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59
교랑의경 159화
사월 말의 봄빛이 만연한 경성에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니, 날씨가 더없이 화창했다.
주씨 가문, 주 부인의 거처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주씨 집안의 여식들이 옹기종기 모여 새로 지을 여름옷을 위한 치수를 재고 있었다.
딸들에게 둘러싸인 주 부인은 춘곤증이 조금은 가신 듯 팔걸이 책상에 기대어 재잘거리는 딸들의 수다를 듣고 있었다.
“노야께서는 지금쯤 강주에 도착하셨겠지?”
주 부인이 옆에 있던 여종에게 말을 걸었다.
“날짜를 계산해 보니, 얼추 시간이 맞습니다. 다만, 돌아오시는 일정은 장담을 못 하겠네요.”
돈 달라는 일인데, 그쪽에서도 호락호락하지 않겠지.
“어디 한번 해 보라지. 우리 주씨 가문의 혼수인데, 어디 정씨가 남겨 먹으려고.”
“다만 부인, 어찌 됐든 정 아씨는 저쪽 집안의 딸이니 혼사를 치르고 말고는 저쪽에서 결정할 일이에요. 노야께서도 한바탕 입씨름을 하셔야 할 거예요.”
여종이 조심스럽게 알렸다.
“저쪽에서 혼사를 결정한다고? 그럼 저 사람들이 우리 교교를 아무 데로나 시집보내도 가만히 있어야 해? 친어미의 외가 사람들이 멀쩡하게 눈뜨고 살아 있는데, 그렇게는 못 하지.”
주 부인이 콧방귀를 뀌며 비아냥거렸다. 진흙탕 싸움이 되더라도 거저먹을 생각을 하면 안 되지.
“진씨 가문이랑 혼례를 올렸으면 딱인데. 진씨네 사주단자를 들고 찾아가면 찍소리도 못 낼걸!”
진씨 가문과의 일을 생각하니 주 부인은 화가 나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종이 서둘러 주 부인을 달래며 웃었다.
“부인, 진씨가 아니어도 다른 좋은 집안이 많잖아요. 교랑 아씨께선 죽은 사람도 살리는 비술을 지니셨으니, 부인께서 말씀을 꺼내시면 설마 혼처 하나 못 구하겠어요?”
“죽은 사람을 살려? 흥, 그 재주가 다했을지 누가 알아.”
정교랑이 이사 나간 날짜를 세어보니, 족히 두 달이 넘었다. 그동안 정교랑은 병을 핑계로 진료를 받지 않으며 지금껏 조용히 있었다.
“재주가 다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진 노태야와 동 내한을 교랑 아씨께서 치료하신 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걸요.”
여종이 웃으면서 주 부인을 달랬다. 하긴, 저 두 집안과의 관계가 있으니, 이미 많은 사람이 혼담을 고려하는 거겠지.
주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조카가 보통 이상한 게 아니니, 솔직히 이제 나도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주 부인이 짧게 한숨을 토하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신경을 안 쓰면 누가 신경 쓰겠어? 방법이 없지. 피는 물보다 진하단 말이 괜히 나왔나? 됐다, 됐어. 내가 전생에 그 애한테 진 빚을 갚는다 치고 살아야지.”
“부인께서는 정말 자애로우세요.”
여종이 웃는 얼굴로 알랑거렸다.
경성에서 시집보내기 좋은 집안이 누가 있나 생각해 보려는데, 치수를 다 잰 딸들이 우르르 주 부인에게 몰려왔다.
“어머니, 우리 보수사에 향 피우러 언제 가요?”
딸들 중 하나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묻자 주 부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부처님을 보러 가고 싶은 게야, 절에서 주는 밥을 먹으러 가고 싶은 게야?”
“어머니, 예불도 올리고 밥도 먹고 겸사겸사죠.”
딸들이 재잘대며 주 부인을 둘러쌌다.
“급할 거 없어. 네 오라비에게 보수사에서 양두부를 몇 근 사 오라고 했으니, 오늘은 집에서 먹자꾸나.”
주 부인의 말에 소녀들이 까르르 웃었다.
“경성에도 두부를 만드는 집이 몇 생기긴 했는데, 다 보수사만 못해요.”
“보수사 것이 좋은 게 아니라 태평 두부가 좋은 거야.”
“이렇게 맛있는 두부를 보수사랑 태평거에서만 팔다니.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못 들어가거나 길이 너무 멀어서 못 간다는데, 왜 다른 곳에는 안 팔지? 정말 답답하네.”
“애초부터 태평거에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다고 한 거니까, 당연히 다른 집한테는 안 팔지.”
“태평거도 너무 멍청하네.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안 벌겠단 건지.”
“아휴, 태평거 말이 나와서 그런데. 육낭 말로는 그 바보가 연 거라고…….”
방 안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마지막 말을 한 사람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말을 뱉은 당사자도 깜짝 놀랐다.
“뭐라고? 태평거가, 그 강주 바보 거라고?”
자매들이 물었다. 정교랑 거라고? 주 부인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딸들을 쳐다봤다.
“지금 뭐라고 했니?”
말을 했던 딸은 불안해졌다.
“저, 저도 육낭이 말하는 걸 얼핏 들었을 뿐, 진짜인지는 잘 몰라요.”
안에 있던 자매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럴 리가?
“육낭은?”
주 부인이 물었다.
“부인, 잊으셨는지요. 진 공자와 함께 보수사에 가셨습니다.”
여종이 주 부인에게 나지막이 고했다.
따로 향을 피우지 않아도 별실에는 은은한 단향목의 향이 공기 중에 스며들어 있었다.
진 공자가 숟가락으로 양두부를 조금 떠서 입에 넣었다. 두부가 입으로 들어가자 진 공자는 곧 감탄을 쏟아냈다.
“이 태평 두부만의 요리 비법이 있는 게 확실해. 이제 두부를 만드는 집도 경성에 한둘이 아닌데, 여전히 떫기만 하고 이런 부드러운 맛이 안 난단 말이지. 이걸로 보수사가 또 차정사를 이겼네.”
차정사는 몇 대째 번영을 누리며 늘 승록사(僧錄司: 불교 사무를 맡기 위해 설치한 관서) 명부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유서 깊은 대사찰이었다. 보수사 역시 황실 사원이긴 하지만, 역사가 짧아 명해선사가 독창적인 선다법을 선보인 후에야 차정사의 명성을 넘어서게 됐다.
그러다 연말에는 이름 모를 이가 차정사의 벽에 훌륭한 글씨를 남겨, 수많은 사람이 글씨를 감상하러 몰려든 덕에 차정사의 인기가 하늘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이번엔 보수사에서 또 두부라는 새로운 맛으로 절밥을 제공하여 불과 달포 만에 보수사의 예불 올리는 가격이 급등했다.
진십삼의 반대편에 앉은 주육낭은 수저도 들지 않고 눈앞의 두부만 보고 있었다.
“태평거가 정말 그 애 거라고?”
“그럼, 태평거의 주인장도 만났었잖아. 설마 기억 못 하는 거야?”
진 공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태평거가 날이 갈수록 유명해지자 주육낭과 진 공자도 호기심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 생각지도 못하게 서무수 형제들을 보았다.
주점이나 식당, 찻집은 주인장이 직접 나서지 않고 관리인을 고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가게에 큰 주인과 작은 주인이 여럿 있어, 누가 진짜 주인인지 알아내기 힘들 때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그냥 거기서 숙식하면서 밥벌이만 하는 걸 수도 있잖아.”
주육낭이 인정하기 싫은 듯 퉁명스레 말하자 진십삼이 웃음을 터트렸다.
“자네는 그런 식으로 밥벌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
그날 본 서무수 형제들은 뒷마당에서 여유롭게 걸어 다닐 뿐이었다. 주육낭이 무심코 창문을 통해 보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들이 거기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서무수를 한눈에 알아본 것은 아니었다. 건장한 체격에, 깔끔하게 차려입은 스물 몇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가 뒷마당에 서서 점원 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간단한 대화 같았지만, 두 점원은 그를 몹시 깍듯하게 대했고, 서무수의 행동거지에서도 가게의 주인과 같은 기세가 느껴졌다.
“요즈음 정 낭자가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는 이유가 여기 있었네. 여인 혼자서 해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사람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야.”
어딜 봐서 혼자야? 그 애한텐 혈육이 있다고, 혈육이. 주육낭이 쥐고 있던 나무젓가락에서 뚝뚝 소리가 났다.
“낭자는 누구를 써야 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잘 아는 걸세. 일부러 심술을 부리는 것도 정이 없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야. 그러니 자네 집안 사람들도 아무렇게나 추측하고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게나.”
진 공자가 탁자를 똑똑 두드리며 주의를 주자, 주육낭은 고개를 푹 숙이고 의기소침해졌다.
“천 리 길을 혼자서 돌아왔는데, 조그마한 식당 하나 차리는 건 어려울 일도 아니지.”
진 공자가 다시 웃어 보였다.
“경성에서는 어려운 일이야.”
주육낭이 잠시 침묵하다가 곧 말을 이었다.
“마음씨를 매섭고 독하게 쓰는 사람이 한둘인가. 차리는 건 쉽지만, 지키는 게 어렵단 말일세.”
진 공자가 진지한 주육낭을 보며 미소지었다.
“태평거가 어려워질 때쯤 자네 주씨 집안에서 눈길을 주면 되지. 순조로울 때는 굳이 나서지 말게나.”
이 여인은 허구한 날 골칫거리만 만들어내는군. 죽은 사람을 살리는 재주를 가지고도 죽을병에 걸린 게 아니면 고치지 않겠다고 하질 않나. 이제는 태평거를 차려서 태평 두부를 만들질 않나. 또 무슨 골칫거리를 만들어 낼지 누가 알아.
“부디 우리가 평생 태평거 쪽을 볼 일 없었으면 좋겠네.”
주육낭이 퉁명스레 말했다.
봄이 가고 초여름이 되자, 서서히 여름의 열기가 느껴졌다. 마차에 달린 무거운 방한 휘장도 대나무 발로 바뀌었다. 마차가 달릴 때마다 대나무 발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와 마차 안이 더욱 시원해졌다.
태평거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문 앞에 즐비한 마차와 말들이 보였다. 걷어 올린 식당 창문의 대나무 발 사이로 식당 안에 가득 찬 사람들이 보였다. 위층은 별실로 이루어졌는데, 어떤 창문의 휘장은 열려 있고 어떤 창문의 휘장은 내려져 있었다. 하지만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문 앞에 길게 늘어진 줄을 보아서는 위층 역시 만석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었다.
“손님, 죄송하지만 가게가 만석이라 다른 곳을 찾아보셔야겠습니다. 그래도 기다리시겠습니까? 반 시진은 되어야 들어가실 수 있는데요.”
마차가 앞을 지나가자, 점원들이 새로 오는 손님들에게 웃는 얼굴로 사과하는 것이 들려왔다.
“여기서 기다리신다면 저희가 차를 내어드리겠습니다.”
밥을 먹으러 온 손님들 외에, 식당 한편에서도 사람들이 바삐 오가며 움직였다. 마차는 식당의 옆쪽을 통해 뒤쪽으로 들어갔다.
식당의 좌우에는 이미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벽돌과 목재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큰길 쪽에서 마차 두 대가 뒷마당을 향해 달려오자, 구매를 담당하는 사내들 몇이 걸어 나와 물건을 살폈다.
식당의 앞뒤로 사람이 넘쳐났지만 어수선하지 않았고, 소란스럽지만 시끄럽지는 않았다. 뒷마당은 어느새 둘로 나누어져 있었다. 한쪽은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이들이 썼고, 다른 한쪽은 손재의 두부방이었다.
식당 앞쪽에 비하면, 뒷마당은 조용한 편이었다. 두부의 비법을 지키기 위해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했기 때문이다.
“방을 몇 개만 더 지으면 새로 들어온 점원들도 여기서 살 수 있겠어. 창고도 더 여유롭게 쓸 수 있고. 그리고 마구간도 한번 손을 봐야 할 텐데. 좁은 곳에 마차와 말이 너무 많아지면 말들이 서로 발길질할 수도 있으니까.”
서무수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정교랑을 쳐다봤다.
정교랑은 반쯤 묶은 머리에 작은 은빗을 꽂고, 검은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긴 소매를 조여 맨 정교랑이 손끝의 활시위를 놓았다. 활시위에서 텅 하며 튕기는 소리가 나더니, 긴 화살 한 발이 날아가 열 몇 보 떨어진 곳에 있는 과녁을 스쳐 땅에 떨어졌다. 주위에는 이미 화살 네다섯 발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두부방 안에서 손재가 밖을 내다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안에 숨어 있는 게 제일 안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