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6
25장. 집은 이렇게 사는 것이다
집이 참 좋다.
전생에 My House와는 인연이 없었다.
바람 숭숭 사랑채와 대학교 자취방, 군대 내무반, 그리고 노량진의 허술한 고시원이 전부였다.
다 해봐야 최대 2, 3평이 내게 주어진 주거지였다.
그러나 지금 난 가슴이 뻥 뚫렸다.
도도히 흐르는 장주강을 따라 천변에 세워진 25층 아파트 최상층.
뒤로는 장주산이 병풍처럼 서 있었다.
배산임수의 명당이다.
로열층들은 단지 가장 앞자리에 자리 잡았다.
그 앞은 가로막을 건물이 더 이상 들어올 수 없는 지형이었다.
강 너머에는 평야와 시내가 발 아래로 보였다.
이래서 펜트하우스가 인기가 있는 거다.
다른 이들을 내 발 아래 두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집에서도 표출되었다.
“어떻습니까? 전망이 아주 죽이지요? 시내에서 이만한 아파트 조망권은 없습니다. 오정건설에서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마감재와 내장재, 기본 싱크대도 최고급입니다. 빌트인 냉장고와 김치 냉장고에 옷장도 모두 수납형입니다. 가구가 거의 필요 없습니다.”
복덕방 아저씨가 침을 튀겼다.
1퍼센트 수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한때 나도 그랬다.
세상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할 때가 있었다.
아쉽게도 복덕방 아저씨는 대박은 놓쳤다.
과거 초등학교 동창 녀석의 집이 여기였다.
아버지가 졸부였다.
소유하고 있던 쓸모없는 야트막한 야산 하나가 공장단지로 편입됐다.
100억 단위의 대박이 났다.
동창회에서 애새끼가 싸가지 없이 얼마나 잘난 척했던지 지금도 잊지 않았다.
외제 차 키를 떡하니 탁자 위에 올려놓던 살찐 돼지 동창 놈.
여자 동창들의 눈빛이 반짝이는 걸 난 봤다.
그때 놈이 이 아파트를 자랑했다.
분양가에서 20퍼센트 할인을 받아 아버지가 구입했다고 떠벌렸다.
지금은 평당 800이지만 미래에는 1,500이 넘는다.
내 기준에 큰 투자가치는 없지만 시내에 이만한 아파트는 미래에도 없었다.
과거 집에 내려올 때마다 버스정류장에서 이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우뚝 서서 시내를 굽어봤다.
시에서 어깨에 힘 좀 주는 부자들이 거주한다던 대형 아파트였다.
그 아파트가 이제 우리 집 세컨 하우스가 됐다.
“정말 좋다…….”
엄마가 소녀 같은 기분에 젖어 감탄을 터트렸다.
거의 무너져가는 시골 기와집과는 천지차이였다.
가만히 창가 너머의 세상을 내려다보신다.
자태가 고왔다.
여류 시인을 하면 딱 어울리는 사람이 엄마였다.
농부 아낙보다는 도시 여인이 더 어울리는 어머니였다.
“당신 왜 그래. 과거에 이런 집은 비교가 안 되는 곳에서 살았잖아.”
과거? 이런 집?
아빠가 피식 웃으며 어머니께 핀잔을 줬다.
내가 모르는 과거가 있었다.
이거 슬슬 궁금해진다.
“내가 언제요? 난 그런 적 전혀 없습니다.”
엄마가 내 눈치를 보고 시치미를 뗐다.
어설픈 연기력이다.
‘뭔가 있다?’
필이 딱 꽂혔다.
뭔지 모르지만 내가 모르는 엄마와 아빠의 사연.
눈치만 챘다.
“계약서 작성할까요?”
부동산 사장님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속 타는 모습이 보였다.
1퍼센트 수익만 해도 5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오늘 하루 대박 수익이 내 손에 달렸다.
눈치 빠르게 더 이상 가격가지고 나와 흥정하지 않았다.
주변에 부동산은 널렸고 내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았다.
장사할 줄 아는 양반이다.
“네. 바로 하죠.”
내가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계약금은 10퍼센트입니다……. 대출은 상황을 봐야 알겠지만 요즘 금융권이 정부시책으로 어지간해서는…….”
“계약금으로 1억 쏘면 됩니까?”
“네?”
“대출은 더더욱 필요 없습니다.”
“……?”
“오늘 계약금 입금하고 열쇠를 받았으면 합니다. 바로 입주할 수 있죠? 나머지 잔금은 월요일 은행에서 이체하겠습니다. 잔금까지 모두 다.”
“……!”
아저씨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파트를 현찰 다 주고 사는 사람은 드물었다.
“월요일에 등기까지 마칠 생각입니다. 준비해 주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돈이 좋긴 좋다.
성격이 쿨내 진동하게 변했다.
어차피 돈이 없을 때나 이것저것 따지는 거다.
짜장면과 짬뽕에 머리 아플 필요 없다.
먹고 싶으면 그냥 두 개 시키면 된다.
과거 증권회사에서 난 부자들을 봤다.
딱딱 자기 뜻대로 주식을 비롯해 펀드에 들었다.
결단의 시간이 길지 않았다.
이미 부자들은 정보를 모두 캐치한 후, 빠른 판단으로 실행에 옮겼다.
그에 반해 돈 없이 대출 받거나 통장을 깨서 증권회사를 찾아온 고객들은 이것저것 물어보고 어설프게 정보 묻다가 거의 다 망했다.
샴푸 하나 선택하는 심정으로 아파트 구매 결정을 끝냈다.
그리고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띵!
11층에서 멈췄다.
“썅! 왜 이렇게 늦게 내려오는 거야! 바빠 죽겠는데!”
그때 신경질적인 중년 아저씨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탔다.
중년의 부부였다.
“유 사장! 주민들 기다리는 거 안 보여? 떡방을 해도 기본 예의가 있어야지!”
“죄, 죄송합니다. 최 사장님.”
호오, 오랜만이다.
재수탱이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다더니 딱 그 짝이다.
돈질하던 초등학교 동창 놈 아버지와 엄마였다.
얼마나 갑질을 하고 다녔는지 내가 다 얼굴을 알았다.
두 싸가지 부부가 나와 우리 부모님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 인상을 쓰며 부동산 사장님을 갈궜다.
돈 몇 푼 없으면서 참으로 꼴불견이다.
“유 사장! 아파트 품위가 있지 아무에게 막 집 보여주고 그러면 못써! 개나 소나 다 구경하는 아파트가 아니란 말이야!”
하아…… 그 아들놈의 싸가지 유전자 원천을 찾았다.
개기름 줄줄 흐르고 배가 튀어나온 사십 대 중반의 친구 아버지.
아니 친구도 아닌 돼지새끼 아버지였다.
“어머~ 그러게 말이야. 이 아파트가 어떤 아파트인데! 막 보여주고 그런데? 부녀회 언니들하고 상담 좀 해야겠네.”
그에 어울리는 뚱뚱이 아줌마.
요란하게 화장하고 금붙이를 몸에 덕지덕지 붙였다.
몸매도 얼굴도 심성도 고약했다.
심술보가 볼때기 위로 튀어나왔다.
명품도 뒤죽박죽 걸쳤다.
서울에서 봤던 품격 있는 강남 아줌마들과 레벨이 완전 달랐다.
졸부 패션의 끝판왕이었다.
“그래. 얘기 좀 해놔. 이거 거지들 구경하는 집도 아니고…….”
나이도 한참 연배인 복덕방 아저씨에게 두 부부가 제대로 싸가지 최상급 클라스를 보여줬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훅하고 심장에서 뜨거운 게 올라왔다.
“아줌마. 아저씨. 말 다 끝났어요?”
“넌 뭐야!”
“대식이 아버지죠?”
“대식이 알아?”
“네. 동창입니다.”
두 부부는 동창이라는 말에도 꿈적하지 않았다.
웬만하면 아들 친구라면 조심하는데 그런 인격이 발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월요일에 이사 올 건데 앞으로 잘 지내자구요.”
“뭐?”
“유 사장님.”
“네?”
“25층 계약할 옆집 한 채 남은 거 더 있죠?”
“네…….”
“그것도 한 채 구입할 게요. 가격도 저렴하고. 뭐, 사시는 분들이 워낙 싸가지 철철 넘치는 수준을 보니 집값 떨어질 리는 없겠네요.”
“…….”
내 한 마디에 모두 얼어붙었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런데 13층 얼마나 해요? 저층이라 전망도 후져서 가격도 그렇겠네요?”
“최상층보다 1억쯤 더 쌉니다.”
“아~ 그렇구나. 완전 공짜네요? 거지들에게 분양했어요?”
복덕방 사장님은 고소한 눈빛으로 친절하게 답했다.
그에 반해 싸가지 동창 부모들의 얼굴은 썩어갔다.
동창놈과 표정이 아주 똑같다.
“아버지, 한 채 더 구입해서 게스트 하우스로 쓸게요. 가격도 저렴하고 풍경도 수려하니 손님들 오시면 딱 좋네요. 그래도 되죠?”
“어? 그, 그래.”
“오늘 나온 김에 엄마 앞으로 차한 대 구입해요. 벤츠 S클래스가 소박하니 시장보고 다닐 때 딱 좋을 것 같던데.”
“…….”
두 싸가지 부부가 입을 다물었다.
이 동네에서 아직 벤츠 타고 시장 보러 다니는 아줌마는 없었다.
스르륵.
문이 닫히려 했다.
부부는 닫혀가는 문을 손으로 다시 열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듯 달아났다.
쯧쯧.
당신들 잘못 걸렸어.
어디서 내 앞에서 어설픈 갑질이야!
가슴이 뻥 뚫렸다.
졸부의 돈 장난이라 해도 상관없다.
이 맛에 세상 사는 거다!
죽다 살아왔는데 이 정도 쇼핑도 못하면 억울해서 다시 죽을 것 같았다.
# 26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