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248
교랑의경 248화
진 노태야는 회랑 아래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을비가 내리려는지 하늘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차정사에나 다녀와야겠다. 예불도 드리고 선사의 말씀도 들어야지.”
승부가 어떻게 나든 쉽진 않을 것이다. 귀신은 공경하되 멀리하라고 했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사람은 믿고 의지할 곳을 찾기 마련이었다.
노복이 네, 하고 대답한 후 마차를 준비하러 갔다.
같은 시각, 성 안에서 가장 영험하기로 소문난 보수사의 낭랑전(娘娘殿)에서는 짙은 연기가 피어났다.
“아버지, 향을 이렇게 많은 피울 필요는 없잖아요?”
동 낭자는 기침을 해대며 손을 휘휘 저어 연기를 쫓았다. 동 노야는 굵은 향 다발을 향로에 꽂으며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절을 올리고 있었다.
“무슨 소릴 하는 게야! 어서 절부터 올리지 않고!”
동 노야가 호통을 치자 동 낭자는 마지못해 다가왔다. 동 노야는 유모들도 어린 손자들을 데리고 절을 올리게 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어린애들인지라 손주들은 재미있는 놀이라도 되는 듯 웃으며 절을 올리다가 동 노야한테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아버지, 애들이 뭘 안다고요. 절을 올린들 무슨 소용이 있어요?”
동 낭자는 기분 나빠하며 아이들을 감쌌다.
“알든 모르든 절은 올려야 해. 우리 집안 전체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동 노야는 목소리를 낮춰 호통을 치며 눈을 부라렸다.
“어서 꿇어라. 서무수 형제가 무탈하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빌란 말이다!”
물론 그 기도는 동 낭자가 진심으로 바라는 일이기도 했다. 동 노야의 일가가 낭랑전을 차지하고 있으니, 예불을 올리러 온 다른 이들은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손가락질을 하며 수군거렸다.
황궁, 중화문.
내시 하나가 이쪽으로 달려오며 손짓을 했다. 잠시 후 진안 군왕이 한쪽 옆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궁문을 지나던 중 대황자의 모습이 보였다.
“이른 아침부터 어디 가십니까?”
진안 군왕은 앞으로 다가가 먼저 예를 올리고 웃으며 물었다.
이른 아침? 대황자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폈다. 너처럼 할 일 없는 사람한테나 아직도 이른 아침이겠지.
“부황께서 조회에 참석하라고 하셔서요.”
상대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지만, 대황자는 자신이 하는 일을 자랑하며 우쭐대고 싶은 마음에 대답해 주었다. 올해 열한 살인 대황자로서는 오늘 처음으로 조회에 참석하는 것도 아니었다.
“재미있습니까? 듣자니 대신들은 수시로 싸운다던데요. 그것도 엄청 치열하게.”
진안 군왕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에게 조회는 무료하고 재미없는 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평생 가도 그런 무료함을 경험할 기회가 없는 이를 생각하면, 그 무료함도 즐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네. 어제는 진 상공이 어전에서 고 통사를 한 시진이나 욕했어요. 난 듣기만 해도 피곤하던데, 다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나 모르겠습니다.”
대황자가 말했다.
“그렇게 오래요? 정말 고생이 많네요.
진안 군왕이 놀란 투로 대꾸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숭정전 근처에 당도했다.
“전 출궁하는 길입니다. 어서 가 보세요, 전하.”
진안 군왕이 동정 어린 눈길로 대황자를 보며 말했다. 대황자는 도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실컷 놀아라, 쓸모없는 것.
진안 군왕은 공경을 표하기 위해 대황자가 숭정전 문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걸음을 옮겼다.
정사당에는 대신들이 전부 당도해 있었다. 어사중승 같은 고위직 관료까지 전부 온 터였다. 사흘 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이 왔군.
무거운 표정으로 점점 빠르게 걷던 진안 군왕은 돌연 걸음을 멈추고 앞쪽을 쳐다봤다.
키가 크고 건장한 관료 하나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먹구름이 드리운 하늘에서는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가 났지만, 관료의 걸음걸이에는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이라면 누구나 확신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세찬 비가 퍼붓더라도, 저 관료는 결코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으리라.
“교서(校書) 대인이 왔군.”
진안 군왕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마침내 변화가 생기는 건가. 오늘 조회에서는 전하께서 더 시끄럽고 치열하게 싸우는 광경을 목격하시겠어.”
장순이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진안 군왕은 시선을 거뒀다. 마침내 천둥에 이어 번개까지 내리치기 시작하더니 쏴 하는 소리와 함께 세찬 비가 내렸다.
대전 밖의 천둥소리가 잦아들고, 쏴 하고 내리던 비도 가랑비로 바뀌었다.
반 시진이면 끝나겠지? 더 걸리려나? 대황자는 물시계를 확인하려고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앉아 있는 한 사람과 서 있는 두 사람 때문에 시선이 가려졌다.
대전에는 열댓 명의 대신이 있었다. 여기서 앉을 수 있는 이는 저 높은 보좌 위에 있는 황제와 황자인 자신, 그리고 어사 대인뿐이었다. 올해 쉰이 넘은 어사 대인은 굳은 표정이었다. 품계가 낮은 어사 두 명은 서 있었다.
저리 꼿꼿하게 앉아 있다니, 피곤하지도 않나? 대황자는 저도 모르게 몸을 뒤틀었다. 뒤에 있던 내시가 낮게 기침을 하며 자세를 바로 하라는 주의를 주었다.
힘들어 죽겠네. 공부하는 것보다 더 힘들어. 천둥소리가 잠잠해질수록 대전에서 싸워대는 소리는 더 커졌다.
“병사들이 무예 연마는 하지 않고, 급료만 축내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오.”
“그러니 훈련을 강화하고, 늙고 허약한 자는 제외하여 쓸 만한 자들만 남겨야지요. 강문원(姜文元)이 유능하고 병법에 능하여 위주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으니, 그자를 발탁해야 하오.”
“강유원이 위주로 부임했을 당시 수하가 싸우다가 사람을 죽게 한 일이 있었는데, 수하를 두둔하며 무죄 판결을 내린 일도 있었소. 그런데도 강유원은 수하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지. 그런 자를 중용하는 것은 부당하외다.”
“류 대인, 대인의 고향에서 그 댁 하인들이 행인을 패 죽인 일에 대해선 뭐라 하시겠소? 그때도 법과 제도를 이용해 빠져나갔잖소.”
“폐하, 노신의 명예를 더럽힌 저자를 탄핵하고, 사직을 청하겠나이다!”
아직 어린 대황자는 결국 하품을 했다. 어차피 다들 싸우는 데 열을 올리다 보니 황자에게 신경을 쓰는 이도 없었다.
대체 뭐 때문에 저렇게 싸우는지 모르겠네. 부황께선 매일 조회에 나와 저런 얘길 듣고 계시는 거야? 너무 따분하잖아. 저렇게 입씨름만 하느니, 차라리 멱살 잡고 싸움을 한판 벌이는 게 낫지. 이기는 사람 뜻대로 하면 되겠네.
좋은 생각인데? 대황자는 순간 정신이 번쩍 나는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삿대질을 하며 침을 튀기는 대신들을 쳐다보았다. 대신들이 멱살을 잡고 드잡이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풉 웃음이 나왔다.
“진 참정께 묻겠소이다. 강문원이 적합하지 않으면, 대체 누가 적합하단 말이오?”
“계주(溪州) 병마부 총관 종승포(鍾承布)요.”
“종승포는 이제 겨우 스물여덟이오. 부친의 힘에 기대 음보로 관직에 나온 이를 그리 중용할 순 없소이다!”
“종씨 가문은 일가 전체가 힘을 합쳐 적에 대항하다가 장정 열셋이 전사하고, 사내라곤 승포 하나만 남았소. 어려서부터 명민하고 문무를 겸하여, 어린 나이에 군을 이끌고 적진으로 쳐들어갔다가 개선한 일도 있지. 실로 곽거병(霍去病: 서한 시대의 무장)과 같은 재주를 지닌 자요.”
“진 참정, 곽거병과 같은 재주만 있고, 곽거병처럼 명이 짧아서는 안 될 텐데 말이외다. 어린 나이에 뜻을 펼치며 중임을 맡으니, 그 명이 길지 않을까 걱정이오. 요절을 조심해야 하느니······.”
진소는 격노했다. 싸우고 다투다 보면 헛소리도 나오고 이 말 저 말 다 끌어다 하게 된다지만, 그래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는 법! 진소가 막 따지고 나서려는데, 누군가가 한발 먼저 앞으로 나섰다.
“폐하, 주청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 목소리에 대전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누구인지 확인한 대신들은 더욱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전에 있는 열댓 명의 대신은 양측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었다. 진소와 고 통사가 주로 언쟁을 벌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이 따르는 이에게 미력하게나마 힘을 보태고자 기회만 엿보고 있던 터였다.
아무 말 없이 꼼짝도 않고 있는 이들도 몇 있었다. 그저 허수아비처럼 서 있을 뿐이었는데, 이들은 각각 어사와 태자 중윤(中允: 동궁의 정오품 벼슬), 새로 진급한 비각 교서인 대학사 장순 등이었다.
학문에 심취한 장순은 과거와 관련된 일 외에는 조정의 논쟁에 끼어드는 법이 없었다. 열 번 중 일곱 번은 조회에 불참했고, 나오더라도 말을 삼갔다. 그런데 갑자기 입을 여니, 모두가 놀랄 수밖에.
용상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황제조차도 눈을 휘둥그레 뜨고 쳐다봤다.
“윤허하겠소.”
황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감사 인사를 올린 장순이 돌아섰다.
“아주 가지가지들 하는구려!”
장순은 엄숙한 얼굴로 호통을 쳤다. 흠칫 놀란 대신들은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 눈치였다. 말도 안 하고 있던 이가, 갑자기 입을 열자마자 욕부터 해대다니! 뭐가 그리 아니꼽고 성미가 뒤틀리기에!
진소 등이 이에 맞서 입을 열기도 전에, 어사가 먼저 나섰다.
“장순은 동료에게 언행으로 모욕을 주고 어전에서 결례를 범했으니, 그 죄를 엄히 다스려야 할 것이오!”
서 있던 두 어사가 언성을 높였다.
“대인들도 쓸모없긴 매한가지요!”
장순은 즉시 돌아서서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언행으로 동료를 모욕하고 어전에서 결례를 범했다? 대인들도 똑똑히 봤잖소. 여기 이 물건들은 말로써 천자를 협박하고, 군주 앞에서 안하무인으로 굴고 있소! 다들 눈이 먼 게요?”
장순의 호통에 대신들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쓸모없다니! 물건이라니! 눈이 멀었다니!
조정에서 논쟁을 벌이는 가운데 듣기 거북한 말이 한두 번 오간 것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코앞에서 정면으로 욕지거리를 해대는 일은 실로 드물었다.
장순도 명색이 대유학자인데, 말은 어찌 저리 거침없는 건지. 유학의 도통(道統) 논쟁 때 저자를 죽이려고 자객을 보낸 이가 있다더니. 쳐다보는 저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몇 번은 죽이겠어.
장순이 욕을 해대는 건, 사실 군주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며칠째 이어진 시끄러운 논쟁에 신물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황제로서 대놓고 욕할 수는 없던 차에 마침 대신 나서서 욕하는 이가 있으니 실로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갔지만, 황제로서 감정을 드러낼 순 없었기에 황제는 얼른 표정을 수습했다.
하지만 예리한 대신들의 눈을 피해 갈 순 없었다. 대신들은 속으로 욕을 해댔다.
망할 유학자 선생 같으니라고. 황제한테 알랑거리는 데 도가 텄군!
유학의 도통 논쟁은 본디 체면을 내던지고 싸워야 하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도통 논쟁에 참여한 장순은 이미 뻔뻔할 대로 뻔뻔해진 상태였으니, 제아무리 파렴치한 말을 늘어놓는다 한들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대신들로서도 욕을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몇몇 노신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물까지 보이려고 했다.
“신은 노망이 나서 쓸모가 없습니다. 조당을 욕보일 수 없으니 내쳐 주시옵소서.”
노신들이 소리쳤다. 진소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 앞으로 한발 나서며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장순이 한발 먼저 입을 열었다.
“고능준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멋대로 권세를 쥐고 휘두르며, 서북 군영의 일을 그르쳤습니다. 이에 신은 고능준을 탄핵하고자 합니다.”
장순이 언성을 높였다. 진소는 걸음을 멈춰 섰다. 마음속에 기쁨이 번졌다.
이제 보니 장 교서가 저쪽 편에 선 게 아니었군. 좋아, 중립적인 인물이 나섰으니 폐하의 용단도 내 쪽으로 기울어지겠어.
“또 진소는 조당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천자의 성은에 보답하기는커녕 공을 세우는 데 혈안이 되어 국가의 대사를 그르쳤습니다. 이에 신은 진소도 탄핵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