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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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왔군.”
로제펠트는 내심 안도하며 부활해 온 이진혁의 모습을 응시했다. 만약 이진혁이 [귀환의 돌]로 멀리 날아가 버리면 일이 귀찮아지는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1UP 코인]을 하나 갖고 있긴 했어도, [귀환의 돌]을 살 수 있을 정도로 포지티브 카르마가 넉넉하진 않았던 모양이로군.’
로제펠트는 이진혁이 카르마가 모자라 [귀환의 돌]을 사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1UP 코인]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넘겨짚었다.
‘뭐, 상관없지만.’
어차피 죽일 생각도 없었다. 죽음보다 더 끔찍한 무한에 가까운 고통의 세월을 안겨줄 생각이었다. 아니지, 세뇌해서 써먹는 것도 생각해 볼만 하군.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가장 끔찍한 짓을 저지르게 한 후 가끔씩 세뇌를 풀어 죄책감에 몸부림치는 것도 꽤나 즐길 만한 유희리라.
“도망치지 않고 돌아온 것은 칭찬해 주지. 아주 용기 있군.”
상상으로 인해 기분이 아주 좋아진 로제펠트는 이진혁에게 그렇게 칭찬했다.
“그러나 멍청한 용기였어. 보통 그걸 만용이라 부르지.”
로제펠트는 크크크, 하고 웃었다. 방금 전의 분노는 어디로 간 듯 없고 그저 유쾌한 기분만이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 묻지.”
그때, 이진혁이 입을 열었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언사였다. 그 순간 로제펠트는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그러나 곧 다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자기가 어떤 상황에 놓인 건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좋다. 나는 지금 기분이 좋으니, 질문 하나둘쯤 대답해 주는 건 문제가 아니지.”
그래서 로제펠트는 이진혁의 건방진 그 말에 흔쾌히 대꾸해 주었다.
대답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을 대답해 주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 이렇게 대화를 끝맺어야지. 로제펠트는 유쾌한 생각을 하며 이진혁의 이어질 질문을 기다렸다.
“가나안 계획에 대해 알고 있는가?”
로제펠트의 동공이 순간 확대되었다가, 다시 줄어들었다. 그만큼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원래 하려고 했던 대답을 접을 정도로.
“모른다.”
모르는 자의 반응은 아니었으나, 로제펠트는 뻔뻔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거짓말을 할 생각이기도 했고, 사실을 말할 이유 또한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군.”
생각보다 덤덤히 반응하는 이진혁의 모습에, 로제펠트는 재미가 없다 여겼다. 그래서 양념을 좀 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이제 이쪽에서 질문을 할 차례로군.”
“해라.”
묘하게 당당한 이진혁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직접 고문해 저 태도를 바꿔놓을 생각을 하니 하복부가 근질거렸다.
“네놈은 죽고 싶은가?”
좋은 질문이다. 로제펠트는 자화자찬했다.
왜냐하면 만약 아니라고 말한다면 죽고 싶다고 말할 때까지 고문해 주면 될 테고, 그렇다고 말한다면 네 소원을 이뤄지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면 될 테니.
“악의가 느껴지는군.”
대답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로제펠트는 기분이 팍 상해 버렸다.
“대답을 해라.”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필요치 않다.”
이진혁이 눈을 부릅떴다.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은 너이기 때문이다!”
저 새끼가 미쳤나. 아, 마침내 미쳐 버린 것이로군. 죽음의 공포에 미쳐 버린 것이야. 로제펠트는 그 자리에서 껄껄껄 웃었다. 더 이상 참을 필요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이 자리에선 누구도 죽지 않는다!”
로제펠트는 비릿하게 웃으며, 이진혁을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
[궁니르의 번뜩임]이미 이진혁의 목숨을 한 번 끊어놓은 적이 있는 섬광이 번뜩였다. 어차피 이거 한 방에 죽진 않으리란 걸 잘 알기 때문에, 로제펠트는 사양 않고 최고 출력으로 스킬을 쏴냈다.
“고문하고 세뇌해서 내 발바닥을 기쁘게 핥게 하리라!”
펑!
팔이 날아갔다.
“으억?”
로제펠트의 왼팔이.
“으아아, 으아아악. 끄아아아아악!!”
갑작스러운 격통에 로제펠트는 체통도 잊고 그 자리를 나뒹굴었다. 의문을 떠올릴 수 있게 된 건 침이 멋대로 입에서 질질 새어나갈 정도로 비명을 질러댄 다음의 일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거지?
‘내가 쏜 [궁니르의 번뜩임]이 어째서 내게?!’
[9999 차단]은 SSS랭크 고유 특성이다. 신화급 스킬도 막아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궁니르의 번뜩임]의 위력이었다. 이 신화급 스킬은 99.99%의 피해를 차단당하고서도, 0.01%의 위력만으로도 사람 팔 하나 날리는 건 여반장이었다.아니, 이런 걸 분석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저벅, 저벅.
어느새 이진혁이 다가와 있었다.
날카로운 시선이 로제펠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 무슨······. 무슨, 개수작을······!”
부린 거냐, 라고 말을 마칠 필요는 없었다.
“네게 [반환]했다.”
답이 먼저 돌아왔기 때문이다.
“네 것을, 네게.”
“무, 크윽······!”
“[권능], 인가!”
권능 스킬. 그거라면 설명이 된다. 본인이 [반환]이라고 말했으니 아마도 [반환의 권능]일 테지. 하지만 그렇다면 왜 아깐 그냥 맞고 죽었고, 지금은 [반환]한 거지?
“아.”
그제야 로제펠트는 상황을 이해했다. 원래 사용하지 못했던 권능 스킬을 지금은 사용할 수 있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뒤늦게 깨달았다.
이 남자, 이진혁이 [귀환의 돌]을 쓰지 않은 것은 만용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카르마 마켓에서 다른 것을 샀다. 아주 비싼 것을.
“[넥타르]를······, 마셨구나!”
[넥타르]. 신들이 연회를 벌일 때 주로 마신다고 알려진 전설의 음료. 마시면 필멸자마저 잠시나마 신성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음료라고 일컬어지고 있다.카르마 마켓에서 취급하는 [넥타르]는 신화의 그것과는 조금 달라서, 마시는 대상이 어느 정도의 신성이나 영웅적인 위업을 쌓아놓지 않았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충분한 신성과 위업을 쌓아놨다면 충분한 효과를 발휘한다.
그 효과는 심플하면서도 위력적이다. 쌓아놓은 카르마의 일부를 신성으로 바꾼다. 그리고 잠시 동안 영혼의 격을 올려준다. 격이 얼마나 상승하는지는 신성으로 전환된 카르마의 양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게 영혼의 격을 올렸다면 이제까지는 자격이 안 되어 쓰지 못했던 [권능]을 갑자기 쓸 수 있게 된 것도 설명이 된다.
“아니.”
그러나 이진혁은 고개를 저어 로제펠트의 추론을 부정했다.
“거, 거짓말!”
“거짓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내가 마신 건 [황금사과 넥타르]니까.”
“황금······!”
로제펠트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황금사과 넥타르]는 바리에이션이 꽤 존재하는 넥타르 중에서도 최상급의 것이었으니까. 그런 만큼 가장 비싸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일단 카르마의 신성 전환 효율이 비교도 안 되게 높다. 자세한 수치까지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최소한 열 배는 차이난다. 그리고 일반 넥타르가 부여하는 영혼의 격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잠시라면, [황금사과 넥타르]는 영속적으로 영혼의 격을 올려준다.
누가 알았겠는가? 이 후줄근한 플레이어가 [황금사과 넥타르]를 살 수 있을 정도로 포지티브 카르마를 모아놓았을 줄.
로제펠트는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네놈을······, 죽여선 안 됐군.”
이진혁이 이렇게까지 카르마를 많이 쌓아놓은 플레이어였다면, 그를 죽여서 카르마 마켓에 들어가도록 놔뒀으면 안 됐다.
아니, 이게 아니었다. 이진혁 정도 급의 플레이어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자폭할 방법도 마련해 놓고는 하니까.
로제펠트가 저지른 진짜 잘못은 이진혁을 얕보고 섣불리 나선 것이다. 적어도 이진혁이 어떤 죄를 저지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자신의 권능 스킬, [징벌의 권능]이라도 쓸 수 있다면 반전의 기회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진혁은 로제펠트의 시야 안에서 그 어떤 죄도 저지른 적이 없다.
[재생] 스킬로 인해 날아갔던 왼팔은 다시 자라났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절망적이었다. 이길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아니야. 방법은 있어.’
로제펠트는 어떤 발상을 떠올렸다.
‘저놈의 권능은 [반환]. 그렇다면 이쪽에서 공격하지 않으면 저놈도 날 공격 못 해.’
스킬로 공격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이길 방법이 없는 건 똑같았다. 하지만 질 가능성은 확연히 낮아졌다. 지금 막 신성을 얻은 플레이어가 신화급 스킬을 그렇게 많이 갖고 있진 않을 테고, 신화 스킬의 사용에 필요한 신성도 그리 풍부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반드시 1:1로 이길 필요는 없다. 이대로 후퇴해서 지원을 요청하면 돼.’
로제펠트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러나.
펑!
“끄으으읍!!”
폭발이 다시금 일어났다.
순간적으로 로제펠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하지 못했으나, 조금 전과 똑같은 부위에 상처를 입은 것을 보곤 겨우겨우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궁니르의 번뜩임]······!”
“맞았어. 정확하군.”
이진혁이 비릿하게 웃었다.
“너는 내게 여덟 발의 [궁니르의 번뜩임]을 쐈지.”
여덟 발의 [궁니르의 번뜩임]을 쐈다.
그 말이 가리키는 바는 매우 명백했다. [반환의 권능]이 ‘축적’ 해둔 [궁니르의 번뜩임]이 여덟 발이었다는 뜻이다.
이미 두 발을 쐈으니 여섯 발밖에 남지 않았다, 는 결론은 로제펠트를 전혀 위로해 주지 못했다. 아니, 이렇게 정정해야 했다. 여섯 발이나 남았다, 고.
“으아······!”
이진혁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걸 본 로제펠트는 겁에 질려 도망치려다 그 자리에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 도주 경로는 완전무결하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펑!
***
“후······.”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숨을 들이켜려고 하니 암모니아의 향이 코의 점막을 자극해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암모니아 향의 정체는 바로 정신을 잃고 기절한 로제펠트가 지린 오줌 냄새였다.
“흠, 흠.”
마력을 불로 전환해 암모니아 냄새를 태워 버리며, 나는 로제펠트에게서 시선을 치웠다.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좋지?”
그야 행운을 올렸으니까, 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다. 행운 능력치는 시스템상의 랜덤 수치 산출에만 기여하니까. 하긴 뭐, 행운 능력치를 올린 이후로 일이 좀 잘 풀리는 것 같기는 하니 전혀 의미가 없는 것 같지는 않았다.
카르마 마켓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면, 로제펠트가 추측한 그대로였다.
노인은 내게 [넥타르]를 권했고, 나는 그중에 가장 비싼 [황금사과 넥타르]를 골라 사 마셨다. 물론 [황금사과 넥타르]는 내게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은 아니었다. 포지티브 카르마를 10,000점이나 지불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가장 싼 [달콤한 넥타르]의 가격은 1,000점인데, 신성 전환 효율은 1%에 불과했다. 이걸 사먹었다면 권능 스킬의 필요조건조차 채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자리에 패배해 고통 받을 건 로제펠트가 아니라 나였겠지.
게다가 어차피 [넥타르]를 사마시고 나면 카르마가 0이 되어버린다는 것도 앞뒤 가리지 않고 [황금사과 넥타르]를 구매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그야 그간 얻은 카르마를 신성으로 환산하는 거니, 전부 사라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좀 억울하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