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41
교랑의경 541화
“정말 미친 게로구나!”
기생 어미가 소리쳤다. 고씨 가문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확보한 그녀는 고십사 공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발을 세게 굴렀다.
“저놈들을 개 패듯이 때려서 내쫓아 버려라! 죽고 싶더라도 누울 자리를 봐 가며 난리를 피워야지!”
내쫓으라는 말과 때려서 내쫓으라는 말의 의미는 확연히 달랐다.
여인의 외침에 무언가를 움켜쥐려던 점원들의 손 모양이 주먹을 쥔 모양으로 변했다. 곧이어 점원들은 아직 상황파악도 하지 못한 정사낭을 향해 거침없이 주먹을 날렸다.
정사낭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배를 부여잡고 쓰러졌지만, 점원들은 더욱 악랄하게 정사낭을 폭행했다.
별실 안이 아수라장이 되자, 정사낭을 따라왔던 사내들도 혼란스러워졌다. 그들 중 두 사내는 싸움을 뜯어말렸고, 다른 두 사내는 머리를 감싸 쥔 채 밖으로 도망쳤다.
우당탕거리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버선발로 뛰쳐나가는 사내들까지 보이니, 덕승루 대청에 있던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져 위층을 올려다보았다. 몇몇 손님들은 아예 위층으로 올라와 싸움 구경을 했고, 좌우에 있는 별실에서 유흥을 즐기던 지체 높은 이들은 민망하여 차마 직접 나오지는 못하고 사환들을 내보내기도 했다.
기녀를 두고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일은 덕승루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지만, 오늘 별실 앞에 서 있는 기녀는 경성 제일 화괴인 주 낭자였다. 주 낭자는 부른다고 오고, 가란다고 가는 평범한 기녀가 아니기도 했거니와, 근래에 고십사 관인이 주 낭자를 점찍었다는 소문이 자자하여 그 누구도 주 낭자를 부를 엄두를 내지 못하던 차였다.
아무리 배짱 있는 사내라고 해도,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호랑이의 먹이를 탐내겠는가. 그런데, 주 낭자를 부른 사람이 있다고?
역시나 예상대로 흠씬 두들겨 맞는 중이네. 왜 저렇게 사서 고생을 한담.
“그만 때려요! 때리지 말라고요!”
깜짝 놀란 주 낭자가 소리쳤지만, 주 낭자의 말을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혼란을 틈타 춘령이 한쪽에 고꾸라져있던 사환에게 달려가 붙잡고 흔들었다.
정신을 차린 사환이 바닥에 깔린 채 점원들에게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맞고 있는 정사낭을 발견했다. 사환은 울며불며 그쪽으로 달려가려고 했지만, 춘령이 온 힘을 다해서 사환을 끌어안고 붙잡았다.
“바보예요? 빨리 도와줄 사람을 불러와야죠! 혼자 무슨 힘이 있다고!”
춘령의 말을 들은 사환은 아차 싶었는지 재빨리 밖으로 뛰쳐나갔다.
“빨리 가요, 빨리! 안 그러면 당신네 공자님은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춘령이 사환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쳤다. 사환이 층계를 구르다시피 뛰어 내려가자, 춘령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숨이 넘어갈 뻔했다.
그래, 빨리 가, 빨리!
빨리 잘난 너희 신선 낭자를 불러오라고! 빨리 사람을 불러와서 판을 더 크게 벌여!
춘령이 허둥지둥 뛰어가는 사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아무나 붙잡고 사정하는 주 낭자를 바라보며 눈물을 짜냈다.
“때리지 마세요. 그만들 하세요.”
그러더니 여기저기 부딪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사낭에게로 달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사공자님, 사공자님! 어서 가세요! 어서요! 빨리 고 관인께 가서 잘못했다고 빌어요! 그렇지 않으면 고 관인께서 공자님의 손을 부러트린다고 했단 말이에요!”
손을 부러트려? 이제야 진사가 되어 앞길이 창창한 젊은 청년인데, 손이 없어지면 폐인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잖아!
고십사 공자가 얼마나 괴팍하고 폭력적인지는, 그를 접대했던 기녀들의 말만 들어도 충분히 알 수 있어. 그런데 오늘처럼 체면을 구긴 날엔, 얼마나 끔찍한 일을 벌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아.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어쩌다가?
아수라장이 된 별실 안을 쳐다보던 주 낭자의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정사낭이 있는 별실에 비하면, 고 관인의 별실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기녀라면, 말에 신용이 없어도 된단 말이오?
그리고 이 기루에서는,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면 제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이오?
시종이 정사낭이 했던 말을 고 관인에게 그대로 알리자, 호화로운 별실 안에 적막이 맴돌았다. 물론, 정사낭의 말에 압도되어서 조용해진 건 아니었다.
“빌어먹을, 어디서 굴러온 바보 새끼야?”
고 관인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실소를 터트렸다. 잠시 뒤, 그가 웃음기를 싹 거두고 술잔을 내던졌다. 그리고는 퉁퉁한 손가락으로 옆에서 자신을 접대하던 기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의리를 따질 사람이 없어서, 기녀와 의리를 따져? 기녀에게는 정이 없고, 광대에게는 의리가 없다는 말도 모르나?”
기녀가 눈가에 웃음이 가득 띠고 아양을 떨며 고 관인의 팔을 끌어안았다.
“십사 관인, 관인을 향한 소인의 마음은 진심인걸요.”
고 관인이 하하 웃음을 터트리고는 기녀의 볼록한 볼살을 꼬집으며 그녀를 와락 품에 안았다.
“기루에서 도리와 원칙을 찾는 사람이 있다니. 여기가 무슨 학당이라더냐? 원리원칙을 따질 거면 여기 올 사람이 어디 있어? 지위도 높고 돈도 많으니, 제멋대로 해 보겠다고 여길 오는 거 아니겠어? 한데 돈도 없는 비렁뱅이가 무슨 미인을 얻겠다고? 아까는 화가 좀 났는데, 그놈이 바보였을 줄은 미처 몰랐군. 바보 때문에 화를 낼 필요는 없지.”
고 관인의 말에 별실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 새로 진사가 된 자라고 들었습니다만.”
누군가가 말했다.
진사?
고 관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사리 분별도 못 하는 놈이 벼슬을 했다가는, 훗날 조정에 큰 해를 입힐 게 자명하지!”
고 관인이 정색하며 침을 뱉었다.
“가서 그놈에게 썩 꺼지라고 전하거라. 그래도 고집을 부릴 거면, 나중에 이 몸이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며 투덜대지도 말라고 해. 어쩌다가 덕승루가 이렇게 개나 소나 와서 난리를 피워도 되는 곳이 됐담?”
“공자님, 걱정하지 마세요. 벌써 기생 어미가 밧줄로 묶어 내쫓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시종이 서둘러 말했다.
“기생 어미도 늙긴 늙었네. 정신머리가 예전 같지 않아. 이런 사소한 일에 무슨······.”
고 관인이 웃으면서 말하던 찰나였다. 문밖에서 쿵쾅대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서 벌컥 문이 열렸다.
여인 하나가 바람처럼 별실 안으로 뛰어 들어오자, 별실 안이 일순 조용해지면서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꽃보다 아름다운 미모에 눈부신 장신구를 한 여인이었지만,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혼란스러워 보였다. 가슴께까지 오는 치마로 인해 하얗게 드러난 그녀의 봉긋한 가슴이 헐떡이는 숨과 함께 위아래로 흔들렸다.
저런 모습도 색다른 재미가 있네.
고 관인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입꼬리를 올렸다.
“어이구, 우리 주 낭자 왔는가? 나비처럼 날아온 걸음걸이치고는 조금 늦었구려.”
고 관인의 태도는 느긋했다. 주 낭자가 흥분한 표정으로 고 관인에게 말했다.
“고 관인, 제가 여기 같이 있어 드리면 되잖아요. 어서 정 공자님을 놓아주세요.”
고 관인의 웃음이 어색하게 굳었다.
“뭐라?”
고 관인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서 정 공자님을 풀어 달라고요! 제가 여기 같이 있을 테니까, 그 사람을 다치게 하지 말란 말입니다!”
주 낭자가 다급하게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소리쳤다.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다치게 했다는 거지?”
고 관인이 음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주 낭자, 아무리 마음에 둔 사내가 걱정된다 해도, 아무나 붙잡고 그런 청을 하는 건 좀 아니잖소.”
고 관인이 마음에 둔 사내라는 말에 힘을 실었다. 고 관인의 비아냥거림을 눈치챈 주 낭자는 더욱 긴장하여 무릎을 꿇었다.
“다 이 주형의 잘못입니다. 멋대로 손님을 안 받겠다며 자리를 피해서는 안 됐어요. 이건 정 공자님과 무관한 일입니다. 다 제 잘못이에요. 이 일은 그분과 무관하다고요.”
고 관인의 미소가 더욱 냉랭해졌다. 그의 품에 안겨있던 기녀는 조심스럽게 옆으로 자리를 피하고, 별실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몇 년이나 기녀로 지내는 동안 늘 노련한 솜씨로 사내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던 주 낭자는 이성을 잃은 나머지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하고 있는지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
여인을 흠모하지만 몇 번이나 퇴짜를 맞은 사내 앞에서, 그녀가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다른 사내를 감싸는 일을 견딜 수 있는 사내는 몇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몇 번이고 퇴짜를 맞았던 사내는, 하필이면 살면서 거절이라는 것을 한 번도 당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
고 관인은 술잔에 든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음미했다.
“여봐라.”
문밖에서 대기하던 시종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가서 기생 어미에게 전하거라.”
고 관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주 낭자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앞에서 다른 사내 때문에 희로애락을 보이는 여인의 고운 얼굴을 보고 있자니, 고 관인은 입꼬리가 점점 더 올라갔다.
“가서 기생 어미에게 전하거라. 더는 이 일에 신경 쓰지 말라고. 그리고 너희가 가서 그놈의 손 하나를 부러트려 버려.”
안도의 한숨을 쉬던 주 낭자의 숨이 턱 막혔다.
“고 관인, 고 관인?”
주 낭자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다급하게 외쳤다.
“아, 참.”
고 관인이 손을 들어서 시종을 불러 세웠다. 그가 시종을 쳐다보면서 씩 웃었다.
“주 낭자가 사정하는데, 내가 그 청을 무시할 수는 없지. 어찌 됐든 미인의 체면은 지켜 줘야 하니까.”
주 낭자가 긴장한 기색으로 고 관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말이지. 곤란하게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든.”
고 관인의 말에 주 낭자의 머리가 새하얘졌다.
뭐라고?
“그래서 무슨 짓이라도 좀 해야겠어. 그러지 않으면 나만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잖아?”
고 관인이 느긋하게 이어서 말하고는 시종에게 다시 손짓했다.
“그러니까 괜히 가서 더 때리지는 말고, 그 정씨 놈의 한쪽 손만 박살 내버려라. 주 낭자의 체면이 있으니 손만 박살 내고 그대로 바깥에 내던지면 된다.”
“고 관인!”
드디어 상황 파악을 한 주 낭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녀는 시종의 뒤를 쫓아가려고 재빨리 몸을 돌렸지만, 다른 시종 두 명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고 관인, 안 됩니다! 그러지 마세요!”
두 시종을 제외한 다른 시종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사람 하나를 죽일 듯 살벌한 기세로 자리를 떴다. 그 모습을 본 주 낭자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두 시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안 돼요!”
시종들이 모두 나가자마자, 주 낭자의 눈앞에서 문이 쾅 하고 닫혔다. 주 낭자의 귓가에는 점점 더 멀어지는 시종들의 발걸음 소리만 들려왔다.
안 돼, 안 된다고!
포근하고 평온한 경성의 봄밤은 이리저리 치이면서 앞으로 내달리는 말 한 필 때문에 소란스러워졌다. 사환은 그의 뒤로 들려오는 욕지거리를 무시한 채, 앞만 보고 내달리며 말고삐를 꽉 쥐고 계속해서 말에 박차를 가했다.
어디로 가야 하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지?
정씨 저택으로 가야 하나?
– 빨리 가요, 빨리! 안 그러면 당신네 공자님은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어린 몸종이 외치는 소리가 사환의 귓가에 끊임없이 맴돌았다.
사환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지?
정씨 저택으로 갈까? 잠깐, 공자님께서 집을 나서기 직전에 정 이부인한테 그런 말을 했는데, 그쪽이 이 상황에 우리를 도와줄까? 아니야, 아니야. 정씨 저택으로 가면 안 돼.
큰 아씨께 가야 해. 큰 아씨께 도움을 청해야 해! 큰 아씨는 지금 주씨 저택에 묵고 계시니까, 그리로 가야겠다. 내가 길을 기억할 때까지, 반근 누나가 몇 번이고 길을 알려 주고 같이 가 준 덕분에 주씨 저택이 어디 있는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그때는 반근 누나가 왜 그렇게 사람을 귀찮게 하나 싶었는데, 누나한테 선견지명이 있었던 거야!
사환은 채찍을 세차게 휘두르며 이제야 막 장사를 시작한 야시장 점포 사이를 가로질러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