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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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걱!
카자크의 공격은 아무런 전조 없이 행해졌다.
여전히 [간파]와 [후의 선]은 작동하지 않았다.
동체에서 목이 떨어져 나가는 감각은 처음이 아니더라도 끔찍했다.
내게 큰 살의를 품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 남은 목숨을 소진시켜 내 밑바닥을 관찰해 보겠다는 알량한 호기심 하나로 카자크는 또 내 목을 잘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리 단번에 죽지 않았다.
[삼위일신] – [제2의 분신]내 ‘본체’가 죽는 순간, 얼마 전에 새로 얻은 유니크 스킬의 두 번째 옵션이 발동하면서 나의 목숨을 연장시켜 주었으니까. [제1의 분신]을 활성화하지 않은 상태니, 이번엔 [제2의 분신]이 정상적으로 발동했다.
내가 죽으면 두 개의 분신이 나타나며, 분신 상태로 15초를 버티면 부활할 수 있는 옵션.
기습을 당하긴 했지만 이것도 계산 안에 있었다. 애초에 카자크의 참격은 내가 반응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으니 당연히 이런 상황을 예측했다.
자, 이대로 15초를 버티면 나는 되살아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적의 공격을 막을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15초는 ‘고작 15초’가 아니다. 그야말로 영원에 가까운 시간.
그러나 15초간 죽지 않고 버틸 방법이 내게 하나 있었다.
[진리대마공-개] – [진리활화]능력치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려주는 [진리활화], 그리고 [진리활화] 활성화 중에 즉사피해를 받으면 자동적으로 켜지는 [진리불사]. 이 두 옵션을 잘 활용한다면 15초를 연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직감을 이렇게까지 높였으면 카자크의 ‘굉장히 빠른 베기’를 간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가 생각해도 근거가 희박한 가능성에 걸어볼 수도 있을 터.
아직까지는 분신의 처지인 두 명의 나는 동시에 예정했던 대로 카자크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물론 서로 다른 방향으로.
하나라도 살면 된다!
“재미있는 능력이로군! 허나 소용없다!!”
써걱.
카자크가 왼쪽의 나를 베었다. 목을 단번에.
원래대로라면 즉사였으리라.
[진리불사]하지만 진리활화의 추가 옵션인 진리불사는 즉사를 무효화시킨다. 진리활화의 지속 시간은 30분, 진리불사는 그 절반이니 앞으로 15분간 나는 죽지 않는다.
진리불사를 깰 다른 방법이 카자크에게 없다면 말이지만.
그런데 과연 그런 방법이 카자크에게 없을까?
나도 즉사방지를 지닌 인퀴지터를 죽인 경험이 있다. 만약 진리불사의 불사 능력을 깰 수 있는 스킬이 있다면 나 또한 인퀴지터처럼 죽게 될 것이다.
“뭣?! 이 놈!!”
카자크의 당황한 반응이 내게 희망을 가져다준다. 당황을 하다니. 고작 좀 당황시킨 것 같고 통쾌한 기분이 드는 것도 웃기지만, 지금은 냉정해야 할 때였다.
이번 시도로 카자크에게 예지 능력이 있는 건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
만약 예지 능력을 지녔다면 내 [삼위일신]-[제2의 분신]이 지닌 특성에 대해 알아차렸을 거고, [진리불사]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내가 [진리활화]를 발동시키기 전에 날 무력화시켰을 테니까.
첫 죽음 직전에 삼위일신을 발동해 본 이유도 이것이었다.
가설의 증명.
내 스킬의 발동을 미리 막을 수 있을까? 내 스킬의 특성을 미리 알아챌 수 있을까?
카자크는 둘 다 불가능했다.
이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 두 번째 죽음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죽어줄 순 없지.
[섬전신속]나와 내 분신은 동시에 내 최속의 스킬을 발동해 서로 간의 거리를 벌렸다.
“어리석은! 우습다!!”
카자크는 벼락같이 외쳤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내 등 뒤를 카자크가 점했다.
‘어느’ 나의 등 뒤지? 라고 생각했지만, ‘두’ 나는 서로의 등 뒤에 각각 카자크가 나타났음을 생각과 동시에 인지했다.
아니, 이런 것도 가능하단 말이야?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난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 등 뒤를 잡는 스킬도 [후의 선]이 읽어내지 못했다. 시야에서 벗어나서 그런가 했지만, 내 두 분신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즉, 시야의 사각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자크의 움직임을 후의 선이 읽어내지 못했다는 건, 이 스킬 또한 엄청나게 빠르다는 소리다.
시간을 거슬러 오를 정도로.
[진리활화]와 직감 효율 100% 증가의 종족 특성으로 극대화된 내 직감으로조차도 간파하지 못할 정도로.“자, 죽어라. 한 번 더 말이다!”
등 뒤에서 카자크의 음성이 소름 끼치게 들렸다.
눈앞이 까맣게 물들었다.
모든 게 예상대로였다.
예상대로 막막했다.
***
여긴 또다시 카르마 마켓이었다.
즉, 난 또 죽었다.
카자크는 [진리불사]를 뚫고 날 죽일 스킬을 갖고 있었다. [간파]가 통하지 않아서 그 스킬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결과, 진리불사의 지속 시간인 15분을 못 버티고 난 죽어버렸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연속적으로 절 찾아오시게 되다니······. 강적에게 찍히신 모양이로군요.”
노인이 말했다.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1UP 코인] 2개를 써버렸다. 남은 건 하나. 반대로 말하자면 한 번 더 죽어줄 수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카자크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게 호의를 품었으니, 마지막 목숨만 남았을 때 날 살려줄 수도 있다.
아니, 이건 아니지.
‘살려줄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에 내 모든 걸 걸어선 안 된다.
걸어야 되는 건 칩도 아니고 목숨이다. 하나뿐인 목숨. 진짜 목숨 말이다. 상대의 호의에 기대서 살아날 생각을 해선 안 된다.
더욱이 상대는 이미 날 두 번이나 죽인 적이다. 이 상황을 타파할 생각을 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진리대마공-개]의 첫 옵션인 [진리마신-개]는 50%의 기본 능력치 상승을 가져다준다.[진리활화]로 이 보너스를 세 배로 올릴 수 있다.
즉, 이번에 죽기 직전까지 내 민첩과 직감은 평소의 2.5배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자크의 스킬에 대응하는 건 불가능했다.
능력치만 높아선 안 된다는 소리다. ‘엄청나게 빠른 베기’라는 추측에 직감을 극도로 높여 대응해보려는 내 해법은 통하지 않았다.
게다가 [섬전신속]도 무의미했다. 이건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카자크가 ‘두 명의 나’를 동시에 제압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말 그대로 내가 그동안 믿고 의지하던 주력 스킬들이 다 막힌 거나 다름없다.
카자크의 스킬 특성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됐지만 이건 별로 큰 소득이 아니었다. 돌파구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젠장!”
어차피 버린 목숨이라고 생각하고 막 질러봤는데, 상황은 더 절망적이 됐다. 게다가 이번에는 손에 쥔 패를 꽤 많이 써버렸다.
죽어서 부활한다고 스킬 쿨 타임이 초기화되는 것도 아니니, [진리불사]로 버티는 방법도 막혔고 이제 [제2의 분신]으로 생명 연장의 꿈을 이룩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이제 어쩌지?
나는 고뇌에 침잠했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노인이 문득 내게 말을 걸었다.
“만전의 술을 가져다 드릴까요?”
“부탁합니다.”
술이라도 마시지 않곤 못 배기겠다!
“후욱, 후······.”
나는 술로 인해 뜨거워진 입김을 내뱉었다. 한껏 취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이렇게 도수가 높은 술을 마셨음에도 취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귀환의 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노인은 지난번에 죽었을 때와 똑같은 질문을 해왔다. 그리고 나는 같은 대답을 돌려주었다.
“아뇨.”
준비 시간이 몇 분 더해진다고 바뀔 상황이 아니다. 도망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안 들고. 오히려 카자크의 화만 돋울 가능성이 컸다.
“저기, [1UP 코인]을 더 살 수 없을까요?”
혹시나 해서 나는 노인에게 물어봤다. 가진 코인이 많아진다고 상황이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기회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하지만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입고되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팔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런 곳에서 노인에게 따지고 들 순 없다. 이 노인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거물일 테니까. 더군다나 이 공간에서는 스킬도 못 쓴다. 무모한 시도는 그냥 접어두는 게 좋은 생각 같았다.
“그럼 카르마 마켓의 다른 상품은요?”
지난번에 노인은 더욱 다양한 상품을 마련해 놓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이제까지 노인이 보여준 상품들은 별로 전투에 유용한 것들은 아니었지만, 혹시 또 모르지 않은가?
그러나 노인은 고개를 저어 내 기대를 꺾어버렸다.
“너무 빨리 오셨습니다.”
가능하면 예의바르게 굴려고 했던 마음은 거기서 꺾였다.
“아니, 두 달이나 지났는데도요?”
“면목이 없습니다.”
면목이 없다는데 더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수단을 쓰는 수밖에.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 동일 계열 스킬을 5개 이상 소유하고 있습니다.
– [진리대마공-개], [구십구양신공], [태양일지섬], [전설의 강타], [섬전신속]
– 스킬 승화가 가능합니다. 실행하시겠습니까?
[주의!] 승화에 사용한 스킬은 다시 얻을 수 없습니다.
전설의 강타가 왜 진리대마공이나 구십구양신공과 같은 계열로 포함됐는지는 나도 모른다. 초절강타였을 때는 안 그랬는데.
아마 전설급으로 등급이 오르며 그 위력이 마력이나 내공을 사용한 레벨에 달했기 때문일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유령 같은 것도 때릴 수 있는 [필멸]이 붙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어쨌든 한순간의 변심으로 손에 넣게 된 이 스킬 덕에 [진리대마공-개]를 비롯한 내 주력 스킬들을 승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꺼려진다. [진리대마공-개]와 [섬전신속], 그리고 초반의 내 필살기였던 [초절강타]의 강화버전을 승화로 갈아 넣는 것이.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게 다른 방법은 없다. 스킬보다야 목숨이 소중하다.
스킬 승화를 시킨다고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빚어낼 수 있는 수단이라곤 이거 하나뿐이다.
나보다 확실하게, 그것도 초월적으로 강한 상대와 맞서는데 도박 수도 안 쓰고 어떻게 이기겠는가?
“고객님.”
노인이 나를 불렀다. 부활할 시간이 다 되었다는 통지를 해주기 위해서겠지.
더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승인한다.”
나는 스킬 승화를 승인했다.
이 공간, 카르마 마켓에선 스킬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내 몸에서 스킬의 힘이 빠져나가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내 스킬 목록에서 스킬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을 따름이지만, 그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은 감각을 뛰어넘었다.
“아아······.”
나는 나도 모르게 탄식을 토해내고 말았다.
“그럼 고객님, 무운을 빕니다.”
노인의 인사말이 들렸다. 그 인사말로 내게 남겨졌던 시간이 아슬아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빛이 꺼지고, 어둠이 드리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