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091
1108장. 파티의 계절(4).
“장립……. 이 개새끼가 뭘 또 빌어먹겠다고 찾아온 거야!”
왕정은 홍린과의 통화를 끝내며 분노로 으르렁댔다.
모든 상황이 갈수록 복잡해졌다.
곳곳에 심어 놓았던 상해방의 뿌리가 가차 없이 뽑혀나갔다.
슈건핑과 태자당은 막무가내로 무자비했다.
군권에 이어 그에 버금가는 무장 공안들까지 접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칼을 뽑아들고 망나니처럼 휘둘렀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기업, 언론과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퍼져있던 상해방 인맥들이 청소당했다.
그 기세는 점점 왕정에게까지 위협으로 다가왔다.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왕정을 극도로 예민하게 했다.
어느 정도 드러나 있던 비자금들은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의 부를 착취해 온 상해방.
정작 자신들도 저들이 몸집을 키운 비자금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할 정도였다.
웬만한 상해방 간부들은 집안에 대형 금고 수준이 아니라 방 한가득 황금과 돈을 산처럼 쌓아놓고 살 정도였다.
개혁개방 이후 눈먼 돈이 더욱 넘쳤다.
일반 시민들은 상상도 못 할 거액의 돈이 뇌물로 오갔다.
아닌 게 아니라 서로 물고 빨며 좋은 시절을 잘 보냈다.
그런데 막상 슈건핑이 정권을 잡자 금고부터 털었다.
전광석화와 같았다.
공청단이 합세하면서 상해방은 그야말로 눈 뜨고 코 베이는 입장이 됐다.
가장 뼈아픈 건 정법위를 빼앗긴 것이다.
군권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가 사라지자 무자비한 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관례처럼 내려오던 고위직에 대한 비밀 처벌이 사라졌다.
언론을 통해 보란 듯이 망신을 줬다.
엄청난 뇌물이 쌓여 있는 집과 잡혀가는 고위직 공무원의 모습을 TV를 통해 그대로 방송했다.
중국 시민들은 열광했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라는 사실은 시민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상해방은 무너져 내렸고 눈이 돌아갔다.
그러나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나 대안은 따로 없었다.
몇 번의 쿠데타와 암살 시도를 한 게 저항의 전부였다.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남아 있는 생존 수단은 비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는 것밖에 없었다.
그 일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런 마당에 신경을 바짝 서게 하는 그놈이 홍콩에 나타났다.
“하필 리장창이야. 하필……!”
리장창은 슈건핑의 최측근이다.
정보를 담당하고 있어서 더 상대하기 껄끄러운 인물이다.
띠리리리릿.
왕정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중국에서 만든 제품이 아닌 특수 제작된 미국산 스마트폰이다.
아무리 상무위원이라고 해도 난무하게 저질러지는 도청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무슨 일이야?”
통화 버튼을 누르며 왕정이 짧게 물었다.
– 홍콩에 손님들이 왔습니다.
정보원으로 일하는 자가 짧게 대답했다.
“립이라면 나도 알아.”
왕정은 한발 늦게 소식을 전한 정보원을 향해 툭 쏘아붙였다.
– 장 공명도 합류했습니다.
“뭐라고! 장 공명도!”
공명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자는 단 한 명뿐이다.
슈건핑의 최측근 핵심 보좌관 장문량이었다.
‘장립! 모든 게 네놈 계획이더냐!’
말을 듣고 왕정은 치를 떨며 분노했다.
처음 볼 때부터 쥐새끼 같은 인상을 남겼던 장립이 기어코 태자당에 붙었다.
그것도 모르고 귀히 여기고 있는 장택민 전 주석.
– 경비가 삼엄해서 더 다가갈 수는 없습니다.
상당한 실력을 겸비한 정보원인데도 불구하고 두려움을 내비쳤다.
장 공명이라 불리는 장문량에 대한 경호는 준 주석급으로 이루어졌다.
총리도 장문량 급의 경호를 받지 못할 정도다.
“계속 지켜봐.”
– 넵!
정보원의 말대로 현재로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홍린의 역할이 중요하군…….”
장립은 연락책으로 홍린을 선택했다.
그동안 소홀했던 관계였던 만큼 이번 연락책으로 선택된 홍린에게 마음이 쓰였다.
장립이 저울을 들고 상해방과 태자당 사이의 간을 보는 게 분명했다.
“일개 화교 따위에 이런 식으로 휘둘리다니……. 으득.”
왕정은 내심 분노에 이를 갈았다.
애써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왕정은 다시 스마트폰을 들었다.
자세를 가다듬으며 경건하게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우우우우우우우.
별다른 화음이 섞이지 않은 단순한 연결음.
– 무슨 일인가…….
나직한 음성이 전화를 받았다.
“장립이 홍콩에 왔습니다.”
왕정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약속도 없이?
상대가 전하는 내용에 의문을 표했다.
“리장창과 장문량을 만나고 있습니다.”
– …….
상대는 왕정의 말에 아무 대꾸가 없었다.
“명령을 내려주시면…….”
장립과 관련된 모든 사항은 이제 왕정이 다룰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상태였다.
말 그대로 윗선의 결정이 필요했다.
– 기다려 보게. 그 녀석이 어리숙한 바보는 아니니까.
“네?”
상대는 의외로 장립에 대한 신뢰를 보였다.
– 곧 연락 올 거야. 기다려.
“아, 알겠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불같이 화를 내야 정상인데 상대는 도리어 기다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 그것보다 왕정…… 조심하게.
“???”
– 자네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퍼지고 있어.
대하기 어려운 윗선의 경고.
순간 왕정은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조심하라는 말의 의미는 윗선도 위기가 닥쳤을 경우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주르르륵.
왕정의 등판으로 척추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쪼로로록.
잔에 술이 가득 채워졌다.
이자들은 한결같이 개성이 없다.
주야장천 만나기만 하면 빠지지 않고 마셔대는 마오타이주.
아무리 정치주라 불린다지만 오늘도 역시나 마오타이주다.
솔직히 맛은 좋다.
불을 대면 불도 붙는다는 알코올 52% 독주.
목젖을 타고 내려가는 화끈함에 입안에서 감겨 올라오는 향취는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그래도 고리타분한 건 어쩔 수 없다.
좀 산다는 집에 가면 이 술을 박스째 놓고 마신다.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
장문량이 마오타이주를 들고 오지 않았는가.
몇 잔 마시다 보니 술이 똑 떨어졌다.
리장창과 장문량 두 사람 모두 내공 수련자다.
가져온 몇 병의 술은 금방 동났다.
그 순간부터 리장창이 술 창고를 개방했다.
박스째 마오타이주가 등장했다.
벌써 빈 병이 10여 개를 넘어갔다.
“하오!”
좋단다! 도대체 뭐가?
“제수씨가 없어 아쉽군.”
“죄송합니다. 딸아이가 보고 싶다고 연락와 곧바로 프랑스에 갔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다고 하던데…….”
“출산이 곧 임박했습니다.”
“하하하하. 클라라에게 큰 선물을 해야 할 것 같군.”
“아닙니다. 형님께서 지금까지 해주신 선물만으로도 딸아이는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됐네. 클라라가 남도 아니고.”
꿀꺽.
나도 모르게 연거푸 술을 털어 넣었다.
이번 생이 다할 때까지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비 내리는 날 한쪽 어깨를 적시며 그녀와 함께했던 홍콩 야행.
아직도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 형님 한 잔 더 드세요. 첫사랑을 잊을 수 있는 건 술만 한 게 없습니다. 제가 그 기분 잘 압니다!
귀신아! 제발 닥쳐!
첫사랑과 뽀뽀도 못 하고 잡혀가 죽은 잡귀가 알면 뭘 얼마나 알아!
“천이는 요즘 어떻습니까?”
“많이 좋아졌네. 얼마 전부터 외부 활동도 시작했어.”
“다행입니다. 형님.”
“그래 다행이지……. 장씨 조상님들이 돌보지 않았다면 대가 끊길 뻔했어.”
다행?
후후후.
비웃음이 속에서 터졌다.
그렇게 나쁜 놈도 제 자식은 함함한지, 변태에 패륜아인 아들놈을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
그때 대가리를 더 뭉개놓지 못한 게 한이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었다.
곧 만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팍 왔다.
그때…… 확실히 까놓아야겠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그놈은 제 손으로 처단하겠습니다.”
“아닐세. 그 자식 가죽은 내 손으로 벗기겠네!
그놈이네 그 자식이네 언급하며 눈에 불을 켜고 이를 가는 두 마리의 늑대.
당사자를 앞에 놓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처단하네 마네 떠들어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두 마리 늑대의 대갈통을 뽀개…….
– 중국 조상신의 보호를 받는 자들입니다.
– 휴전 중입니다.
– 엄청난 패널티를 물고 대갈통을 까시겠습니까?
안 깐다.
군자는 진정한 복수를 위해 10년 정도는 껌 하나 씹으면서도 버터야 하는 법.
엄청난 패널티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안다.
“그 자식 누군지 몰라도 제가 힘껏 돕겠습니다.”
술병을 집어 들었다.
소주병이 아닌 게 못내 아쉽다.
그게 참 손에 착 감겨 후려치기에 아주 안성맞춤인데 말이다.
“동생도 알지 않나. 그 재수 없는 한국 놈 말일세.”
재수 없는?
리장창! 당신이 더 재수 없다!
“그만 얘기하세. 그놈 생각만 해도 술맛이 뚝 떨어진다네.”
아니 장씨 아저씨! 당신들 앞에다 둔 나 역시 술맛이 좋은 줄 알아?
어이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 클클. 형님 술맛 쫙 도시겠습니다.
닥쳐라! 이 잡귀야!
오늘 이 자리의 원한을 기필코 자세히 기록해 놓으리라.
“오늘은 그놈에 대해서는 잊으십시오. 소제가 있지 않습니까.”
원한을 가슴에 새기며 얼굴에는 활짝 웃음을 지었다.
연기도 하다 보니 이제 경지에 이르고 있는 듯했다.
“하하하. 맞네. 동생을 보니 갑자기 술맛이 도는군. 가득 따라보게.”
“넵! 형님!”
장문량과도 형 동생하며 지내기로 했다.
쪼로록.
잔에 넘치도록 술을 채웠다.
슬쩍 장을 뒤틀 만한 설사를 일으키는 저주 마법이라도 걸까 싶었지만 참았다.
오늘은 축제 준비 기간.
벌써 대환장 파티를 끝내버리기에는 많이 아쉬웠다.
“형님도 받으십시오. 따님의 건강한 출산을 기원하겠습니다.”
“고맙네.”
“산모와 아이를 위해 좋은 환단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오! 정말인가?”
환단이라는 말에 리장창이 탄성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비록 클라라가 딴 남자의 아내가 됐지만 축복을 빌어주고 싶었다.
어차피 성전기사단과 좋게 지내야 할 사이이고 말이다.
“물론입니다. 형님의 외손이라면 저와도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역시 립 자네는 통이 큰 남잘세.”
리장창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따라주지.”
“감사합니다.”
빈 잔이 다시 채워졌다.
안주인은 없지만 주방장이 갖가지 요리를 연신 만들어 내왔다.
“동생과의 인연을 위하여.”
“위하여!”
날 보며 위하여를 크게 외치는 두 마리 늑대.
그래, 나도 당신들의 암울하고 어두운 미래를 위하여 기꺼이 건배하리라!
꿀꺽.
단숨에 잔을 비웠다.
첨잔을 위해 술 방울을 남겨두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오늘따라 술맛 좀 받는다.
– 형님……. 적당히 드십시오. 오늘 밤 2차 잊지 않으셨죠?
이 와중에도 여자를 밝히는 색깔 짙은 잡귀.
에라이……. 짱개 귀신아!
–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흐흐흐.
노바 형님이랑 좀 놀더니 완전히 버려놨다.
조만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이계로 보내 버려야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생……. 자네에게 좋은 제안을 하고 싶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본격적으로 말을 꺼내는 장문량.
“어떤 제안이신지…….”
조금 전부터 두 사람은 나의 눈치를 살피며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결정된 듯한 그 무엇.
“우리 회에 들어오겠나?”
“……?”
우리 회? 설마 그 회???
회귀의 전설 3부
파티의 계절(5).
딴딴 라라라~♬.
LA필하모니 소속 객원 연주자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현악 4중주의 선율이 부드럽게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강렬했던 햇살이 자취를 감추고 시원한 바람이 나파벨리 평원을 감쌌다.
달빛과 별빛 아래 마치 성처럼 거대한 와이너리가 조명으로 환하게 밝혀졌다.
“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
곳곳에서 젊은 남녀들의 웃음이 섞이며 꽃을 피웠다.
의상코드는 자유였지만, 상당수 사람들이 슈트와 드레스 차림이었다.
저마다의 손에는 핏빛 붉은 와인 가득한 잔이 들렸다.
각자 대화를 나누는 상대의 눈을 마주보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가까운 할리우드를 비롯해 미국 곳곳에서 유명 인사들이 대거 모였다.
그 수를 대충 헤아려도 무려 수백 명에 달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서비스 종사자들 수만 해도 그에 못지않다.
한쪽에서는 계속해서 요리가 끊이지 않고 만들어졌다.
푸아그라부터 시작해 철갑상어 알로 곁들어진 각종 와인 안주와 혀끝을 자극하는 요리들은 식욕을 돋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모두 다 고급 호텔 주방장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요리였다.
와인 창고도 개방됐다.
술과 미남 미녀, 넉넉하고 맛있는 요리와 웃음이 넘치는 곳.
“이렇게 럭셔리 파티는 오랜만인 거 같지 않아?”
“맞아. 요즘 들어 처음이야.”
“이거 못해도 백만 달러는 들었을 것 같아.”
“환상이야…….”
“그런데 파티 주인공 다니엘이 누구야?”
“그것도 몰라?”
“난…… 처음이잖아.”
푸른 드레스 자락 사이로 늘씬한 다리가 매끈하게 드러난 아름다운 금발 미녀가 말을 흐렸다.
2015년 슈퍼 모델로 선발된 뒤로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던 터다.
여기저기에서 치러지는 행사를 쫓아다니며 얼굴을 알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친구와 함께 이곳 파티에 참석하게 됐다.
“저기 봐봐.”
“어디?”
“저기 미녀들 사이로 보이는 동양 남자 있잖아.”
“응.”
“그 남자가 다니엘이야.”
“잘생겼는데?”
“수잔. 잘생긴 게 문제가 아니야.”
“그럼?”
“엄청난 거물이 저 남자를 후원해. 그것도 열성적으로.”
“누구?”
“로버트 라이언.”
“!!!”
수잔도 이름을 들어 알고 있는 월가의 거물.
각종 파티에 참석할 때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언급했다.
그 정도로 미국 사교계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었다.
수잔은 지금 들은 말들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여기 와이너리도 로버트 라이언이 빌려줬어.”
“거짓말 아니야? 뭐가 아쉬워서 저런 동양인 남자한테…….”
수잔은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도 미국 사회는 보이지 않는 신분의 장벽과 인종 차별이 존재했다.
드러내놓고 인종을 차별하지 않을지라도 백인이 아니고서는 쉽게 상류층에 합류할 수 없었다.
“소문에는 로버트 라이언과 동업자래. 그것도 핵심 파트너.”
“세상에…….”
수잔이 놀라 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계속 같은 얘기를 듣다 보니 엄청난 후광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백마 탄 왕자님!’
생각이 이에 미치자 수잔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슈퍼 모델이 되었어도 끌어줄 스폰이 없으면 정상까지 오르기 쉽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곳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다니엘을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저마다 그룹별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상당수의 시선은 다니엘을 힐끔거렸다.
그와 눈이라도 마주치고 말이라도 섞어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자가용 비행기 몇 대를 착륙시킬 수 있을 만큼 큰 개인 비행장을 소유한 갑부는 미국에도 흔치 않았다.
로버트 라이언 정도 되는 거물이나 가능한 일이다.
이 파티도 로버트 라이언이 초대장을 발부했다.
친구 다니엘을 위한 파티 초대장.
그의 초대장을 거절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었다.
단 하루 만에 미국 전역에서 손님이 대거 몰렸다.
아직 로버트 라이언이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파티는 흥이 올라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인 다니엘은 환한 미소를 연신 지으며 이런저런 사람들을 상대했다.
역시 주변으로 아름다운 미녀들이 넘쳤다.
‘미치겠네…….’
뭇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다니엘, 아니 임성철 회장은 난처해 죽을 지경이 됐다.
연륜으로 커버하기에는 파티 규모가 엄청나게 성대했다.
오정 회장 때도 경험하지 못한 파티 규모다.
장립 귀신 덕분에 영어와 프랑스가 비약적으로 늘었지만 이런 파티 분위기는 역시 어색했다.
하지만 장태산이 떠나기 전 분명히 당부했다.
최대한 화려하고 소문이 쫙 퍼지도록 성대한 파티를 열고 또 즐기라고 말이다.
“다니엘……. 나 기억나요?”
“누구…….”
“얼마 전 트럼프 파티에서 인사를 나눴는데.”
갈색 금발 미녀가 다가와 배시시 웃는다.
옆에 장립 귀신이 있었다면 바로 눈이 돌아갔을 정도의 미녀다.
나이는 대략 이십대 후반.
큰 키에 날씬한 몸매, 새하얀 피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큼지막한 푸른 눈동자에는 이미 뜨거운 유혹의 감정이 담겨 있다.
그리고 강하게 훅 밀려오는 매혹의 향기.
본능적으로 불끈 피가 돌았다.
남자라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여자는 돌이다! 여자는 돌이다. 난 쌍둥이 아빠다. 난…….’
임성철 회장은 속으로 자신을 지킬 주문을 외웠다.
처음 젊은 몸뚱이를 얻었을 때 말 그대로 놀 만큼 놀았다.
꿈에서나 그리던 화려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장립의 몸을 빌려 온갖 미녀들과 사랑을 나눴다.
그러나 오늘은 장립이 아니라 장태산이다.
장차 사위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장태산의 몸뚱이를 함부로 굴릴 수는 없었다.
더욱이 본래 신분은 오정의 회장이자 셋, 아니 다섯 명의 자식을 둔 가장이다.
“미안합니다. 제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괜찮아요. 다시 인사하면 되죠. LA타임즈 기자 로라 질트라고 해요.”
미녀가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이 참 길다.
그리고 눈에 확 띄는 풍만한 저…….
여 기자가 어떻게 모델들보다 더 예쁠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장이 얼굴을 보고 뽑은 게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다니엘 장입니다.”
임성철 회장이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로라라고 불러줘요.”
게다가 무척 적극적이다.
잡고 있는 손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전류가 온몸을 통과했다.
임성철 회장도 젊은 시절 적잖이 놀던 남자였다.
여자가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무감각하지 않았다.
특히 장태산의 몸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 건강했다.
카피한 몸뚱이에 불과하지만 기력이 아주 그냥 펄펄 넘쳤다.
“반가워요. 로라.”
임성철 회장은 따뜻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저…….”
호감을 느낀 듯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온 로라 질트.
스윽.
임성철 회장의 얼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다니엘, 바쁜 건 알지만 조용한 곳에서 잠시 시간 좀 내줄 수 있어요?”
붉은 입술을 꽃잎처럼 나풀거리는 로라.
임성철 회장의 눈동자가 몹시 흔들렸다.
미국은 파티 중에 손님들을 위한 게스트 룸이나 휴게실을 따로 준비해 놓았다.
특히 이곳 와이너리는 그런 룸들이 넘쳐났다.
“오늘은…….”
“잠시면 돼요. 짧은 인터뷰……. 서로 좋지 않을까요?”
속삭이듯 유혹의 말을 전하는 로라 질트.
아직도 맞잡고 있는 손에서는 전류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럼 잠시만.”
임성철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로라의 요구를 승낙해 버렸다.
다니엘이 부탁한 화끈한 파티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태산아! 넌 왜 날 시험에 빠지게 만드는 거야!!!’
유혹의 혀를 날름거리는 금발 미녀 앞에서 속으로 절규하는 임성철 회장.
그런 절규와 달리 빠른 속도로 심장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피는 거침이 없었다.
임성철 회장은 이 틈에도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젊음은…… 그 자체가 신이 허락한 가장 큰 축복이라고 단언했다.
***
– 회요? 먹는 회 말고 모임을 말하는 거 맞죠?
귀신도 놀란다.
농담을 툭툭 던졌지만 귀신도 살아온 짬밥을 무시 못 했다.
지금 눈앞의 인간들이 중국에서 이름만 대도 먹히는 존재라는 걸 알았다.
그런 자들이 던진 엄청난 떡밥.
장태산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회(會) 가입이 아니라 회를 치겠다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립은 중국인의 피가 흐르는 화교.
이용 가치가 넘친다고 생각한 저들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씰룩.
입술이 제 마음대로 움직이는 걸 억지로 컨트롤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우연히 구입한 로또가 이월금까지 합산돼 당첨금으로 안겨진 기분?
그걸로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지금 멍청한 늑대 두 마리가 자신들을 한입에 삼킬 호랑이에게 뱃살을 드러내놓고 꼬리까지 흔들었다.
부르르.
흥분에 몸이 떨렸다.
“동생, 그렇게 기분이 좋은가?”
리장창이 만족스러운 듯 빙그레 웃는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속으로 미친 듯 광소를 터트렸다.
좋냐고?
말하면 뭐 하나!
박장대소라도 터트리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째진다.
저들이 권한 곳은 천지회다.
이게 만만히 볼 조직이 결코 아니었다.
내가 온 힘을 다해 정보를 빼내려 해도 어느 순간 탁 하고 앞이 막혔다.
철저하게 점조직 형태로 움직이고 있었다.
단주들급은 어떻게 알아냈지만 그 윗선을 비롯해 아래 조직을 낱낱이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회주라는 자는 더더욱 베일에 싸여 있었다.
아직도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 저 돼지들이 알아서 펄펄 끓는 물에 샤워하고 배를 까뒤집었다.
알아서 잡아먹어 달라는 신호인 셈이다.
“아니 갑작스럽게 회라니요……. 이 부족한 동생은 잘 모르겠습니다.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연기력이 제대로 물 올랐다.
최대한 겸손함을 두르듯 갑옷을 입고 전신을 감쌌다.
제갈공명의 삼고초려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번은 사양하고 튕겨야 예의였다.
거기에 회라는 걸 전혀 모르는 척 전술도 펼쳐야 한다.
자신들이 속한 비밀 조직에 대해 알은척하는 건 누구도 반길 일이 아니다.
“이런!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에게 너무 성급히 말을 건넸군.”
장문량이 나의 반응에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조차 거울을 보면 나의 모습이 진실이라 믿을 만큼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덥석 미끼를 물었다면 대번에 의심했을 분위기다.
이놈들 나름 끝까지 긴장하게 만든다.
덩치 큰 중국을 찜 쪄 먹고 있는 고수들다웠다.
– 푸하하하하하하하하! 형님! 진짜 표정 연기가 예술입니다. 따봉!
귀신이 엄지 척을 내민다.
이제는 인터넷 박물관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옛 선사시대급 유행어를 남발했다.
“립……. 자네도 알겠지만 중국은 지금 새로운 부흥의 시대를 맞고 있네.”
리장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전 세계인 누구도 부정 못 하는 중국 부흥 시기.
밑바닥 서민들이 진짜 열심히 일했다.
저임금과 고 노동으로 부흥의 밑바닥을 다졌다.
인정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돈만 밝히는 짱개가 아닌 진짜 서민들의 피와 땀은 인정할 만했다.
“서구 침탈로 무너진 위대한 제국의 부흥을 위해 과거 선조들은 피로써 맹세하며 회(會)를 세웠다네. 사냥감처럼 중국을 갈가리 물어 뜯어버린 서구 열강들! 그들의 압박과 수탈을 참으며 오늘에 이르렀네. 그리고 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흥의 열망을 품고 오늘까지 이르렀지……. 그동안 회에 속한 선배들이 흘린 피가 아니었다면…….”
말을 하다 말고 리장창은 울컥한 듯 복받친 표정으로 호흡을 추스렀다.
“형님…….”
나도 감정에 격해진 표정을 지었다.
그래 충분히 무슨 말인지 이해된다.
내 나라 내 민족의 부흥이 모든 민족의 과제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은 지켜가면서 성공을 도모하는 게 정도(正道)다.
무법과 불법, 비양심과 비도덕으로 세워진 제국은 오래 갈 수 없다.
그래서 중국도 탈이 나고 있다.
고성장과 견주어 인민들의 의식이 동반 성장하지 못했다.
물질과 욕망만 넘치는 사회 곳곳에 꽌시를 통한 권력층과 상류층만이 배를 불렸다.
지금은 버틸 만하지만 어느 순간 성장 정체기가 찾아오고 거품이 꺼지면…….
공산당은 그게 두려워 조지 오웰의 소설처럼 극도의 감시 사회를 구축하려 한다.
아직은 먹히고 있지만 난 단언한다.
사람이 아닌 짱개들만 넘치는 중국.
언젠가 폭망해 갈가리 영토가 찢겨질 것이다.
“립, 그동안 자네를 지켜봤네. 그리고 회에서 결정했네. 자네를 회의 핵심 인재로 키우기로 말일세.”
장문량이 인심 쓰듯 자신들끼리 결정한 일을 전했다.
– 뭐 합니까! 핵심 인재라잖아요! 어서 덥석 무세요!
귀신이 미끼를 물라며 선동했다.
“어떤가! 우리 회에 들어오겠나?”
다시 나의 의중을 묻는 장문량.
천천히 고개를 들고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리고.
“전…….”
회귀의 전설 3부
파티의 계절(6).
“파티…….”
이스라엘의 한 심처에 위치한 비밀 공간.
아사신의 성전 공격으로 충격을 받은 야훼바트는 신의 가호가 깃든 최첨단 안전장치가 마련된 장소로 거취를 옮겼다.
핵폭탄이 터져도 버틸 수 있을 만큼 안전했다.
신의 힘을 이용해 아사신 마법에 의해 세뇌된 자들을 모두 걸러냈다.
야훼도 극도로 긴장했다.
이스라엘을 수호하는 조상신으로서 체면이 어지간히 깎인 상태다.
영향력 있던 장로 셋을 처단했다.
차일드 가문 중심으로 구축된 조직 전반에 피할 수 없는 피바람이 불었다.
100년 넘는 세월 동안 조직적인 장로들의 배신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신의 이름 앞에서도 철저하게 가면을 쓰고 행동했던 자들.
야훼는 과거부터 배반자들에 대해서 무척 잔혹했다.
율법에 근거한 처단이 내려졌다.
하루아침에 장로 가문 몇 곳이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4촌 이내 일가친척들 역시 이스라엘 국민 명부에서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처럼 삭제됐다.
누구도 그에 대해 언급하거나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신전에 있었던 대규모 폭발도 조용히 묻혔다.
야훼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 수 있는 만큼 도처에서 쉬쉬했다.
곪은 상처를 치유하는 동안 로리아나는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자신의 신실하지 못한 마음을 참회하고 차일드 가문을 냉정하게 재정비했다.
대가도 지불했다.
차마 계산기를 두들기지는 않았다.
그 일로 다니엘이 엄청난 부를 획득했다.
야훼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눈을 감았다.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야훼바트의 목숨값.
로리아나는 이제야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매일같이 긴 기도와 산재한 사무 처리로 여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들려온 다니엘의 파티 소식.
귀가 쫑긋할 수밖에 없었다.
아사신과의 전투 때 보여줬던 그의 엄청난 신위.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더 기울었다.
야훼도 다니엘과 관련한 일에는 입을 닫았다.
“화려하네.”
전송된 사진을 보며 로리아나는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아무리 성녀 신분이라고는 하지만 그녀도 여자였다.
그것도 깊은 사랑에 빠진 여자.
뭇 미녀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다니엘의 모습은 성녀 로리아나의 입맛을 쓰게 만들었다.
“사라도 연락을 못 받았나?”
한국에 머물고 있었던 그가 갑자기 미국으로 날아가 퍼티를 열었다.
사라도 파티에는 초대를 못 받은 듯 보였다.
그나마 위안이 됐다.
“……장립이라는 자를 만났다 이거지.”
다니엘은 감춰진 비밀이 많은 남자였다.
그를 따라 다니는 영혼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또 그가 영매는 아니었다.
야훼도 지금에 와서는 다니엘에 관련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꺼림칙하게 생각될 정도로 이상하게 반응했다.
마치 동료 신을 대하는 듯하다고 해야 할까.
“다니엘. 이번에는 뭘 준비하고 있나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누구도 그를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아사신 습격 직후 이미 엄청난 부를 더 거머쥔 상태.
자본주의 시스템하에 있는 현대는 돈이 바로 권력을 의미했다.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 돈의 저울을 쥔 심판자로 올라선 다니엘.
아직 로리아나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그를 대하는 데 있어 두려움을 품어야 했다.
다니엘이 마음만 먹는다면 이제 중소국 하나쯤은 몇 달 만에 파산시킬 수도 있다.
물론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도 가볍지 않을 것이다.
심판자로서의 자격을 남용하는 순간……. 동지가 아닌 적이 될 수도 있었다.
그 상대로 로리아나도 마찬가지 입장.
“항상 기원합니다. 당신과 내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친구로 남게 되길…….”
로리아나는 눈을 감고 바라는 바를 빌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매순간 보고 싶은 남자.
그가 휘두르는 칼날에 자칫 다치지 않기를 바라며 신께 간절히 기도했다.
***
‘어차피 대답은 정해져 있지. 흐흐흐.’
장문량은 장립에게서 돌아올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거절하면 천하의 머저리라는 걸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 됐다.
천지회는 아무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긴긴 세월 동안 충성심과 능력을 인정받아야만 선택받을 수 있다.
상해방이나 공청단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암중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힘이 갖추어져 있기에 이런 제안도 가능했다.
특히 핵심 인재로 키우겠다는 건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내포했다.
지금 중국은 누가 봐도 슈건핑의 시대였다.
상해방과 공청단은 지는 해와 같았다.
태자당이라는 간판 뒤에 천지회 핵심 멤버들이 요직을 차지했다.
그들의 한마디에 15억 인구 생사여탈권이 즉시 결정됐다.
뿐만 아니라 국력이 강해진 만큼 미국과 대등한 발언권을 행사했다.
국제 사회에서 미국과 반목하는 일이 잦아졌다.
하나의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살 수 없는 법이다.
강해지기 위해 천지회는 지속적으로 인재를 육성했다.
장립은 그 계획안에서 선택됐다.
그의 주변에 단 한 사람의 일가친척도 없다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한국 여자와 결혼했다는 게 다소 걸렸지만 그 정도는 장립의 능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특히 쉽게 구할 수 없는 환단의 제조자.
그리고 월가의 신화가 된 로버트 라이언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
장태산이라는 한국인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인재이기도 했다.
물론 핵심 인재라 말을 하긴 했지만 앞으로의 행보를 더 지켜볼 생각이다.
측근에 두고 충성심과 능력을 진심으로 발휘하는지 확인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는 과감하게 제거할 수도 있다.
그만큼 밑그림이 다 그려져 있기 때문에 회에 가입하기를 제안할 수 있었다.
하나둘씩 권력을 맛보게 한 뒤 쉽게 조종하기 위한 고도의 술수였다.
장문량은 리장창과 눈을 맞추며 웃음을 교환했다.
장립의 홍콩 방문이 우연히 때를 같이 했지만 이는 분명 하늘이 준 기회였다.
“립……. 어서 대답하게나. 두 형님이 기다리지 않나.”
리장창이 뜸을 들이는 장립을 재촉했다.
돌아올 대답은 정해져 있지만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듯한 태도가 필요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확인의 시간도 가져야 했다.
“두 분 형님의 제안을…… 거절하겠습니다.”
“그래 고맙…… 뭐라고?”
“헛!”
장립의 거절 의사에 리장창과 장문량이 당황하며 화들짝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의외의 대답을 한 장립이 빙그레 웃었다.
‘이 자식 미친 거 아냐?’
리장창은 장립의 태도에 어이가 없어 눈만 깜빡였다.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이런 제안은 근래 누구도 받지 못한 특혜였다.
그런 제안을 거절한 장립.
“……거절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
장문량이 정신을 가다듬고 이유를 물었다.
“양심에 찔려서요.”
“???”
“그게 무슨 소린가?”
그의 시답잖은 이유를 듣고 어리둥절한 상태가 된 장문량과 리장창.
장립의 입을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
– 야, 양심이 찔려요? 형님이요?
이 귀신 말 더듬는 것 봐라!
진실을 말해도 다들 이렇게 못 믿는다.
내가 ‘장태산이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 상황.
진심 반 조미료 반 더해서 성심성의껏 답했다.
그런데도 귀신을 비롯해 눈앞의 두 사람 모두 나의 진심을 믿지 못했다.
직접 밝히는 진실도 못 믿는 이 시대가 참으로 안타깝다.
– 형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오! 진짜 양심에 찔려서 그런 거 아니잖아요. 나도 알고 하늘도 알고 신들도 다 아는데…….
됐고!
진지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이제는 연극을 끝내야 할 때가 임박했다.
“형님들께서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절 대해주심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잘못 대답했다가는 원수가 된다.
“말해보게…….”
리장창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뗐다.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눈빛이다.
“앞서 말했듯 양심 때문에 도저히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장택민 주석과 손이라도 잡았나?”
장문량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추측성 발언을 가감 없이 내뱉었다.
얄팍하기 그지없는 질문이다.
겨울날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장택민에게 나를 데려다 붙이다니.
“아닙니다.”
“그런데 왜?”
“형님들 보시기에 합당할지 모르나 양심이 허락지 않습니다. 지금껏 두 분 형님께 보여드린 게 없습니다.”
“아니 그건 차차…….”
“아닙니다. 중국몽을 위한 위대한 대사업에 성과도 없이 발을 걸칠 수는 없습니다. 장씨 조상님들이 노하실 겁니다.”
– 조상님? 와아아…… 씨.
귀신이 입을 떡 벌렸다.
내가 의도하고 있는 큰 그림을 이제야 눈치 챈 것 같다.
성이 장씨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립! 그 마음이면 충분하네. 그러니…….”
리장창의 안색이 돌아오며 다시 적극 권고를 시작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스스로 증명해 보인 뒤 입회를 신청하겠습니다!”
좀 더 당당하게 나갔다.
상대방의 의사를 거절하고 내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한 작업이다.
“음…….”
“허어.”
두 사람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고 입회하겠다는데 더 이상 말리면 그게 이상한 처사였다.
이쯤에서 쐐기가 필요했다.
“지금껏 그런 양심과 각오로 이 자리까지 올라왔습니다. 동생의 신념을 부디 두 형님께서 간곡히 이해해 주십시오.”
고개까지 숙이며 부탁 모드를 취했다.
이 정도 일로 고개 숙이는 건 일도 아니다.
– 진짜…… 존경합니다. 형님. 맛있는 먹잇감을 앞에 두고도 큰 그림을 위해 멀리 돌아갈 수 있는 용기! 멋집니다!
짝짝짝!
귀신이 박수를 쳤다.
짜식! 눈치가 점점 고단수다.
“알겠네……. 동생 뜻이 그렇다면 기다리겠네.”
장문량이 입장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하. 동생의 포부가 이 형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는 걸 깨달았네. 최대한 양심껏 자네의 능력을 증명하고 회에 들어오게나! 언제든 두 팔 벌려 환영하겠네!”
리장창이 만면에 웃음을 띠며 활짝 웃었다.
웃어?
여기서 회에 들어간다고 말하는 순간 그 소식이 장택민의 귀로 들어갈 것이다.
천지회 내부에 장택민이 심어놓은 끄나풀이 존재할 게 자명했다.
아직은 양쪽 손에 모두 떡을 쥐고 주물러야 한다.
괜히 일방을 택해 상대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잔을 들었다.
“형님들께 실망 드린 죄를 용서받기 위해 벌주 세 잔을 마시겠습니다!”
꿀꺽.
단숨에 잔을 비워냈다.
그리고 두 잔을 더 따라 연거푸 비워냈다.
오늘따라 술이 입에 쫙쫙 붙었다.
“됐네. 그 정도면 충분히 동생의 충심을 알고도 남았네.”
오래된 생강들 속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장문량은 나의 태도에 진심으로 탄복하는 눈치다.
이제는 슬슬 나도 떡밥을 던질 타이밍이다.
빈 잔을 내려놨다.
장문량과 리장창을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이 동생이 충성심을 증명할 수 있도록 두 형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부탁???”
“그게 뭔가?”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