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249
교랑의경 249화
뭐라고? 진소가 놀란 얼굴로 장순을 쳐다봤다.
저자는 대체 누굴 돕는 거지?
누굴 돕느냐고? 조당에 나온 이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도울 뿐 아니던가!
진소의 표정이 굳어졌다. 옆모습만 봐도 살기등등한 결기가 느껴졌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대전에 있는 대신들의 표정만 미묘하게 변한 게 아니었다. 대황자의 안색도 하얗게 질렸다.
망했네, 망했어. 이건 뭐, 한 시진이 아니라 두 시진이 지나도 안 끝나겠네.
이들이 무엇 때문에 떠드는진 알 수 없었지만, 싸움에 끼어든 사람이 늘어나면 그만큼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 정도는 대황자도 잘 알았다. 뒤에 있던 내시가 연신 기침을 해대며 주의를 주었지만, 이제부터 이어질 지루한 시간을 견딜 수 없던 대황자는 아예 몸에 힘을 쭉 빼고 의자에 기댔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난 아직 어린애라고······.
낮고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가 회랑에 울려 퍼졌다. 그 사이로 일어난 바람은 가랑비 속으로 사라졌다. 어린 내시가 들어오는 모습을 본 진안 군왕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았다.
“이기는 것도 쉽지 않고, 지는 것도 쉽지 않소이다. 이기는 걸 쉬이 여기면 지고, 지는 걸 불안해하면 더욱 크게 참패하는 법이오. 이겨도 교만하지 않고 져도 초조해하지 않는다면, 두려워할 일도 없지. 벌할 사람은 벌하면 될 뿐, 사소한 실패가 두렵다고 해야 할 일을 회피하면 쓰겠소?”
내시가 바짝 다가와 대전에서 들은 말을 소상히 옮겼다. 내시가 전하는 말을 들은 진안 군왕의 얼굴에 점점 더 짙은 웃음이 번졌다.
“대인들,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엔 얕은 층계에서 발이 접질려 목숨을 잃기도 하거든요.”
* * *
진안 군왕이 대전에 있던 대인들의 빗길 안전 문제를 염려하고 있던 무렵, 다른 이들은 대전 안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
두 시진에 걸친 조회가 파하고 나서야 진 노태야는 얼굴이 땀으로 흠뻑 젖은 사환의 손에서 서찰을 건네받았다. 헉헉 숨을 몰아쉬느라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사환의 모습에서 급히 달려왔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서찰의 글씨에서도 급히 휘갈겨 쓴 티가 역력했다.
– 병사는 무기와도 같으니 그리 써서는 안 되오. 남아도는 병사는 재편하고 실력이 출중한 자는 발탁해서 써야 하지. 단번에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일이 어디 있겠소? 천천히 도모해야 하는 법이오. 한 번 패배에 모든 병사에게 그 죄를 물으면, 사기가 떨어지고 기반이 무너질 거요.
어지럽게 흘려 쓴 글씨는 내용을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였지만, 진 노태야는 조금도 불만을 터뜨리지 않았다. 황궁의 조당 안에서 오가는 말을 딱히 비밀스럽다고 할 순 없지만, 천자와 대신들 사이에서 오간 말이 이렇게 빨리 전해지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진 노태야는 서찰의 내용에 더 관심이 갔다.
장강주가 나섰단 말이지? 장강주가 나서서 말을 해? 한꺼번에 두 명을 탄핵하다니!
본디 나아가거나 물러서거나 두 가지 결과밖에 없었는데, 세 번째 결과가 생겼다.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않는 것! 오랫동안 대치 국면이었던 정세가 바뀌게 됐다. 하지만 이 변화는 양측 모두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이었고, 원치 않는 것이기도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갑자기 왜 나선 거야?
강주, 서원, 정교랑.
진 노태야의 손이 떨려 왔다. 진 노태야 자신도 그 생각에 놀란 눈치였다.
알 수 없는 일이로군. 그 어린 낭자가 무슨 일을 한 거지? 그러고 보니 둘 다 강주 출신이었어.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부류인데.
한 사람은 강주 선생이라는 칭호를 받는 대유학자였다. 다른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에도 ‘강주’라는 이름이 들어가긴 했다. 뒤에 두 글자가 더 붙었지만. 강주 바보.
강주 선생을 생각하는데 왜 갑자기 강주 바보가 떠오르지? 강주 바보가 강주 선생의 서원에 찾아갔던 일로, 강주 선생이 조당의 일에 개입하게 된 건가? 웃기지도 않은 소리지.
대로변에 있는 찻집 안.
엄숙한 표정의 주 노야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말단 관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전했다.
“초나라 왕이 허리 가는 미인을 좋아하자, 궁중 여인들이 굶기를 반복하다 죽기도 했다지요. 폐하의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일이 지속되면, 변방 관리들도 불안에 떨고 변방도 안녕할 날이 없을 겁니다.”
굳어 있던 주 노야의 얼굴이 차츰 펴지는가 싶더니 미소까지 번졌다.
“그렇지, 그렇지!”
주 노야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맞은 편에 있던 말단 관리가 놀라 얼른 손으로 탁 치며 쉿 소리를 냈다. 주 노야는 웃음을 꾹 참으며 말했다.
“유 교리 하나가 풍질에 얻은 건 놀라울 일도 아니지. 두 명, 세 명은 돼야 얘깃거리가 돼. 그 바보는 사람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군. 매번 놀라움을 안겨 주니 말이야.”
거기까지 말한 주 노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그 놀라운 일이 나한테서 벌어지는 건 절대 안 되겠지만.”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 다른 찻집 안.
동 노야도 말단 관리와 마주 앉아 있었지만, 앞의 몇 명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동 노야는 다른 이들과 다른 행동을 하나 더 했다. 상대에게 비전을 찔러주는 일이었다. 말단 관리는 비전을 꼼꼼히 확인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군사 상황과 전장의 형세는 시시각각 변하기 마련이오. 그러니 전장에 나간 장수는 군주의 명에 불복해도 용서한단 말이 있는 법이지. 그대들은 멀리 조당에 있으면서 변방의 전황에 대해 이래라저래라하고 있군. 군사 상황도 모르고 군영의 고통도 모르고 있소. 그러면서 왜 고기죽을 먹지 않느냐고 묻는 꼴이니······.”
“다들 말로는 천하를 위해 기강을 바로 세우고, 죄지은 자를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떠들지만, 군의 폐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소? 그저 정쟁을 위한 정쟁과 싸움을 위한 싸움, 벌을 위한 벌만 중시하며 사건 하나를 물고 늘어지는 일밖에 할 줄 모르지. 대체 군을 위해 이러는 거요? 아니면 서북의 군권을 잡아 그 공로를 인정받으려는 거요?”
평생 가도 조정 대신들의 언쟁을 직접 볼 일은 없을 말단 관리였지만, 전해들은 말만으로도 어떤 장면이 펼쳐졌을지 가히 짐작이 갔다. 따라서 저도 모르게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했고, 현장에서 얘기를 듣고 그 말을 외우기라도 한 듯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똥지게로 가업을 이룬 동 노야로서는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결국 동 노야가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그런 얘기는 됐네.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먼. 이것만 말해 주게. 그 탈영병들은 죽인다던가, 안 죽인다던가?”
동 노야가 물었다.
“대인들께서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겠소이까!”
말단 관리는 눈을 부라리며 경멸하는 투로 말했다.
“이젠 서북경략사(西北經略使)는 누구한테 맡겨야 하는지, 서북 전선에 있는 장병을 남겨 둘 것인지 불러들일 것인지, 그 자릴 대체할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논하고 있소이다.”
“그런 일은 내게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난 그 탈영병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알고 싶을 뿐일세.”
말단 관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지금 제정신이오? 그런 거나 알아내자고 이 큰돈을 쓰게?”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 어디에다 쓰든 뭔 상관이야!”
동 노야도 눈을 부라리며 받아쳤다.
똥내를 하도 맡아 정신이 나갔나······. 말단 관리는 어처구니가 없는 눈치였다.
“아마 죽진 않을 거요.”
동 노야는 눈빛을 반짝이며 목소리를 높여 재차 확인했다.
“정말 죽지는 않는 거지?”
“폐하께서 어떤 결론을 내리셨는진 아직 모르겠으나, 왕보당의 죄는 명백하니 그 일은 다신 거론치 않는 것으로 중론이 모아졌소. 또 왕보당의 측근들을 해임하고, 진 상공이 천거한 강문원이 어명을 받은 감찰사로 나가게 됐지. 강문원이 서북으로 가서 군사 상황을 살펴보고, 문제와 폐단을 엄히 조사할 거요.”
“아니, 그래서 그 탈영병은 어찌 되는데? 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라고!”
동 노야가 또다시 소리쳤다.
“이 늙은이가 정말 똥내에 정신이 나갔나! 각자 한발씩 양보했잖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서다가 간신히 마무리되어 각자 대응책을 마련하기 바쁜 상황에, 그깟 탈영병 일에 누가 신경이나 쓰나? 애초부터 아무도 신경 안 썼어. 그자들이 죽든 말든 대인들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그냥 좋은 구실이었을 뿐이지.”
말단 관리도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인들이 마당을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크고 작은 짐들을 챙겨 마차에 싣느라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아버지, 왜 이리 서둘러 떠나는 거예요?”
동 낭자가 물었다.
“서두르기는? 지금이 딱 좋은 때야.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때지.”
동 노야는 어서 짐을 마차에 실으라며 하인들에게 손짓을 했다.
“서 오라버니 형제들이 아직 석방된 것도 아니잖아요! 만에 하나라는 게 있어요. 만에 하나라도 사형으로 판결이 나거나 처형은 안 되더라도 감방 신세를 지게 될지 몰라요. 그럼 우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성을 빠져나가게 둘 리 없다고요.”
“만에 하나 같은 건 없다.”
동 노야는 확신에 찬 어투였다.
“대인들이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협상의 여지가 있어. 그 낭자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여지인데 무슨 문제가 생긴단 말이냐. 그러니 당장 떠나야 한다. 그 낭자는 우릴 내버려 둘 거야.”
“아버지.”
동 낭자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 그럼 서 오라버니가 나오면 얼굴이라도 보고 가요.”
“보긴 뭘 봐!”
동 노야가 굳은 표정으로 호통을 쳤다.
“이게 다 너희가 다시 만나 벌어진 화인데 뭘 더 보겠다는 거냐! 보기는 뭘 봐, 뭘! 저들이 그동안 벌어진 일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다가, 분풀이하러 찾아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 일은 향칠이 저지른 거지 우리와는 상관없잖아요. 서 오라버니는 우릴 탓하지 않을 거예요!”
동 낭자의 말에 동 노야는 콧방귀를 뀌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사람이 못된 마음을 먹은 게 죄가 된다면, 넌 그 못된 마음이 생기게 부추긴 장본인이야. 향칠이 주범이라면 넌 공범이지. 주범이든 공범이든 죄를 지은 건 매한가지니 누구도 도망칠 수 없는 법이다! 이번에 서무수가 아무 일 없이 풀려나더라도, 긴긴 세상인데 한평생 아무 일도 없으리라 누가 장담해? 아무 탈 없이 지내면 괜찮겠지만, 일이 생기면 또다시 이번 사건이 떠오를 테고 우리한테 불똥이 튈 수밖에 없어.”
“아버지, 억지 좀 부리지 마세요. 앞으로 일어날 일인데 왜 우리한테 불똥이 튄단 거예요!”
동 낭자가 인상을 썼다. 이번 일로 아버지께서 너무 크게 놀라셨나?
“불똥이 안 튀긴?”
동 노야는 콧방귀를 뀌며 딸을 노려보았다.
“네 진흙 인형, 아직 기억하지?”
동 낭자가 멈칫했다.
“아버지, 아버지가 제 인형을 내던져 깨뜨렸잖아요.”
동 노야가 딸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을 이었다.
“망가지지 않았으면 또 사러 갈 일도 없었겠죠. 또 사러 가지 않았다면 비 맞을 일도 없었을 테고요. 비를 맞지 않았다면 어머니도 병이 나지 않으셨겠죠. 병이 나지 않았다면 돌아가지도 않으셨을 테고. 그럼······.”
“그만하세요, 아버지.”
동 낭자가 동 노야의 말을 끊었다. 동 노야가 빤히 쳐다보자 동 낭자는 말없이 잠자코 있었다.
“넷째야,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핑곗거리를 찾고 싶어 하는 법이다. 핑곗거리를 찾아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믿으려 하고, 이건 운명이라고 여기려 하지.”
“아버지.”
동 낭자는 목이 멘 듯했다.
“그만하자꾸나.”
동 노야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딸을 쳐다보았다.
“그만 마음 접어라. 단념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치게 되는 법이야. 네 것이 아니면, 네 것이 아닌 게야. 다 운명이다.”
동 낭자는 눈물이 떨어지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만 가자. 다 잊어라.”
동 노야는 뒤돌아 앞장서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