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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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
터벅, 터벅.
쿠구구구구구······.
앞으로 걸어가 돔을 마계와 접촉시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접촉한 부분의 마계를 침식해 없애 버리는 것까지 가능해진다. 그로 인해 파편으로 얻은 세계의 힘도 줄어들고 있었지만, 이것이 세계가 내게 바란 세계의 힘의 올바른 활용법이리라.
문제는 세계와는 반대로 악마가 이 현상을 굉장히 꺼릴 것이라는 점이다. 그야 그렇지. 내가 침식하는 건 마계, 악마의 마기로 이뤄진 공간이다. 이 침식은 그 힘의 침식을 뜻하며, 악마의 회복과 성장을 방해하는 침식이기도 했다.
악마로서는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는 행위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두두두두두두.
악마가 거느린 권속의 군세가 나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악마가 직접 날아오진 않는 걸 보니 역시 날 두려워하는 것 같지만, 그건 악마에게 있어 옳은 판단이었다.
악마사냥꾼의 스킬 특성상, 악마 본체보다 스킬 효과를 무시하는 특성이 달린 권속이 상대하기 껄끄럽다. 다수를 상대하는 것 또한 단일 대상의 목표를 적으로 삼는 것보다 불리했고.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내게 기회이기도 했다. 나는 플레이어, 적의 죽음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존재. 저렇게 많은 권속을 모조리 살해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만큼 더 강해지겠지.
적들의 양이 좀 많긴 하지만, 이 세계의 힘 파편으로 만든 권역에서 나는 몇 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저것들의 죽음을 전부 먹어치우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집어삼켜주마!”
나는 곧장 내 무기들을 꺼내 들었다.
***
악마도 바보는 아닌 모양이었다. 나를 잡으러 보낸 권속들은 하나같이 나와 상성이 좋지 않은 스킬 무효화 속성을 지닌 것들이었으니까. 게다가 일전에 잡은 그 권속보다 훨씬 강했다. 그런 놈들을 잔뜩 보내왔다.
전력을 찔끔찔끔 보내는 것보다 단번에 몰아붙여 날 죽이거나 최소한 뒤로 물리기라도 하는
게 더 낫다고 여긴 탓이겠지.
그렇다 보니 내가 두세 배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고 내 적들은 힘이 반감되는 세계의 힘 권역 안이라 한들 악전고투를 피할 수는 없었다. 만약 내가 악마를 한 번 잡아 죽이기 전이었다면 죽어 있던 건 나였을 터였다.
그러나 나는 이미 한 번 악마를 죽였고, 그만큼의 경험치를 받았으며, 악마사냥꾼의 레벨을 올린 데다, 그 덕에 새로운 스킬을 얻었다.
– 숙련도 : A랭크
– 효과 : 악마에 대한 증오심을 소모하여 가시를 돋아낼 수 있다. [악마의 힘(Demonic Strength)] – 등급 : 매우 희귀(Super Rare)
– 숙련도 : B랭크
– 효과 : 악마에 대한 증오심을 소모하여 힘으로 바꾼다.
두 개의 스킬 모두 적당히 숙련도를 올려두긴 했지만 시간이 촉박해 C랭크가 고작이었으나, 상대하는 권속들이 모조리 강적들이었기에 이 자리에서 여기까지 숙련도를 올릴 수 있었다.
이번만큼은 적들이 강해 힘 조절을 할 여유가 없었으므로, 전부 적을 전력으로 상대해서 얻은 수련치이기도 했다.
증오심을 지속적으로 소모해야 하므로 [악마에 대한 증오심]을 전투 중에도 계속해서 사용해야 했고, 그 때문에 스킬의 소모 값으로 끈질긴 고통과 생명력 손실이 이어졌지만 감수해야 했다. 두 스킬 모두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푸학!
지면에서 솟아오른 내 키의 두 배 정도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가시. 이젠 이걸 가시라고 불러야 할지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이 가시는 내게 달려드는 적에 대해 강력한 저지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저지와 동시에 피해를 입히고 반격의 기회를 잡게 해주는 것 또한 좋다.
“끄어업!”
보라, 또 한 명의 적이 꿰뚫렸다. 이제는 적들도 가시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충분히 조심하고 있지만, 그래도 완전히 의외의 장소에서 튀어나오는 가시에 족족 걸려들고 있었다.
나는 가시에 꿰뚫린 놈을 향해 [바즈라다라의 바즈라]의 [항마의 칼날]를 휘둘렀다.
놈 또한 스킬이 통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었기에 실제론 큰 피해를 줄 순 없었지만, [악마의 힘] 스킬이 놈의 몸을 뒤덮고 있는 마기를 무시하고 놈의 목을 날릴 수 있는 힘을 부여해 주었다.
그랬다. [악마의 힘]의 설명문에 표기된 힘은 근력이 아니다. 사실은 마기였다.
악마사냥꾼이 마기를 다룰 수 있게 된다는 건 뭐, 별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심연을 들여다보는 자를 심연 또한 들여다보고 있다’는 니체의 말을 굳이 꺼낼 필요도 없다. 악마사냥꾼이 마를 사냥할수록 악마에 가까워지리란 건 클리셰에 가깝고, 그런 창작물이 잔뜩 있었다는 건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한 결과물일 테니까.
마기를 통한 방어는 더 진한 마기로 무시할 수 있었고, 나는 단 일순간만 [악마의 힘]을 사용하는 식으로 마기 차이를 극복하고 있었다.
투두둑.
놈의 머리가 땅을 뒹굴다가 마기덩어리로 화해 흩어졌다.
– 레벨 업!
“······드디어.”
나는 한숨처럼 그런 혼잣말을 토해냈다. 그래, 드디어. 나는 악마사냥꾼 20레벨에 도달했다.
[악마화(Demonization)] – 등급 : 매우 희귀(Super Rare)– 숙련도 : 연습 랭크
– 효과 : 악마를 죽이는 자, 악마가 된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예상대로의 스킬이 나왔다.
악마화를 사용하면 악마사냥꾼의 스킬들을 좀 더 강력하게 사용할 수 있고, 특히 악마의 힘인 마기를 그대로 공급받을 수 있다고 한다. 싸우면서 읽기엔 복잡한 내용이었지만, 이번에 목을 떨어뜨린 놈이 마지막 놈이었기에 나는 얼마간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는 건가.”
흐흣, 하는 웃음이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신성과 마기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결론이 난 상태다. 답은 그렇다, 이다. 악마의 힘이 마기인지라, 나는 이미 그 힘과 함께 신성을 끌어올려 베는 불꽃의 검과 동시에 사용해 본 상태였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악마화를 사용해 보는 건 뒤로 미뤘다. 악마화를 사용하면 지금보다 강해질 거야 확실하지만, 다른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악마화 스킬에 대해서는 주리 리가 사전에 경고를 한 바 있었다. 남용하면 진짜 악마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고 말이다. 뭐, 남용하면 그렇다는 소리다. 지금 내가 악마화를 써봐야 얼마나 쓰겠는가? 이건 진짜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바로 내가 이 스킬을 사용했을 때 이 세계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였다.
세계가 악마를 적대시하는 건 의심할 여지도 없는 진실이었다. 마계나 열고 다니며 세계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려는 놈들을 좋아할 이유가 더 적었다. 애초에 내가 세계에게서 받은 퀘스트가 마계를 없애라는 것이기도 했고.
그런데 내가 악마화를 하면 과연 이 세계가 좋아할까?
나는 지금 [세계의 힘 파편] 사용으로 세계의 힘을 빌려서 싸우고 있었고, 그 상태에서 간신히 악마의 권속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전황이 이 모양인데, 만약 악마화로 세계의 미움을 사 버림이라도 받으면 나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게 된다.
그러니 해보더라도 다음에 한다.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뭐, 혹시나 정말 안 될 것 같으면 써보든가 하겠지만 지금은 아직 그런 상황이 아니니까.
평소라면 직감에 따를 테지만 이 문제에서만큼은 아무런 직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야전 마법포병을 고를 때도 이랬지. 이런 건 내가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휴식은 이걸로 끝이로군.”
다음 웨이브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렇다, 웨이브. 저 악마의 권속들이 파도처럼 넘실대며 내게 몰려오고 있었다.
“징그러운 것들.”
하지만 잘 씹어 삼키는 데만 성공하면 영양만점의 경험치 덩어리들이다.
나는 입술 끝을 비틀어 올렸다.
“덤벼라!!”
잡아먹고 성장해 주마!
***
뤼펠은 옥좌에 앉아 벌벌벌 떨고 있었다.
“왜, 상황이 왜 이렇게 된 거지? 내가 뭘 잘못한 거야······?”
뤼펠이 이제까지 권속을 아슬아슬하게 뽑은 건 권속이 전부 자신의 마기로 이뤄진 존재기 때문이다. 마기는 악마의 힘이며 존재의 원천이다. 즉, 권속을 뽑을수록 뤼펠의 힘이 영구적으로 줄어든다.
그러니 효율적으로, 딱 필요한 만큼만 권속을 뽑으려 드는 건 당연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뤼펠은 지금은 그 판단을 후회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권속을 잔뜩 뽑아 저 증오스러운 악마사냥꾼을 진작 처리해 뒀더라면 이럴 일은 없었을 테니까.
“저, 저놈이 구세주가 되다니······. 저놈, 지구인 아니야? 지구인이 왜 이 세계의 구세주가 돼? 세계의 의지가 미쳐서 돌아버린 건가?”
뤼펠도 세계가 임명하는 대리인, 구세주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도 악마로서 꽤 오래 굴러다닌 몸이니 그 정도 소문은 들었다. 만약 다른 세계에 마계를 열 기회가 있다면 가장 주의해야 할 존재로, 세계의 힘을 다루어 오히려 마계를 침식해 악마군주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세계가 아무에게나 세계의 힘을 나눠주어 자신의 대리인으로 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최소 조건이 자신의 세계 출신에 충분히 강한 데다 튜토리얼을 마친 플레이어야 했다. 그렇다 보니 뤼펠이 아는 한 이 세계에 구세주가 출현할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뤼펠이 괜히 자신만만하게 마계를 열어젖힌 게 아니었다. 물론 열 땐 다소 충동적으로 연 거긴 하지만, 악마는 기본적으로 계산이 빠른 존재고 뤼펠은 악마 중에서도 머리가 좋은 편에 속했다.
뤼펠도 이 세계에 대한 정보는 대충 습득해 뒀고, 리스크가 거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마계를 열 수 있었던 거였다.
그런데 이 세계가 자기 세계 출신도 아닌 지구인에게 세계의 힘을 맡기고 구세주로 삼다니!
이런 상황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말 그대로 이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이런 변수를 계산에 넣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뤼펠이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대로, 세계가 미치지 않은 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랬다.
만약 세계의 의지가 미쳐서 돌아버렸다면 그 원인은 분명 뤼펠에게 있을 터였다. 먼저 이 세계에 마계를 열어 세계의 힘을 쪽쪽 빨아먹은 건 뤼펠 쪽이었으니까.
그러나 뤼펠은, 악마는 자학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반성도 하지 않는다.
“미친 세계! 구세주에게 배신당해 세계의 힘을 등쳐 먹히는 게 고작이겠지!! 멍청한! 그대로 멸망해 버려라!!”
뤼펠이 지금 품고 있는 감정은 이 세계에 대한 원망과 증오였다. 남 탓이야말로 가장 악마다운 짓이고, 뤼펠은 본성부터가 순수한 악마였다.
실컷 세계에 대한 욕설과 저주를 토해냈지만, 뤼펠의 마음은 조금도 시원해지지 않았다.
“크흐으윽······. 어쩌지, 이제 어쩌지?”
과거에 잘못된 판단을 했던 대가를 뤼펠은 지금 치르고 있었다.
만약 그 지구인을 처음부터 전력으로 몰아붙였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마계를 열지 않았더라면, 다른 악마군주들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사전에 계획한 대로 권속을 보내지 않고 직접 움직였더라면!
지금 와서 후회해 봤자 의미도 없는 일이다. 뤼펠은 그렇게 잘라내고 현재에 충실했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속을 마구잡이로 뽑아 전선에 밀어 넣고 있었다. 당연히 이는 말도 안 되게 비효율적인 짓이며, 그 자신의 힘을 근본에서부터 갉아먹는 행위였다.
그런데 뤼펠이 거의 한계에 가깝게 권속을 뽑아 보내고 있음에도, 악마사냥꾼의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악마사냥꾼은 태어나면서부터 구세주였던 것처럼 세계의 힘을 능숙하게 다뤄 마계를 갉아먹고 있었고, 뤼펠은 그 감각에 전율했다.
마치 벌레에게서 손가락부터 갉아 먹히고 있는데 온몸이 꽁꽁 묶여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는 것 같은 무력감이었다.
“이대로 가면 파멸뿐이야!!”
악마사냥꾼은 그의 손가락을 갉아먹는 걸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손을 갉아먹을 거고, 팔뚝을 모조리 파먹을 거고, 심장에까지 도달하고 말리라.
마계의 심장에 해당하는 부분은 이 악마성. 그리고 뤼펠 본신이다.
저 증오스러운 세계의 힘이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상상을 하고 만 뤼펠은 공포와 절망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 지금이라도 마계를 접고 도망가면······.”
그러면 악마사냥꾼이 자신에게 달려들어 목숨을 끊어놓고 말 테지! 이미 한 번 살해당한 적이 있어 봐서 잘 안다. 더욱이 세계의 힘을 다루게 된 악마사냥꾼은 더욱 강해져 있었고, 자신은 반대로 권속을 너무 많이 뽑아 심각하게 약해져 있었다.
게다가 뤼펠은 자신의 마계와 악마성이 없다면 살해당한 후에는 부활도 못 한다.
그럼 어떻게 되겠는가? 그 끝은 실로 명확했다.
“소, 소멸.”
무엇보다 두려운 단어에, 뤼펠은 부르르 떨었다.
“누, 누가 날 좀 살려줘. 이럴 운명이 아니었어. 나는 왕, 나는 군주, 나는 패왕이 될 운명이었단 말이다!!”
뤼펠은 미친 듯이 소리 질렀지만, 그 소릴 듣는 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