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21
120장. 악신 블라드미르
곰팡이 때가 득실거리는 지하 공간이 보였다.
냄새는 안 났지만 보기만 해도 더럽다는 생각이 팍 들었다.
딱 버려진 지하창고다.
그리고 날 소환한 부쉬코프 블라드미르 드미트리비치가 당황한 채 날 봤다.
뭔 이런 상거지가……, 다 있어!
아무리 악신이라지만 신은 신이다.
악신이라 많은 기대 안 했다.
굵은 금목걸이나 팔찌를 떡칠하고 바느질로 얼굴 문신해도 이해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악신은……, 거지왕이다.
의류 폐기물에서 옷을 훔쳐 입고 나온 것 같다.
가죽옷은 조각조각 기워졌다.
노숙자에게 거저 줘도 안 입을 정도로 엉망이다.
어둠 속에서는 멋있어 보이는 실루엣도 거짓이다.
머리는 떡이 졌고 푸른 눈동자는 잔뜩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한 달은 굶은 듯 퀭한 눈빛과 깡마른 피부는 신인지 난민인지 구별이 안 갔다.
부러질 것 같은 낡은 의자 위에 앉아 있어 몰랐지만 키도 작았다.
그리고…….
“너 몇 살이세요?”
어려 보였다.
그것도 나보다 훨씬 나이가 적어보였다.
“나, 난 신이다!”
“인간이 대부분 죽으면 신이 될 자격이 주어지니까. 패스!”
“신의 벌이 임할 것이다!”
어쭈, 개긴다.
“한 번 죽어봤으니까 패스!”
“…….”
블라드미르가 눈만 껌벅였다.
처음 개폼 잡고 날 공포로 몰아넣었던 악신은 안 보였다.
뚜벅뚜벅 자칭 악신에게 다가갔다.
“오지 마…… 세요!”
잔뜩 겁에 질린 블라드미르.
씨익 웃고 걸어가는 내가 더 악신 같아 보였나 보다.
그냥 바로 요자가 붙었다.
“왜 이래! 누가 때려? 너 몇 살 때 죽었어? 보니까 신삥이네. 그치?”
블라드미르 앞에서 멈췄다.
씨익.
악신보다 더 사악하게 웃었다.
이거 은근히 체질에 맞았다.
“몇 살?”
블라드미르의 눈을 직시하며 다시 한 번 물었다.
“1…… 8요.”
“뭐? 18?”
헐. 나이도 어린놈도 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어둠의 신들은 나이 제한 없냐?”
“네……, 그런 것 같아요.”
“언제 죽었냐?”
“한 달 전에요.”
“한 달? 완전 초짜네.”
“네.”
신계 호적에 잉크도 안 마른 놈이 감히 날 협박했다.
착한 형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려 주고 싶었다.
“무슨 잘못을 했는데 여기로 왔냐? 사람 죽였어?”
자연스럽게 녀석이 앉아 있던 자리로 다가갔다.
예의 바른 악신인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자리에 내가 앉았다.
주객이 완벽하게 전도됐다.
“아니요. 저 개미 한 마리 못 죽여요.”
고개를 숙이는 블라드미르.
내가 봐도 법 없이 살 녀석 같았다.
“그런데 왜?”
“저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FSB 소속 해커였을 때 타인 계좌를 해킹한 적도 있고, 첩보요원 명단도 빼앗아 넘긴 적도 많았어요. 그래서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가 많이 쌓였어요.”
“그래? 나쁜 짓 많이 했네.”
“죄송합니다.”
블라드미르는 서서 고개를 숙였다.
러시아인 치고는 키가 진짜 작았다.
딱 봐도 170센티미터 정도다.
“죄송할 건 없고.”
나에게 죄송할 일이 아니다.
살아서 직접적으로 타인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아도 이렇게 벌 받는 것 같다.
보이스피싱 조직원도 나중에 이 꼴 날 게 확실했다.
가장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을 등 처먹는 놈들은 악질 중의 악질이다.
병원비, 학자금, 대출금을 사기 처먹는 놈들.
지옥도 아깝다.
그런데 블라드미르는 악신이라고 하기에는 기세가 너무 약했다.
“차라리 지옥 가는 게 낫지 않냐?”
“지옥도 아무나 가는 게 아니래요.”
“누가?”
“몰라요. 그냥 죽었는데 누가 그렇게 말했어요.”
“왜 죽었어?”
“대, 대통령 비밀계좌를 심심해서 열었는데 그게 발각됐어요.”
“대통령? 푸틴 아저씨 거?”
“네.”
와! 이 자식 간도 크다.
자기 대빵 계좌를 열었으니 불곰 대장 아저씨가 가만있지 않았을 거다.
“삥땅 쳤냐?”
“…… 조금요.”
“얼마?”
“겨우 5억 달러요.”
이 새끼…… 위험하다.
5억 달러가 겨우란다.
“푼돈 아니다. 그 아저씨 그거 모으려고 뼈 빠지게 일한다.”
“비자금이 2,000억 달러가 넘게 있는데 너무 쪼잔해요.”
“그, 그래 쪼잔하다. 그 아저씨.”
2008년 러시아 외화보유액이 4,000억 달러 정도 된다.
그것보다 반절 정도가 푸틴 아저씨 비상 주머니다.
“왜 걸렸어? 해커가 그 정도도 못 감춰?”
“……, 같은 소속 친구 놈이 찔렀어요. 알고 봤더니 그 녀석이……, FSB에서 파견한 스파이였어요. 나쁜 놈. 해외 계좌에 1억 달러나 꽂아줬는데.”
블라드미르가 참 우정이 깊다.
친구 빵값으로 1억 달러나 쏴줬다.
나보다 훨씬 통이 컸다.
“그 돈 가져다 뭐 했냐? 너 같은 인재 막 죽이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선물에 투자했는데. 깡통 됐어요.”
“뭐야? 선물 투자?”
“캐나다 달러 FX 마진에 몽땅 밀어 넣었는데 어떤 새끼가 제가 팔기 전에 정리했어요. 그래서 덤탱이 써가지고 꼼쳐 놓았던 30억 달러가 쪽 빨렸어요.”
“해, 해킹은 안 했어?”
“거래가 실시간이라 해킹할 수가 없어요. 시간만 있었다면 한 번 해보고 싶긴 한데…….”
“!!!”
갑자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충격이 밀려왔다.
내가 맛있게 꿀 빨던 캐나다 달러 연동 FX 마진.
그 돈 중 일부가 이 녀석의 비상금인 것 같다.
“최…… 최근이었겠네?”
묻는데 마음이 찔렸다.
애가 목숨 팔아 번 돈 내가 다 빤 것 같다.
“얼마 안 됐어요. 돈이 모자라서 대통령 계좌 또 털다가 당했어요. 죽고 나서 알고 봤더니 다른 국가 정보요원들이 저 때문에 열 많이 받았더라고요. 그 사람들 비밀계좌도 상당수 털었거든요.”
“응…… 그랬구나.”
이 자식 악신 될 자격 충분하다.
푸틴 아저씨 계좌뿐만 아니라 타국 정보원들의 주머니도 털었던 것 같다.
그 대가로 희생되었다.
위험한 꼬맹이를 죽여 달라는 각국 정보국 간의 빅딜이 성사된 것이다.
“이 담배하고 라이터는 뭐냐? 니 거야?”
말을 돌렸다.
“아버지 유품요. 악신 된 혜택으로 뭘 원하느냐 해서 이거 골랐어요.”
아버지 유품을 신계로 가져온 녀석이 특이하다.
책상에는 오래된 지포 라이터와 시가 몇 개가 보였다.
추억의 아이템 같다.
“아버지는?”
“……, 네 살 때 돌아가셨어요. 핵물리학 교수셨는데…… 정체 모를 암살조직에 암살당했어요. 엄마도 그때 같이 차를 타고 가시다가…….”
불쌍한 녀석이다.
“어, 어디서 컸어?”
“국가 소속 탁아소요. 거기서 영재 판정받아 7살 때부터 전문 교육받았어요.”
“아!”
집안 머리가 엄청 좋은 것 같다.
아버지는 핵물리학자에 아들은 천재 해커다.
“담배 펴?”
“아니요.”
“그런데 조금 전에는 왜 폈어?”
“FSB에 계시는 아저씨들이 그랬어요. 고문의 첫 번째 방법이 어둠 속에서 공포를 느끼게 만들면 된대요. 그래서 위협적으로 보이려고 담배까지 폈는데…….”
뒷말은 알아서 끊었다.
참 애한테 좋은 것 가르쳤다.
“프로그래밍 잘 하지?”
기초 조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사업 이야기로 들어갔다.
녀석이 무미건조하게 과거를 말했다.
부모도 잃고 기계적으로 교육을 받은 것 같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 유품을 챙기려던 것으로 보아 심성은 착했다.
하지만 착해도 악신이 된다.
“네! 특수 알고리즘 개발해 각종 프로그래밍 하는 게 제 취미예요. 개발 툴도 모두 마스터했고요. 몇 개는 직접 만들기도 했어요. 러시아 중요기관 방화벽 제가 다 짰어요. 헤헤.”
녀석이 소년처럼 맑게 웃었다.
진짜 천재인 것 같다.
이런 녀석 목숨을 빼앗은 러시아가 병신 인증한 거다.
무서워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러시아 쪽 정부기관 방화벽을 짠 녀석이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게 없다.
대통령 쌈짓돈도 털던 녀석은 누가 봐도 폭탄이다.
마음에 겸손함을 담았다.
회귀해서 능력을 얻기 전에도 이런 괴물들과 같은 세상을 살았다.
세상에 넓고 미친 능력자들도 그만큼 많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 블라드미르 같은 천재들이 활동하고 있다.
“블라드미르야.”
“네…….”
“간단하게 미르라고 부르마.”
“마음대로 하세요.”
녀석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밥은 먹었어?”
“…… 포인트가 없어서 굶었어요.”
“밖에 다른 신들 없어?”
“여기 엄청 무서워요! 어설프게 보이면 바로 끌려가서 카르마 포인트 강탈당해요. 사채 썼다가는 영혼이 녹을 때까지 앵벌이 한대요.”
“여, 여기 신계 아냐?”
“악신들이 사는 곳이잖아요. 힘 좋은 놈이 왕초예요.”
“그렇구나…….”
생각만으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회귀해서 괜히 악한 생각 품었다가 악신들과 처음 계약을 맺었다면 인생 골로 갈 뻔했다.
선신들은 그래도 정당하게 거래라도 한다.
하지만 악신들은 딱 보니 주먹으로 패고 시작하는 것 같다.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는 어떻게 버는 거야?”
“신의 능력을 이용해 어둠의 힘을 이용하려는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면 돼요.”
“그런데 왜 안 벌었어? 너 정도면 크게 한 탕 할 것 같은데?”
세상에 널린 게 해커다.
그들이 하루에 얼마나 많은 돈을 훔치는지 아무도 몰랐다.
“양심에 찔려서요. 그것 때문에 죽었는데 또 그 짓 하는 게 영 걸려요. 그래서 굶고 기다렸어요. 나를 불러 줄 착한 인간을요.”
화이트 해커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블라드미르가 악신이라는 것.
어둠의 카르마를 보증금으로 내고 블라드미르를 원하는 화이트 해커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나 같은 특별한 인간 빼고.
“내 카르마 포인트 받아서 어디에 쓰려고? 설마 더 큰 악신이 되려고 한 거야?”
중요한 순간이다.
블라드미르 눈을 똑바로 봤다.
“형……, 저 포인트 좀 주세요!”
녀석이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흐윽, 형! 나 이 지옥 같은 곳 싫어요! 포인트로 저 선신으로 만들어 주세요! 혀여여영!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이해 못 할 순간.
– 악신의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를 선한 카르마 포인트로 교환하시겠습니까?
귓가에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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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