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28
교랑의경 528화
황제에게 일이 생겼다는 소식은 밤새 빠르게 퍼져 나갔다. 수많은 집의 등불이 잇달아 켜지고, 무수한 시선이 황궁을 향했다.
다행히 날이 밝을 즈음, 황제가 무탈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조회는 평왕의 주재로 평소와 다름없이 진행되었다.
조회는 특히 무미건조하게 진행됐다. 대신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황제의 용태뿐이었다.
궁에서 하룻밤을 보낸 진소와 중신 몇 명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기쁨과 분노가 겹쳐져 기혈이 제대로 통하지 못했을 뿐 옥체는 무탈하시다는군.”
진소가 말했다. 이어서 태의국 사람도 나와 황제의 건강을 확인해 주었다. 오후부터는 황제를 알현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용상에 앉아 내시가 먹여 주는 약을 먹는 황제를 보고 나서야 다들 한결 마음이 놓이는 눈치였다.
“다들 보시구려. 어젯밤에 당도한 급보요.”
황제는 목소리도 맑고 정신도 또렷해 보였다. 신하들은 그제야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았다.
모두의 시선이 탁자 위로 향했다. 그곳에는 황제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게 만든 급보가 놓여 있었다.
“무평 지역에서 민란에 가담하는 세력이 늘어나 왕을 자청하며 노강성(盧江省)을 공격했다는군. 노강 현령은 물러서지 않고 성을 사수하며 관인을 끌어안고 집을 불태운 후 집안 식구 열여덟 명과 함께 죽음을 맞이했고.”
“그랬군.”
같은 시각 역참에 있던 고능준 역시 급보의 내용을 필사한 내용을 보고 받으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폐하는 정말 괜찮으신 게냐?”
고능준이 물었다.
“네. 당시 폐하께서 급보의 내용을 다시 한번 말씀하기도 하셨답니다.”
측근의 말에 고능준은 웃음을 지었다.
폐하께서 강건한 모습을 보여 주고자 신하들 앞에서 일부러 그러셨군.
“이 대체 무슨 일이냐!”
고능준이 급보를 탁자 위로 던지며 소리쳤다.
“가서 그자들에게 전하거라. 다음번엔 적당히 하라고. 저들은 급보를 올려 날 경성에서 내쫓고 나라에 공을 세웠다는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 우리는 급보를 올려 하마터면 폐하를 돌아가실 뻔하게 했으니, 그 죄가 극악무도하지 않느냐.”
측근이 얼른 네 하고 대답했다.
“일이 이리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습니다.”
측근은 고개를 숙였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기도 하고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황제가 그 정도 충격도 못 받아들일 줄 누가 알았을까. 겨우 이 정도도 못 버틴다고?
“태의는 뭐라더냐?”
고능준이 멈칫하는 표정을 지으며 불쑥 물었다.
“태의 말로는 기쁨과 분노가 교차하며 기혈이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합니다. 각혈을 하신 것도 별일 아니고요. 오히려 피를 토하지 않았을 때 문제가 된답니다.”
측근은 말을 마친 후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이미 확인했습니다.”
고능준은 아, 하는 소리를 내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인, 돌아가시겠습니까?”
“아니다.”
고능준이 손을 들었다.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길을 재촉해 서둘러 망주(望州)로 가야지.”
측근은 알았다고 대답한 후 뒤돌아 나가려 했다.
“그리고, 저들에게 전해라. 이번 재해를 빌미로 진안 군왕을 경성에서 내보내고 나면, 나머지 일은 잠시 제쳐 두라고. 지금 가장 시급한 건 태자 책봉이다.”
고능준이 재차 당부하자 측근이 네 하고 대답했다.
정월이 지나자 황제는 정상적으로 조회에 참석했고, 모두를 놀라게 했던 그날 밤 일도 차츰 잊혀졌다. 사실 울화가 치밀어 각혈을 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다만 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점점 더 크게 번져 갔다.
“이재민 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민란을 일으킨 역당의 세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소이다.”
조당의 싸움도 날로 치열해졌다. 황제는 손을 뻗어 이마를 꾹꾹 눌렀다.
저들이 말하는 건 모두가 아는 일이야. 이재민 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역당 세력이 힘을 받고 있지. 하지만 지금은 그걸 얘기할 때가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해결할지 논하는 게 핵심이지.
“무평의 이재민 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죄를 물으시옵소서.”
“민란부터 평정하심이······.”
“누구를 보내야 하겠소이까?”
끊이지 않는 논쟁 속에서 돌연 맑고 청량한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 신이 가겠나이다.”
젊은 목소리였다. 모두가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앞으로 나서며 황제를 향해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보였다.
“진안?”
황제가 놀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웬 말썽이냐?”
“폐하, 말썽을 부리는 게 아닙니다. 신이 가겠습니다.”
진안 군왕이 큰 소리로 말했다.
“신이 아직 나이가 어려 중임을 감당할 수 없는 건 압니다. 신 역시 중임을 바라진 않습니다. 다만 폐하께서 이재민을 구제할 문신과 반란을 평정할 무장을 고르실 때까지, 신이 폐하를 대신해 무평으로 가 백성을 위문하고 역당의 세력을 진압하겠나이다.”
하긴. 반란이 일어나면 황제나 태자가 친히 출정하곤 했지. 지금 같은 때에 황족이 무평으로 간다면, 재해를 겪고 있는 백성은 큰 위로를 받을 테고 반란을 일으킨 세력은 두려움에 떨게 될 거야.
조당이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허튼소리 마라! 진소, 서둘러 구휼을 시행하고 반란을 평정할 이를 인선해 사흘 내에 짐에게 보고하시오. 다들 그만 퇴청하시오!”
황제가 퇴청하자 대신들도 무평으로 갈 대신을 논하기 위해 조당을 나왔다. 조당을 나오던 이들 중 두 대신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일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두 대신이 다시 앞쪽을 쳐다보았다. 젊은 군왕이 다른 대신들과 함께 걸음을 옮기는가 싶더니, 내시가 군왕을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황제가 진안 군왕을 부르는 눈치였다.
“전진을 위한 후퇴인가?”
대신 하나가 나지막이 말하자 다른 대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지금 같은 때에 이런 장난을 치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닌데.”
“정말 가려는 것 같소?”
먼저 입을 연 대신이 놀라 물었다.
그게 말이 되나.
하지만 사흘 후 나온 황제의 공식 발표는 말이 안 되는 그 일을 사실로 입증해 주었다. 진안 군왕은 초무사(招撫使) 신분으로 떠나게 되었다.
“천지신명께서 도우셨구나. 앓던 이가 빠진 듯 후련해.”
소식을 들은 귀비는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며 환히 웃었다.
“역시 고 전시가 일을 제대로 대비해 놓고 갔구나. 자기가 떠나자마자 바로 쫓겨나게 하다니. 고 전시의 작품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인사할 건 해야지. 가서 감사 인사를 전하거라.”
잠시 머뭇거리던 궁녀가 입을 열었다.
“마마, 두 분 대인이 그러시는데, 이번 일은, 그분들이 하신 게 아니랍니다.”
귀비가 멈칫했다.
“무슨 말이야?”
“소인도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두 분께서 그리 말씀하셨어요. 본디 군왕이 지난번에 폐하 앞에서 구휼이 우선이라는 말씀을 올린 걸 문제 삼아 일을 키우려 했는데, 대인들께서 입을 열기도 전에 군왕이 초무사로 가겠다고 자청했답니다.”
자청을 했다고?
귀비가 미간을 찌푸렸다.
또 무슨 생각이지? 공을 세우고 싶어 머리가 어떻게 됐나?
무려 경성을 떠나는 일이라고! 무려 반란을 평정하러 가는 일이란 말이다! 혹여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공이고 명성이고 아무 의미도 없게 되는데.
“전하, 지금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아십니까? 정녕 전하의 뜻이란 말씀입니까?”
경왕부. 경왕의 병을 보러 온다는 핑계로 방문한 이 태의가 침통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폐하를 설득하느라 애를 좀 먹었죠.”
진안 군왕이 웃으며 대답했다.
“폐하께 내가 틀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먼저 구휼을 시행하여 재해에 관한 걱정이 사라지면 백성이 안심할 줄 알았는데, 한번 불안해진 마음을 위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돈과 곡식을 풀어도 난민이 점점 많아지는 상황이니 내가 틀렸죠. 그래서 직접 가 보고자 합니다.”
이 태의는 콧방귀를 뀌었다.
“어떻습니까? 이유가 그럴듯하죠? 폐하께서도 얘기를 듣더니 동의하셨어요.”
“전하의 말재주를 누가 당해 내겠습니까.”
진안 군왕은 이 태의의 말에 하하 웃음을 터트리며 잔을 들었다.
“하온데, 전하.”
이 태의가 진안 군왕을 쳐다보며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4년 전 산길에서 야밤에 늑대 떼를 만난 일을 잊으셨습니까?”
“4년 전이요?”
찻잔을 손에 쥔 채 비스듬히 앉아 있던 진안 군왕이 돌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진지해진 군왕의 표정을 보며 이 태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진안 군왕이 미소를 지었다.
“그 여인을 만난 지도 곧 4년이 다 되었군요.”
이 태의는 멈칫하더니 곧 분노하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전하, 지금 진지하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 태의가 불쾌한 투로 목소리를 높였다.
경성을 떠난 후 맞닥뜨리게 될 위험에 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황자들이 아직 어렸던 4년 전에도 궁을 나갔다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황자 하나는 어느덧 장성했고, 다른 하나는 병으로 불구의 몸이 되었으며, 다른 하나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지금이었다. 황제의 병세가 호전되었다고는 하나 정세는 아직 불안했다. 이런 때에 경성을 떠난다니, 그것도 그 먼 곳으로 간다니, 게다가 이재민을 구제하고 반란을 평정하러 간다니,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진안 군왕이 웃음을 지었다.
“나도 진지한 얘기를 하는 중입니다.”
진안 군왕은 자세를 바꿔 책상다리를 하고 앉으며 말을 이었다.
“그 여인을 안 지 벌써 4년이에요. 그 여인이 없었다면, 내가 죽은 지 4년은 되었겠네요.”
이 태의가 불길한 소리 말라는 듯 퉤 하고 침을 뱉는 시늉을 했다.
“전하는 하늘이 보우하시는 분인데 돌아가시다니요. 그 여인이 아니었어도 다른 누군가가 있었을 겁니다.”
“다른 사람은 아닙니다. 그 여인뿐이죠.”
진안 군왕의 단호한 표정에 이 태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 미련을 보이시면서, 어찌 경성을 떠나신단 겁니까?”
“미련을 보이긴요. 이 태의, 그 나이에 참 이상한 생각도 잘하십니다.”
진안 군왕이 미간을 찌푸리자 이 태의는 어이가 없는 듯 눈을 흘겼다.
하여간 이상한 사람들은 남을 이상하게 본다니까.
입만 열었다 하면 그 낭자 얘기뿐이면서. 무슨 생각인지는 바보가 봐도 훤히 알겠는데, 누굴 속이려고!
이 태의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더니 곧 생각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지금은 그 낭자를 생각할 때가 아니지.
“전하, 폐하께서 병환이 도지셨으니, 이번 기회에 경왕과 함께 궁으로 돌아가시지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 태의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진안 군왕은 손을 내저으며 이 태의의 말을 잘랐다.
“궁으로 돌아가도 소용없습니다.”
진안 군왕이 문밖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궁 안도, 더 이상 내게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
“전하, 폐하는 무탈하십니다. 설령 훗날······ 아무튼 태후마마도 계시잖습니까.”
“그러면 뭐요? 태후께서 귀비보다 오래 계시겠습니까? 평왕보다 오래 계시겠습니까?”
진안 군왕은 웃으며 다시 이 태의를 바라보았다.
“아니면, 이 대인이 방도를 생각해 보세요.”
이 태의가 진안 군왕을 힐끔 쳐다보았다.
“전하, 저는 태의입니다. 병자를 고칠 뿐이지요. 다른 건 아무것도 못 합니다.”
이 태의가 느릿느릿 말하자, 진안 군왕이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네, 압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당초 이 태의도 날 구하지 않았겠죠. 그 많은 이들이 다들 날 못 구한다고 했는데.”
이 태의가 손사래를 치며 말을 잘랐다.
“그건 별개의 일입니다. 전하의 병은 고치기 힘든 병입니다. 저 말고는 못 고쳐요.”
진안 군왕이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네, 압니다. 이 대인은 마음이 착하고 의술도 고명하죠.”
웃음을 터트리는 눈앞의 젊은이를 보며 이 태의는 만감이 교차했다.
언제 이리 장성하셨을까.
부왕, 부왕, 구해 주세요.
침상 위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작은 아이가 눈앞에 보였다. 중얼거리는 그 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이 태의는 차마 아이를 뿌리치고 나갈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금 멀리 떠나시면, 무탈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진안 군왕은 웃으며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그런데 난 ‘어쩌면’ 같은 말이 싫습니다. 남한테 결정권이 있고, 난 그저 기다려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