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072
1085장. 계륵(鷄肋)(2).
“HJ가 장태산과 접촉했다고?”
– 그렇습니다. 팀장님.
“왜?”
– 그건 아직…….
국정원 2차장 소속 국내정보 3팀 팀장 유낙준은 부하 직원과 통화하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이니셜로 불리는 HJ.
현시점에 국정원에서 주시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국정원 직원들의 반응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요상했다.
최근 들어 정치판이 거대 폭풍을 만난 배처럼 요동쳤다.
아직 레임덕이 올 시기가 아님에도 사회 기득권층과 청와대 권력자들이 대대적으로 맞붙었다.
살아 있는 정치 권력과 기득권 세력의 대결 구도.
승패는 보나마나 뻔했다.
5년짜리 선출직에게 수십 년간 깊게 뿌리를 내려온 기득권은 싸움 가능한 상대가 아니었다.
아무리 국민들이 각성하고 깨어나 민주 정부를 일군다 해도 기득권 세력이 작심하고 움직이면 하루아침에 지지율이 폭락하고 기세가 꺾였다.
주권자들은 숨겨져 있는 진실보다 겉으로 드러난 자극적인 슬로건에 홀렸다.
적당히 쓸 만한 소스는 매번 넘쳤다.
시대가 달라지고 사회 분위기도 변했지만 매번 현상이 보이는 패턴은 반복되었다.
같은 배를 탔던 현 대통령도 그런 기득권에 지금 단단히 찍혔다.
국정원 국내 파트에서 오가는 고급 정보 상당수가 매우 강한 위험 신호를 보이고 있다.
입수된 정보들이 비밀리에 사방으로 팔려나갔다.
매번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들이 국정원장을 한사코 자기 사람으로 심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보는 곧 정치 생명과 직결됐다.
쿠데타 같은 정변이 일어날 만한 시대는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권력다툼은 더 치열해졌다.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정보만큼 중요한 게 없었다.
‘늘공’에 속하는 국정원 직원들은 특히나 이런 정치 풍향에 민감했다.
집권당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고위직이 물갈이됐다.
예외는 없었다.
자기 사람을 심어 놓지 않으면 민감한 정보일수록 상대편에 쉽게 넘어갔다.
정권 창출과 유지에 정보만큼 중요한 게 있을 수 없었다.
과거 순수했던 한 명의 대통령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국정원 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한 개인의 신념이 불러온 참변이었음에도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리다 결국 비운의 삶을 마감했다.
지난 최병박 정권 때는 대놓고 국정원 직원들이 그의 사냥개 노릇을 했다.
알아서 사냥개 노릇을 해야 할 정도로 그는 잔인한 자였다.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음지에서 봉사하는 이들에게 충성 서약을 강요했다.
목줄을 쥐고 압력을 행사하는 통에 국정원 직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개처럼 일했다.
정보를 수집해야 할 고급 인력들을 정치 댓글에 투입시켰다.
밤을 지새우며 작업한 결과 계획대로 조근영 대통령은 아슬아슬한 오차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사조직은 물론 경찰과 국정원, 군부대까지 포괄적으로 투입된 총력전이었다.
워낙 저지른 범죄가 많고 광범위해 뒤가 구렸던 최병박과 그의 일당들.
국민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내용의 비밀 문건들이 차고 넘쳤다.
물론 퇴임 전 이미 상당수 자료들은 소각됐다.
그만큼 최병박을 따랐던 하수인들은 철두철미했다.
여론에 의해 댓글 수사에 관여한 국정원장과 몇몇 직원들이 본보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결코 쉽게 처벌할 수 없었다.
이미 검찰과 한통속으로 굴러가는 판이었다.
재판부 공기도 대법원장이 손을 쓰면 금방 달라졌다.
머리끝부터 시작해 발끝까지 부패 암세포가 모두 전이됐다고 봐야 했다.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뿐만 아니라 언론과 재벌까지도 모두 유착 관계에 있었다.
국정원 직원들도 불법적인 일들에 계속 동원됐다.
민간인 사찰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지만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수시로 벌어졌다.
특히 대선주자인 김현재에 대해서는 특별 지령이 하달되었을 정도다.
문제는.
‘이대로 가면 다음 대선은…….’
유낙준은 머리를 비상하게 굴렸다.
이제 VIP의 미래도 보장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기득권이 작정하고 포문을 열어 공격하고 있었다.
국정원 정보팀에 포착된 예민한 정보는 그 정도가 심각했다.
어떻게 마사지해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간 주순자가 벌여 놓은 꼴통 짓들을 기득권층에서 신랄하게 깔 준비를 마친 상태다.
공격자들은 끝을 보려는 심산이다.
그전에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적당한 선에서 흘러 다니는 정보에 눈을 감고 목숨을 보전할 것인지 순장조가 되어 같이 묻힐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물론 유낙준은 충성에 목숨을 매는 인물은 아니었다.
먹고 살 만큼 부도 쌓았다.
적당한 정보들을 팔아 수시로 비밀 자금을 만들었다.
국정원장과 차장급들 정도만 정권과 생사를 같이했다.
– 팀장님 어떻게 할까요?
팀원이 의중을 물어왔다.
목소리에서 불안감이 전해졌다.
더욱이 만나는 상대가 장태산이었다.
유낙준의 이마 위 주름이 깊어졌다.
당장은 김현재가 문제가 아니었다.
양우석 의원과 김현재, 그 두 사람과 만난 요주의 인물 장태산.
얼마 전 갈려나간 차장이 한 말이 떠올랐다.
장태산이란 인물과 최대한 엮이지 않도록 하라는 당부였다.
그에 대한 모든 정보는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해야 신변에 지장이 없다고 은밀히 경고했다.
국정원 정보팀원들 사이에도 그와 비슷한 소문은 이미 퍼져 있었다.
장태산과 관련된 일에 투입된 직원들은 하나같이 낭패를 봤다.
장태산의 장주시 연구소에서 비밀리에 투입된 직원들이 아주 제대로 깨 털렸다.
그 이후도 몇 차례나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목숨이 달린 결단이 필요한 시점.
“최대한 조심스럽게 도청해 봐.”
생각 끝에 팀장은 적극적 행동을 택했다.
– 괜찮을까요?
팀원은 바짝 언 채 몸을 사렸다.
“보험이야.”
설명은 길지 않았다.
– 알겠습니다!
바로 알아듣는 팀원.
보험으로 처리되는 정보는 중요한 수입원이 되기도 하고 거액의 뒷돈이 오가는 거래용으로 쓰였다.
“중요한 일 있으면 바로 나한테 보고해. 정보 새나가지 않게 통제하고.”
– 넵!
유낙준은 다시 한 번 철저한 지시를 당부했다.
정보 통제라는 말은 윗선에도 함구라는 뜻이었다.
최근 국정원장이 수시로 청와대에 불려갔다.
차장들이 팀원들을 닦달했지만 국정원 시스템은 어느 때보다 느긋하게 돌아갔다.
이빨 빠진 호랑이는 새끼들도 무시하는 게 동물의 왕국이 굴러가는 이치인 것이다.
띠릭.
통화가 끝났다.
“이거 잘못하다가는…….”
최근 보고된 일련의 사태들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해 보던 유낙준.
꿀꺽.
마른침이 그의 목젖을 적시며 넘어갔다.
***
‘계륵?’
양우석은 장태산의 말에 대한 답을 구하려 애썼다.
만날 때마다 더 크게 성장해 가고 있는 장태산.
이제는 그의 속내를 전혀 짐작하기조차 어려웠다.
장태산은 빙긋이 웃는 얼굴로 계륵을 손에 쥐었다.
지난 대선을 거쳐 차기 대선주자로 우뚝 선 전 당 대표 앞에서도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뒤를 바치는 배경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젊은 나이에 저렇게 나오기 쉽지 않았다.
나국찬 의원도 인정한 똥배짱의 대가 장태산.
그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이 기다려졌다.
계륵이라는 말은 보통 남 주기도 아깝고 자기가 먹기에는 좀 부족할 때 사용됐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을 것 같은 장태산의 언어 선택.
“의외로 맛있습니다.”
“???”
“다들 날개나 닭다리를 선호하지만 사실 계륵에는 계륵만의 감춰진 맛이 존재합니다. 날개와 연결되어 육질도 쫄깃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남들이 선호하지 않아 온전히 제 몫으로 남아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예상치 못한 장태산의 어처구니없는 설명.
‘맛있어서? 그게 다야?’
양우석은 장태산의 말속에서 숨은 의미를 찾기 위해 애썼다.
“그렇군요…….”
그때 김현재 전 대표가 뭔가 알아챈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각보다 양이 많습니다. 눈치 안 보고 조용히 독식하기에 가장 알맞은 부위죠.”
“!!!”
그제야 양우석 의원은 장태산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장태산의 지난 행보와 딱 맞아떨어지는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잘난 체하고 싶어 안달이 난 다른 인간들과 달리 언제나 조용하게 행보를 거듭해 온 장태산.
대한민국에서 가장 실속 있는 부자이자 권력자의 진면목이었다.
“그럼 저도 계륵을 먹어야 할까요?”
김현재 전 대표가 눈동자를 반짝이며 물었다.
중요한 질문이었다.
양우석도 사실 오늘 자리를 만들며 깜짝 놀랐다.
2선에 올랐지만 아직 김현재 전 대표와 내세울 만한 접점이 없었다.
같이 의정 생활을 잠시 해봤지만 하늘 같은 존재였다.
다선이면서 동시에 전 대선주자였던 김현재.
다음 대 대선주자가 될 게 확실했다.
여러 정치꾼들이 야당에서 출사표를 던졌지만 인물이 없었다.
무엇보다 정치력과 인지도에서 밀렸다.
여당과 기득권의 집중포화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다.
친구이자 동지였던 주무형 대통령을 눈물로 보내고 절치부심했을 김현재 전 대표.
어느 하나 상대에게 건수를 잡히지 않기 위해 더욱 몸가짐을 바르게 했다.
무엇보다 인품이 훌륭했다.
누구를 만나도 그 사람을 진심으로 대했다.
자신에게 저주를 퍼붓고 난리를 치는 반대파를 대하는 데 있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초선 의원들에게도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던 김현재 전 대표.
그가 먼저 비서를 통해 장태산 회장과의 자리를 주선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장태산 회장의 능력에 대한 소문은 더 이상 감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직 일반 국민들까지는 모르는 인물이지만 여의도와 강남 상류층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요주의 인물 1위.
법조계나 언론, 정치인과 기업인들도 장태산 회장과 굳이 엮이려 하지 않았다.
부딪혔다 하면 모두가 낭자한 피투성이가 됐다.
더욱이 그의 뒷배로 미국 백악관을 비롯해 월가가 버티고 있었다.
양우석은 김현재 전 대표와의 만남을 주선하고도 조마조마했다.
초반 상황은 매끄럽게 흘러갔다.
그러나 대화가 깊어질수록 난해하고 복잡해졌다.
지금부터가 무척 중요한 시점.
정치인 만나기를 좋아하지 않는 장태산 회장의 입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몰랐다.
아무리 김현재 전 대표라고 해도 심장을 겨눈 말을 칼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계륵 좋아하세요?”
장태산이 김현재 전 대표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김현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왜 먹습니까. 드시고 싶은 부위 드시면 됩니다.”
“정말 그래도 될까요?”
눈빛이 더 강렬해지는 김현재.
“그거야 대표님 마음 아니겠습니까.”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하하. 닭 먹는데 고견까지 들어야 하나요? 그리고 전 연배가 어립니다. 세상 풍파를 다 겪으신 대표님 앞에서 재롱떨 자신이 없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라 믿어왔습니다. 그리고 살면서 확인했습니다. 배울 게 있다면 어린아이에게도 고개를 숙여 가르침을 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자세라 믿습니다.”
‘도대체 지금 무슨…….’
계륵 하나 가지고 짐작하기 힘든 심오한 대화가 오갔다.
양우석은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화에 빠져들었다.
몇 마디 말을 섞어 낄 틈이 보이지 않았다.
피부에 느껴지는 기운이 팽팽하게 긴장됐다.
‘으으으.’
양우석은 숨이 턱턱 막히고 호흡이 답답해져 넥타이를 손으로 풀어냈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김현재와 장태산이 서로를 지그시 바라봤다.
“하하하하하하하.”
장태산이 먼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갑작스러운 웃음소리에 양우석은 그만 놀란 눈으로 장태산을 빤히 쳐다봤다.
이 분위기에 저 웃음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부탁드립니다.”
김현재의 입에서 부탁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요즘 들어 정치 행보가 빨라졌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청와대와 언론사들 사이에 싸움이 한창이다.
적들의 자중지란을 두고 야당 의원들은 멍하니 지켜만 보고 있는 수준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자중지란.
그 와중에 뭔가를 눈치챈 듯한 김현재 전 대표만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장태산 회장과의 만남도 그 움직임 중 하나였다.
“제가 졌습니다.”
장태산이 고개를 내저었다.
“술 한 잔 받으십시오.”
김현재가 먼저 소주병을 들었다.
티리릭.
경쾌하게 병뚜껑이 돌아갔다.
“대표님 이건 제가…….”
양우석이 화들짝 놀라며 다급하게 손을 내밀었다.
스윽.
그때 장태산이 잔을 들고 손을 내밀었다.
분명 한국식 주도가 아님에도 개의치 않았다.
“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위생용 비닐장갑을 벗고 두 손으로 소주잔을 받치는 장태산.
쪼로록.
맑은 술이 잔에 채워졌다.
쌉싸름한 주향이 훅하고 방안에 퍼졌다.
“한 잔 올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장태산이 소주병을 잡았다.
김현재도 두 손으로 공손하게 잔을 내밀었다.
적당히 채워지는 맑은 소주.
“의원님도 한잔하시죠.”
“네? 네.”
양우석도 두 손으로 겸손하게 잔에 술을 받았다.
그렇게 채워진 술잔.
양우석의 잔까지 채워지자 장태산 천천히 입이 열렸다.
“대표님…… 셰익스피어를 좋아하십니까?”
“???”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