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but the strongest in the dimension RAW novel - Chapter 54
게을러서 차원최강 054화
054 라크몬 영지(1)
점심 무렵에 소식이 들려왔다.
적 본대가 개편 중이라는 소식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회의에 참석했다.
“각하, 적 본대가 개편 중이며 그 규모는 20만이라고 합니다!”
“20만이라. 그게 끝은 아니겠지?”
“추가 병력을 끌어모으고 있는 중이랍니다.”
아젠타 남작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수십만 대군이 남하를 준비하고 있다!
적 선봉대를 전멸시켰지만, 일부는 살아서 돌아갔으며 패잔병들까지 수습하면 상당한 전력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았다.
제국에서도 본대가 올 것이지만 전쟁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들의 목표는 가능하면 빨리 전쟁을 종결시키는 것이다. 언제쯤 그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흠, 책사들의 의견은?”
“적들의 의표를 찌를 수 있는 땅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송곳처럼 말인가?”
“그렇습니다.”
“어디가 적당할까?”
클로얀 남작이 손을 들었다.
나는 그에게 발언권을 허락했다.
“말해 봐.”
“라크몬 영지가 어떨까 합니다.”
“그곳에 제국의 전력을 집중시키자고?”
“라크몬 영지는 넓은 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여 입구와 출구는 좁습니다. 라크몬 산맥이 천혜의 지형을 형성하고 있거든요.”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더욱 넘기 힘들겠지.”
“그래서 그곳을 점찍은 겁니다. 라크몬 영지를 무시하고 진격하면 적들을 배후에 두고 신경을 써야 합니다. 보급도 어려워질 것입니다. 게다가 라크몬 영지는 적들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1차 관문에 해당합니다.”
“쯧, 피해가 클 것 같은데.”
“그에 따른 황실의 전교가 있었습니다.”
“황실에서 연락이 왔나?”
“승전보를 전했더니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라크몬 영지에 대한 점령을 명하였습니다.”
“하아.”
한숨이 새어 나왔다.
딱 봐도 공략하기 어려운 곳이다.
지금까지야 불패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였지만, 완벽하게 준비를 갖추고 있는 요새를 뚫기란 쉽지가 않았다.
“주둔 병력은?”
“3만입니다.”
“장난하나? 거길 어떻게 뚫으라고?”
아군의 병력은 5만이다.
천군이 있다고 하지만 적들도 반인반마의 전사들이 있었다.
선봉대가 궤멸되었다고 해도 마도 연합에서는 일단 반인반마의 전사들만이라도 충원하여 라크몬 요새에 배치할 확률이 높았다.
그런 곳을 뚫어 내라니?
“어렵다는 것은 황실이나 교황청에서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각하께서는 꾸준히 기적을 일구어 오셨기에…….”
“내가 무슨 기적 제조기도 아니고.”
“폐하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젠장, 바로 장거리 통신을 준비해. 내가 폐하와 담판을 짓겠다.”
“예!”
교황은 문제가 아니었다.
놈은 내 노예 비슷한 지위였기에 그냥 명령만 내리면 들어 먹겠지만 황제는 달랐다.
기회가 있을 때 정체를 밝히고 지근지근 밟아 주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한이다.
통신실에 도착해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드디어 황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오, 발렌 자작! 이번에 승전보는 잘 받았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적들의 선봉대를 궤멸시킨 일로 제국이 들썩거리고 있다네.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다며 자네의 이름을 칭송하고 있지.
“제 이름값이 올라가는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라크몬 영지를 점령해 달라는 명령을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자네는 불패의 명장일세. 반드시 점령할 수 있을 게야.
“하지만…….”
-이번에 라크몬 영지를 점령하면 자네에게 특수 부대 사령관에 임명할 예정이야. 일명 돌격 대장의 직위지. 백작 위도 함께 추진될 걸세.
“허어, 그렇게 빨리 승작해도 됩니까?”
-그게 제국의 뜻일세.
황제는 나를 빠르게 키울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 인선에 교황도 개입을 한 걸까.
신성 기사단과 교황군을 내가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교황 역시 개입하지 않았나 싶다.
‘교황, 두고 보자.’
인상이 써졌지만 거부할 수는 없었다.
제국의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이 수행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군인이었다.
애초에 제국군에 입대를 한 것 자체가 문제였다.
“어떻게든 점령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명력이 모자라서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시도해 보고 안 되면 별수 없는 일이지. 그때에는 본대와 합류하여 영지를 공략하도록 하게.
“본대는 언제 옵니까?”
-지금 준비 중에 있어. 한 달 정도면 도착할 게야.
“알겠습니다.”
통신을 종료했다.
한숨이 나오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회의장으로 돌아오자 지휘관들이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진군한다.”
“역시나!”
“반드시 점령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럴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
“문제가 있습니까?”
“어.”
“문제가 무엇입니까? 저희들이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너희들은 해결하지 못해. 정말 심각한 사안이거든.”
“그러니까 도대체 어떤 문제인지……?”
“내가 심하게 귀찮아.”
“…….”
그들은 입을 뻐끔거렸다.
귀찮다는데 어쩔 텐가?
“그런데 폐하께서 명령하셨으니 가긴 가야겠지.”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말했다.
지휘관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내가 움직이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만, 황제가 명령을 하니 당연히 따르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나는 황제의 명령을 무시할 만큼 미치지 않았다.
황제를 잘근잘근 다져 주기 전까지는 그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진군해. 하면 되잖아?”
“사령관께서 진군을 허락하셨다! 당장 움직여라!”
“예!”
명령이 떨어지자 곧바로 지휘관들이 움직였다.
잘못하면 내가 카렌 영지에서 눌러앉아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신속하게 군대를 움직이고자 했던 것이다.
그날 저녁.
북쪽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날이 추워졌는데 슬슬 얼음까지 얼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는 편안한 마차 안에서 나가지 않았다.
실비아가 신성력으로 공기를 데워 주고 있었으니 밖에 나가 봤자 고생밖에 하지 않는다.
실비아는 오늘도 내 시중을 들고 있었는데 하루 종일 똥이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렸다.
“똥 마려?”
“그건 아니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뭔데?”
“이번에 여신께서 부탁하신 일 있잖아요.”
“차원의 틈을 막는 거?”
“그게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해서요.”
“흠, 하기는 해야지.”
“그러니까 언제 정도에…….”
“일단 라크몬 영지를 점령하고 나서 생각한다. 그래야 뭐가 되도 될 것 아니냐?”
“그럼 영지만 점령하고 곧바로 올라가는 건가요?”
“아마도?”
나도 확신할 수는 없다.
이미 지금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악마 놈들과 싸우는 것은 익숙하기도 했지만 진절머리가 나는 일이다. 그리 간단하게만 여길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번에 얼마나 많은 심력이 낭비될지 알 수 없었다.
게으름을 지향하는 나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원의 틈을 봉쇄해야 한다는 여신의 말에는 부정을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차원의 틈이 벌어지고 귀족 급의 악마나 마왕이 마계에서 직접 강신한다고 하면 싸움이 어렵게 돌아갈 테니까.
“그럼 다음에 여신님과 접촉하면 그렇게 말씀드릴게요. 라크몬 영지만 점령하고 바로 간다고요.”
퍼억!
“꺄악!”
실비아가 마차 한구석에 처박혔다.
시원하게 발길질을 했더니 좀 나은 것 같다.
“곧바로는 아니고 나도 좀 쉬어야 할 것 아니냐? 거기가 어디라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겠어?”
“죄, 죄송해요.”
근처에 앉아 있던 앤드류는 측은한 얼굴로 실비아를 바라봤다.
동네북처럼 실비아가 맞는 경우가 많아 놈에게서도 측은지심이라는 것이 발동했던 것이다.
“네가 대신 맞을래?”
“아닙니다!”
앤드류는 우렁차게 대답했다.
언뜻 실비아의 얼굴에서 배신감이라는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일주일 후, 우리들은 드디어 라크몬 영지가 보이는 곳까지 도착했다.
적들의 본대가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쉬지 않고 달려온 결과였다.
휘이이잉!
밖으로 나와 지형을 살폈지만, 빌어먹게도 추운 날씨다.
“이거 너무 춥잖아.”
“산맥에는 만년설이 얼어 있습니다. 산맥 위는 한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다고 합니다.”
클로얀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는 가볍게 놈의 머리통을 쳐 주었다.
퍼억!
“크윽! 왜……?”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누굴 바보로 아나…….”
“죄송합니다.”
“흠, 보자. 정말 천혜의 지형이네. 지도가 틀리지 않았어. 요즘에도 지도가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어지나?”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산맥이 높아 봐야 얼마나 높겠냐 싶었는데 거의 에베레스트를 보는 느낌이었다. 한겨울에 이곳을 넘는다는 건 자살 행위다.
산맥이 낮았다면 도전을 해 보겠지만 이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높이임이 틀림없었다.
“이거 골치 아픈데.”
“전략은 어떻게 할까요?”
“우리들에게는 전략이 있잖아?”
“서, 설마!?”
“닥돌한다.”
“아아!”
책사들이 놀람을 드러냈다.
입구도 좁은 협곡에 성채가 지어져 있었다. 어지간한 투석 공격으로는 성벽을 무너뜨릴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이런 곳을 적들이 틀어막고 있었으니 제국에서도 더 어쩌지 못하고 번번이 원정에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닥돌을 한다면?
당연히 병사들이 상하고 전멸을 면치 못한다.
“아, 물론 한 가지 대책은 있지.”
“후우! 그럴 줄 알았습니다.”
책사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리 아군이 강력해도 여길 치려면 최소한 10만 이상의 병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 반밖에 되지 않는 병력으로는 넘기 힘들다.
클로얀이 물었다.
“한 가지 대책이라는 건…….”
“땅굴을 판다.”
“예? 하지만 땅굴을 파서 넘어가려면 부담이 있지 않을까요?”
“멍청한 놈. 누가 땅굴을 파서 침투한데?”
“그렇다면?”
“땅굴을 파서 적들의 성벽을 무너뜨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