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262
교랑의경 262화
경쾌한 피리와 북소리에 맞춰, 주 낭자는 힘든 기색도 없이 계속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돌며 화려한 춤사위를 선보였다.
“저 사람이 바로 주 낭자예요. 혹시 들어본 적 있어요?”
진십삼이 정교랑을 보며 물었다.
“예전에 유 교리가 한 관원의 집안을 모함한 적이 있어. 그 관리는 남주로 귀양을 가게 됐는데, 가던 길에 숨을 거뒀지. 그 관리의 아내는 겁…… 큼큼, 목숨을 끊었고, 여덟 살 먹은 어린 딸아이는 교방사로 팔려갔어. 그런데 관리의 부인이 혀를 깨물고 자결하기 전, 억울함을 호소한 혈서를 아이의 품에 증거로 남겨줬다더구나. 유 교리가 방심한 탓에 화근을 남긴 게야. 그 아이는 그동안 복수만을 다짐하며 칼을 갈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오자 북을 치며 억울함을 호소했지.”
말하는 속도는 느렸지만, 정교랑은 한 번도 더듬거리지 않고 이 많은 말들을 단숨에 뱉어냈다. 정교랑이 말을 마치자, 진십삼을 포함한 방 안에 있던 사람 모두가 넋이 나간 얼굴로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맞아요. 그 사람이 바로 주 낭자예요.”
정신을 차린 진십삼이 말하다가 정교랑을 보며 물었다.
“근데, 겁큼큼은 무슨 뜻이에요?”
간신히 정신을 차린 시녀는 차를 마시며 입을 축이려던 찰나, 진십삼의 물음을 듣고 입에 머금었던 차를 풉 하고 내뿜었다.
유 교리가 숨겨 두었던 재산이 적발된 직후, 이춘당의 계약서를 들고 온 주 노야가 정교랑에게 흥미진진하게 말해 주었던 뒷이야기를 정교랑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외워버린 것이었다. 심지어 주 노야의 기침 소리까지도.
시녀는 사레가 들려 연신 기침을 해댔다. 하지만 정교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십삼의 물음에 진지하게 답했다.
“몰라요. 그건 외숙한테 물어보지 못했네요.”
“그건…….”
진십삼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가 갑자기 말을 잇지 못했다.
겁큼큼?
시녀는 두 사람이 겁탈이라는 두 글자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을 차마 못 보겠는 듯 더욱 거세게 기침을 했다.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스치는가 싶더니 진십삼은 실소를 터트리며 재빨리 손으로 웃음을 가렸다.
“그게 뭔데요?”
정교랑이 진십삼을 향해 물었다.
자신을 쳐다보는 여인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그녀의 커다란 두 눈동자가 다소 멍해 보이긴 했지만, 이런 점이 바로 그녀만의 특별한 아름다움이었다.
정교랑이 말없이 진십삼을 주시하자, 진십삼은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나른해졌다. 동시에 애써 숨기던 웃음을 더는 못 참겠는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정교랑은 더 묻지 않고 가만히 진십삼을 쳐다보았다.
“나 좀 그만 봐요.”
진십삼이 웃으며 말했다. 진십삼은 고개를 돌려 웃음을 참아보려 했지만, 웃음소리는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진십삼이 다시 몸을 돌리자, 정교랑은 그제야 진십삼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이렇게 사람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 분명히 악랄하고 매정한 사람인데, 어쩜 이렇게 사람을 즐겁게 하는 거지?
웃음을 멈추지 못한 진십삼은 아예 창가에 손을 올려 몸을 지탱하며 웃었다.
오늘 밤은 벌써 두 번씩이나 이렇게 망가질 정도로 웃고 있구나. 참으로 통쾌하도다!
“진 공자님, 그만 좀 웃으세요. 이게 다 공자님 때문이잖아요!”
보다 못한 시녀가 나서자, 정교랑이 몸을 일으켰다.
“이제 돌아갈래요.”
진십삼이 서둘러 웃음을 삼키고 바른 자세로 고쳐 섰다.
“그만하겠습니다. 그만 웃을게요. 겁큼큼은 다른 게 아니라, 단어가 워낙 흉하다 보니 주 노야가 마른기침으로 숨기셨나 봅니다. 낭자한테 예의가 아닐까 봐서요.”
설명 안 하느니 못한 말을, 왜 또 설명하고 앉아 있대 정말! 시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진십삼을 쏘아보았다. 정교랑은 진십삼을 흘끔 쳐다보고는 짧게 알겠다고 대답하고 걸음을 옮겼다.
“진짜 화났어요? 낭자, 내가 잘못했습니다.”
진십삼이 서둘러 정교랑의 뒤를 따라가면서 사죄했다.
“화날 게 뭐 있나요. 난 단지 볼 걸 다 봤기에 돌아가려는 것뿐이에요.”
정교랑이 걸음을 멈춰 서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여기저기 터지는 불꽃들과 생동감 넘치는 북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한데 섞여 한껏 즐거워 보였다.
왕십칠은 결국 주 낭자의 가무를 보지 못했다. 그가 간신히 덕승루까지 비집고 들어왔을 무렵 주 낭자는 이미 배에서 내려 덕승루 안에 있는 귀족들을 접대하러 간 뒤였다. 덕승루는 여전히 사람들이 넘쳐나 시끌벅적했지만, 화괴를 한 번 더 볼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지고 없었다.
“도련님, 예약해둔 방이 없다는데요? 누구한테 시키셨습니까?”
왕씨 가문의 시종이 왕십칠 가까이에 다가와 말했다.
“여기 있는 아이한테 시켰어.”
왕십칠은 지친 표정으로 말하고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됐다. 없으면 없는 거지. 어차피 못 보니까 그냥 가자.”
풀이 죽은 왕십칠이 천천히 덕승루 밖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차에, 뒤에 있던 시종이 갑자기 비명을 내질렀다. 갑작스러운 비명에 왕십칠은 놀라서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왜 소리는 지르고 난리야!”
왕십칠이 버럭 화를 냈다.
“도련님, 정 낭자는요?”
시종이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묻자, 왕십칠은 잠시 넋을 놓았다가 자신의 허벅지를 탁 치면서 정신을 차렸다.
다른 시종들도 아차 싶은 마음에 사방으로 흩어져서 다급하게 정교랑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인파 속에서 여인 하나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느 낭자라고요? 여기 오는 손님들이 얼마나 많은데, 제가 어떻게 이름을 다 기억하겠습니까?”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점원이 시종에게 말했다.
“예쁘장하게 생겼고, 말은 별로 안 하오. 좀 멍청해 보이기도 하고. 시녀 둘에 사환 하나를 데리고 다니는데.”
시종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빠르게 정교랑에 대해 묘사했다. 왕십칠이 돈주머니 하나를 던져 주자, 점원 중 하나가 그제야 무언가 안다는 듯 입을 열었다.
“혹시 공자님이 왕십칠 공자십니까?”
왕십칠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낭자가 공자님께 자신은 먼저 간다고 전해 달라 했어요.”
대답을 마친 점원은 헤헤 웃고 옷소매를 쥐며 중얼거렸다.
“오늘 밤은 벌이가 쏠쏠하네. 말 한마디 전해 주고 돈주머니 두 개나 얻다니.”
갔다고? 내팽개쳐지니까 화가 나서 갔을 수도 있어. 누구한테 납치된 게 아니라, 제 발로 돌아간 거면 괜찮겠지.
잠깐, 명절 때는 경성에 인신매매범이 많아서, 부유한 집안의 아녀자들을 잡아간다던데. 그 여인은 바보니까 더욱 잡혀가기 쉽지 않을까?
“정말 말을 안 듣네.”
왕십칠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정교랑이 괘씸해서 화가 났다.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면 어디 덧나나? 나중에 꽃등 놀이 못 한 걸 내 탓이라고 하기만 해 봐!”
왕십칠의 말을 들은 점원이 웃었다.
“공자님, 듣기로는 천가로 꽃등 놀이를 즐기러 간다고 하던데요? 거긴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천가? 왕십칠 일행은 깜짝 놀랐다.
어가에서 꽃등 놀이를 한다고? 그건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천가로 갔다고?”
왕십칠이 확인 차 다시 물었다.
“그럼요. 소인이 낭자와 함께 있던 공자님께 들은 말입니다.”
공자님? 왕십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행하는 공자가 있었다고? 혼자가 아니었어?”
왕십칠의 물음에 점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던데요? 낭자는 공자님 한 분과 같이 나가셨어요.”
공자님 한 분과 같이 나가셨다? 입이 떡 벌어진 왕십칠 일행은 귀를 의심했다.
“이 정조도 지킬 줄 모르는 년이!”
왕십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감히 나를 두고 다른 남자랑 놀아났다고?
“어서 쫓아가거라! 이 방탕하기 짝이 없는 연놈들의 다리를 분질러버릴 테다!”
밤이 깊어지자, 선덕문에 있던 황제는 궁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병약한 탓에 대신들의 걱정 어린 청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그는 대황자에게 백성들과 마저 시간을 보내라 말했지만, 태후는 밤을 새우기엔 대황자가 아직 어린 나이라고 완곡하게 말했다.
“제가 남겠습니다.”
선덕문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진안 군왕이 말했다.
“저도 여기 있겠습니다!”
이미 두봉을 걸친 이황자도 진안 군왕을 따라 외쳤다.
“아바마마, 소자도 이곳을 지킬 수 있습니다.”
대황자가 질 수 없다는 듯이 황제에게 말했다. 이들의 모습을 본 황제와 태후는 웃음을 터트렸다.
“위낭이 여기 남아 있거라. 너희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 짐과 함께 돌아가자꾸나.”
황제가 나지막이 말했다.
“저는 형님이랑 같이 있고 싶어요.”
이황자가 포기하지 않고 외쳤다.
“하루도 빠짐없이 위낭 옆에 딱 붙어 있으면서, 잠깐 헤어지는 게 그리도 아쉽더냐.”
태후가 못 말린다는 얼굴로 웃으면서 이황자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어서 이리 오렴. 오늘 하루 종일 위낭 옆에 계속 붙어 있었잖니. 위낭에게도 조용히 꽃등 놀이를 할 시간을 주려무나.”
“인제 그만 황후마마께 가시지요. 마마께서는 바깥으로 나오실 수 없으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 드리세요.”
진안 군왕이 이황자를 번쩍 들어 안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이황자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내시가 서둘러 이황자를 데려갔다.
황제는 신하들의 절을 받은 뒤 환궁했다. 황제가 떠나자 곁을 지키고 있던 대신들도 물러나서 북적거리던 선덕문이 고요해졌다. 이와 반대로, 선덕문 아래의 어가와 저잣거리는 더욱 시끌벅적해졌다.
진안 군왕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열심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의 눈빛이 반짝이나 싶더니, 입꼬리에 걸려 있던 웃음이 서서히 얼굴 전체로 번졌다.
드디어 왔네.
환한 불꽃을 배경으로, 한 여인이 위병들을 지나치며 천가로 들어서고 있었다.
“저길 보세요!”
시종 한 명이 외쳤다.
뛰다시피 덕승루에서 다리 위까지 갔다가, 다시 다리 위에서 덕승루까지, 그리고 정교랑의 뒤를 쫓아 천가까지 뛰어온 왕십칠은 오늘 오간 거리가 자신이 평생 걸은 거리와 맞먹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 무릎에 손을 올리고 허리도 펴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했다.
시종의 말을 들은 왕십칠은 힘겹게 허리를 세우고 시종이 가리키는 곳을 내다보았다.
왕십칠 일행은 어가 입구까지 쫓아왔다. 이쪽은 확실히 저잣거리보다 사람이 적어서, 앞쪽에 있는 사람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정교랑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있던 한 소년 공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곳보다 좀 더 밝은 구간을 지나고 있었던지라, 밝은 불빛에 정교랑의 얼굴이 환하게 비쳤다.
“저년이!”
왕십칠이 외치자마자, 정교랑 뒤에 있던 소년이 몸을 옆으로 돌려 자신의 앞에 있던 등산을 올려다보았다.
아, 저 사람이었어? 왕십칠은 진십삼을 보더니 갑자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깜짝 놀랐네. 한집 식구잖아.”
시종들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 아시는 분입니까?”
“알고말고. 저 사람, 주씨 가문의 공자야.”
왕십칠은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쩐지. 내가 정혼자를 도둑맞을 정도로 운이 나쁜 편은 아니긴 하지.
시종들도 왕십칠을 따라 긴장을 풀었다.
도둑맞은 것도 아니고, 납치당한 것도 아니고, 우연히 가족을 만난 거구나.
“그런데 도련님, 주씨 가문은 품계가 낮은 무장 가문인데, 어떻게 천가에 자리를 얻었을까요?”
연륜이 있어 보이는 시종이 무언가 생각난 듯 왕십칠에게 말했다.
그러게. 내가 아무리 타지 사람이긴 해도, 천가가 어떤 곳인지 정도는 알고 있지. 주씨 가문이 천가에서 꽃등 놀이를 즐길 수 있다고? 정씨 가문과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평범한 무장 가문일까?
작가의 말:
주 낭자가 춤추는 부분에 대한 묘사는 백거이(白居易)의 를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