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06
교랑의경 706화
쾅쾅 울리는 굉음은 경성을 진동케 했고, 황궁 안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는 조금 전 성문에서 터진 폭죽보다 훨씬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금위군 병사들은 새파랗게 질린 채 다리를 후들거렸고, 궁녀와 내시들은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이게 뭐지?”
갑작스러운 굉음에 놀란 사람들이 소리쳤다.
회랑 아래 서 있던 고능준은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 없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앞을 내다보았다.
“이게 바로 군감에서 새로 만들어 낸 돌포탄이라지요. 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몇 번을 제작하고 폐기하고를 반복하다가, 끝내 열 대를 만들어서 서북으로 보냈답니다.”
고능준이 말했다.
“이 돌포탄의 위력을 처음 맛보게 되는 게, 황궁에서일 줄이야. 그것도 그대와 내가.”
진소가 고능준의 말을 이었다. 고능준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참으로 영광스럽지 않습니까? 장순이 사람들을 이끌고 와 황궁을 포위하고, 연평 군왕이 아들을 데리고 야밤에 상경하여 황후를 위로하고, 위수군이 돌포탄으로 황궁을 공격하다니.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황당한 일을 우리가 겪게 되었군요. 분명 역사서에 굵직한 한 획을 그을 겁니다.”
진소가 힘없이 웃었다. 횃불들은 여전히 밝게 황궁을 비추고 있었지만, 불안한 기운이 황궁의 하늘을 엄습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먹을 갈아 준 역적 간신 꼴이 되었군.”
진소의 말에, 고능준이 또 한 번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역사서에 어떻게 남을지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지요.”
고능준이 웃음을 거두고 간악한 얼굴로 이를 부득 갈았다.
“누가 누구를 위해 먹을 갈았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진소가 실소를 터트렸다.
“고 대인, 대세는 기울어진 것 같소만.”
“아직이외다.”
고능준이 고개를 돌리고 진소를 쳐다보았다. 그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입니다. 끝까지 가 보기 전까진, 아직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능준이 앞을 가리키면서 목청을 높였다.
“황후라고 해서, 헛소리를 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황후가 평소 태후마마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태자 전하를 음해했다고 황후가 주장하면, 우리가 음해한 게 됩니까? 황후가 태자를 음해하고 도망친 거면요?
세 치 혀가 있는데 누군들 말을 못 한답니까?”
고능준이 다시 진소를 쳐다보았다. 진소는 잠시 넋이 나간 얼굴로 고능준을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고 대인.”
진소가 고능준을 향해 공수의 예를 표하고 한숨을 쉬었다.
“늘 고 대인을 무시해 왔는데, 지금 보아하니 내가 단단히 틀린 것 같소. 나는 정말로 고 대인보다 못한 사람이오”
고능준이 진소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비꼬고 계신다는 거 잘 압니다. 그러면 뭐 어떻습니까? 체면이요? 남의 시선에 연연하며 체면만 쥐고 살다가는, 결국 자신의 체면도 지키지 못하게 될 겁니다. 자신의 체면을 남의 손에 맡기는 꼴이니까요.”
진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오.”
암, 맞는 말이고말고.
“그 점에선 내가 고 대인을 도무지 따라갈 수 없지. 그러니 나머지 일은 고 대인에게 맡기겠소.”
진소가 피곤한 기색으로 몸을 돌려서 전각 안으로 향했다.
“나는 태자 전하와 함께 있겠소. 고 대인은 태후마마를 모시고 나오시구려. 궁문이 뚫렸으니, 괜히 저항하지는 마시오. 기어코 황궁을 피로 물들여야 직성이 풀리겠소?”
진소의 말을 들은 고능준은 힘없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냉소를 지었다.
“황궁을 피로 물들이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무기를 손에 쥐고 천자가 계신 곳에 쳐들어온 저놈들이지요. 오늘은, 그 누구의 손도 깨끗하지 못할 겁니다.”
맞소. 그 누구도 깨끗할 수 없지. 다 더럽혀졌어. 모두가 다.
진소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전각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금 전의 돌포탄 소리에 놀란 내시와 궁녀들이 모조리 밖으로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바깥에서 누가 쳐들어왔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였다. 태자의 시중을 들던 자들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삽시간에 태자는 홀로 남겨졌다.
침상 위에는, 새 옷을 입은 태자가 깨끗한 얼굴로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아직 발그레한 볼 때문에 태자는 곤히 잠든 어린아이 같았다.
그 여인은 태자를 치료한 게 아니라, 태자를 위해 상례(喪禮)를 치른 거였어. 태자의 얼굴과 몸을 닦고, 일곱 구멍을 닫은 뒤, 향을 피워 영혼을 기렸군.
진소는 침상 옆에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세 번 했다. 그러고는 다시 몸을 일으켜 황제의 침궁이 있는 곳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신은 무능하옵니다.”
진소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문밖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던 내시가 재빨리 몸을 돌리고 자리를 떴다.
“안에서 울고 계셨습니다.”
어린 내시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하자, 고능준은 같잖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강직하다는 문신들은 꼭 저렇게 콩알만 한 배짱을 가지고 있지 뭡니까.”
“그자를 상관할 때가 아니야. 이제 어떡하면 좋겠나?”
태후가 울면서 말했다.
“마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능준이 말했다.
바깥에 있는 놈들이 청군측(淸君側: 군주의 측근에 있는 간신을 숙청한다)이라는 명목을 들이대면서 궁문을 부쉈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울다 만 태후가 눈을 부릅뜨고 고능준을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고 대인의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돌포탄 소리 두 번 울리고 나자, 선덕문 앞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도우후의 힘찬 호령과 함께, 선덕문을 향해 돌진한 위수군이 부서진 성문을 활짝 열었다.
자리에 있던 대신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횃불과 불길에 둘러싸인 황궁을 쳐다보았다.
문이 열리는 순간, 모든 게 결정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 것이었다.
현장에서 격변을 목도한 대신들은 앞으로 역사서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바로 오늘에 달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깊이 심호흡을 한 뒤, 옷매무시를 정리했다. 대신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황후를 에워싸고 황궁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말에서 한 번도 내려오지 않은 진안 군왕이 대신들과 황후를 지나쳐 황궁 안으로 달려갔다.
진안 군왕이 먼저 움직이자, 그의 뒤에 있던 위수군들이 말에 박차를 가하며 진안 군왕의 뒤를 따랐다. 무기를 든 무장과 병사들이 자신들을 제치고 먼저 황궁 안으로 달려가자, 조정 대신들은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이러면 안 좋을 텐데.
“황후마마!”
장순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고는 엄숙한 표정으로 황후에게 다가갔다.
“황궁 안에 있는 역적들을 조심하십시오! 군왕 전하께 먼저 현장 정리를 맡기시지요!”
장순이 외쳤다.
또 저놈이 한발 빨랐네.
“황후마마를 보호하라!”
“황후마마, 천천히 가시옵소서!”
궁문 앞에서 대신들의 외침이 일사불란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궁 안으로 몰려 들어간 탓에, 궁문 앞에는 어느새 몇 사람밖에 안 남아 있었다. 진 시강, 부윤, 그리고 연평 군왕 부자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이들이 갑옷으로 무장한 위수군의 앞에 서 있는 모습은 더없이 괴이해 보였다.
다행히도 위수군은 진 시강, 부윤, 그리고 연평 군왕 부자를 체포하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부윤이 천천히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었다.
그럼, 우리가 체포될 이유는 없지!
경성의 방위를 담당하는 경조부 부윤으로서, 시기적절하게 궁문 앞으로 달려와 황후를 보호했을 뿐이고, 진안 군왕도 왔는데 다른 군왕이라고 못 올 이유는 없었다.
“이곳을 단단히 지키거라!”
부윤이 주위에 있던 자신의 포졸들을 향해 호통쳤다. 포졸들이 서둘러 알겠다고 대답했다.
“대인, 군왕, 우리도 서둘러 들어가야 합니다.”
부윤의 말에 연평 군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평 군왕이 표정을 가다듬더니 아들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때, 갑자기 진 시강이 몸을 돌리고 궁문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부윤이 잽싸게 진 시강의 소매를 붙잡았다.
“진 대인,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부윤이 새하얘진 얼굴로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이렇게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경우가 어딨어? 지금 여기서 달아나 버리면, 도둑이 제 발 저려서 도망친 꼴이 되잖아!
퉤, 퉤! 아니야. 제 발 저릴 게 뭐 있다고!
감히 누가 우리에게 도둑 같다고 할 수 있겠어? 양자 입적을 할 종친이, 꼭 진안 군왕이어야만 해? 아직 무엇 하나 제대로 정해진 것도 없는데, 왜들 벌써부터 진안 군왕을 군주로 섬기는 거야?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도둑놈이지!
“십삼, 나는 십삼을 찾으러 가야겠소.”
진 시강이 부윤의 손을 힘껏 내치고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십삼?
진호는 연평 군왕 부자의 마중을 나가 경성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연평 군왕 부자만 안으로 들여보내 놓고, 진호는 성문 앞으로 지원군을 요청하는 전갈을 보내왔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자신이 직접 성문을 지키겠노라면서.
그리고 진호가 우려하던 그 무슨 일이 기어코 벌어졌다.
혹시, 성문을 지키고 있던 진호가 잘못됐나?
“대인, 대인,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 중요한 건 일단 궁으로 들어가서 이번 일에 대해 확실하게 결단을 내리는 일입니다. 이대로 자리를 비우시는 것은, 훗날 누군가에게 공격당할 칼자루를 남겨 두는 셈입니다. 십삼공자는 한 사람이지만, 진 대인께서 책임지고 계신 건 공주부 진씨 가문이지 않습니까. 대인께 진십삼 하나만 달린 게 아니란 말씀입니다!”
진씨 가문뿐이 아니라, 자칫하면 진씨 일족 전체가 멸문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돌아가는 낌새를 보아하니 진안 군왕이 황자로 양자 입적되고 곧 태자로 책봉된 후 제위에 오르는 것은 기정사실인 듯했다. 이런 때에 조심성 없이 행동했다가는 앞으로 진씨 가문의 나날은 결단코 순탄치 않으리라.
진 시강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부윤을 쳐다보았다. 밝은 횃불 아래, 진 시강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칼자루? 칼자루가 뭐가 중요하다고. 꼭 칼자루를 쥐고 있어야만 가문이 유지되는 건 아니오. 이 일을 감행할 배짱이 우리 진씨 가문에 있었으니,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배짱도 있어야겠지.”
진 시강이 말을 마친 뒤, 다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문을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나중 일은 나중의 일이고,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다.
부윤이 경악하여 눈을 휘둥그레 떴지만, 그의 눈빛에는 이내 안도감이 스쳤다.
거 잘됐군. 이왕 이렇게 된 거, 모든 잘못을 진씨 가문이 떠안으면 되겠어.
“황후마마를 보필하라!”
부윤이 소리치며 궁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궁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위수군이 돌포탄에 놀라 혼비백산하는 금위군을 상대하는 모습은 흡사 양 떼 안으로 뛰어든 호랑이와도 같았다.
금위군 중 저항하는 자는 즉살하고, 머리를 감싸 안은 채 투항하겠다는 자들은 옆으로 줄을 세웠다. 사방으로 도망치는 금위군은 모두 위수군에게 쫓기고 있었다.
홍수처럼 밀려든 위수군이 금세 황궁의 곳곳을 장악하고, 양쪽으로 갈라져 진안 군왕에게 길을 터주었다.
“정방!”
말에 박차를 가하면서 뛰어오던 진안 군왕이 소리치자, 벅차오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의 뒤를 바짝 따르던 고 선생은 깜짝 놀랐다.
궁 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고 선생은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난생처음으로 황궁에 발을 들인 게 감격스러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고 선생은 오늘 황궁 안으로 디딘 첫 발걸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그의 뒤를 따라서 궁으로 들어오고 있는 대신들도 오늘 밤이 어떤 날인지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도 오늘 같은 날을 상상하고 꿈꿔 오긴 했지만, 감히 그런 생각을 내비칠 수도, 발설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바로 오늘, 드디어 그날이 온 것이다.
고 선생은 머리가 어질해졌지만, 살아평생 오늘만큼 정신이 맑은 적은 없다고 느꼈다.
지금 이 순간, 한 걸음도 놓쳐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이 앞으로의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야.
고 선생이 그런 생각을 하며 힘껏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숨을 내뱉으려던 찰나였다.
진안 군왕이 정교랑의 이름을 외쳤다.
정방? 정방이 누구지?
정이라면······. 아, 왕비를 찾는 건가?
아니, 지금은 ‘황제 폐하, 태후마마, 태자 전하, 신이 구해 드리고자 달려왔습니다’와 같은 말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왕비를 찾아? 여기가 신방이야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