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275
마라 파피야스의 반응이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시간을 멈추는 타이밍, [천벌]과 [처형]을 넣는 타이밍. 이번에도 모두 완벽했다.
즉, 이건 내 실수가 아니다.
이변은 마라 파피야스 쪽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나는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 드디어.
마라 파피야스가 [극도 사망]에 저항해 낸 거다.
마음 같아선 [처형]을 즉시 다시 박아 넣어주고 싶지만 [즉결 처형 – 양]과 달리 [즉결 처형 – 음]은 재사용 대기 시간이 있다.
5초.
5초간 다른 방법으로 마라를 상대해야 한다.
나는 [폭군의 대역 – 음]으로 몰래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 마라 마피야스의 등 뒤로 보내뒀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즉시 한 번 더 [처형]을 꽂아줄 생각으로.
그리고 또 다른 나는 스위치를 양으로 돌려 모습을 드러내는 동시에 [폭군의 징수환급]을 활성화시켰다. 마라 파피야스가 무슨 공격을 하든 이걸로 받아내 되돌려줄 생각이었다.
“자, 덤벼라!”
그러나 상황은 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용서를······.”
마라 파피야스가 날 공격하지 않았다. 따라서 [징수]도 [환급]도 불가하다.
아니, 이게 아니라.
“뭐?”
방금 마라 파피야스가 뭐라고 말했지?
“부디 용서를! 항복하겠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제발 더 이상 죽이지 말아주세요!!”
어······, 그러니까 이건······.
마라 파피야스가 항복했다.
이건가?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마라 놈의 항복 선언을 듣고 나는 당혹해 외쳤다.
“항복이라니, 어째서!”
“그건······.”
좋아, 5초 지났다. 나는 마라의 등 뒤에 숨겨놓은 나로 [즉결 처형 – 음]을 꽂았다.
푸학.
[즉결 처형 – 음]의 [극도 사망]이 제대로 들어갔다. 마라 놈은 이렇다 할 반응조차 못 했다.“좋아, 다음!”
이번에는 그냥 죽어버렸지만, 다음 부활 때 마라는 좀 더 풍성한 반응을 보여주리라. 내가 항복을 받아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테니 말이다.
애초에 마라 놈의 항복은 거짓 항복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고 말이다.
비록 지배급 스킬을 만들어낼 때 [거짓 간파의 권능]은 갈아먹었지만, 그걸 원료로 한 스킬 옵션 [폭군의 추궁]은 남아 있었다. 거짓말을 간파하는 능력을 패시브로 부여해 주는 옵션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당황하는 척하며 시간을 끌어 [즉결 처형]의 쿨타임이 지나길 기다렸던 거였고, 쿨타임이 끝나자마자 등을 따준 거였다.
“어디서 밑장을 빼, 밑장을. 건방진 마라 놈이.”
나는 싱글싱글 웃었다.
그러나 내 미소는 곧 굳었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있는 모양이로군.”
마라 파피야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죽었을 터인.
“5초······, 정도인가.”
죽은 자는 말하지 못한다. 아니, 잘 찾아보면 스킬 중에 죽은 자를 말하게 만드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고, 마라 파피야스도 굳이 죽어서까지 말을 남길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마라 파피야스의 몸에서 분신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박피된 각질처럼.
“이번에는 맞아떨어졌군.”
방금 전 항복 선언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자신만만한 마라의 목소리에 배알이 꼴린다. 이 순간을 계속 기다려 왔을 터인데도, 막상 들으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스킬의 발동 타이밍과······, 분신의 박리 위치를 감 잡는 데 오래 걸렸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마라 파피야스는 날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만하게도 말이다.
“죽여야지.”
이제 안 봐준다. 봐준 적 없지만 아무튼 이제 안 봐줄 거다.
[세계를 혁명하는 힘]!나는 시간을 멈췄다.
“흥, 타이밍과 위치를 맞춰? 그럼 다른 곳에, 다른 타이밍에 박아주면 그만이지.”
나는 혁명력 1을 더 써서 1초 더 빨리 시간을 멈췄다. 멈춘 시간 속에서 모자란 재사용 대기 시간 1초를 채우고, 습관적으로 노렸던 위치인 뒷목 대신 정면의 목울대에 대고 [즉결 처형 -음]을 질러주었다.
“시간은 다시 움직인다.”
내가 혁명력을 거두자, 멈춰진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억!”
그리고 마라 파피야스는 죽었다. 타이밍과 위치를 감 잡았다던 선언도 무색하게, 별 변수 없이 놈의 몸에서 생명이 빠져나갔다. 경험치도 제대로 들어와, 시스템이 놈의 죽음을 인증해 주었다.
“그래도 난이도가 조금 올랐군.”
이제 [처형]을 두 방씩 박아줘야 하니 부활한 즉시 다시 죽여줄 수는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처럼 경험치를 공짜로 주워 먹는 건 안 되게 된 셈이다.
“혹시 모르니 다음엔 심장에 박아줘야겠어.”
불멸자인 마라 파피야스에게 있어 심장은 급소도 아니고 주요 장기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위 자체는 상징적이다. 사실 발가락에다 박아줘도 죽기야 죽을 테지만 [극도 사망]의 효과가 전신에 퍼지기까지 0.001초라도 더 시간이 걸릴 테니 심장으로 정했다.
“타이밍!”
나는 마라가 부활하자마자 곧장 [세계를 혁명하는 힘]을 발동했다. 그리고······.
“이번엔 심장이다!”
퍼억!
“끄어억!”
시간이 다시 움직이자마자 마라 파피야스는 비명을 질렀지만 단말마는 아니었다. 경험치도 들어오지 않았다. 예상대로다. 놈은 죽지 않았다. 한 번이지만 [극도 사망]을 저항해 냈다.
자, 5초다. 마라에게는 5초의 시간이 주어졌다.
물론 나는 혁명력을 대가로 이 5초를 4초로, 혹은 3초로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일단 반응을 지켜보기로 했다. 혁명력이 아깝기도 했지만, 죽기 직전 마라의 자신만만했던 목소리가 꺾인 걸 듣고 싶다.
“······후회하게 될 거다!”
그러나 마라는 내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목소리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고 의지가 살아나 있었다. 놈은 절망하길 멈췄다. 희망을 봤다.
“놈!”
그 희망의 근거가 뭔지는 몰라도, 시간을 멈춰놓고 관찰하면 될 일이다. 따라서 나는 즉시 시간을 멈췄다. 아직 2초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자, 이제 정지된 시간 속에서 [처형]의 쿨이 돌기만 기다리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
나는 크게 놀랐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라 파피야스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시간을 멈췄는데도!
손가락의 말단은 물론 동공, 머리카락까지도 시간 정지에 의해 얼어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세 그대로, 마치 컬링의 스톤이 미끄러져 나아가듯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놈!”
아직 [즉결 처형]의 재사용 대기 시간은 3초. 아니, 이제 2초 남았다. 그러나 마라가 도망치는 속도가 더 빠를 것 같았다.
나는 놈에게 접근하기 위해 [진홍 혜성]의 부스터를 켰으나 이상하게도 내가 놈에게 다가갈수록 놈이 내게서 멀어지는 속도는 더 빨라지기만 했다.
마치 자석의 같은 극을 접근시킨 것처럼!
“이럴 수가!”
처음 보는 현상이다. [세계를 혁명하는 힘]의 시간 정지를 무시하고 움직이는 스킬은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시점을 되감는다!”
나는 [퀵 로드]를 사용했다.
마라 파피야스가 합체하고 이제껏 보지 못한 높은 격을 보이자, 혹시 몰라서 [선험]을 미리 발동하고 놈을 죽일 때마다 간간히 [퀵 세이브]를 해둔 게 이럴 때 빛을 발한다.
“!!”
······고 생각했다.
내가 시점을 되감아 마라 파피야스가 일곱 번째 죽기 직전으로 점프했음에도 불구하고, 원래 자리에서 죽어 나자빠져 시체가 되어 있어야 할 마라는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시야를 돌려봤더니 마라는 아까보다도 더 멀리 날아가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선험]······, [퀵 로드]조차 무시한다고?!”
여유는 완전히 사라졌다. 체온을 조절할 필요가 없어진 몸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권능급 스킬조차 무시하는 세계정상급 스킬인 [세계를 혁명하는 힘]을 무시하고 움직일 수 있는 스킬. 본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시점을 미리 관측하는 개념인 [선험]조차 무시하고 인과를 뒤엎는 스킬.
그것이 지금 마라 파피야스가 발동하고 있는 스킬이다.
이럴 수 있는 스킬은······, 스킬의 정체는!
“지배급이다!”
***
마라 파피야스는 눈을 떴다.
“성공······, 한 건가?!”
죽지 않았다. 그리고 이진혁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마라가 죽지 않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더욱이 그의 주변에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별빛들.
마라의 시도가 실패했다는 근거는 없고, 스킬이 제대로 발동했다는 근거만이 남았다.
“사, 살았어······!”
이진혁 앞에서는 한껏 허세를 떨었지만, 이 시도가 성공할지 어떨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그렇기에 기쁨은 더욱 컸다.
“하하, 이 내가······. 마라 파피야스가 고작 살아남았다는 것에 희열을 느낄 줄이야.”
입으로는 자조의 말을 흘렸지만 그것이 마라의 가슴을 가득 채운 희열을 조금이라도 손상시키는 일은 없었다. 그야 그렇다. 살아남았으니까. 이제 죽지 않아도 되니까!
마라 파피야스는 수만의 분신과 하나가 되면서 각 분신이 각자 획득했던 스킬들을 한 몸에 몰아넣을 수 있었고, 하나의 존재로는 도저히 모을 수 없는 양의 스킬 포인트 또한 손에 넣었다.
본래대로라면 한계에 부딪혀 허공에 흩어져야 할 것들이었으나, 마라 파피야스라는 특수한 존재가 시스템에 오류를 일으켜 그 참사를 방지해 주었다.
수없이 많은 스킬들은 멋대로 합성, 융합, 초융합, 승화, 초월을 원했고 무수한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그 의지를 늘어놓았다. 마라 파피야스는 그저 동공을 움직여 그것을 승인하기만 하면 됐으나, 처음 합체한 상태의 마라는 그거 한 번 까딱 움직이는 것이 귀찮아 그냥 두었다.
그러나 이진혁에게 열 번을 죽으며 궁지에 몰린 마라 파피야스는 이 생전 처음 맞이하는 희대의 위기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필사적으로 궁구했고 그 시도 중 하나가 바로 스킬 초월이었다. 그마저도 [극도 사망]에 대한 내성을 얻고 난 후에나 이 정답에 이를 수 있었다.
마라 파피야스에게 주어진 시간은 4초와 한 번의 죽음, 그리고 부활한 후의 2초에 불과했으나, 초월적인 지각력과 인지능력을 지닌 마라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고작 6초 만에 마라 파피야스는 스킬을 초월시키고 초월시켜, 결국 기존에 가장 높은 등급이라 알려진 권능급의 스킬을 뛰어넘은 아예 새로운 등급의 스킬을 손에 넣게 되었다.
[세계를 집어삼키고 범람시키는 괴물] – 등급 : 지배(Rule)– 숙련도 : 초월 랭크
그리고 이 스킬이 마라 파피야스를 생존시켜 준 스킬이었다.
본래부터 갖고 있던 공간을 제어하는 고유 능력이 스킬 초월에 끼어들어, 완전히 상위호환인 데다 추가적인 기능까지 지닌 새로운 등급의 스킬로 탄생한 결과물이었다.
“이 스킬이 이진혁, 그놈의 시간 정지를 무시하고 날 우주 저 너머로 날려준 게 틀림없어.”
마라 파피야스는 이 스킬을 오로지 이진혁을 상대로 도망치는 것만을 생각하고 발동했고, 스킬은 마라의 의도에 적절한 스킬 효과로 작용해 그 목적을 이루어주었다.
그 스킬 효과란 바로 이진혁을 대상으로 한 절대적인 척력. 이 스킬 효과로 인해 마라 파피야스와 이진혁은 자석의 같은 극처럼 자동적으로 서로를 밀어내게 되었다.
제아무리 이진혁이라 한들, 제아무리 상식을 벗어난 효과의 시간 정지 스킬이라 한들 사실상 현존 최고 등급인 지배급 스킬의 효과를 이길 순 없다.
마라는 그렇게 추측했고 그 추측은 정답이었다.
지배급 스킬을 손에 넣었다지만 그것만으론 마라가 정지된 시간을 인지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마라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도 스킬 효과는 자동적으로 작용했고, 멈춘 시간 속에서 움직인다는 모순적인 일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이진혁을 죽일 수 없지.”
마라 파피야스의 지배급 스킬은 분명 강력하나 생존만을 보장할 뿐 공격 능력은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정확히는 공격할 방법이 존재하긴 하나 이 방법을 쓰기 위해서는 이진혁에게 접근해야 했고 마라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마라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새로운 지배급 스킬을 하나 더 손에 넣어야겠어.”
지배급 스킬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으니, 새 지배급 스킬을 얻는 것도 시간문제다. 마라는 이렇게 판단했다.
그러니 지금 있는 지배급 스킬은 방패로 쓰고, 새로운 지배급 스킬을 창으로 쓴다. 그것은 나름 합리적이었다.
“이번에는 계획적으로, 생각을 하면서 합성해 봐야지.”
이번 지배급 스킬은 6초 만에 만드느라 아무거나 되는 대로 집어넣은 감이 있었다. 남겨두고 싶던 스킬을 마구잡이로 넣는 통에 재료로 써 없애 버리기도 했고, 이래저래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러니 안전해진 김에 느긋하게 스킬 초월을 생각해 볼 셈이었다.
그런데 그때.
“!”
이변이 일어났다.
어떤 이변인지는 마라 파피야스도 잘 몰랐다. 그저 직감적으로 어떤 이변이 일어났다는 것만을 감지했을 뿐이었다. 뛸 필요도 없는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오한이 들고 손발 끝이 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기분 탓일 테지만 지금은 그 기분이라는 게 중요했다.
“······별의, 위치가!”
우주에서 방향을 잃는 건 흔한 일이다. 전후좌우뿐만 아니라 기존에 신경 쓰지 않던 상하의 개념도 추가해야 하고 방향을 파악할 만한 구조물도 없다. 우주에서 지표가 될 만한 것은 오직 별, 별들의 빛뿐이었다.
그 빛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와는 반대 방향으로!
“뭐!?”
그 사실을 깨달은 마라 파피야스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이유도 원인도 모르겠으나, 방금 전까지 이진혁에게서 멀어지고 있던 방향이 반대로 바뀌었다. 이것이 가리키는 바는 오직 한 가지뿐.
“이진혁이, 오고 있어!”
정확히는 그 반대지만, 마라 파피야스는 그조차도 헷갈릴 정도의 패닉에 휩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