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22
121장. 공대에서 (1)
“회, 회장님. 아침 시장부터 폭락입니다.”
주가 모니터를 보고 있던 이남규 금융팀장이 회장에게 보고를 했다.
“듣기 싫어!”
오승혁 회장의 고함이 터졌다.
“다들 뭐야?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기만 할 거야? 그동안 편하게 월급 받아 처먹었으면 대책을 내놓으란 말이야! 대책을!”
안아 그룹 본사 회장 직속 회의실에 긴장감이 돌았다.
아침 일찍 그룹 중요 사장단들과 실장들이 모였다.
분위기는 살벌했다.
얼마 전부터 시작된 외국계 투자회사들의 무차별 공매도로 안아 그룹 주가는 최고가 대비 만에 반 토막이 났다.
방송에서는 부도덕한 회장 일가의 도덕성에 대해 연일 두들겼다.
돈을 뿌려도 몇 개 언론사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안아가 흔들리자 다른 그룹들이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들었다.
특히 타 그룹들과 유착된 언론사들이 안아 그룹을 타깃으로 삼았다.
본능적으로 안아 그룹이 대위기에 처한 걸 알았다.
그룹 하나가 분열되면 잔치가 벌어진다.
그것도 공룡급 10대 그룹에 든 기업일 때는 잔칫상이 더 컸다.
이미 언론, 정치권이 계산을 맞췄을 수도 있었다.
그걸 잘 아는 오승혁 회장은 속이 바짝 탔다.
‘도대체 왜 이렇게 꼬인 거야!’
30대에 회장에 취임해 그룹을 몇 배로 키웠다.
승승장구 거칠 것 없는 승부사로 살아왔다.
대웅조선까지 품으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9대 그룹이 될 수 있었다.
10대 그룹부터는 기업을 한 계단 상승시키는 게 정말 어려웠다.
그런데 갑자기 스텝이 꼬였다. 예상치 못한 위기다.
설상가상의 상황이 됐다.
“최 사장. 생명에서 더 지원 못 해?”
“……회장님. 이미 지원 한도를 넘었습니다. 금융감독위원회에서 경고가 들어왔습니다. 보상비 지급이 늦다고 민원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안아 그룹이 얼마 전 인수한 안아생명 사장이 진땀을 흘렸다.
법에서 정한 한도를 넘어 모(母) 그룹에 지원됐다.
검찰이 털면 바로 업무상 배임과 횡령은 피할 길이 없었다.
“다른 사업장은?”
상장, 비상장 회사 할 것 없이 사장들 모두 고개를 숙였다.
순환출자 구조였기에 한 쪽의 위기는 다른 곳의 위기로 옮겨졌다.
주가가 폭락한 상태라 자금 회전이 쉽지 않았다.
이미 여유자금은 모 그룹에 빨렸다.
담보물들은 은행이나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았다.
“이 팀장, 여유자금 얼마나 남았어?”
“2,000억 조금 넘습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어?”
“결제대금을 어음으로 막고 있지만……. 한 달 버티기 힘듭니다.”
“야! 도대체 자금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대웅조선 이행보증금으로 들어간 자금이 컸습니다. 주식 안정자금으로 투입된 자금도 3,000억입니다.”
오 회장도 알고 있지만 괜히 화를 냈다.
오승혁 회장은 가슴이 답답하고 터질 것 같았다.
이행보증금으로 생돈이 날아가게 생겼다.
이 상황이면 인수는 불가능했다.
‘개새끼들……. 내 전화를 안 받아?’
은행권 대출도 막혔다.
대출한도가 꽉 찼다.
여론이 좋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금융권 대출 내역까지 까졌다.
당선은 됐지만 40대 이하 네티즌들로부터 신정권은 견제를 받았다.
이것저것 인수위 시절부터 말이 많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안아 그룹을 지원했다가는 정권 초기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게 뻔했다.
오 회장의 돈을 처먹은 정권 실세들이 전화를 피하고 있었다.
“명동은 가봤어?”
“……. 담보를 더 제공하라고 합니다.”
“아! X발 새끼들! 주식 다 집어넣었잖아!”
대기업도 개인의 파산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은행권 대출이 막히면 제2금융권, 그리고 마지막 종착역은 사채에 손을 대는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정치권과 손을 잡고 법정관리나 여러 가지 특혜를 받아 재기를 도모할 수 있었다.
안아도 그런 과정을 거칠 게 뻔했다.
‘뭔가 있다!’
오승혁의 참모인 비서실장 유병석은 꺼림칙한 기분을 계속 느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게 틀림없다.
외국계 자본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가는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유독 안아 그룹 계열사 주식만 무차별 공매도 대상이 됐다.
오동성의 미친 짓과 결합해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자랑했다.
오 회장의 과거 악행도 한몫 거들었다.
그러나 정도가 심했다.
전방위적인 압박.
‘설마?’
유병석 실장은 찜찜하게 한 녀석의 이름이 계속 떠올랐다.
그 녀석과 얽힌 이유로 계속 악재가 발생했다.
‘주식을 비롯해 현금성 자산만 엄청나다. 그 녀석이라면…….’
의심은 갔지만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제 갓 대학생이 된 녀석이다.
해외 사모펀드까지 움직여 대기업을 공격할 능력은 없다.
외국에 엄청난 비자금이 있을 리도 없다.
미국계 자본은 대부분 미국 정재계와 연결되어 있다.
어린 꼬마가 수작을 부리기에는 판이 컸다.
“다들 뭣들 해! 넋 놓고 있을 거야? 은행장들 만나고 더 뽑을 수 있는 마지막까지 자금 다 뽑아! 이번만 버티면 된다. 이번만!”
회장의 호통이 쩌렁쩌렁 울렸다.
기계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황급히 도망치듯 사장들이 몸을 뺐다.
이미 반쯤 혼이 나간 상태였다.
* * *
“세상에……. 내가 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니……. 내가 뭐라고……. 미친!”
생각만 해도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어젯밤 사태는 아직도 이해 불가능했다.
악신의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를 선신의 카르마 포인트로 교환하겠냐는 소리!
블라드미르 녀석은 필사적이었다.
“형, 아니 형님! 저 잘 할게요! 여기 진짜 악마들만 살아요. 저 진짜 신답게 살고 싶어요!”
악신이 눈물 콧물 질질 흘렸다.
블라드미르가 무릎 꿇고 다가와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살았을 때 착하게 살지 못한 죗값이 상당했다.
하지만 악업이 블라드미르 잘못만도 아니다.
부모가 일찍 죽고 냉정한 러시아 정보국 손에서 길러졌다.
애초 인격형성에 문제가 있던 환경인데 아이가 무슨 잘못일까.
– 교환하시겠습니까?
재차 교환하겠냐는 질문이 들렸다.
운명의 순간.
내가 소유한 카르마 포인트로 블라드미르를 선신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뚝뚝.
악신 블라드미르가 눈물을 흘렸다.
간절한 눈물을 보았다.
고민은 그때 끝났다.
난 보기보다 마음 약한 남자다.
“교환……. 하겠습니다.”
– 소유하고 있는 선한 카르마 포인트가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와 교환되었습니다.
파아아앗!
갑자기 공간에 엄청난 빛 폭풍이 일었다.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어 황급히 눈을 감았다.
신들이 부를 때보다 뭔가 더 화끈했다.
“아!”
그때 귀에 들려오는 환희에 찬 탄성.
재빨리 눈을 떴다.
“여, 여기는?”
순식간에 공간이 바뀌었다.
칙칙하던 공기 대신 상쾌한 공기가 맡아졌다.
“으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블라드미르가 미친 듯이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전원주택이라니……. 순간적으로 악신이 선신이 된다는 게 정말이었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악신계에서 선신계로 즉시 이동 당했다.
뭐가 그렇게 쉬운지.
눈앞에 나타난 공간은 러시아 시골 목조 전원주택이었다.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초라하지 않은 평범한 주택은 마당에 잔디가 깔렸다.
블라드미르 녀석, 생각보다 더 순진했다.
내가 녀석에게 해커질 해서 번 돈으로 뭘 하고 싶었는지 물었다.
잔디마당을 뒹굴며 녀석은 비밀스럽게 웃었다.
나에게도 아직 말 못할 사연이 있는 듯했다.
그런 녀석의 미소가 순수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푸틴 형님 계좌를 노렸던 극악한 해커로 보이지는 않았다.
죄인이라는 인식도 거의 없었다.
블라드미르에게는 그냥 숫자들이 왔다 갔다 했을 뿐이다.
전원주택에 나무도 몇 그루 심어주고, 등 같은 자잘한 소품들도 몇 개 보태줬다.
블라드미르는 작은 선물들에 환호성을 질렀다.
아무것도 없어 빵도 못 먹던 녀석에게 그것도 큰 사치였다.
선신으로 탈바꿈시키고도 포인트가 남았다.
다달이 보육원에 기부하고 받은 포인트가 쏠쏠했다.
해외 직원들 취직을 결정할 때마다 포인트를 벌었다.
누군가에게 맛있는 걸 대접할 때도 포인트는 날 배신하지 않았다.
“회귀가 게임도 아니고 레벨업은 또 뭐야? 3단계 레벨업이 그렇게 쉬워?”
블라드미르가 선신이 되면서 레벨업을 강제로 당했다.
그것도 3단계.
선신들과 악신들이 날 강력하게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경고도 함께 받았다.
“카르마 포인트 관리 통장 없나? 이렇게 막 쓰다 거지꼴 못 면할 것 같은데.”
내가 쌓은 선업을 남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 마음 약해져 사방에 뿌리면 죽어서 고생할 것 같았다.
저벅저벅.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발은 자연스럽게 공대로 향했다.
자하연과 중앙도서관을 지나쳐 갔다.
아침 음대 수업도 클리어했다.
음대 3학년 전공에 개설된 바이올린 소나타.
과정은 똑같았다.
중고로 나온 괜찮은 바이올린을 5,000만 원에 구입했다.
35억씩 가는 올드 명품은 아니지만, 소리가 꽤 들을 만했다.
그걸 들고 음대에 갔다.
내 이름을 아직 듣지 못한 음대 기악과 바이올린 전공 교수가 사뿐하게 날 밟았다.
예술을 우습게 보는 비천한 법대생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
가뿐하게 타르티니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로 응대했다.
믿지 못하는 눈치여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24개 카프리스를 선택적으로 들려줬다.
교수가 넋을 잃었다.
노바 형님은 진짜 천재다.
피아노부터 시작해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전부 다뤘다.
음악의 신을 불러내지 않아도 교수 정도는 끝장낼 정도는 됐다.
그렇게 음대 수업을 마스터하고 수요일 오후 수업을 받기 위해 걸었다.
차를 타도 됐지만 학교를 흠뻑 느끼고 싶었다.
학교는 진짜 넓었다.
보기도 심히 좋았다.
하루가 다르게 봄기운이 오르고 있었다.
관악산에서부터 시작된 생기가 학교를 감돌았다.
“헐…….”
“저, 저 남자 뭐야?”
“학생 맞아?”
“거짓말이야……. 우리 학교에 저런 죽여주는 남자가 있을 리 없어.”
그래 바로 이 맛이다.
어깨에 노트북이 든 백팩을 멨다.
날이 좋았다.
근육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청바지에 가벼운 셔츠, 연푸른 카디건, 운동화로 코디했다.
법대생이지만 난 탈 법대생이다.
주 수업 장소인 예술대에서도 먹혔다.
예술대생들 패션 감각은 2008년이나 2020년이나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유행을 따라가지 않는 크리에이티브 정신이 넘쳤다.
그곳에서도 내 코디는 알아줬다.
2020년대를 살다 온 나이기에 유행의 흐름이 한눈에 보였다.
지나가던 여학생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날 봤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곳도 다른 곳과 같은 세상의 일부다.
과거 나에게 한국대는 공부 잘하는 괴물들만 살 거라 여겨지던 상상 속의 판타지 세계였다.
막상 누려보니 아니다.
예쁜 스커트에 곱게 화장한 여학생들이 가득하다.
멋을 낸 수컷들도 곳곳에 보였다.
청춘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캠퍼스를 달궜다.
지난 생에 누리지 못했던 낭만 대학.
싱그럽게 날 반겼다.
“어둠의 오라가 가득 찼네. 쯧.”
하지만 공대에 도착하는 순간 새카만 기운에 흠칫했다.
공대의 저주는 한국대도 피하지 못했다.
연구실에서 젊은 생을 수없이 불태워버린 수컷들의 페로몬이 공대 건물을 코팅했다.
악신계와 비교될 만한 칙칙한 기운이 가득 찼다.
공대 건물도 학교 안측에 위치했다.
인문대나 예술대 건물과 가까웠다면 좀 더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대생에서 그런 축복은 허락되지 않았다.
지난 생에 내가 다녔던 지방대도 공대는 이랬다.
고개를 저으며 공대 건물에 들어섰다.
공대에서 개설된 교양과목 또한 딱히 학생들이 좋아할 과목들이 아니다.
“302호 강의실이라고 했지.”
여러 과가 혼재한 복잡한 공과대 302호실.
캔커피 하나 뽑아들고 강의실 앞에 섰다.
스르르륵.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커피네? 고맙다.”
갑자기 낯선 손이 내 커피를 빠르게 채갔다.
# 122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