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294
교랑의경 294화
“너 미쳤어? 지금 뭐 하는 거야!”
왕십칠이 펄쩍 뛰면서 정교랑에게 외쳤다. 정교랑은 여전히 왕십칠을 무시하고 역참의 대문 가까이로 걸어갔다.
대문 앞에 멈추어 있던 마차에서 한 남자가 내리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남자는 눈앞의 난리 통에 흠칫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두모를 벗고 마당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이, 이게 다 무슨 일이냐?”
풍 대인을 마중 나온 태창로 전운사의 서리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곤봉으로 있는 힘껏 병졸들을 내리치고 있는 주씨 가문의 시종들을 보면서, 그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한발 먼저 풍 대인을 마중 나왔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지금쯤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겠지.
저건 누구야? 역참을 오가는 이는 대부분이 관리인데, 설마 어떤 거물의 성질을 긁었나?
거물은 무서운 존재였지만 서리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대인,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 사람들이 일부러 난리를 피우는 것 같습니다.”
서리가 옆에 있던 호위에게 명했다.
“뭐하고 섰어! 어서 저 겁 없는 자들을 잡아들이지 않고!”
서리의 명령에 호위들은 곧바로 무기를 꺼내 들었다.
“잠시만, 잠시만. 무슨 일인지부터 먼저 묻고······.”
수척한 얼굴의 남자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서리가 그의 말을 끊었다.
“대인, 물어볼 게 뭐 있습니까. 말도 없이 주먹질부터 쓰는 자들인데, 분명 강도들일 겁니다!”
말을 끝낸 서리가 다시 고개를 돌려 병졸들을 재촉했다. 이때 그의 뒤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도 없이 주먹부터 쓰는 병졸들이야말로 강도들이지요!”
서리와 풍 대인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어두워진 하늘 아래, 두봉을 걸치고 커다란 두모를 쓴 여인이 대문 앞에 우뚝 서 있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 누구야?”
서리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고함을 쳤다.
“불의에 맞서는 행인이요.”
불의에 맞서는 행인이라고? 미친 건가?
불의에 맞서긴 개뿔! 지금 무슨 연극놀이 해? 쓸데없이 무슨 오지랖이야?
왕십칠이 눈을 부라리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저 여인은 정말로 바보천치로구나!
왕십칠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역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조 집사와 시종들이 병졸 네 명을 끌고 와서 대문 밖에 내팽개쳤다. 왕씨 집안의 시종 세 명도 그 뒤를 졸졸 따라 나왔다.
“감히 무고한 백성을 괴롭히다니, 아주 간덩이가 부었구나!”
조 집사가 병졸들을 향해 호통을 치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조 집사와 시종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맞아도 싸다! 잘 때렸소!”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모반이라도 하려고?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이러는 게야?”
서리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눈앞에서 병졸들이 얻어맞는 걸 본 서리는 그저 놀라기만 했을 뿐, 두려운 표정을 보이진 않았다. 서리는 호통을 치고 눈알을 굴리면서 동시에 속으로 빠르게 계산했다.
저 여인의 말투는 북쪽의 말투야. 시종은 전부 경성 사람 같아 보이는데, 기세를 보아하니 경성 관리 집안의 딸이겠군.
입은 옷을 봐서는 별다를 게 없어. 타고 온 마차도 평범해 보이고······.
서리는 길가에 마련된 천막을 확인하고, 정교랑이 경성 관리 집안이긴 하나 고위직 관료 가문 출신은 아닐 거라 추측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인의 몸으로 야외에서 한뎃잠을 자진 않을 테니까.
“감히 삼사원(三司院) 풍 대인의 행차에 훼방을 놓다니!”
혹여나 듣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봐 서리는 다시 한번 큰소리로 외쳤다.
“경성 삼사원의 풍 대인이시다! 어명을 받들어 조정의 일을 하러 나온 풍 대인이시란 말이다!”
서리의 외침 소리에 수척한 남자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정교랑은 서리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위의 백성을 둘러보았다.
“자기 한 몸 편하려고, 먼저 도착한 여러분을 밤중에 쫓아냈어요. 대답해 보세요. 여기서 누가 나쁜 사람입니까? 맞아도 싼 사람이 누구죠?”
“저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에요! 저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라고요!”
“맞아도 싸다! 맞아도 싸!”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목청을 높여 삿대질을 해 가며 외쳤다. 사실 조 집사 일행의 목청이 제일 컸지만, 사람들 틈에 섞여 있던 덕분에 딱히 티가 나진 않았다.
여럿이 갑자기 외쳐대는 통에 서리와 병졸들은 화들짝 놀랐다.
“아니, 쫓아낸 건 아니고, 돈을 받고 자기 발로 나간 건데······.”
황급히 변명하던 서리가 풍 대인을 보면서 사정했다.
“풍 대인, 대인께서 밤길을 재촉하며 달려오셨다기에, 저들은 대인을 위해서······.”
“돈? 돈은 중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요. 사람이 굶어 죽어갈 때는 돈이 아니라 당장 먹을 수 있는 밥이 필요한 법이죠. 하룻밤 몸 누일 곳을 찾아 들어온 온 건데, 그깟 돈을 쥐여 준다고 해서 저 사람들의 잠자리가 해결되나요? 대체 이 한밤중에 노인들과 아이들을 어디로 내쫓겠다는 말입니까?”
정교랑이 서리의 말을 끊고 호통쳤다.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또다시 물었다.
“지금 돈이 필요해요?”
“필요 없어요! 필요 없어!”
“맞아, 맞아. 정말 도리에 안 맞는 짓이야.”
“돈이 있고 관직이 있는 사람이면, 이렇게 아무나 괴롭혀도 되는 거요?”
“그리고 사람도 다쳤어.”
이번에는 조 집사 일행이 목청을 높일 필요도 없었다. 모든 사람이 혀를 차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서리는 결코 질 수 없다는 듯 다시 한 발 나서서 외쳤다.
“우리 대인께서는 어명을······.”
서리가 입을 열자마자 정교랑이 또 그의 말을 끊었다.
“어명? 어명을 받드는 사람이 가엾은 백성들을 이리 괴롭힌다고요?”
정교랑은 서리가 끼어들 틈도 주지 않고 풍 대인에게 시선을 돌려 외쳤다.
“대인, 이런 자들이 바로 대인께서 거느리는 수하들이란 말입니까? 백성들을 이리 함부로 대하는 자들이 대인의 수하라고요?”
일렁이는 등불 그림자에 비추어진 남자의 수척한 얼굴이 보일 듯 말 듯했다. 말을 마친 정교랑은 잠자코 풍 대인을 바라보았다.
풍 대인과 정교랑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으스스한 고요함을 느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있는 곳은 전혀 조용하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 영문도 모른 채 흠씬 두들겨 맞은 병졸들의 신음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이런 썩을 놈!”
철썩 따귀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고함이 들리자, 사람들이 그제야 조용해졌다. 모여든 사람들은 소리가 난 곳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좀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서리가 뺨을 어루만지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서리는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수척한 얼굴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감히 백성들을 괴롭히다니! 게다가 헛소리까지 지껄여?”
남자가 눈썹을 치켜뜨고 꾸짖었다. 분을 참을 수 없는 듯 몸까지 미세하게 떨렸다.
“대인 어른, 이게 다 대인을 위한 게 아닙니까.”
서리가 억울한 듯 소리쳤다.
“나를 위해서 무고한 백성들을 괴롭혔다고? 나를 위해서 천자의 덕망을 욕보였다고? 이 몸은 황송해서 그리할 수 없네!”
수척한 얼굴의 남자가 서리에게 삿대질을 했다. 일렁이는 불빛에 비친 남자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했다. 주위의 백성들은 의분을 참지 못하는 풍 대인의 모습에 한시름 놓았다.
저 대인께서는 그래도 청백리인가 보네. 제 식구만 싸고도는 탐관오리가 아니야.
“너희들 잘못이긴 하나, 나 또한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수척한 남자가 한숨을 내쉬고는 주위 사람들에게 공수의 예를 표하며 읍을 올렸다.
“백성을 놀라게 한 죄는 본관에게 있소이다.”
“아니 뭐, 대인 탓은 아니죠.”
“대인도 몰랐다고 하시니.”
“그러니까 염라대왕을 만나보는 것보다 변변찮은 잡귀를 상대하는 게 더 어렵다고들 하잖아.”
풍 대인의 진심 어린 사과에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다. 서리 또한 더 이상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어, 그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정교랑을 노려보았다.
다 저 여인의 오지랖 때문이야! 두고 보라고!
서리의 시선을 느꼈는지, 정교랑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짙은 밤하늘보다 더 새까만 정교랑의 두 눈동자를 본 서리는 흠칫 놀라 눈을 내리깔았다.
“대인, 죄가 있다면 벌을 내리셔야지요.”
여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심지어 백성 중 몇 명은 다치기까지 했습니다.”
뭐라고? 지금 저 여인,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건가?
서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휙 들었다.
저 둘, 혹시 원한이 있나?
수척한 남자 또한 정교랑의 말을 듣고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그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가 물었다
“다친 사람은 어디에 있소?”
방금 전 정교랑의 말을 듣자마자, 조 집사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다친 사람을 찾아냈다.
사실 크게 다친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 틈에 껴서 싸움을 구경하다가 조 집사에게 밀쳐져 바닥에 주저앉은 것뿐이었다.
“다친 사람은 여기 있습니다.”
조 집사가 큰 소리로 외치자 사람들이 길을 터주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노인은 엉덩방아를 찧은 게 아파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정말 많이 다쳤군.
“어르신.”
수척한 남자가 서둘러 노인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노인의 어깨를 잡았다. 그는 눈물이라도 떨굴 듯한 표정으로 비통하게 말했다.
“다 본관의 불찰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풍 대인의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역시 좋은 관리셨어.
“따지고 보면 대인이 잘못하신 것도 아니잖아.”
사람들이 풍 대인의 편을 들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아니오, 아닙니다. 다 본관의 잘못이오.”
수척한 남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잘못이 있다면, 대인께선 현명한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그의 뒤에서 정교랑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척한 남자가 정교랑을 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내리지 못한다면, 후에 반드시 이로 인해 어지러워질 겁니다. 자식을 가르치지 않는 건 부모의 과오요, 가르침이 엄하지 않음은 스승의 나태함이라지요(子不敎父之過, 敎不嚴師之惰).”
정교랑의 말을 들은 남자가 곧바로 몸을 일으켜 엄숙한 표정으로 호통쳤다.
“여봐라. 당장 저 다섯 놈을 체포해라. 저들을 병적에서 제명하고 태창부로 보내 단죄토록 하라.”
뭐라고? 병적에서 제명한다고?
바닥에서 신음하던 병졸들과 서리는 아연실색했다.
일이 너무 커졌잖아!
지금 이 신분을 얻기까지 이들은 수많은 공을 들였다. 게다가 신분 덕에 적잖은 이득을 보며 사는 처지다 보니 그 신분을 잃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그야말로 죽으란 소리가 아닌가.
“대인, 대인. 용서해주십시오.”
“대인, 대인.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수척한 남자는 미동도 없이 제자리에 뒷짐을 지고 서서 굳은 표정으로 서리와 병졸들을 한 번씩 훑었다.
“잘못인 것을 알았다면, 애초에 그러지 말았어야지!”
너무 다급했던 나머지 서리는 애원하는 대신 소리를 빽 질렀다.
“대인, 저희를 벌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태창로 전운사 사람입니다.”
병졸 네 명도 서리의 말을 듣고는 그를 따라 소리쳤다.
“대인께서는 저희도 벌하실 수 없습니다! 저희는 천자를 호위하는 병사들이고 삼반원(三班院) 소속이란 말입니다!”
이들은 득의양양한 얼굴로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삼사원의 관리는 고된 일을 도맡아 바깥으로 나돌기 일쑤였다. 일 년이 가도록 용안조차 몇 번 뵐 일 없는 관리 처지인지라 이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백성들 앞에서까지 이런 무시를 당하니, 수척한 남자의 얼굴색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딱히 도리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까 누가 아주 옳은 말을 하더군. 염라대왕을 만나보기는 쉬워도, 변변찮은 잡귀를 상대하는 건 아주 어렵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