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642
교랑의경 642화
시녀는 등불 두 개를 끄고, 탁자 앞에 앉아 책을 읽는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아씨, 차를 더 드릴까요?”
“괜찮아.”
정교랑이 대꾸하고는 잠시 책을 내려놓고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향을 피워 봐.”
시녀가 흠칫 놀랐다.
“아씨께서 직접 만드신 그 향이요?”
반근의 물음에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근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향을 찾으러 동쪽 곁채로 걸어갔다.
“아씨께서 향도 만드셨어?”
시녀가 서둘러 반근의 뒤를 쫓아왔다.
동쪽 측방의 짐 상자들을 뒤적이던 반근이 기쁜 기색으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응. 사공자님께서 안 계시던 며칠간, 아씨께서 매일 조금씩 만드셨어.”
반근이 대답했다. 시녀는 점포 일들로 바빠서 자주 집에 없다 보니, 당연히 이런 사소한 일들을 알지 못했다. 시녀가 아쉬워하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거 엄청 좋은 향이죠?”
시녀가 불을 붙인 향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정교랑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씨께서 만드신 거니까 당연히 좋은 향이죠.”
시녀의 말에 정교랑이 웃었다.
“그건 맞아. 내가 잘 만들긴 하지. 너희도 이제 그만 가서 쉬어.”
정교랑이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시녀와 반근이 예를 표했다.
“아씨, 저희는 바로 바깥쪽에 있을게요.”
방 안이 조용해지자, 정교랑은 마지막 한 글자를 읽은 뒤 책을 내려놓았다. 밖에서 들려오던 시녀와 반근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고, 간간이 코 고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종일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던 반근과 시녀는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교랑이 몸을 돌리고 침상을 바라보았다. 사내 역시 침상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정교랑이 몸을 일으키고 침상 가까이 다가가, 그 위에 걸터앉고 젊은 사내의 그늘진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저기, 물 좀 마실래요?”
정교랑이 물었다. 진안 군왕이 긴 속눈썹을 살짝 떨며 천천히 눈을 떴다.
“나는······.”
진안 군왕이 정신을 못 차리는 듯, 눈을 게슴츠레 뜨며 정교랑을 바라보았다.
“당신이네요.”
진안 군왕은 짤막하게 한마디 내뱉고는, 지금이 어떻게 된 상황인지 빠르게 생각했다. 그가 베개에 머리를 댄 채 고개를 저었다.
정교랑은 고개를 끄덕인 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침상 옆의 등불을 껐다.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 방 안이었지만, 진안 군왕의 눈에는 또렷하게 보였다. 침상에 걸터앉은 여인이 자신의 옆에서 휘장을 내리고 얇은 이불을 덮으며 눕는 모습이.
가뜩이나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여름밤, 두 사람은 거의 팔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향기롭고 부드러운 여인의 내음이 진안 군왕의 코끝을 스쳤다.
진안 군왕이 두 눈을 뜬 채 천장을 쳐다보았다.
아까 저녁에 침상에 잠깐 앉았을 때, 천장에 향낭 같은 게 걸려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누가 치웠나? 침상 위에는 말린 과일이 뿌려져 있었는데, 누운 자리가 부드럽고 편한 걸 보니 그것도 같이 치웠나 보네. 휘장까지 내렸으니 더울 텐데, 방 안에 얼음 대야를 몇 개나 갖다 놨지? 그걸로 충분하려나?
진안 군왕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찰나, 여인의 손이 그의 몸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진안 군왕은 일순간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의 몸에서 손이 잠시 떨어지고,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다시 그의 몸에 손이 닿았다. 여인의 손은 진안 군왕의 몸에 닿았다가, 떨어지고, 닿았다가 또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진안 군왕이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이 느낌은······.
“자요.”
여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며, 동시에 진안 군왕의 몸에 닿아 있던 손이 거둬졌다. 진안 군왕은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듯했다.
그의 곁에 누워 있던 여인이 몸을 살짝 옆으로 틀어 밖을 보고 누웠다. 곧이어 여인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오자, 참다못한 진안 군왕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정교랑을 불렀다.
“정방.”
정교랑이 음, 하고 대꾸했다.
“난, 견디기 힘들어요.”
진안 군왕이 말했다. 진안 군왕을 등지고 누워있던 여인이 그의 쪽으로 몸을 돌리지 않고 담담하게 대꾸했다.
“이런 일에, 견디기 힘들지 않은 게 더 이상하죠.”
잠에 취한 반근의 귀에 방에서 어떤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애써 눈을 떠보려고 했지만, 잠이 쏟아져 도무지 눈이 떠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 생겼나?
어서 일어나, 어서 잠에서 깨야 해!
힘껏 눈을 떴지만, 눈앞엔 새카만 어둠뿐이었다. 반근이 깜짝 놀라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쉬었다. 만물이 조용해진 시간, 방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더없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반근은 조금 전에 자신이 들은 목소리를 다시 들으려고 재빨리 몸을 일으키고 앉았다.
꿈이 아니었어!
반근의 움직임 때문에 시녀도 잠에서 깼다. 시녀가 잠에 취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래?”
“안쪽에서······.”
반근이 안채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반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채에서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파요.”
반근과 시녀는 화들짝 놀라서 몸을 살짝 떨었다. 반근은 다급하게 맨발로 땅을 디뎠고, 시녀도 서둘러 몸을 일으켜 앉았다.
“말했잖아요. 이런 일은 힘든 게 당연하다고. 조금만 참아 봐요.”
작은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그 뒤로, 안채에서는 더 이상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낮은 신음만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시녀는 무언가 생각난 듯 몸이 굳어졌다.
설마······.
시녀는 반신반의한 얼굴로 추측하면서도, 서둘러 손을 뻗어 반근을 제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미 바닥에 발을 내리고 걸음을 옮기려던 반근은 갑작스럽게 자신을 붙잡는 시녀 때문에 몸이 휘청였다.
“언니?”
반근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시녀가 반근의 소매를 꼭 잡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별일 아니야. 정말 별일 아니니까, 어서 이리 와서 자자.”
반근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럼 저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저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아마, 신혼 초야라면 응당 있어야 할 움직임 때문이겠지.
시녀는 예전에 나이든 여종들과 모여 몰래 잡담을 나눌 때, 신혼 첫날밤에는 꼭 저런 소리가 난다고, 그리고 조금 아플 거라고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얼굴이 귀까지 빨개진 시녀가 반근의 귓가에 무슨 말을 속삭이자, 반근도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 그, 그럴 리가 없잖아.”
군왕 전하께서 여기 오신 건, 몸이 안 좋아서였잖아? 그,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을?
“우리는 직접 맞절하러 오실 줄도 몰랐었잖아.”
시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하긴, 오늘 예상치 못한 일이 참 많기는 했지. 그, 그래도 초야까지 치르실 줄은······.
“아씨께서 우리를 부르지 않으셨으니까, 우, 우리도 상관하지 말자.”
시녀가 조용히 말하고는 재빨리 자리에 누워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시녀의 모습을 보자 반근은 얼굴이 더욱 화끈거렸다. 반근은 무슨 일인지 들어보고 싶지만, 차마 그럴 엄두는 나지 않아 서둘러 시녀의 옆에 누워 눈을 꼭 감았다.
여름밤이 점점 더 깊어지면서, 방 안에서는 간간이 무슨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 같기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머릿속에 드는 온갖 생각을 떨치던 반근과 시녀가 잠들면서, 실내는 다시 고요해졌다.
어제, 시녀와 반근은 자신들이 언제 잠들었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밤새 꿈을 꾼 터라 버둥거리며 깨어났을 땐 다소 어리둥절했다. 눈에 들어오는 낯선 환경을 보며 반근은 정신을 차렸다.
“언니?”
반근이 몸을 일으키고 시녀를 깨우자, 잠에서 깬 시녀는 파랗게 물들기 시작하는 창밖을 보고 서둘러 침상에서 내려왔다. 그때,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씨?”
시녀가 문밖에서 정교랑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안에서 정교랑이 응, 하고 대꾸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시녀는 쉽사리 문을 열지 못하고 문 앞에서 머뭇거렸다. 반근이 팔꿈치로 시녀를 쿡 찌르고 나서야 시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교랑은 편한 일상복 차림으로 간단하게 머리를 올려 묶고 덧옷을 걸치고 있었다. 시녀와 반근이 반사적으로 침상을 쳐다보았다.
휘장이 아직 내려져 있는 것을 보아하니, 침상 위에 있는 사내는 아직 잠들어 있는 듯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침상 아래로 향하자, 반근과 시녀는 뜨거운 무언가에 덴 듯이 홱 하고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휘장 아래로 삐져나온 것은 다름 아닌 연두색 내의였다.
아씨께는 저런 색의 내의가 없는데, 그럼 저건······.
“부인, 일어나셨는지요?”
문밖에서 낯선 아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소리에 시녀와 반근은 깜짝 놀라 문가를 쳐다보았다.
아낙은 정교랑의 시중을 들라고 궁에서 보낸 시녀였다. 정교랑이 밤새 당직을 서며 시중드는 것을 거절한 탓에, 시녀들과 여종들은 모두 마당 옆의 곁채에서 편히 쉴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동이 틀 무렵인데도 벌써 마당에서는 발자국 소리와 비질 소리가 들려왔다.
정교랑이 벽에 걸린 활을 집어 들고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시녀와 반근은 당황한 기색으로 서둘러 정교랑을 따라나섰다.
반근이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시녀의 팔을 붙잡고 휘장 아래로 보이는 옷자락을 가리켰다. 시녀가 발을 구르고는 내의를 재빨리 끄집어내서 옆에 있던 옷걸이로 휙 던졌다. 그러고는 잰걸음으로 정교랑을 따라갔다.
문이 열리고, 정교랑이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본 내시와 궁녀들이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전하께서 깨어나셨으니, 들어가 보게.”
정교랑의 말에 내시가 몹시 기뻐하면서 방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정교랑은 내시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활을 든 채 내시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정교랑의 손에 들린 활을 본 궁녀와 시녀들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했다.
“부인, 무엇을 하시려는 건지요?”
내시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저희 아씨, 아니, 저희 부인께서는 아침마다 연무장에서 활쏘기 연습을 하세요.”
시녀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호칭으로 정교랑을 칭하며 내시에게 대답했다.
활쏘기 연습?
내시와 궁녀들이 일제히 놀란 눈으로 정교랑을 바라보았다.
궁술이 몹시 뛰어나고, 팔 힘과 악력이 센 여인이란 말은 익히 들었어. 그 실력이 부단한 노력과 연습의 결과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신혼 첫날에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을 줄이야.
“예, 알겠습니다. 여봐라.”
내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녀 한 명을 불러와 정교랑에게 연무장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도록 지시했다.
“전에 여기 계시던 경왕 전하께서 워낙 뛰노는 것을 좋아하시다 보니, 본디 연못이었던 곳을 흙으로 메꾸고 넓은 연무장으로 만들라는 군왕 전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정교랑이 미소를 지었다.
“아, 거기구나. 알겠네.”
내시가 멈칫했다.
하긴, 전하께서 정 낭자를 데리고 왕부 곳곳을 돌아다니셨던 적이 있었지. 연무장 옆에 있던 꽃밭도 정 낭자가 제안한 음양도로 바꿨었고.
시녀도 정교랑을 따라 연무장에 가고 싶었지만, 반근이 한발 빠르게 말했다.
“언니는 여기 남아서, 부인께서 돌아오시는 대로 씻으시게 준비해 줘.”
반근이 속사포로 말하고는 도망치듯이 자리를 떠났다.
발을 구르며 반근의 뒤를 쫓아가려던 시녀는 결국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내시와 궁녀들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반근 낭자, 저희는 부인의 입맛을 잘 모르는데, 아침 식사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내시가 무언가 생각난 얼굴로 말하자, 시녀가 기뻐하면서 얼른 대답했다.
“내가 알아요. 내가 가 볼게요.”
시녀의 말에, 내시가 얼른 다른 이를 시켜 시녀를 부엌으로 안내하도록 했다. 시녀는 다른 궁녀에게 따뜻한 목욕물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한 후 부엌으로 떠났고, 내시 등은 그제야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뒤늦게 도착한 이 태의가 내시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전하?”
내시가 조심스럽게 휘장을 들어 올렸다. 아침 햇살이 침상을 비추자, 누워 있던 진안 군왕이 실눈을 뜨고 내시를 쳐다보았다. 내시가 장난스럽게 눈썹을 꿈틀대며 말했다.
“전하께서 간밤에 숙면을 취하셨는······. 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