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7
교랑의경 17화
대부인이 이부인을 대신해 정교랑을 맡기로 했지만, 그래도 대부인은 이부인한테 직접 가서 의견을 구했다.
“형님, 제 쪽에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으면 얼마든 데려가셔도 돼요. 더구나 교랑은 형님이 맡고 계시니 더 말할 것도 없죠.”
이부인이 말했다. 권한 내에 있는 일이라고 해서 전부 도의에 들어맞는 건 아니다. 말 한마디 덧붙이는 건 힘 드는 일도 아니고, 이래야 괜히 틈 생길 일이 없다.
대부인이 시집온 후 수십 년 동안 터득한 경험이다.
“그래도 이노야의 여식이 데리고 있는 아이니 큰어미로서 말은 하는 게 좋지.”
대부인은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방 내외가 이런 일로 기분 나빠할 리는 절대 없다는 걸 대부인도 알고 있었다. 과유불급이라고 여기서 더 말을 보태면 오히려 억지스러워진다. 대부인은 화제를 돌렸다.
“그 아이를 불러서 요리 솜씨가 어떤지 좀 보려고.”
애초에 이부인은 일개 몸종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더구나 바보의 몸종이 아닌가. 그래도 손위 동서가 하는 말이니 동의했다.
“그 애가 한 밥 먹으면 바보가 될걸.”
정칠랑이 말했다. 모친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두 자매는 병풍 뒤에서 쌍육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애가 바보인 건 아니잖아.”
정육랑이 어린애 같은 말에 코웃음을 치며 놀이판을 밀어냈다.
“내가 이겼다. 봐, 난 그 쟁반에 있는 튀김 다 먹었는데도 널 이겼잖아.”
정칠랑이 불만스레 입을 내밀며 놀이판을 마구 흔들어 버렸다.
“나 진짜 바보가 됐나?”
정육랑이 작은 부채를 흔들며 일부러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칠랑을 이겼지? 칠랑 네가 그 바보보다 더 멍청했구나?”
정육랑이 부채로 입을 가리고 깔깔대며 웃었다. 정칠랑은 창피하기도 하고 화도 나서 울음을 터뜨렸다.
“육랑! 또 동생 괴롭히지!”
대부인의 노여운 목소리가 병풍 앞에서 전해졌다. 유모들이 종종걸음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육랑을 나무라며 칠랑을 달랬다. 두 자매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라 다들 태연했다.
시끌벅적해진 가운데 반근까지 불려왔다.
“너희 아씨는 뭐 하고 있니?”
본분을 다하고자 이부인이 묻자 반근이 반색을 하며 신이 나서 대답했다.
“아씨는 주무세요.”
지금이 몇 신데 아직도 자다니. 이부인이 입을 오므렸다. 역시 바보는 바보인 게야.
“이걸 네가 만들었느냐?”
대부인은 한낱 몸종에게 예의 차릴 필요 없다는 듯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정육랑이 먹다 남긴 튀김을 여종이 반근 쪽으로 밀어 보여 줬다.
반근은 앗 소리를 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기 음식을 누가 훔쳐 먹은 걸 이제야 눈치챈 게로군. 여종과 대부인은 그 표정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씨께서 밥을 잘 안 드셔서 소인이 준비한 간식이에요.”
정신을 차린 반근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여종이 와서 이부인이 자신을 찾는다고 했을 때, 반근은 기뻐하며 교랑에게 이부인이 아씨를 보려는 게 틀림없다고 말했었다.
“간식.”
하지만 정교랑은 두 글자를 내뱉었다. 당시 그 말을 못 알아들은 반근은 아씨가 간식을 더 드시려는 줄 알고 가져다주려고 했지만, 여종이 가자고 재촉을 하는 통에 허드렛일을 하는 몸종에게 간식을 올리라고 분부만 하고 왔던 터였다.
그런데 그 간식이 여기 있었다니! 아씨가 간식이라고 한 건 부인이 간식 일로 불렀을 거라는 뜻이었나? 아씨가 그걸 어떻게 알고?
세상에, 아씨는 역시 신선의 계시를 받은 분이야. 똑똑해도 너무 똑똑하다니까!
반근은 기쁘고 흥분되는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표정은 대부인과 이부인, 여종들이 흔히 보는 표정이었다. 집안 몸종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 불려와 대답할 때, 곧 이어질 기쁨을 기대하며 흥분하는 표정이었다.
좋은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이리 기뻐하는 게로군. 대부인이 살짝 웃었다.
“아주 훌륭하더구나.”
대부인이 문간 밖에 서 있는 여종을 향해 말했다.
“도랑자, 이 애를 데려가 부엌의 주랑자 밑에서 간식을 만들게 해라.”
여종이 네 하고 대답하고는 반근을 보며 눈치를 줬다.
“부인께 감사 인사 올려야지.”
주랑자는 이 집에서 간식을 제일 잘 만드는 찬모였다. 그 밑에서 요리를 배우는 건 수많은 몸종이 간절히 바라는 일이었다.
반근은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약간 멍해졌다.
“감사합니다, 부인.”
반근은 시키는 대로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었다.
“저더러 뭘 하라고요?”
“저것 봐. 진짜 바보네. 말귀도 못 알아들어!”
정칠랑이 병풍 뒤에 앉아 말했다. 정육랑이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네가 와서 내 간식을 만들라고.”
정육랑이 반근을 보며 고개를 살짝 쳐들고 말하자, 반근은 그제야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었다.
“하지만 소인은 우리 아씨를 모셔야 해요.”
반근이 멍하니 말했다.
“교랑한테는 몸종을 둘 더 보내 주마.”
대부인이 대답한 후 한마디 당부를 덧붙였다.
“찬모도 하나 보내고.”
이 정도면 됐겠지.
“형님, 거기 사람이 그렇게 많이 필요해요?”
이부인이 물었다.
“어쨌든 아픈 아이잖아. 여럿이 있으면 좋겠지.”
대부인이 말했다. 반근은 아직도 멍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부인의 뜻은 저더러 앞으로 우리 아씨를 모시지 말라는 말씀이세요?”
정칠랑이 앞으로 나와 반근을 보며 깔깔대고 웃었다.
“역시 멍청하다니까. 말도 못 알아듣네. 바보의 시중을 들면 그 사람도 바보가 되나 봐.”
정칠랑이 우쭐해하며 정육랑을 힐끔 쳐다봤다.
“언니, 진짜 저 애가 만든 음식 먹을 거야? 잘 생각해.”
정육랑이 입을 열기도 전에 반근이 입을 열었다.
“아씨, 우리 아씨는 모자란 분 아니에요.”
이번에는 정칠랑과 정육랑이 똑같은 표정을 지으며 풉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이에요. 우리 아씨 다 나으셨어요.”
반근이 말하며 간식을 가리켰다.
“이건 제가 그냥 만든 게 아니라 우리 아씨께서 가르쳐 주셔서 만든 거예요.”
반근의 말을 제대로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뜻만은 모두가 알아들었다.
“언니, 언니한테 안 간다잖아.”
정칠랑이 웃으며 말하자 정육랑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 간식 만들어 주기 싫어?”
정육랑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눈썹을 치켜세우고 묻자 반근이 당황했다.
“소인은…… 소인은 사실 간식을 만들 줄 몰라요.”
반근이 우물쭈물하며 덧붙였다.
“전부 우리 아씨께서 가르쳐 주신 거예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칠랑이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 정육랑은 부아가 치밀었다.
“따귀를 쳐라!”
정육랑이 소리치며 손에 들고 있던 둥글부채를 매섭게 내던지고는 발을 구르며 더 크게 소리쳤다.
“따귀를 치라니까! 따귀를 쳐!”
반근은 겁에 질리고 여종들도 멈칫했다. 하지만 곧 한 여종이 그 분부에 따라 손을 높이 쳐들고 반근의 두 뺨을 찰싹찰싹 내리쳤다.
“그만해라.”
대부인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여종은 손을 거두고 공손히 서 있었다.
반근의 뺨은 퉁퉁 부어올랐고,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반근은 주씨 노부인에게 팔려 한동안 훈육을 받은 후 도관으로 보내져 정교랑의 시중을 들었다. 도관 생활이 고생스럽긴 했지만 주씨 노부인의 돈이 있었기에 도관 사람들은 정교랑과 반근을 괴롭히지 않았다. 정교랑도 바보다 보니 조용히 지냈고 일상에서도 말이 없었다. 따로 관리하는 윗전도 없다 보니 지금껏 크도록 누군가에게 맞은 건 처음이었다.
“싫으면 관둬라, 물러가거라.”
대부인이 냉담하게 말했다. 반근은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어서 부인께 감사 인사 올리지 않고!”
여종이 나지막이 소리쳤다. 반근은 허둥지둥 꾸벅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올리고 일어나 비틀대며 재빨리 자리를 떴다.
“어머니, 꺼지라고 해요. 꺼지라고. 난 저 애 우리 집에 있는 거 보기 싫어요!”
뒤에서 정육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근이 궁지에 빠진 모습으로 도망치는 모습을 보며 오가던 여종들과 몸종들은 손가락질을 하며 수군거렸다. 반근은 뺨이 얼얼하고 화끈거리는 것만 느껴질 뿐 창피한 건지 아픈 건지 알 수 없었다.
기우뚱하며 갈팡질팡하다가 하마터면 발을 접질릴 뻔한 반근은 그제야 자신이 황급히 도망치느라 이부인 쪽에 나막신 한 짝을 떨어뜨리고 온 사실을 깨달았다. 가지러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반근은 나막신 없이 고개를 숙인 채로 허둥지둥 걸어갔다.
돌길을 걷자니 발이 아파왔다. 고개 숙인 반근에게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