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7
16장. 그들만의 착각
타닥타닥.
노트북 자판 위로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띠링 띠링 띠링.
매수했던 주식들이 연속으로 매도가 됐다.
“완전 꿀이네. 꿀.”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니, 공식적으로 폭력에 인한 뇌진탕 8주 진단이 나와 학교에 가지 않을 자유를 얻었다.
특실을 사용했다.
돈 벌어서 뭐하겠나.
이럴 때 제대로 돈의 위용을 즐겼다.
집에 있는 것보다 엄청 편했다.
아직 무더운 날씨였기에 온도와 습도가 최적화된 특실은 호텔 저리가라였다.
부모님이 이것저것 맛있는 걸 가져왔다.
여동생들도 오빠를 끔찍이 여겼다.
친구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찾아와 냉장고만 비웠다.
담임 선생님도 찾아와 미안하다 말했다.
난 부족한 공부를 위해 문제지를 구입하거나 인터넷 강의를 통해 빠르게 진도를 뺐다.
그동안 감당 안 됐던 국어와 영어, 수학 등이 정복되어갔다.
머리 활성화가 장난 아니었다.
뇌진탕이었기에 특별한 약 처방도 없었다.
절대안정이라는 안내 문구가 병실 문에 걸려있어서 갑작스레 누군가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나는 휴식을 핑계로 이곳에서 마음껏 내공 수련도 했다.
더할 나위 없이 나를 위해 세팅된 공간이었다.
그리고 난 그 절대안정 속에서 절대 안정적인 도박을 벌였다.
물들어 올 때 배 띄우는 건 기본 상식이다.
“돈이 돈을 뺨 때려서 데려오네. 후우.”
오늘 하루 수익만 7억이 넘었다.
미수놀이는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나비효과를 일으키지 않도록 적절하게 작업주들을 따먹었다.
코스닥 중소형주 작업주에는 적정한 금액으로 들어갔다.
금액은 5억 정도였다.
나머지 자본으로 이제 코스피를 노렸다.
전장판을 옮겼다.
6월 달에 1,400대를 넘던 코스피 지수가 1,200대로 급락했다가 천천히 회복하는 시점이었다.
앞으로 2007년 11월 1980.77 지수까지 쭉 오를 일만 남았다.
주식으로 돈이 몰리는 시기였다.
부동산 투기 단속으로 남아도는 현금이 주식시장의 활황을 이끌었다.
스스슥.
집에서 가져온 나만의 노트에 투자패턴을 입력했다.
대세 상승장이었다.
작업하기 딱 좋은 계절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상한가가 나오는 시기였다.
얼마 전부터 몰빵은 없었다.
바쁘더라고 계획적으로 하루에 한 번씩 상한가를 노리고 미수금을 투자했다가 회수하기 시작했다.
똑똑.
“누구십니까?”
“조윤태 변호사입니다.”
“들어오세요.”
드르르륵 가볍게 문을 열고 중후한 오십 대 초반의 변호사가 들어와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변호사를 선임했다.
홍성현 아버지가 나를 구속시키기 위해 별짓을 다했다.
박동석 경위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퇴학이나 정학을 놓고 시끄럽다는 소식을 애들을 통해 들었다.
놈이 자랑하던 아버지 친구인 행정실장이 벌이는 짓거리였다.
바로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대형 로펌을 찾아 의뢰했다.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삼우 로펌.
돈으로 안 되는 것은 없었다.
불과 얼마 전에 내가 살고 있는 도를 관장했던 지방지검의 퇴임한 차장검사 출신이 내 담당 변호사로 배정됐다. 전직 1급 공무원 신분이었다.
“몸은 어떻습니까?”
“에이, 변호사님. 이제 고등학생한테 존칭 좀 그만 쓰세요. 그냥 태산아~ 하고 부르십시오.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너무하세요.”
“그래도 로펌 운영방침이 있는데…….”
“그럼 말 안 할 겁니다.”
애처럼 구는 게 쉽지 않았지만 아직은 먹히는 나이였다.
“그, 그럴까?”
“태산아. 해보십시오.”
“그래. 태산 군이라고 부를게.”
“조 변호사님 고집 대단하세요~.”
“그래서 조직에서 쫓겨났다.”
조 변호사님은 딱 봐도 강직한 분 같았다.
샤프한 턱선과 파르스름하게 깎은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눈빛은 날카롭고 깊었다.
‘돈은 진정 위대하다.’
과거에는 전혀 만날 일이 없는 분이다.
일반 검사도 죽기 전에 본 적이 몇 번 없었다.
대학교 형법 특강 때나 초청되는 분들이 검사였다.
그런데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님이 내 변호를 맡았다.
이래서 내가 돈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마음이 영원히 떠날 건 아니시잖아요?”
“훗, 태산 군이 조직에 대해 아나?”
알고 있다. 그것도 아주 잘.
2016년과 2017년에 저 조직 출신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아주 시끄러웠다.
우씨 성의 전설적 검사님께서 권력에 빌붙어 아주 나라 국격을 개판으로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 얼마 뒤면 새 정권이 들어서 국민 모두 사랑했던 남자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 것이다.
최고 권력에 기생하며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는 대한민국 집단권력의 최고봉.
검찰.
철저한 상명하복과 기수문화가 판치는 군대보다 더 엄격한 서열이 존재하는 집단이었다.
“저요? 잘 모르죠.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날카로운 칼처럼 매우 위험하다는 건 잘 알고 있죠.”
“……!”
검찰의 힘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내 말에 놀라는 조 변호사였다.
고삐리가 뱉을 말이 아니다.
“아직 선임계는 내지 않았죠?”
“물론이네.”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의뢰자의 뜻이라면 따라줘야지. 이제 난 검사가 아니라 변호사라네.”
대쪽 같은 검사도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다.
변호사라는 말에 자조감이 느껴졌다.
한때 사시를 준비하던 나도 꿈이 검사였던 적이 있었다.
전부는 아니어도 검찰에 대해 대충 안다.
지방검찰청 차장검사라면 1급 공무원 대우이며, 지방검찰청을 지휘하는 지검장의 바로 아래 서열이었다.
지검장에 올라 총장이 될 수도 있는 검찰청 조직의 최상위 계급이었다.
그래서 조 변호사님이 필요했다.
홍성현 아버지 홍장혁 시의원이 내세울 권력보다 강한 이를 원했다.
“네, 그래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자네 정체가 뭔가? 이렇게 특실을 사용하고 우리 로펌에 의뢰할 정도라면 상당한 집안 자제가 분명해야 하는데…….”
“그런데 알고 보니 집도 가난하고 별 볼일 없어서요?”
“…….”
내 직접화법에 조 변호사님은 입을 다물었다.
아마 나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봤을 거다.
아직 따끈따끈한 전관예우 기간이었다.
“대박 작가예요. 라는 작품을 썼는데 그게 대박이 터져서 부자가 됐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세요. 반응이 아주 끝장이에요.”
“작가?”
와, 싸가지 있는 애처럼 말하는 것도 참 힘들다.
꼬박꼬박 요자도 붙여야 하고 눈치도 봐야 했다.
순진한 척 연기도 펼쳐야 하는 무늬만 10대의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10대로 회귀하면 진짜 애처럼 구는 주인공은 대단한 거다.
“골드리버라는 작가가 접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세요. 어제도 증판했습니다.”
출판사에 원고를 6권까지 보냈다.
심심할 때마다 틈틈이 써서 이미 20권까진 완성한 상태였고, 이제부터는 매달 1권씩 풀 예정이다.
욕심이 살짝 들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작품 100권으로 완성해 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재미있으면 기다림은 용서되었다.
“대단하군. 그 나이에 수억을 지불하는 작가라니.”
조 변호사님 말투에 믿음이 담기지 않았다.
물론 전직 검사님이 완벽하게 믿을 리 없다.
하지만 어쩌라.
난 진짜 작가가 됐고 돈도 제법 벌고 있다.
현재 회귀 인생 포장지로 사용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안 된다니까요! 주치의 선생님이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했어요!”
전속 담당 간호사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허어, 그래서 여기 지청 소속 강경준 검사님이 같이 오셨잖아. 이거 취조 못하게 하면 공무집행방해야.”
밖이 소란했다.
‘기다리고 있었다.’
문자로 통보를 받았다.
잘나신 박동석 경위가 조사차 방문하겠다고 정확한 시간까지 고지했다.
그래서 조 변호사님을 불렀다.
침대 밥상에 놓인 인터넷 녹음 기능을 활성화 시켰다.
이쪽 증거도 꼭 필요했다.
“들어가 있겠네.”
조 변호사님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에 숨는 전직 차장검사의 뒷모습이 참 서글퍼 보인다.
자, 판이 벌어졌고! 들어들 오시오!
덜컥 하고 거칠게 문이 열렸다.
주인 허락도 받지 않은 침입자들이 보였다.
“안 된다니까요!”
분노에 찬 간호사를 밀치고 세 명의 남자가 들어섰다.
걸음도 참으로 당당했다.
“취조가 끝날 때까지 들어오면 안 됩니다.”
박동석 경위가 문을 닫으며 간호사에게 경고했다.
웃기는 짬뽕 세트들이다.
강력 비리 형사가 확실한 박동석, 그리고 서른 쯤 되어 보이는 안경 낀 검은 양복 차림의 날카로운 사내와 능글맞은 아저씨 이렇게 한 세트였다.
“다들 무슨 일이세요?”
나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깡패 새끼야, 넌 오늘 뒤졌어. 너 잡으려고 형사부 강경준 검사님이 직접 오셨다! 크크.”
훗훗. 그건 박동석, 너만의 착각 아닐까?
# 17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