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83
283장. 강릉에서 (2)
“당해? 그것도 정체도 모르는 어린놈한테?”
동해 캐피탈 사무실에서 남학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 일만 마무리하면 쏠쏠한 수고비를 받게 되어 있었다.
동해 캐피탈이라는 이름으로 임 사장에게 대출을 해줬다.
중국 쪽에서 의뢰가 들어왔다.
임 사장 회사를 망하게 하고 특허권과 기술을 넘겨 달라는 내용이었다.
거절할 수 없는 거액을 제시했다.
평소 하던 짓이기에 거리낌 없이 승낙했다.
중국 놈들이 기술 좋아하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 은행보다 싸게 빌려줬다.
거래처를 통해 허위 주문을 몽땅 넣었다.
신이 난 임 사장은 물건을 대량 뽑아냈다.
하지만 제품에 트집을 잡아 모조리 반품했다.
스테인리스 공장 창고에 수북이 쌓였다.
원금은 이자 계산을 통해 몇 달 동안 모두 회수했다.
수입이 짭짤했다.
공장과 기계도 가압류한 상태였다.
창고에 쌓아 놓은 질 좋은 물건들을 땡 처리 하면 그것도 돈이 꽤 될 것이다.
공장을 사겠다는 업자도 많았다.
특허만 넘기면 되는 거래였기에 동해파는 심혈을 기울였다.
몇 달 작업으로 수십억이 남는 큰 장사였다.
강릉에서는 쉽게 만질 수 없는 사업이었다.
그런데 알지도 못하는 어린놈이 나타나 다 틀어놓았다.
남학수 인상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캐피탈 사장은 바지 사장을 세워놓았지만 실상 남학수가 실질적 주인이었다.
강릉을 발판으로 강원도 전역을 다스리는 조직 동해파의 두목이었다.
사십 대 후반의 그는 잔머리와 주먹으로 오늘의 이 자리에 올랐다.
돈 되는 일이라면 가족도 팔 만큼 피도 눈물도 없는 자였다.
“네. 사장님. 달병이와 함께 간 충식이, 용식이가 모두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병신 같은 새끼들 같으니라고…….”
“예삿놈이 아닙니다. 한 수에 칼을 든 달병이와 용식이 손목을 분질렀다 합니다. 전문가 같습니다.”
“임 사장 그놈이 불러온 업자야?”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사장에게 보고를 올리는 행동대장 겸 부두목인 장만석도 믿기지 않았다.
실력이 대단하다는 걸 짐작했다.
“뭐하는 새낀데?”
“처음 보는 놈입니다. 아직 어린 꼬맹이 같다고 합니다.”
“꼬맹이? 만석이 너 나랑 장난해?”
“사실입니다. 사장님.”
조직원이 수십 명밖에 안됐지만 동해파는 알짜였다.
강원랜드 카지노 주변의 사설 업체들을 독점 관리했다.
토박이들 중에 강한 녀석들만 선발해서 받았다.
그런데 오늘 한 놈한테 깨졌다.
“김 반장에게 전화해서 폭행죄나 상해죄로 엮으라고 해. 그런 놈들을 심판하라고 경찰이 존재하는 거니까.”
“지시한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지방 형사들과 강하게 엮여 있는 동해파였다.
“이번 건 조용히 마무리하자. 나도 이제 큰일 한 번 해야지~.”
느긋하게 의자를 뒤로 재끼는 남학수.
투자했던 정치인이 총선에서 지역 국회의원으로 당선 됐다.
그도 남학수를 무시할 수 없었다.
남학수가 지원한 돈과 인력이 상당했다.
공짜는 아니었다.
지방선거에서 시의원에 남학수를 출마시켜 줄 생각이었다.
사업하는 데 그만한 자리가 없었다.
더욱이 이곳은 한국자유당 명패만 달면 깡패도 시의원이 될 수 있는 보수의 텃밭이었다.
“임 사장은 어떻게 할까요?”
“그 늙은이……. 손 좀 봐야지. 딸내미가 와꾸가 좀 나오지?”
“젊을 때 모델 일 할 정도로 훌륭합니다.”
“그럼 낚아서 손님 접대 좀 하자. 약 주입해서 깔끔하게 말이야. 그러면…… 노인네가 정신 차리겠지. 흐흐흐.”
“알겠습니다.”
다리를 꼬며 남학수가 명령을 내렸다.
거칠게 없었다.
지난 대통령 시절에는 그래도 숨을 죽였다.
잘못 걸리면 골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변했다.
지역 국회의원 빽이면 못할 게 없었다.
사회가 도덕적으로 오염되고 타락할수록 어둠의 힘은 더 강해지는 법이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남학수였다.
***
임 사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드워프가 재림했다!
현실 세계에 진짜 드워프가 나타났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작달막한 키에 두툼한 장딴지와 팔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수염은 그렇게 길지 않았지만 솥뚜껑만 한 손은 범상치 않았다.
볼록한 볼살은 투덜이 드워프와 매칭 100퍼센트였다.
눈은 황소를 닮았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동양 드워프의 등장에 잠시 정신줄을 놨다.
임 사장은 나를 보고 떨고 있었다.
양아치 팔목을 뚝뚝 분질러 버리던 내 모습을 본 것 같다.
“안녕하십니까! 서울에서 온 장태산이라고 합니다. 사장님 물건을 구매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씩씩하게 인사를 건넸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인사만한 요법이 없었다.
“서울?”
“네. 사장님.”
“학생 같은데…….”
“한국대 법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그래? 그런데 학생이……. 무슨 힘이 그렇게 쎄?”
“어릴 적부터 호신용으로 배워뒀습니다.”
“그랬군……. 고마워. 자네 아니었다면 그놈들이 무슨 짓을 했을지 몰라.”
임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했다.
“당연히 했어야 할 쓰레기 청소였습니다.”
“그게 말처럼 쉽나……. 요즘 같은 세상에…….”
“사장님 공장이 조용합니다. 다른 분들은 어디 가셨습니까?”
공장 상황 파악을 시작했다.
워낙 정보가 미비했다.
“……저 깡패놈들 등살에 무서워서 못 나와. 지금 영업과장은 시장에서 재고라도 좀 판다고 나갔어.”
“아…….”
안타까움을 느꼈다.
직접 눈으로 보니 일반인은 전혀 상대할 수 없는 부류였다.
“경찰에 신고는 하셨습니까? 이 정도 협박이면 큰 사건입니다.”
“그게……. 몇 번 신고를 했는데 놈들이 경찰만 오면 딱 잡아떼. 정당한 이자 추심하러 왔다고 말이야. 그러면 경찰은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그냥 가버려.”
“그게 가능합니까?”
“이자 서류를 두 장 작성한 내 잘못이지. 증거가 있어야지. 그리고 이 공장 때문에 우리 가족들이 위험할 수도 있어서…….”
법보다 가까운 주먹 법칙을 다시 확인했다.
지역 사회라 경찰들도 연관된 게 확실했다.
과거 장주시처럼 말이다.
“위험하면 다른 분에게 넘겨도 되잖습니까?”
“내 지난 세월의 모든 게 다 여기 있어. 죽으려고 몇 번 마음먹었지만 그게 자꾸 미련이 남아. 일본 제품에 절대 뒤지지 않고 싸고 좋은 스테인리스 제품을 특허까지 받아 완비했는데……. 그걸 빼앗기고 어찌 눈을 감겠나.”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임 사장의 목소리에 숙연해졌다.
동시에 중소기업의 비애가 느껴졌다.
자부심처럼 제품 질은 높지만 현실적인 판매망과 가격 경쟁력을 획득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내 정신 좀 봐. 그래. 물건 보러 왔다고?”
“네. 사장님. 제가 사업하는데 제품이 완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샘플들 구경도 좀 하고 구매 상담도 받고 싶었습니다.”
“학생이라고 하지 않았나?”
“학생은 부업이고 사업이 주업입니다.”
“아이고~ 젊은 사람이 대단해. 한국대 거기 쉬운 곳 아니잖아? 그런데 사업까지 해? 똑똑한 친구네~.”
“부끄럽습니다.”
“내가 더 부끄럽지……. 저기로 가지. 우리가 생산할 수 있는 제품 샘플들이 저곳에 있어.”
방금 험한 꼴을 당했음에도 제품 이야기가 나오자 임 사장 눈빛이 달라졌다.
진짜 장인이었다.
“공장이 새 건물입니다.”
“내가 미쳤지. 늘그막에 무슨 욕심을 그리 내서……. 유산으로 받은 선산에……. 전 재산을 다 털어 넣고 저놈들 돈을 빌렸네.”
“이 정도 규모면 은행에서 대출 가능하지 않습니까?”
상식적 궁금한 부분을 물었다.
누가 봐도 좋은 터에 앉은 건물이었다.
중소기업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을 게 확실했다.
“당했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중기 신용 대출은 기본으로 깔고 있네. 그런데 자금이 더 필요했어. 추가 대출을 신청해 놨는데……. 놈들이 싸게 돈을 빌려줬지.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이자가 밀리니까 그걸 가지고 바로 가압류 설정을 해버렸어. 은행이 그걸 보고 추가 대출을 안 해줘. 아니 이제는 원금 갚으라고 난리야.”
계획적이었던 게 확실했다.
지역 은행권도 한통속이었다.
철저하게 설계당했음을 느낌 적으로 알았다.
“우리가 생산하는 물품들이야. 한 번 봐.”
중앙 사무실 옆에 딸린 커다란 공간.
문을 열고 들어섰다.
“우와아아!”
입에서 탄성이 절로 터졌다.
없는 게 없었다.
크기가 다양한 원형, 사각 접시부터 시작해서 컵, 포크, 각종 냄비들까지 일상생활에 필요한 수십 가지 용품들이 은빛 광택을 자랑했다.
구매했던 것들보다 훨씬 다양했다.
특히 대용량 캠핑 세트는 느낌이 확 왔다.
사비나도 이런 종류를 좋아했다.
공장에서 보니 더 괜찮았다.
일상생활 용품으로 사용하기에 아까울 정도로 럭셔리했다.
“이걸 다 만드셨습니까?”
“흐흐. 죽이지? 우리 집안이 대대로 대장간을 했어. 그 손재주가 나에게 대물림 된 거야.”
깡패들 사건을 다 잊고 흐뭇한 웃음을 짓는 임해룡 사장.
이것저것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드워프라는 회사명은 어떻게 만드셨습니까?”
“나 판타지 광이야.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드워프를 보면 꼭 내 모습 같더라고. 그래서 선택했지.”
탁월한 작명센스다.
인간 중에 임 사장보다 더 어울릴 드워프 모습은 없을 것이다.
“재고는 충분합니까?”
수량이 궁금했다.
카르마 포인트와 마나 포인트가 차곡차곡 넘쳤다.
“차고도 넘쳐……. 그 새끼들 농간에 생산해 낸 제품 원가만 10억이 넘어.”
10억이란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물건 막 찍어내지 않았다.
하긴 그 덕분에 내가 이 제품을 알게 됐다.
유세라 팀장이 세일이라고 구매하지 않았다면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세상사는 아이러니라는 게 이런 거다.
계산기를 빠르게 돌렸다.
10억치 물건을 팔면…….
폐 마력석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아공간이 받아주는 한 이 물건들은 모조리 필요했다.
“샘플 종류들 전부와 주력 제품들을 구매하겠습니다. 모두 현찰입니다.”
샘플 종류를 상인들에게 보여주면 좋아할 게 확실했다.
드워프가 제작한 신상 제품이었다.
“현찰로? 그럼 원가에 줄게. 오늘 일도 고맙고~”
임 사장님 사업 수완은 약한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은 사업이 망하기 직전 기로였다.
평소 같았다면 “네.” 하고 넙죽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양심이 있었다.
다 망해가는 공장 물건을 그렇게 후려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넘쳐나는 돈 이럴 때 쓰라고 내 손에 들어온 게 아니겠는가.
클럽에서도 술값으로 2억을 긁었다.
공짜라고 양주까지 그냥 빨아 마셨다.
사장이 고급 양주는 내놓지 않아서 그 정도였다.
“그럼 물건은…….”
끼이이익.
말을 잇던 그때 공장 밖에서 급박한 자동차 브레이크 소리가 들렸다.
살짝 긴장이 됐다.
조폭들이 다시 몰려왔을 수도 있었다.
인상을 쓰며 소리가 나는 쪽을 응시했다.
다시 온 게 맞다면 이번에는 공장 밖으로 기어 나가게 만들 참이었다.
“아빠!!!”
그때 아빠를 외치며 공장 안으로 달려오는 한 여인.
“…….”
다시 헐…….
외마디 감탄사를 뱉을 수밖에 없었다.
# 284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