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04
교랑의경 704화
그때 어디선가 바람을 가르는 화살 소리가 들려오면서, 성문을 힘껏 밀던 진안 군왕의 시종 두 명이 바닥에 쓰러졌다. 총 여덟 명이었던 진안 군왕 일행이 눈 깜짝할 사이에 여섯 명으로 줄었다. 주복까지 합하면 지금은 총 일곱 명의 사람들이 성문 앞에 서 있었다.
문틈 사이를 들여다보니, 족히 열 대는 넘는 쇠뇌가 바닥에 설치된 것이 보였다. 지금 억지로 성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죽음을 자초하는 꼴이 될 터였다.
“전하, 잠시 뒤로 물러나 계시지요.”
경 공공이 진안 군왕의 앞을 막으며 조용히 말했다. 이때, 누군가가 성문 앞으로 다가가더니 두 시종이 열어낸 문틈 사이에 멈춰 섰다.
그는 거대한 바위처럼 성문 안팎의 시야를 차단하고, 허리를 곧추세우며 힘껏 활시위를 당겨서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조준했다.
“주복, 물러나라.”
진호가 말했다. 주복 또한 진호를 쳐다보면서 똑같이 말했다.
“진호, 물러나라.”
두 사람은 누구 하나 비켜서지 않고, 활시위를 당기며 서로를 조준하고 있었다. 진호의 등 뒤에서 말에 박차를 가하는 소리와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더는 기다릴 수 없습니다.”
옆에 있던 수하가 고개를 돌려서 상황을 살피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진안 군왕 일행을 성문 밖으로 몰아내지 않는다면, 뒤쪽에서 오는 사람들이 성문 앞을 아수라장으로 만들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되면, 성문이 뚫리는 건 한순간이리라.
“주복! 물러나라고!”
진호가 목청을 높였다. 주복 또한 뒤지지 않는 목소리로 외쳤다.
“진호! 네가 물러나라!”
짧은 숨을 뱉는 찰나, 두 개의 활시위가 동시에 떨렸다. 서늘한 빛을 내뿜는 화살 두 개가 서로를 향해 날아갔다.
“내 다리 두 개가 네 다리 하나만 못할까!”
거리에서 먼저 부딪혀 놓고, 죽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소년이 얼굴을 붉히면서 소리쳤다.
“활쏘기를 겨뤄서 지는 사람이 손자 노릇 하기다!”
공주부 진씨 가문의 절름발이는 어릴 때부터 경성에서 유명한 존재였다. 그래서 진호는 경성에서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소년은 진호가 공주부 진씨의 절름발이라는 것을 정말 모르는지, 씩씩대면서 죽어도 사과하지 않겠다고 우기고 있었다.
진호가 흥미롭다는 듯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좋아. 어디 한 번 겨뤄 보지. 괜히 나랑 친해지려고 일부러 져주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진호가 지팡이를 짚으면서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는 자신의 옆에 서서 승부욕이 불타는 얼굴로 힘껏 활시위를 당기는 소년을 웃으며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바람을 가르는 매서운 화살이 진호의 귀를 스치고 그의 두모에 꽂혔다. 화살의 힘이 어찌나 셌는지, 진호는 고개는 물론이고 몸까지 뒤로 밀릴 뻔했다.
똑바로 서야 해!
나는 예전에 지팡이를 짚고 있던 그 절름발이가 아니야. 이제 혼자서도 똑바로 설 수 있다고.
진호가 몸을 살짝 휘청이고는 재빨리 중심을 잡고 서서 주복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거대한 바위 같던 사내가 뒤로 쓰러졌다.
쓰러졌어?
바위가 땅에 떨어지는 듯한 쿵 소리가 들리고, 땅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쓰러졌어?
저 자식이, 쓰러졌다고?
쓰러졌어?
성문 앞을 막아서는 거대한 바위 같던 그 사내가 쓰러졌어?
진호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시공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주복이 쓰러지던 찰나, 진호 주위에 서 있던 위병들은 그런 진호를 뒤로하고 성문을 닫기 위해 우르르 몰려갔다.
진안 군왕 일행은 쓰러진 주복을 재빨리 성문 밖으로 끌어내고, 바닥에 있던 시종 두 명의 시체를 성문 틈 사이로 끼워 넣었다. 진안 군왕의 시종 두 명이 틈 사이로 활을 들고 연이어 화살 몇 발을 쏘아내자, 성문을 향해 달려오던 위병들이 주춤하면서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공자님.”
진호는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제자리에 서 있었다. 수하가 진안 군왕 일행이 쏘아내는 화살을 피하고자 진호를 뒤로 끌어냈다. 수하가 너무 세게 당기는 바람에 진호는 뒤로 넘어지다시피 몸을 휘청였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진호의 귓가에 주위의 시끄러운 소리가 서서히 들려왔다.
“공자님, 저들이 이쪽으로 치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공자님, 부윤 대인의 지원군이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수하들의 외침과 말소리는 진호의 귓가를 스치기만 할 뿐이었다. 그의 시선은 줄곧 성문을 향해 있었다.
진안 군왕 일행은 이때다 싶어서 성문을 활짝 열지 않고, 두 시종의 시체를 성문 사이에 낀 채 두 사람이 겨우 설 정도로 좁게 열린 틈 사이로 번갈아 가면서 쉼 없이 화살을 쏘아댔다.
진호의 위병들이 쉽사리 성문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던 차에, 성 안쪽에서 달려온 진안 군왕의 지원군이 성문 앞에 도착해 진호의 사람들과 대치 상황을 이루었다.
“가자.”
진안 군왕이 말했다.
사람들이 주복을 끌어다 진안 군왕의 말 위에 태우고, 화살이 꽂힌 곳을 피해서 두봉 두 개로 주복을 진안 군왕의 앞에 단단히 묶었다.
“전하, 성 밖의 지원군이 도착한 뒤에 가심은 어떠신지요?”
고 선생이 물었다.
지금 성문 안쪽에 일부 지원군이 도착하긴 했지만, 사방에 깔린 경성의 순성갑기에 비하면 그 수는 현저히 적었다. 이대로 전진했다가는 다시 오지 못할 길을 가는 꼴이 될 게 분명했다.
“더는 기다리고 싶지 않네.”
진안 군왕이 말했다.
“그럼 주 공자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시지요.”
고 선생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어차피 지금의 내 몸으로는 활을 쏠 수도, 무거운 검을 들 수도 없다. 그러니 괜히 다른 사람의 멀쩡한 손을 낭비할 거 없이, 내가 주복을 보호하도록 하지.”
진안 군왕이 이미 말 위에 올라탄 경 공공을 쳐다보고는 말했다.
“가자.”
경 공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칼을 뽑아 들고 앞장서서 성문을 향해 달려갔다.
성문 틈 사이에서 화살을 쏘던 두 시위가 재빨리 자리를 비키자, 경 공공이 먼저 성문을 뚫고 들어갔다. 두 시위는 눈 깜빡할 사이에 말 위로 몸을 날리고 진안 군왕의 양옆에서 그를 호위하며 성안으로 돌진했다.
성문 앞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성문 뒤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선두로 달리는 사람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며 앞쪽에 있던 병사들의 목을 베자, 주위에 있던 위병들은 깜짝 놀라서 혼비백산했다.
“공자님!”
시종이 진호의 어깨를 세게 잡고 그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병사들의 피가 그대로 묻어 있는 칼날이 진호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성문을 뚫고 들어온 진안 군왕 일행은 금세 성문 안쪽의 지원군과 합류하여 더욱 맹렬한 기세로 위병들의 포위를 뚫고 거리 위를 달려나갔다.
“저들이 성문을 뚫고 지나갔습니다!”
진호의 귓가에 수하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 자식이 지나갔어.
진호가 손에 쥐고 있던 활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진안 군왕의 앞에 묶인 채로 자신의 눈앞을 지나가는 주복을 쳐다보았다.
그 자식이 지나갔어. 너무 빨리 지나가기도 했고, 사람들이 내 앞을 가려서 자세히 보질 못했어.
그 자식, 그 자식은 어떻게 된 거지?
주복!
“공자님?”
수하가 잠깐 고개를 돌리는 사이, 진호는 말 위로 몸을 날리고 진안 군왕 일행을 뒤쫓아 갔다.
“어서, 어서 공자님을 쫓아가라!”
수하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시종들에게 소리쳤다.
“저쪽이다!”
성문 앞의 소란에 비해 황궁 안은 조용했다. 이따금 어딘가에서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와 외침이 들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일렁이는 횃불이 궁전 주위를 환하게 밝혔고, 칼과 창, 그리고 활을 손에 든 금위군들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디 있다는 거야?”
“조금 전에 분명히 보았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서로를 쳐다보던 병사들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귀신도 아니고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 그것도 궁에 몇 번 온 적도 없는 여인이 수년간 황궁을 호위한 금위군의 수색을 피해 가다니.
자객들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서 황궁에는 큰 나무나 바위 같은 것들을 일절 두지 않는데, 그 여인은 도대체 어디로 숨은 거야?
정말 이상하네.
“다시 샅샅이 찾아보아라! 날개가 달리지 않는 한,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앞에 서 있던 금위군이 소리쳤다.
깊은 황궁 안의 하늘색은 경성의 다른 곳보다 더욱 어두워 보였다. 이때 그림자 하나가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다가, 재빨리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정교랑이 걸음을 멈추고 손가락 끝을 맞대며 무언가를 계산했다. 그러다 고개를 들고 별빛이 희미해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이 곧 밝아질 시간이었다.
세상은 하나의 풍수진(風水陣)과 다름없다. 산과 강은 저마다 향하는 곳이 있고, 사람들은 저마다 정해진 자신의 위치가 있다. 더욱이 황궁은 풍수가 모여 대성의 기운이 넘치는 곳이다. 풍수에는 눈이 있고, 눈이 있기에 물이 끊이지 않는 원천을 찾을 수 있다.
정교랑이 손가락을 움직인 다음, 고개를 들고 속으로 이 생각을 읊는 데는 아주 찰나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정교랑은 곧바로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려 소리 없이 뛰어갔다.
정교랑이 떠난 자리에 곧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횃불이 밝혀졌다.
“여기에도 없다니!”
“다시 찾아라! 다시!”
황궁 밖, 말을 타고 달려온 금군 병사들이 황궁 벽을 따라 차례로 멈춰 섰다. 금군 병사들은 황궁의 사방을 모두 포위하고 무기를 들어 경계 태세를 갖췄다.
선덕문 앞에서는 수하의 보고를 받은 경조 부윤이 몸을 돌려 조정 대신들이 모여 있는 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 대인.”
부윤이 외쳤다. 대신들 사이에 있던 진 시강이 고개를 돌려 부윤을 쳐다보았다.
“황성을 포위했습니다.”
부윤이 말하고는 다른 대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부윤의 지위는 진 시강보다 낮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진 시강에게 가장 먼저 상황을 보고하는 것을 보고, 주위에 있던 대신들은 부윤과 진 시강이 어떠한 관계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과거 고능준 쪽에 서 있던 부윤은 지금 진 시강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진 시강이 무슨 말로 부윤을 설득했는지 모르겠군.
경성의 방위는 두 곳에서 담당하고 있다. 한 곳은 황성사고, 다른 한 곳은 경조부였다. 이 두 곳은 본디 고능준이 장악하고 있던 터라, 고능준은 경성에서 겁 없이 마음껏 활개를 칠 수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지금은 경조부의 부윤이 진 시강 쪽으로 붙게 되어 오늘의 상황이 더 위험해지지는 않은 터였다.
조정 대신들이 큰마음 먹고 오밤중에 달려 나온 것도 그래서였다.
“진 대인께서 미리 방비하신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몇몇 대신들이 말했다. 진 시강이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이런 일은 다행이라 할 게 못 되지요.”
부윤도 서둘러 진 시강을 따라 탄식했다. 과거 고능준의 사람이었다는 낙인이 찍혀있기 때문에, 그는 대신들이 자기를 치켜세워주는 상황이 아직 부담스럽기만 했다.
“결국엔 역적놈들의 바람대로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태자 전하께서는······.”
부윤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부윤의 말을 들은 주위 대신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황후마마.”
진 시강이 황후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황후는 체면을 내던진 채 바닥을 자리 삼아 앉아 있었다. 황후의 예복은 불에 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정갈하게 올려 묶었던 머리카락도 흐트러져 있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황후의 궁녀도 심한 부상 때문에 황후의 예복과 머리를 손질해 줄 겨를이 없었다.
장순 등이 황후에게 관저로 가서 쉬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황후는 관저로 가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