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160
1180장. 대비하다.(2)
‘도대체 무슨 소리야?’
임성철 회장은 갑자기 심장이 불안정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아들이 어쩌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도 이 정도 충격은 받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기업 총수로 살아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으레 몇 번씩은 검찰 포토존에 서게 마련이다.
국민과 기업은 일류를 향해 나아가지만 행정은 이류에 머물러 있었고 특히 정치는 삼류에서 더 발전하지 못했다.
물론 장단점이 존재하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정치가 삼류이다 보니 그나마 아직도 웬만한 일에 뇌물과 인맥이 통했다.
사업을 하다 보면 급하게 처리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것저것 꼼꼼하게 행정과 법의 자를 대고 따지다 보면 어렵게 얻은 기회를 놓치는 수가 많다.
그런 순간에 언론을 비롯해 정치권의 힘을 적당히 이용했다.
행정청의 빠른 허가가 결국 미래 산업의 성패를 좌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공짜 점심 같은 것은 없다.
일정 이상 규모를 이룬 기업이라면 대관 업무가 필수다.
각 기관이나 언론 인사들을 포섭해 따로 관리한다.
솔직히 오정은 대관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과거 임성철 회장도 정치권으로부터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다.
누구도 아닌 임성철 회장의 돈으로 선거를 치른 자가 도리어 뒤통수를 쳤다.
한마디로 돈 받아 처먹은 놈들이 뒤돌아서서 입을 씻었다.
이후 임성철 회장은 분노를 참으며 그룹 수뇌부를 통해 장학생을 키웠고 그들 중에 인재들을 선발했다.
오정과 후계자를 위한 장기 포석이었다.
결과는 곧 드러났다.
오정의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장학생들의 숫자도 그만큼 늘어났다.
명분도 좋았다.
직간접적으로 키워낸 인재들은 사회 곳곳에 자연스럽게 포진했다.
오정을 변호하다 잘려나가도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직업과 비용으로 충분히 밀어줬다.
대신 함부로 그 칼을 꺼내 휘두르지 않았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점점 더 오정의 위상이 높아졌다.
그쯤 되자 다들 알아서 기었다.
몇 마디 가볍게 던지는 것으로 일은 일사천리 해결됐다.
다만 주순자처럼 말이 안 통하는 작자가 나올 때가 문제였다.
임성철 회장도 골치 아파했던 주순자.
생각 짧은 멍청한 것들이 조근영을 요리하기 쉽다고 평가해 밀어붙였다.
조근영을 조종하던 주순자의 세상이 온 셈이다.
선출된 최고 권력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당연히 사방에 주순자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이 없게 됐다.
금세 국가 시스템 곳곳이 삐걱대기 시작했고 아귀가 맞지 않자 어긋났다.
윗물이 똥물이 되니 당연히 아랫물도 금방 썩어들어갔다.
최소한의 정치적 도덕심도 없는 이들은 공직 사회를 금방 오염시키고도 남았다.
아무리 상황이 그렇다 해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같이 꿀 빨던 언론과 기득권층은 부정부패가 넘치는 세상을 도리어 환영했다.
어차피 그들은 자신들의 배만 불리면 되는 부류다.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임성철 회장은 고심에 찬 표정으로 되물었다.
세계 대공황급 파장이라던 2008년 리먼 사태도 무사히 넘겼다.
연준과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의 무기한 발권으로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하게 공급됐다.
걱정됐던 인플레이션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다 할 재앙 없이 2016년을 맞이했다.
미국에 머물고 있었지만 임성철 회장은 여전히 세계 경제에 민감했다.
“블랙 스완은 하루아침에 찾아오는 법입니다.”
“장 회장의 시선은 너무 비관적이야. 대공황이 벌어졌던 2차 세계대전 당시와 상황이 달라. IT가 발달했어. 중앙은행들이 서로 협조하면 불길을 제압하는 것쯤은 가능해.”
장태산의 능력이 제아무리 대단하다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임성철 회장도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세계 경제 흐름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견고했다.
중국의 급성장으로 미국을 대체하면서 여전히 경제 엔진은 식지 않았다.
이렇다 할 변수도 적었다.
유가 흐름도 안정적이다.
과거와 달리 중동 원유에만 의지하지 않았다.
미국 곳곳에서 세일가스와 원유가 생산되고 있다.
러시아를 비롯해 여러 원유 생산국도 많다.
“회장님. 불은 어떻게 일어날까요?”
“불?”
갑작스러운 질문에 임성철 회장이 되물었다.
“당연히 산소가 필요하고 그다음 발화체, 연료가 필요하겠지.”
초등학생도 답할 수 있는 질문이다.
“똑똑하십니다.”
“놀리는 건 아니지?”
“어찌 감히 대한민국 재계 총회장님을 희롱하겠습니까.”
“그런데 왜 물어?”
“그럼 다른 조건으로 질문드리겠습니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시는 장태산.
‘농담은 아닌 것 같은데…….’
장태산과의 대화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농담 속에 진담을 담고 진담 속에 미래의 예견된 모습이 함축됐다.
그래서 귀를 열고 긴장한 채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
자신의 죽음까지도 지금의 삶으로 위장할 수 있는 대단한 능력자다.
죽은 귀신도 부렸다.
보고도 믿기 힘든 마법이라는 걸 사용할 수도 있다.
미래를 보는 식견 또한 대단했다.
다만 대공황이라는 말에는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임성철 회장이 지금껏 쌓아온 경제 지식과 여러모로 어긋나는 의견이다.
“말해보게.”
“버블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버블???”
임성철 회장은 마치 학생처럼 장태산의 말을 따라 곱씹었다.
“네.”
“장 회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어느 정도 알겠네. 유동성이 풍부하게 공급된 세계 자본이 버블의 매개체라 생각한 것 같은데 맞나?”
빙긋.
대답 대신 가볍게 미소 짓는 장태산.
‘한 수 가르쳐 주지.’
임성철 회장은 풍부한 경영 경험이 있다.
감히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넓은 경제 상식과 날카로운 판단력도 겸비했다.
“다들 버블이라는 말에 경기를 일으키지만 긍정적인 부분을 간과한 측면이 있어.”
꿀꺽.
임성철 회장도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장태산과의 본격적인 경제 지식 대결을 해볼 참이다.
흥미가 일었다.
이런 자리야말로 임성철 회장의 특기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주 무대였다.
그런 임성철 회장을 웃으며 지켜보는 장태산.
“2000년도 초반에 터진 IT 버블 기억하지? 그 당시 버블로 인해 대한민국은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네. 그때 개발된 기술로 대한민국은 세계를 선도하는 IT 대국이 됐지. 여러 기술 프로젝트에 풍부한 자금이 유입되면서 혁신을 촉진시켰어. 실리콘밸리 위상도 그때 확 커졌지.”
“부작용은 없었습니까?”
“당연히 있지. 세상에 장점만 존재하는 물질이나 법칙은 존재하지 않아.”
임성철 회장은 대형 투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과거 오정이 클 때도 그랬다.
다들 반도체에 투자한다고 했더니 관련된 이들 대부분이 거품을 물고 반대했다.
일본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으니 포기하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임성철 회장은 부친과 함께 밀어붙였다.
반도체에 들어가는 재료비는 꽤 저렴했다.
그러나 가공 과정을 거쳐 제모습을 갖추는 순간 고부가가치 상품이 됐다.
“IT 버블 당시 뭣 모르고 투자에 나선 일반인들이 된통 얻어터졌지. 하지만 누구를 탓하면 안 돼. 세상은 언제나 강자생존의 냉혹한 법칙에 의해 굴러가네. 자신의 무지로 환상을 좇아 투기한 대가는 스스로 짊어져야지.”
엘리트들이 세상을 주도한다고 생각하는 임성철 회장이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오정 또한 슈퍼 엘리트들 덕분에 오늘에 이르렀다.
“인정합니다.”
장태산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투자가는 버블을 두려워하면 안 돼. 피가 강처럼 흐르는 곳도 이득이 있다면 웃으면서 건너갈 수 있어야 해.”
과거 임성철 회장의 조부가 남긴 가르침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피가 차가워져야만 한다고 수시로 언급했다.
“하지만…… 대공황은 다릅니다.”
“자꾸 대공황을 언급하는데 이유가 뭔가? 시장경제는 버블로 파이를 키워가는 전쟁터야.”
임성철 회장은 전과 달리 직구 질문을 택했다.
새로운 육체를 얻으면서 피가 뜨거워졌다.
“세상이 삭막해집니다.”
“삭막?”
“곳곳에서 슬픈 울음이 터질 겁니다. 성공을 움켜쥔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건……. 우주가 원하는 도가 아닙니다.”
장태산의 발언치고 꽤 감성적이다.
“으음…….”
임성철 회장이 낮게 신음을 흘렸다.
장태산이 말하는 바를 금방 알아차렸다.
조금 전 자신이 말했던 입장은 냉혹한 자산가의 대변일 뿐이다.
하지만 장태산은 그 반대편의 입장에서 그들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회장님. 만약 제가 누구를 애민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회장임이 계셨을까요?”
무심한 듯 툭 던진 질문.
“…….”
임성철 회장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장태산이 자신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특혜를 준 것만은 사실이다.
신도 질투할 새 생명의 부여.
“감사하고 나눠야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 있습니다. 인간들의 욕망을 부추겨 비이성적 과열로 미래를 대공황이라는 사채업자에게 저당 잡히면……. 조상님들이 얼마나 슬퍼할까요.”
장태산의 입에서 흘러나온 우주와 조상이라는 단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임성철 회장의 심장에 박혀 들었다.
과거에는 속 좁게 해석됐던 말이 분명하다.
승리를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전투를 치러야 했다.
이제는 돌아볼 나이도 됐건만 아직도 임성철 회장은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미안하네.”
바로 사과를 건넸다.
“저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버블은 누군가가 기획한 잘못된 게임의 법칙이니까요.”
“게임의 법칙???”
임성철 회장은 장태산이 한 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장태산보다 긴 세월을 살아왔지만 그가 보는 시야만큼 넓게 볼 수 없었다.
“무서운 상대입니다. 그래서 대비해야 합니다. 새로운 대공황은 자칫 인류 파멸의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장태산의 눈빛에 담긴, 누군가를 향한 강렬한 적의.
꿀꺽.
전혀 이해하지 못한 임성철 회장은 부끄러운 마음에 한 번 더 와인을 홀짝였다.
“도와주실 거죠?”
“내가 도움이 되나?”
“물론입니다. 지금처럼 옆에 계시면 됩니다.”
“걱정 말게. 어차피 내 운명은 장 회장에게 저당 잡혀 있으니까.”
저당 잡혀 있다는 사실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세상을 향해 대 포부를 보이는 영웅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과거와는 생경하게 다른 전쟁터.
기꺼이 장태산의 오른팔이 될 것이다.
***
임성철 회장도 떠났다.
나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지만 가정이 있는 남자다.
홀로 남은 와이너리.
창밖에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고용인들도 모두 휴식을 취하러 갔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온.
감정은 복잡했다.
이번 중국행을 통해 얻은 게 많다.
신계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복잡하게 돌아갔다.
조상들과 수십억 지구 후손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있었다.
“버블이 점점 커지고 있어. 기존 경제 상식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말이야.”
경제 석학들의 지식이나 예언을 비웃는 사건이 사방에서 태동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주식시장이 커지고, 반대로 주식시장이 활황이면 부동산 열기가 식어야 하건만 무슨 일인지 동시에 타올랐다.
뿐만 아니라 돈이 쉬지 않고 무한정 공급됐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결코 그런 기미가 없다.
도리어 디플레이션 경고 가능성이 점쳐졌다.
구멍 난 장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미래가 변하고 있어.”
가장 두려워하던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다.
2020년 내가 죽기 전까지 있었던 사건들이 축소되거나 새로운 일들로 대체됐다.
대표적인 문제가 사드 배치 결정.
과거였다면 지금쯤 이 문제로 무척 시끄러워야 정상이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조용한 만큼 불길함이 크게 밀려왔다.
아직까지 선물 시장은 비슷하게 굴러가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었다.
단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미래를 경험하고 왔다 해도 이런 판에서는 나 역시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다.
나비효과로 치부하기에는 두려움의 무게가 달랐다.
특히 과감한 투자에 조심스러워졌다.
세상 부의 반절 이상을 소유한 차일드 가문의 당대 가주도 목숨을 잃을 뻔했다.
보이지 않는 적들의 출현.
대비하지 않으면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을지도 모른다.
띠리리리리리리.
그때 스마트폰이 정적을 깨트렸다.
띠릭.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