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1
10장. 1차 개방 (2)
“마음에 드는 기종으로 하나씩 골라.”
“오, 오빠.”
“정말 골라도 돼? 아무거나?”
“아빠 엄마도 커플 폰으로 하나씩 택하세요. 정말…… 핸드폰이 순수하니 귀엽네요.”
2020년에는 장롱 깊숙한 곳에나 있을 골동품들이 최신형이라고 유리 장에서 뽐내고 있었다.
눈이 확 썩어갔다.
아직 스티븐 매튜 형이 제조한 아이펀이 나오려면 1년 정도 남았다.
2007년 6월 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시대의 발명품.
아이펀과 안드레이드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살던 나에게 구형 단말기는 원시인들 돌도끼처럼 보였다.
“주희야. 이거 예쁘다. 오정에서 새로 나온 아무콜 맞지?”
“와아! 이거 카메라가 130만 화소짜리야! 화음도 64비트라 정말 음질이 끝내줘. 내 친구가 자랑하던데 정말 좋아.”
64비트……, 화음……, 130만 화소라니.
내가 죽기 전 2000만 화소 듀얼 카메라가 기본이었다.
음질은 원음이 재생되는 수준이었다.
“예쁜 학생들이 볼 줄 아네. 이거 최신폰이야. 2.6인치 QVGA 화면이 시원하게 보이지? 영한사전하고 mp3 내장이라 어학 공부에도 그만이야.”
여자 직원이 입에 침을 튀겨가며 자랑했다.
전혀 감동이 없었다.
없이 살았지만 인공지능 비서가 탑재된 스마트폰을 사용했던 나였다.
2020년의 스마트폰은 사전이 아니라 동시통역도 가능했다.
“우앙! 이쁘다!”
“오빠 정말 사주는 거야?”
철없는 동생들이 새카맣고 큰 눈을 반짝였다.
귀여운 녀석들이다.
시대를 거슬러왔더니 과거의 어색함은 전혀 없었다.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
“오빠아! 고마워!!!”
“우리 오빠 최고!”
쌍둥이들이 양쪽 팔에 매달려 애교를 떨었다.
이런 맛에 이쁜이 여동생 오빠하는 거다.
“태산아. 애들한테 너무 비싼 거 아니냐? 아무리 인세를 받았다지만 그게 얼마나 된다고…….”
아버지가 걱정스러운지 날 말렸다.
오는 와중에 인터넷 연재 소설이 출판되어 인세를 받았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액수는 말하지 않았지만 인텔리였던 아버지가 작가들 인세를 모를 리 없었다.
아버지 때는 글 쓰면 굶어 죽는다는 말이 통용되는 사회였다.
“걱정 마세요. 엄마, 뭐하세요. 아빠와 커플 폰 장만하세요. 요즘 세상에 우리 집처럼 문명혜택을 멀리하고 사는 집도 없어요. 그리고 주아랑 주희도 다 컸는데 안전 때문에라도 핸드폰이 필요합니다.”
엄마를 보고 윙크를 날렸다.
내가 2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땡겼던 현장에 있던 엄마였다.
“그래요. 아들 덕분에 나도 휴대폰 하나 마련해야겠어요~.”
“여보…….”
“아들. 난 이게 마음에 든다. 엘자에서 나온 싸이먼이 튼튼하대. 당신도 같은 걸로 하죠? 커플로.”
오! 엄마가 강하게 나왔다.
아들을 믿고 저지르는 모습에 아빠가 당황했다.
당연히 엄마가 말릴 줄 아셨을 것이다.
“난 이 제품 이 색깔로 구입하겠습니다.
“어머, 손님 색감이 과격하시네요. 정말 빨간색으로 하실 거예요?”
“네.”
내가 고른 핸드폰은 당시 멋을 아는 이들이 택했던 카리텔에서 출시한 베이스라는 제품이었다.
스마트폰 시절을 살았던 내 눈에도 디자인이 촌스럽지 않았다.
두께도 얇아 들고 다니기도 편했다.
“꺄아! 우리 오빠 짱인데?”
“오빠? 정말 이 색깔로 할 거야???”
여동생들이 방방 뛰었다.
평소 집에서 어두컴컴하게 살았던 내가 과감한 색을 선택하자 놀라워했다.
“우리 아들 센스 있는데?”
엄마는 나를 절대 지지했다.
아버지는 아직도 이 사태를 짐작 못하고 침묵을 고수했다.
아마 마음이 괴로우실 것이다.
내가 구입한 비용이면 이번 달 농협 이자는 낼 수 있을 것이다.
“일시불로 계산하겠습니다.”
“약정하시면 더 싸게 가능해요. 3월부터 한시적으로 보조금 약정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3년 동안 사용하시면 요금이 훨씬 저렴하고 기계 값도 상당히 할인 됩니다.”
“아닙니다. 필요 없습니다. 기계 값은 선불로 계산하겠습니다.”
고개를 저었다.
빛 좋은 개살구 유혹이었다.
약정에 3년 동안 발목 잡히는 인생은 그만 살고 싶었다.
앞으로 내 인생에 할부는 없었다.
“일반요금제로 개통 부탁드립니다. 저와 동생들은 미성년자이니 부모님 명의로 개통하겠습니다.”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엄마 명의로 개설한 통장의 직불 카드를 내밀었다.
띠릭 띠릭 띠리릭.
“가입비는 면제해 드렸습니다. 기계 값 총액 217만 원 결제했습니다.”
“헉!”
“오, 오빠…….”
세상 물정에 어두운 중3 쌍둥이들이 헉 소리를 냈다.
동생들은 차비 포함해서 한 달 용돈이 7만 원이었다.
그들에게 2백만 원이 넘는 돈은 2년 치 용돈이었다.
“끙…….”
아버지가 말도 못하고 끙 소리를 냈다.
아들이 벌어서 지불한 돈이었다.
아버지 성품에 말은 못 하고 속에서 불이 활활 타오를 것이다.
아버지. 힘들 때는 힘들다고 말하세요.
그게 진짜 남자입니다.
“특별히 원하시는 번호 있으세요?”
“네. 저희 집 전화번호인 2732를 뒷자리 번호로 부탁합니다. 우리는…… 모두 가족이니까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 힘든 와중에도 아버지가 핸드폰을 장만해 주셨다.
그때 아버지가 말했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나와 쌍둥이가 결혼하기 전까지 뒷자리 번호는 모두 같아야 한다고 말이다.
***
“오빠, 점심도 쏠 거야?”
“그럼. 오늘은 오빠가 풀코스 준비했다.”
“오빠! 짱! 짱!”
먹는 거 앞에 동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외식이라는 걸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가끔 아버지나 어머니가 시내에 나갔다 올 때 고기를 사와 구워먹는 게 전부였다.
한창 클 때라 먹고 싶은 게 많을 여동생들이었다.
핸드폰 하나에 여동생들은 아빠를 버리고 내 양팔을 잡고 걸었다.
낯선 경험이었다.
과거 여자 친구들과 느낌이 달랐다.
피를 나눈 여동생들이라 더 살갑게 느껴졌다.
가족만이 줄 수 있는 따뜻한 행복감이었다.
그렇게 길을 걷다 난 걸음을 멈췄다.
“오빠 왜?”
“태산아 무슨 일 있니?”
주아와 어머니가 멈춰선 나에게 궁금증을 표했다.
“들어가시죠.”
“여, 여기에?”
“네. 다음 장소는 여깁니다.”
“태산아 여기는…….”
뒤따라오던 아버지가 또 당황하셨다.
당당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식구들이 조심스럽게 날 따라왔다.
이런 경험은 다들 처음이었다.
가족 사전에 새 차 구입은 드라마에 존재하는 환상일 뿐이다.
“어서 오십시오. 믿음과 안전의 삼용자동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우리가 들어서자 지켜보고 있던 중후한 인상의 딜러가 다가오며 인사했다.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SUV를 통프레임으로 제조하는 삼용 자동차.
차는 참 좋은데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망해서 중국과 인도 기업에 헐값에 넘어가는 불운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연대, 기한 자동차와 달리 뼈대가 튼튼했다.
연비 향상을 광고하며 차의 안전장치까지 빼버린 악덕 기업과는 차원이 달랐다.
가족의 안전을 위한다면 삼용이 국내 기업 중에는 그나마 믿을 만했다.
최소 사고가 나도 엔진룸이 차 안까지 치고 들어올 걱정은 없었다.
“아빠. 이 차 어때요?”
“…….”
오늘 가장으로서 권리를 빼앗긴 아버지는 눈만 떴다 감았다.
평생 중고차 한 대만이 전부였던 아버지는 삼용의 대표 대형 SUV인 락스톤 앞에서 말을 잃었다.
아버지 머리가 복잡해 보였다.
“엄마 보시기에는 어때요?”
“나? 크, 크고 튼튼해 보인다.”
엄마도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큰 눈만 껌벅이며 아빠의 눈치를 살폈다.
아버지는 멍하니 차만 바라봤다.
아버지도 남자였다.
튼튼하고 커다란 락스톤은 한때 대한민국 1프로만 타는 차라고 광고가 됐었다.
삼용의 위기로 가치가 많이 훼손됐지만 아직도 고급차였다.
“아드님이 제대로 차를 보실 줄 아십니다. 락스턴 2세대는 풀타임 4륜 구동 방식으로 빗길이나, 눈길에 대단히 안정적입니다. 그리고 삼용만의 통짜 프레임 덕분에 아주 튼튼하기도 합니다. 또한 체리만과 거의 같은 오디오와 편의 장치를 장착한 까닭에 편의장치도 만족스러울 것입니다.”
눈치를 살피던 영업사원이 나섰다.
이미 마음은 전해졌다.
가족을 위해서 안전보다 소중한 건 없다.
“주아와 주희 등교 때문에라도 이 차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애들아?”
쌍둥이들을 끌어들였다.
“어? 그, 그러면 좋겠지만…….”
“진짜 아빠가 매일 이 차로 데려다 주면 좋겠다!”
눈치 빠른 주아는 아빠와 나를 보며 갈등하는 사이 주희는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겉모습이 비슷한 쌍둥이라도 성격은 천양지차다.
“태산아. 이 차는 우리 집 형편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네가 잘 모르겠지만 아빠 상황이 썩 좋지 않다.”
아버지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러나 아버지는 몰랐다.
내가 우리 집 경제 상황을 미래에서 처절하게 경험하고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빠. 오늘부터 괜찮아질 겁니다. 걱정 마십시오.”
아버지 눈을 봤다.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는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었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셨다.
이제부터 우리 집 가장은 나였다.
다시 세울 장씨 가문 역사가 새로 쓰일 것이다.
‘아버지 저만 믿으십시오!’
과거 군대에 다녀와서는 아버지라 불렀다.
그러나 난 아빠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아무 때나 부를 수 없는 소중한 단어였다.
“재고 차 있죠?”
“네?”
“오늘 바로 출고 가능한 재고 차 있을 거 아닙니까. 안 되면 이 전시차도 괜찮습니다.”
훅 치고 들어가자 영업사원이 당황했다.
“아, 아니 그게…….”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바로 타고 갈 수 있게 만들어 주십시오. 기본 할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
영업사원이 나의 과감한 딜에 할 말을 잃었다.
돈 몇 푼 아끼고자 밀당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타는 아버지 차는 도로 위 흉기였다.
장 씨 패밀리 행복을 위해서는 가족 안전이 우선이었다.
“중고차 처분도 가능하죠?”
“네!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신다면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딜러가 매장이 떠나가라 큰소리를 냈다.
나이 어린 나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영업사원의 덕목인 돈 냄새를 잘 맡은 것 같았다.
“…….”
가족 모두 나를 보고 얼이 나갔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 내가 노련한 사회인처럼 행동하자 당황했다.
그들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왔다.
내가 무늬만 고삐리라는 걸 아무도 몰랐다.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이제부터 시작인데.’
아직 배고픈 쇼핑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돌아온 인간 장태산!
오늘 효자와 좋은 오빠 표본의 끝을 보여 줄 참이다.
# 11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