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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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켰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카자크는 곧장 행동을 취했다.
그 즉시 오두막에서 탈출하려던 카자크의 시도는 신속했으나 동시에 무의미했다. 올가미가 덧씌워지는 것 같은 감각이 그를 감쌌다. 그는 오두막의 더러운 바닥에 나뒹굴었다.
“크윽!”
그와 동시에 카자크가 스스로에게 걸어두었던 모습을 숨기는 스킬, 인식을 저해하는 스킬, 기척을 죽이는 스킬 모두가 벗겨졌다. 그 감각이란 말 그대로 알몸으로 발가벗겨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 카자크는 알몸 상태였기에 더욱 그랬다.
브뤼스만은 그 자리에 애벌레처럼 묶여 발버둥치는 카자크를 내려다 보며 미소 지었다.
“오, 카자크. 오랜만이로군. 이게 얼마만이지?”
그 말은 카자크에게 있어선 매우 의외의 말이었다.
“······나를 아나?”
“그렇게 되묻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자넨 날 처음 보는 걸 테니까. 직접 보는 건, 말일세.”
후후, 하고 브뤼스만은 정말 반가운 듯 웃었다.
‘이 인면독사가!’
카자크는 브뤼스만이 그 배 속에 독사를 몇 마리 기르고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그런데 자네, 이상한 걸 묻히고 다니는군.”
브뤼스만은 카자크의 옷을 털기라도 하듯 손으로 툭툭 털어주었다.
실제로는 카자크는 알몸이라 브뤼스만의 손길을 직접 받아야 했기에 아주 기분이 나빴다. 더욱이 브뤼스만의 체온은 아주 낮아, 마치 뱀의 체온을 연상시켰다. 이 남자가 인면독사라 불리는 건 단순히 그 행동이나 심성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
그러나 집중해야 할 것은 브뤼스만의 기분 더러운 손길이나 그 낮은 체온이 아니었다. 카자크는 자신에게 걸려 있던 기아스가 풀려 버린 것을 뒤늦게 자각했다.
브뤼스만은 무려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겸양하듯 말했다. 남자의 윙크였다.
“고마워할 필요는 없네.”
카자크는 실제로 감사의 마음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그보다도 그가 느낀 건 허전함, 허무함,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이었다.
소중한 것을 손으로 억지로 잡아 뜯겨진 것 같은,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마치 강제로 거세를 당한 것 같은, 그런 느낌.
그것은 물론 카자크에게 더할 나위 없는 쾌감을 가져다주던 ‘배신욕’이라는 욕구가 사라진 탓이었다.
“나, 나한테 무슨 짓을!”
정신을 차린 후, 카자크가 브뤼스만에게 느낀 감정은 바로 적개심과 증오였다. 거세당한 남자가 가해자에게 응당 느껴야 할 그런 감정 말이다.
카자크의 시선에서 그의 감정을 읽어낸 브뤼스만은 혀를 찼다.
“의외의 반응이로군. 기껏 걸려있는 기아스를 풀어줬더니만.”
“다시 돌려줘!”
카자크의 음성에는 간절함이 있었다. 그러나 브뤼스만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무릴세. 나한텐 기아스 같은 스킬은 없거든.”
브뤼스만의 눈동자가 독사처럼 빛났다.
“대신 그보다 더 좋은 게 있네만.”
***
“음?”
나는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기아스]가 풀렸군.”
누구의 어떤 기아스가 풀렸는지에 대한 답은 헷갈릴 여지없이 명확했다. 내가 기아스를 걸었던 적들 중 살아남은 것은 단 한 명뿐이었으니까.
카자크다. 카자크에게 걸어놨던 [배신해]라는 기아스가 풀린 게 틀림없었다.
카자크가 죽은 건 아니다. 그랬다면 경험치와 카르마 연산 메시지가 날아왔을 테니까.
살아남은 채 누군가에게 사로잡혀서 기아스를 해제당한 걸까?
뭐, 그다지 곤란한 일일 수는 없다. 지금의 내 전력은 카자크 따위는 멀리 추월한 지 오래니까. 카자크가 쥐고 있던 나에 대한 정보도 시간이 한참 지나 무의미한 것이 되었고, 카자크 하나의 영향력으로 교단의 나에 대한 태도가 바뀔 리도 없었다.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그거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루시피엘라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아, 미안해요. 루시피엘라.”
“그냥 루시라 불러주셔도 돼요.”
루시피엘라는 친근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이 타천사, 루시피엘라는 지금 나와 함께 악마 아르크 후작과 싸워주고 있었다. 전투 중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비교적 느긋한 분위기인 건 조금 전에 아르크를 한 번 죽였기 때문이다.
물론 악마 군주는 단번에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므로 아직 전투 상황은 이어지고 있는 채였다. 지금쯤 악마성에서 부활했을 텐데, 왜 안 튀어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이쪽에서 악마성에 쳐들어갈 필요는 없다. 나는 [세계의 힘 파편]을 하나 더 찢고 본격적으로 마계를 잠식하는 중이니까.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건 아르크 쪽이다.
아르크는 이미 악마 여왕을 배신했으니, 그를 위해 여왕이 원군을 보낼 줄 일도 없다. 여왕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오히려 아르크를 죽이기 위한 암살자를 보내는 게 더 자연스러운 반응일 거다.
그리고 나는 그 암살자가 바로 루시피엘라인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어째서 내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녀 덕에 아르크를 쉽게 무찌른 거나 다름없으니, 대놓고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도 좀 그랬다.
“그러고 보니 감사 인사가 늦었군요. 고맙습니다, 루시피엘라. 당신 덕에 아르크를 쓰러뜨릴 수 있었습니다.”
“그냥 루시라 불러주셔도 되는데······.”
루시피엘라는 입술을 삐죽였다. 그냥 루시라 부를 걸 그랬나. 아무리 그래도 초면부터 애칭을 부르는 건 좀 그랬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나는 상태창을 불러내 보았다. 포대지휘자 48레벨. 50레벨까지는 2레벨 남았지만, 만약 세계 퀘스트를 해결하면 레벨 업 쿠폰을 얻게 되니 더 이상 경험치로 올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여유 있을 때 미리 전직해 둘까. 아, 그러고 보니. 나는 음험한 속셈을 하나 품고, 루시피엘라 쪽을 돌아보며 그녀를 불렀다.
“루시피엘라.”
“루시라고 불러주세요.”
거참 끈질기네! 하지만 이쪽이 부탁을 하는 입장이다. 세게 나갈 수야 없지.
“저 혹시 타천사의 깃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나는 되도록 공손하게 그녀에게 부탁했다. 그러자 루시는 정말 멋진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루시라고 불러주시면요.”
큭! 어쩔 수 없지. 망설이던 나는 결국 마음을 정하고 입술을 열었다.
“······루시.”
“좋아요!”
루시피엘라는 매우 기뻐하며 자신의 깃털을 두두둑 뜯어서 내게 한 아름 안겨주었다.
“여기요.”
“고, 고마워요.”
이런 식으로 줄지는 몰랐기에 나는 좀 당황하고 말았다. 뭐, 다르게 어떻게 주겠냐만.
아무튼.
이로써 히든 직업 선멸자의 전직 퀘스트 2가 완료되었다.
[선멸자 전직 퀘스트 3] – 종류 : 해방– 난이도 : 불가능
– 임무 내용 : 마계를 하나 소멸시키십시오.
– 보상 : [선멸자]로의 전직, [소멸한 세계의 힘 파편] 10개.
오, 그래도 전직 연속 퀘스트가 3으로 끝나서 다행이다. 더군다나 퀘스트 내용이······, 딱 지금 내가 하려던 거잖아? 역시 나는 운이 좋군.
그뿐만이 아니다. 내가 얻은 건 하나 더 있다.
“그런데 루시피엘라는······.”
“루시.”
“······루시는 내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예요?”
“그야 제가 이진혁 님께 바라는 게 있기 때문이죠.”
꽤나 솔직한 대답이다.
“제가 가진 게 많진 않은데. 그게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내친 김에, 나는 다시 한번 직구로 승부해 보기로 했다.
“구원.”
내 직구에 대해, 루시피엘라는 아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구원? 내가 아는 그 구원이 맞나? 오래된 원한이라는 의미는 아닐 것 같은데.
“제가 이진혁 님께 바라는 것은 바로 구원이에요.”
루시피엘라가 날 돌아보았다. 그 시선에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전 이진혁 님께서 부디 절 구원해 주셨으면 해요.”
***
악마 여왕 비토리야나는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모르고 있었다.
아니, 대충이야 안다. 애초에 이 판을 짠 게 그녀니, 당연하게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야 파악하고 있다. 이진혁의 강제성장을 위해 아르크 후작을 먹잇감으로 던져준 것도 그녀고, 궁지에 몰리다 못한 아르크가 자신을 배반하고 마계를 여는 것도 계산에는 있었다.
문제는 그 뒤의 일이다. 비토리야나가 이진혁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틈을 타, 여왕의 대전에 억류되어 있던 타천사 루시피엘라가 도망쳐 하필이면 아르크의 마계에 숨어든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비토리야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유일한 상정 외의 사태이자 변수였다.
아무리 악마 여왕이라 하더라도 다른 악마의 마계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다. 마계 안에서는 마계 주인의 룰에 따라야 한다. 이미 아르크 후작은 여왕을 배반해 작위를 놓아버리고 독립 세력을 주창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아르크의 마계로 침략할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악마 후작의 마계에 침략하려면 악마 대공급은 불러와야 된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약한 악마라도 자기 소유의 마계에서는 두 배 정도의 힘을 내니, 같은 후작을 동원하는 걸로는 해결이 되질 않았다.
물론 그냥 후작 세 명을 동원하면 해결되는 문제긴 하지만, 단지 작은 변수 하나가 개입됐다고 그 정도로 큰 전력을 투입하는 것도 별로 좋은 생각 같지는 않았다. 언제 인면독사 브뤼스만이 태클을 걸어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악마 여왕으로서도 전력을 다 투입할 수는 없었다.
“하긴, 별로 큰 변수는 안 되지.”
타천사 루시피엘라에게는 큰 약점이 있다. 이제까지 그녀가 어디 묶여 있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얌전히 여왕의 대전에 억류되어 있었던 건 이유가 있다.
루시피엘라가 변수라곤 해도, 큰 변수는 되지 못한다. 모든 것은 여왕이 생각했던 대로 돌아갈 것이다.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다.
그저 기분이 좀 나쁠 뿐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은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게 하필이면 여왕에게 있어 먼지 같은 존재였던 루시피엘라로 인해 비롯되었다는 것.
여왕 비토리야나는 아름다운 미간을 찌푸린 채, 아르크의 마계를 노려볼 뿐이었다.
***
“저 여자는 또 뭐야?”
안젤라가 투덜거렸다. 그녀가 말하는 저 여자란 건 타천사 루시피엘라를 뜻한다.
안젤라는 의외로 이진혁 가까이에 있었다. 그냥 가까운 것도 아니고, 이진혁이 펼쳐놓고 있는 세계의 힘 권역 안에 있었다.
악마 군주가 펼친 마계 내부의 환경이 지독하다는 건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지독한 줄은 몰랐다. 체감해봐야 비로소 깨닫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안젤라는 어쩔 수 없이 일행들을 데리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이진혁을 따라다니며 그가 펼치고 있는 ‘세계의 힘 권역’ 안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푸하!”
그때, 누군가가 숨소리를 크게 냈다. 마치 깊은 물속에 자맥질을 했다 올라온 것 같은 숨소리였다.
“아, 깼구나? 키르드.”
그것은 키르드의 숨소리였다. 키르드는 머리를 마구 흔들며 질린 듯 말했다.
“어, 안제 누나. 어휴, 나 죽는 줄 알았어.”
그 말에 대한 대꾸는 안젤라가 아니라 키르드의 등 뒤에서 돌아왔다. 키득거리는 웃음 소리와 함께 말이다.
“아니, 실제로 죽었었어. 내가 되살려준 거지.”
테스카였다.
그러나 그런 테스카의 대답에는 아랑곳 않고, 키르드는 안젤라에게 물었다.
“어땠어?”
“흐흐흣, 선배 되게 화내던데.”
기대에 가득 찬 키르드의 표정을 박살 내줄 생각에 유쾌해진 안젤라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런 그녀의 대꾸에 키르드는 낭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 내가 로드께 도움을 드린 거 아니었어?”
“도움이야 됐지.”
안젤라는 놀리듯 말했다.
“그래도 네가 멋대로 한 짓이니까.”
키르드는 농담이란 걸 알면서도 받아들이기가 힘든지 침울하게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건 또 그런가······. 하지만 말씀드리고 했으면 막으셨을 테니까.”
“······그야 그렇겠지. 선배는 정이 많으니까.”
키르드를 조용히 주시하던 안젤라는 한숨처럼 그런 말을 토해냈다.
“오죽하면 우리한텐 후방에 숨어 있으라고 말했을까.”
안젤라는 씁쓸하니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