눈치였다. 그저 녹봉이나 받자고 재상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시녀는 빙긋 웃으며 잠자코 있었다. 범강림과 서무수도 서봉추를 내버려 두고 정교랑을 쳐다봤다.
“확실히 저렴한 가격은 아니야. 급한 게 아니면 우리가 천천히 협상해 볼게.”
서무수의 말에 정교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어요. 그깟 돈이, 무슨 대수라고요.”
8천 관인데? 그깟? 대수가 아니야?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정교랑을 쳐다봤다. 시녀마저도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누이, 재상 대인보다도 돈이 많네.”
서봉추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가장 값나가는 게 목숨이잖아요.”
정교랑이 일어나며 말했다.
목숨? 세 사람은 정교랑을 쳐다봤지만 시녀는 퍼뜩 깨달았다.
“아, 아씨, 뭔지 알겠어요.”
시녀는 예의도 잊고 소리쳤다. 아씨께서 하신 모든 일이, 이제 보니 이걸 위해서였구나!
주육낭은 술을 아예 동이 째 들고 입에 들이부었다. 진 공자가 지팡이로 주육낭을 후려치는 바람에 주육낭의 옷으로 술이 쏟아졌다.
“뭐야? 또 같이 퍼마시려고?”
주육낭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진 공자는 그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게 왜 내 말을 안 들어? 기어이 쫓아가서 시비를 걸다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때릴 수도 없고 욕할 수도 없으면서. 치욕을 자초한 셈이잖아.”
“그 애가 우리한테 시비를 건 거지! 무슨 원한이 그리 대단하다고 끝도 없이 이래?”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뭘 그리 성을 내?”
주육낭은 콧방귀를 뀌며 냉소를 지었다.
“죽을 사람이 아니면 안 고친다니. 진씨 가문에서 좀 치켜세워 주니까 제가 정말 신선이라도 된 줄 아나? 욱해서 삐딱하게 나가나 본데, 이래서 저한테 좋을 게 뭐야? 여인네가 돼서 그리 경망스러워서야 어떻게 살려고?”
진 공자는 찻잔을 들며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오라비인 자네가 지켜 주면 되지.”
“진십삼낭!”
주육낭은 분을 못 이기고 소리를 질렀다.
“농담 안 할게, 농담 안 해.”
진 공자는 곧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사실 내가 보기엔 별일도 아니야. 진짜 욱해서 오기를 부리는 건지, 정말 자신이 있는 건지 물어보면 되잖아?”
주육낭은 굳은 얼굴로 잠자코 있었다.
“내가 누굴 말하는지 알잖아. 내 앞에서 모르는 척하지 마.”
진 공자가 차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여봐라.”
주육낭이 소리쳤다. 문밖에 있던 몸종이 얼른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반근을 불러오너라.”
주육낭의 말에 몸종은 멈칫했다.
“공자님, 어느, 반근이요?”
몸종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주육낭은 술잔을 꽉 쥐어 으스러뜨리며 이를 갈았다.
“그 애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작심하고 움직였어!”
언제 어디서나 남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 주려는 것 같았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존재감을.
주육낭이 탁자로 시선을 옮겼다. 맞은편의 진 공자는 차를 우리고 있었다. 주육낭의 시선을 의식한 진 공자가 웃음을 지었다.
“이 차는 맛이 없어. 나도 술을 마셔야겠네.”
진 공자가 눈썹을 꿈틀이며 말했다. 주육낭이 굳은 얼굴로 진 공자를 노려봤다.
“너희 육공자의 반근을 불러오너라.”
진 공자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려 문가에 있는 몸종에게 명했다. 몸종이 네 하고 대답한 후 뒤돌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