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05
교랑의경 705화
“태후마마와 폐하께서 아직 역적놈들의 손에 잡혀 있는데, 본궁이 어찌 쉴 수가 있단 말이오?”
진 시강이 다가오자, 인장을 손에 꼭 쥐고 있던 황후가 그를 쳐다보았다.
“마마, 태자 전하는 어떠신지요?”
진 시강의 물음에 황후가 비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고씨와 진씨가 태후마마의 침궁을 밤낮으로 지키고 있어서, 본궁도 자세히 알지는 못하오. 다만, 가장 마지막으로 전해 온 소식에 의하면 태자가 칠규(七竅: 사람의 얼굴에 있는 일곱 구멍)에서 피를 쏟았다고 하더군.”
칠규에서 피를 쏟다니! 그럼 지금쯤이면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을 텐데.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대신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이 야밤에 괜히 목숨을 거는 무모한 짓을 한 게 아니니까.
태자께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고능준과 진소에게 무슨 죄를 씌워야 할지도 막막했을 테니.
“이런 빌어먹을 놈들. 어찌 우리의 군주를 해칠 수가 있단 말인가!”
한 대신이 가슴팍을 세게 치면서 발을 구르더니 씩씩대면서 성문을 향해 걸어갔다.
“신이 이 궁문을 부수고 들어가야겠습니다!”
그 대신이 보란 듯이 연기를 펼치자, 주위의 다른 대신들이 서둘러 제지하며 진정하라고 다독였다.
“황성은 이미 포위됐으니, 곧 성문을 치고 들어갈 거요. 고정하시오.”
어수선한 궁 문 앞에서 갑자기 어디선가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요? 태자 형님께서 해를 입으셨다고요?”
맑고 명랑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 온 사람 중에 어린아이도 있었나?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던 사이, 진 시강은 벌써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진 시강의 걸음이 멈춘 곳에는 언제 왔는지 모를 마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누군가가 어린아이의 손을 붙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연평(延平) 군왕,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진 시강이 예를 표하면서 공손하게 물었다.
연평 군왕!
자리에 있던 대신들이 크게 놀라며 마차에서 내린 사람을 쳐다보았다.
역대 황제들이 황실의 종친을 경계한 탓에, 친왕이나 군왕은 경성에 자주 들어오지 못했다. 그래서 대신들은 연평 군왕을 한참을 빤히 바라보다가, 뒤늦게 그가 황제와 연배가 비슷한 연평 군왕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대인.”
서둘러 진 시강의 옆으로 다가간 부윤이 그와 대신들에게 설명했다.
“연평 군왕과 장태(長泰) 국공야께서는 어젯밤에 경성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런데 너무 늦은 시간이다 보니, 경성에 왔다는 소식을 전하러 입궐하지는 못하셨지요. 그래서 일단은 역참에서 밤을 보내신 뒤, 날이 밝는 대로 입궐하려 하셨습니다.”
태자의 국혼이 곧 거행될 예정인지라, 조정과 황실은 외지에 있는 종친들을 초청하고 경성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다.
한데 연평 군왕께서 당도하신 시간이 너무 딱 들어맞지 않나? 게다가 아들까지 데리고 오시고.
“거리가 워낙 시끄럽기에, 본왕이 걱정스러워 와 보았소.”
연평 군왕이 대신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궁문 앞의 횃불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만약 주복이 연평 군왕의 지금 모습을 보았더라면, 분명히 그를 알아봤을 것이다. 화려한 색의 비단옷을 입고 옥관을 쓴 중년의 사내에게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존귀한 종친의 기품이 느껴졌다. 하지만 주복이 성문 앞에서 검문할 때만 해도, 연평 군왕은 초라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수염도 제대로 다듬지도 않은 채 누추한 옷을 입은 마부로 변장한 터였다.
“거리가 시끄러웠다고요?”
부윤이 연평 군왕의 말에 대꾸하면서 죄스러운 표정으로 예를 표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이 경성 방위의 경계를 강화했으니, 역적놈들이 거리에서 활개를 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순찰을 돌고 있는 제 병사들이 군왕 전하를 신경 쓰시게 했나 봅니다.”
연평 군왕과 부윤의 막힘없는 질문과 대답을 들은 대신들은 마음속으로 지금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연평 군왕이 경성에 들어온 건 진 시강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경성의 방위가 안정되었고, 성문을 막았으니 다른 종친이 경성 안으로 들어올 리는 만무했다. 이제 남은 일은, 황궁 안에 남은 고능준과 진소를 상대하는 것이었다.
조금 전에 성문 위에서 쏘아진 불꽃놀이 두 개는 누군가가 진씨 가문에 보내는 신호였겠지. 고명한 고능준이 진소마저 그의 편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보아하니 이제 모든 게 순식간에 뒤바뀌겠군.
태자는 죽고, 황후는 야밤에 황궁에서 도망쳐 나와 고능준과 진소가 역모를 꾀하여 황제의 유일한 혈통을 시해했다고 증언했다. 태자가 죽은 마당에 황제는 여전히 병석에 누워 있다. 군주의 자리는 단 하루라 해도 비워 둘 수 없는 법, 서둘러 제위를 이어받을 사람에 대해 논해야 했다.
이번엔 다른 선택지가 없어. 종친을 양자로 입적하는 수밖에는. 어쩐지 공주부 진씨 가문에서 장순을 앞세워 황후마마를 맞이한다 했네.
일이 이렇게 된다면 황후는 장순에게 목숨을 빚진 것이 되니, 분명 장순의 말을 따를 것이다. 장순은 본디 양자 입적을 주장해 왔고, 이 자리에 있는 대신 중 대다수도 당초 장순을 따라 양자 입적을 주장한 자들이었다.
놀란 백성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빠른 시일 내로 조정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장차 제위에 오르게 될 군주의 마음속에 탄탄히 자리 잡기 위해, 모든 종친이 경성에 도착한 뒤에 그들을 한 명씩 후보로 거론하기보다는 지금 이 자리에서 황궁의 변고에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연평 군왕의 아들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리라. 오늘 밤의 인연이 군주와 신하 간의 끈끈한 연대를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누굴 양자로 입적시킬지는 이미 정해진 일이었군.
궁 안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 후의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상할 수 있겠어.
이게 바로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참새를 보지 못하고 눈앞의 매미를 잡는 사마귀의 최후구나. 고능준은 피땀을 흘리면서 지금의 모든 것을 계획했겠지만, 그가 했던 치밀한 계획들은 모두 역적이 반란을 도모한 증거가 되어버렸고, 공주부 진씨 가문이 모든 걸 얻게 되었어.
아니지. 진씨 가문이 모든 걸 얻게 되었다기보다는, 이 자리에 있는 대신들 모두에게 공로가 있는 셈이야. 얻을 게 없으면 일찍 일어나지 않는 법이고, 부귀영화는 위험 속으로 몸을 던져야 얻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각자 원하는 것을 얻게 될 테지.
연평 군왕과 부윤의 짧은 대화가 끝나자, 각자 마음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연평 군왕이 아들의 손을 잡고 황후에게 다가갔다.
“마마.”
연평 군왕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황후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어리지만 영리한 국공야도 서둘러 군왕을 따라 바닥에 꿇어앉아 눈물을 보였다.
“마마께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황후가 몸을 일으키고 복잡한 표정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저들이 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뜻인데. 지금 이 순간, 종친이 하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 이 일을 치밀하게 계획한 자라면 다른 사람이 나타날 기회를 원천차단했을 거야.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사람의 예상을 벗어날 때가 있지.
그 여인이 왔는데, 과연 진안 군왕이 멀리 있을까? 진안 군왕은 이대로 성문 밖에 막힌 채 들어오지 못할까?
궁 앞이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황후에게 향했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건 황후의 한마디였다. 지극히 평범한 말 한마디면 충분할 텐데, 어찌 된 일인지 황후는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 듯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연평 군왕은 어색하게 허리를 굽힌 채로 가만히 있었다.
“군왕 전하, 마마께서 조금 전에 많이 놀라셔서······.”
부윤이 정적을 깨고 재빨리 나서서 상황을 수습했다.
누가 나서서 수습해줬으니 됐어. 마마께서 조금 전에 많이 놀라셨긴 했을 테니.
연평 군왕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 또 한 번 예를 표하려고 허리를 숙였다. 바로 그때, 멀리서 말굽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들려오던 말굽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궁문 앞에 있던 사람들은 바닥의 진동과 함께 천군만마가 달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서 어가 위를 내다보자, 연평 군왕도 허리를 펴고 서서 고개를 돌렸다.
횃불을 밝힌 채 달려오는 사람들은 갑옷으로 무장한 차림이었다.
“위수군이오!”
누군가가 외쳤다. 부윤과 진 시강의 안색이 급변했다.
어떻게 위수군까지 움직인 거지?
어떻게 경성 밖에 있던 위수군까지 움직이게 할 수 있냐고!
위수군의 대열이 천천히 양쪽으로 갈라지자, 그 사이에서 말을 탄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이 말을 탄 이를 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진안 군왕께서 위험에 처한 군주를 구하러 오셨소!”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대신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잰걸음으로 나서며 진안 군왕의 앞으로 가서 예를 표했다.
또 장순이잖아?
아, 잘못 짚었군. 공주부 진씨 가문에서 장순까지 설득하지는 못했어. 다들 양자 입적을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입적을 염두에 둔 종친은 저마다 다 달라.
진씨 가문과 장순은 같은 파벌이 아닌데, 오늘 밤에만 잠시 협력한 건가? 아니면, 잠시 서로를 이용한 건가?
하여튼 이제는 고능준과 진소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지만, 각자 다시 새로운 줄에 서야 할 때야.
정말 어지러워 죽겠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어느 쪽에 줄을 서야 하느냔 말이다.
대신들이 머뭇거리던 사이, 황후가 진안 군왕을 향해 달려왔다.
“진안, 어서 구해 다오!”
황후가 울먹이면서 소리쳤다. 머뭇거리던 대신들 몇 명이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황후를 따라 소리쳤다.
“진안 군왕 전하, 어서 구해 주시옵소서!”
궁 문 앞에서 간간이 대신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아직 몇몇 대신들은 주저하기도,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태자를 구한다고? 이 새벽에 위수군을 이끌고 경성을 쳐들어온 것만 해도 충분히 딴마음을 품었다는 의심을 살 만해. 한없이 다정하고 진심 어린 걱정을 하는 연평 군왕이 진안 군왕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더욱 적합할 텐데.
진안 군왕은 여전히 주복을 앞에 묶어 두고 있었다. 주복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진안 군왕은 자리에 있던 그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거대한 선덕문을 쳐다보았다.
“태후마마와 황제 폐하, 그리고 태자 전하께서 간신에게 해를 입으셨다 하여, 본왕이 구해 드리고자 달려왔습니다.”
진안 군왕이 천천히 말하고는 손을 들었다 내리는 손짓을 했다.
“공성(攻城)하라.”
공성?
이게, 무슨 뜻이야?
놀란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안 군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뒤를 따라온 위수군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무언가 커다란 것을 앞으로 끌고 나왔다. 사람들이 그게 무엇인지 제대로 보기도 전에, 쾅 소리가 나며 불길이 일었다. 고막이 찢어질 듯한 굉음이 들려왔고, 발에서는 땅의 진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거대한 선덕문에 새카만 연기가 타오르고 불길이 번졌다.
세상에나!
자리에 있던 대신들은 다리가 후들거려서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저렇게 사나운 기세라니! 무슨 말이라도 한마디 더 하지 않고?
굉음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 또 한 번 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안 군왕 전하, 어서 구해 주시옵소서! 진안 군왕 전하, 어서 구해 주시옵소서!”
사람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누군가를 따라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진 시강은 귓가가 웅웅 울렸지만, 몸을 살짝 휘청이고는 중심을 잡고 올곧게 서서 진안 군왕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진안 군왕을 바라보던 진 시강의 안색이 차츰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십삼은 어디 있지?”
진 시강이 입술을 달싹이면서 물었다.
십삼은? 우리 십삼은 어떻게 되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