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03
303장. 신상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사랑합니다~.”
집에서 가까운 TS 백화점을 찾았다.
강남의 다른 백화점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왕 물건 팔아줄 거 계열사로 향하는 게 사람 마음이었다.
천장의 휘황찬란한 샹들리에 광채가 오늘따라 더 마음에 들었다.
심신을 기분 좋게 만드는 향기가 넓은 공간에 맴돌았다.
대한민국 경제 중심지 강남.
세계적 불경기에도 상류층의 생활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아침임에도 오픈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 손님이 많았다.
그들 속에 섞였다.
백화점에 찾아 온 이유는 쇼핑도 목적이었지만 사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였다.
장주시에서는 적폐들을 모조리 정리했다.
시장을 조지니 나머지 놈들은 알아서 처신을 했다.
송 사장이라는 놈은 공사 대금을 포기하고 찌그러졌다.
감리와 해당 업체는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을 당했다.
현장소장은 건설사 대표가 사정해 한 번 봐주기로 했다.
대학교 다니는 두 자녀에 늙은 부모 이야기가 나오는데 확 쳐내기가 힘들었다.
대표가 보증을 서겠다고 해서 그 정도는 봐줬다.
단, 앞으로 불법 행위를 저지르면 지금까지 실수했던 모든 걸 토해낸다는 약조를 받았다.
장주시는 원활하게 돌아갔다.
시장이 더 이상 뇌물을 처먹지 않자 시 행정이 똑바로 굴러갔다.
공무원들도 협조적으로 나왔다.
양우석 의원을 통해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가 됐다.
양우석 의원도 영락없는 정치꾼이었다.
내가 원하는 바를 알아서 잘 처리했다.
그에게는 법적으로 하자가 없을 정치자금을 넉넉히 건네줬다.
하관우 회장을 통하기도 했지만 나도 개인적으로 한도 내에서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그 돈만으로도 양우석 의원은 만족했다.
앞으로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 이야기해줬다.
그 말만으로도 든든한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 등 뒤에서 받쳐준다면 앞길을 해쳐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법이다.
“정말 까탈스런 녀석이야…….”
까칠한 아공간은 날이 갈수록 특별했다. 조금이라도 오염된 것들은 절대 삼키지 않았다.
1층부터 천천히 구경하기로 했다.
바닥이 대리석이라 깔끔하고 먼지 하나 없었다.
화장품과 해외 유명 브랜드 매장이 보였다.
조명발에 화려함이 극치를 달렸다.
직원들과 눈이 마주쳤다.
“누구야? 신인 배우야?”
“처음 보는데?”
“모델 같지 않아?”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들은 조용히 소곤거리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눈이 마주치면 환하게 웃으며 그녀들이 인사를 보냈다.
가볍게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녀들 앞을 지나갔다.
이제는 백화점 방문이 자연스러웠다.
과거 같았다면 백화점에 올 일도 없었을 뿐더러 스스로 기가 죽어 제대로 눈도 못 마주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랐다.
어깨도 당당하게 펴고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걸렸다.
세상사는 데 돈만큼 든든한 빽이 없었다.
천천히 구경을 하다 걸음을 멈췄다.
수도 없이 들어봤던 명품 매장이었다.
루렉스.
상류층들이 몇 개씩 애장하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나도 아직까진 이름만 들어봤지 구매한 적은 없었다.
루렉스 매장 안에는 남자 매니저와 여직원 한 명이 고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두 사람의 시선이 와 닿았다.
‘매니저 강태훈’이라는 명찰을 단 남자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순식간에 폈다.
제법 얼굴이 잘생겼다.
주변 점원들의 시선이 나에게 몰리자 순간 얼굴에 싫은 티가 스쳤다.
백화점 직원들 사이에서 꽤 얼굴로 잘 나가는 인물 같았다.
매니저의 눈이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빠르게 스캔했다.
오늘은 평범하게 중간 브랜드 정도 되는 청바지에 무난한 남방을 입었다.
누가 봐도 평범한 대학생 콘셉트였다.
빠르게 실망하고 빠르게 만족해하는 매니저 눈빛을 봤다.
신경 쓰지 않았다.
모른 척하며 상품 진열대 앞으로 다가갔다.
“이 제품 한 번 볼 수 있습니까?”
대놓고 무시하는 시선을 감지했지만 애써 반응하지 않았다.
과거 생에 수도 없이 많이 경험했던 눈빛이었다.
진열된 시계를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손님, 그 제품은 함부로 만지시면 안 됩니다.”
강태훈 매니저 목소리가 딱딱하게 나왔다.
딱 찍었던 제품은 루렉스에서도 값이 꽤 나가는 한정판이었다.
푸른빛이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메탈 계열의 오토매틱 시계 모델이었다.
가격은 5,200만 원이 붙어 있었다.
“왜 안 됩니까? 착용을 해봐야 구입 여부를 결정할 것 아닙니까.”
매니저를 쳐다보며 물었다.
“안 됩니다. 한정판이라 흠집이라도 나면 저희가 곤란합니다.”
딱히 곤란할 것까지는 없어 보였다.
다른 매장에서도 몇몇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시계를 차보는 모습이 보였다.
보이지 않는 차별대우였다.
세상이 각박해지자 빈부의 격차는 더 심해져 갔다.
백화점 매장 직원도 사람을 가려 대우를 할 정도가 됐다.
아무리 강남이라고 하지만 피부에까지 느껴지는 차별은 좀 심했다.
평범하지 않은 훌륭한 외모의 나였지만 그들의 눈에는 차지 않는 것 같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만약 손으로 만져 흠집이라도 나면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강태훈 매니저가 나를 개무시 하는 눈빛으로 대놓고 협박을 해왔다.
손으로 좀 만졌다고 메탈 시계에 흠집 생길 거라곤 누구도 생각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만지고 나면 시계를 다시 닦고 진열하는 게 귀찮다는 게 그의 본심일 것이다.
주변 여성 직원들이 힐끔거리며 상황을 주시했다.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현실에서도 옷차림 하나만 보고 이렇게 사람을 차별했다.
“제가 그렇게 없어 보입니까?”
어이가 없어 수준에 맞게 물었다.
“그건 고객님이 더 잘 알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고객님이라 입은 말하지만 눈빛에는 비웃음이 가득 담겼다.
누가 봐도 평범한 옷차림에 나이도 어린놈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닌 것이다.
“하하하…….”
헛웃음이 짧게 터져 나왔다.
그리고 등을 돌렸다.
굳이 저런 마인드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자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메탈 시계는 이곳이 아니어도 곳곳에 많았다.
“호빠 선수 같이 생긴 게 아침부터…….”
예민한 귀에 매니저 강태훈이 나의 등 뒤에 대고 내뱉은 비하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꽈직.
못 들은 척 걸음을 옮기며 손에 힘을 가득 쥐었다.
마음을 넉넉하게 써보려고 했지만 마지막 인내심마저 바닥을 치게 만들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8층 백화점 고객 상담실 앞에 섰다.
친절한 상담 직원이 미소를 띠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백화점 서비스가 엉망이군요.”
한 번 인상에 남은 백화점 이미지가 계속 뇌리에서 맴돌았다.
안아에서 TS로 사명이 바뀌어도 직원들 마인드는 그대로였다.
난 마음이 대해처럼 넓은 남자는 아니었다.
“손님, 무슨 문제가 있으셨나요? 불편한 점이 있으셨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더 나은 서비스로 보답하겠습니다.”
상담원이 고객 불만사항 용지를 내밀었다.
“상품권 구입 가능합니까?”
“구입 가능하십니다. 100만 원 이상 구매 시 5만 원 상품권을 드리는 이벤트 중입니다.”
상품권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1억짜리로 10장 구입하겠습니다.”
“네?”
“10억 원. 카드 되죠?”
“1, 10억요?”
****
“이것도 구매하겠습니다.”
“네. 고객님. 목록에 넣어두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쇼핑에 돌입했다.
10억 원 상당의 상품권을 들고 7층 남성 매장부터 아래로 향했다.
마음에 드는 매장에 들어가 슈트부터 시작해 바지, 와이셔츠에 남방, 속옷까지 구매를 시작했다.
모조리 최고급 명품들로만 쓸어 담았다.
사이즈를 알고 있는 어머니 옷과 명품 가방도 주문했다.
내 뒤를 퍼스널 쇼퍼라 불리는 VIP쇼핑 도우미가 따라다녔다.
하루에 10억을 결제할 수 있는 고객은 대한민국에서도 많지 않았다.
백화점에서 VIP를 담당하는 정직원 김형석 과장이라는 남자가 나섰다.
지금까지 구매한 금액만 3억을 간단히 넘었다.
그사이 내 옷차림은 깔끔하게 바뀌었다.
네이비 색감의 스트라이프 싱글 슈트에 편안한 하얀 티를 바쳐 입었다.
알 만한 사람 다 안다는 그 알만하다 명품이었다.
옷과 핏이 조화를 이루며 그대로 인간 명품이 됐다.
“어머…….”
지나가는 여성들이 놀라 다시 돌아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쇼핑이 참 맛있다.
이런 맛에 돈 있는 사람들이 가끔 스트레스 풀기 위해 쇼핑하는 모양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1층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루렉스 매장으로 거침없이 걸어갔다.
그 뒤를 김형석 과장이 졸졸 따라왔다.
품위 있고 돈까지 많이 쓰는 고객은 백화점에서 왕과 다름없었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옷차림이 바뀌자 루렉스 매니저와 여직원이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도배한 덕분에 얼굴에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다.
“이제 만져 봐도 됩니까?”
“네?”
고개를 숙이고 나를 맞이하던 매니저 강태훈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다.
“왜요? 아직도 부족합니까? 이깟 시계 한번 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낮지만 강하게 추궁 모드를 발동했다.
고객 뒤통수에 대고 욕하는 직원은 이 백화점에 있으면 안 된다.
갑질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대로 넘어갈 수 없었다.
“고, 고객님. 무슨 일이신지요?”
김형석 과장이 당황하며 끼어들었다.
긴장한 표정이다.
“구매를 위해 착용을 부탁하자…… 흠집 난다고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저 보고 뭐라고 했죠? 호빠 선수?”
애처럼 일러바쳤다.
하관우 회장에게 전화 한 통이면 해결 될 일이었지만 그것까지는 참았다.
인생 지금처럼 살면 뼈저리게 후회하게 된다는 걸 루렉스 매장 매니저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
결코 인간은 겉모습만 보고 돈이나 지위가 높을 거라고, 혹은 무시해도 된다고 판단하면 안 됐다.
최소한의 예의와 품격은 지켜주는 게 서로를 위해서 옳았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그 자체가 소중하고 귀한 명품이었다.
“아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김 과장의 사나운 눈빛이 루렉스 매니저에게 향했다.
그리고 오늘 확실하게 뭔가를 깨달았을 매니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마 다음 백화점 방문 시에는 이곳에서 다시 볼일 없을 것 같았다.
***
“어떻습니까?”
“최고입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물건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습니다. 역시 드워프답습니다!”
지구에서 가져 온 스테인리스 그릇을 보고 사비나는 뻑 같다.
광택이 유려하고 품질이 균일했다.
드워프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자 품질이 더 좋아졌다.
요즘 한진웅 대표가 그곳에서 열일 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모델 누님과 눈 맞은 게 확실했다.
노총각들의 뒤늦은 연애가 더 무서운 법이다.
회사에 출근하는 날보다 강릉에 가 있는 날이 많았다.
사비나는 그릇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물량을 풀면 상단에 엄청난 이득을 가져올 게 빤했다.
이곳에는 없는 메이드 인 코리아 스테인리스 그릇은 내가 봐도 괜찮았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틈을 타 잠시 이계를 방문했다.
포인트가 처음 방문 때보다 적게 들어갔다.
장기고객 우대 혜택이 주어지는 것 같았다.
이계는 이번 생에 반드시 필요한 또 다른 공간이 됐다.
마력석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마법 공부도 지속적으로 필요했다.
지구에서는 당최 시간이 부족했다.
“원하던 그릇 수량을 다 맞췄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사비나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상단에 연락은 취했습니까?”
“긴급 연락을 보냈습니다. 곧 추가 상단이 출발할 것 같습니다.”
“짐작하겠지만 소문 금방 날 겁니다. 상단이 내 요구에 최대한 응한다면 이 혜택은 그대로 유지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뒷말은 잇지 않았다.
대신 충분히 눈치를 줬다.
상인은 언제나 이익을 탐지해 더듬이를 세우는 자들.
그들에게 미리 경고를 보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비나가 재차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공과 사는 엄격히 구분했다.
“새로운 신상이 있는데 한 번 보겠습니까?”
“신상요?”
사비나가 호기심을 강하게 드러냈다.
“구경하고 싶습니다. 영주님!”
예상대로 사비나가 걸려들었다.
스윽.
탁자 한쪽에 천으로 덮여있던 물건을 꺼냈다.
“이, 이게 뭔가요? 영주님.”
사비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시계를 모르십니까?”
“네? 이 팔찌가 시계라고요!!!”
사비나가 깜짝 놀랐다.
아마도 이계에 소형 시계는 없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겠습니까?”
“네!”
물 건너온 메탈 시계를 건네자 사비나가 황송하게 두 손으로 받았다.
“아, 아름다워요!”
“그걸 차고 걷는 순간부터 시계는 반영구적으로 구동됩니다.”
“정말요? 마력석이 필요하지 않다는 건가요?”
대부분 이곳 시계는 마력석으로 시침을 돌리는 것 같다.
“물론입니다. 잘 틀리지도 않습니다. 몇 년에 한 번 미세하게 오차가 날 뿐입니다.”
“!!!”
설명이 이어질수록 사비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곳의 투박한 물품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정교할 뿐만 아니라 고급스러웠다.
황제나 왕에게 진상하는 보석보다 더 값질 게 뻔했다.
사비나의 눈빛에 강한 욕망이 스며들었다.
표정에서 이미 승부가 결정 난 걸 알았다.
스테인리스 그릇보다는 원가가 더 들었다.
시계 개당 단가가 50만 원이었다.
국내에서 제작된 시계 중에서도 최고급품이었다.
무브먼트도 싸구려가 아니라 스위스 제품만큼 정교했다.
다만 디자인이 특이했다.
날짜가 없이 시간과 분침, 초침만 돌아갔다.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는 제품이었다.
루렉스는 팔아봐야 답이 없었다.
아공간이 루렉스를 품지 않는 걸 확인하고 다시 인터넷으로 쇼핑했다.
여러 제품들 중 녀석이 아공간에 당첨됐다.
쌓여 있던 재고품 1000개를 개당 50만 원에 구입했다.
“팔 수 있겠습니까?”
상단에서 이 물건 감당할 수 있냐고 물었다.
“참고로 이 물건을 만든 이는 엘…….”
“엘프들이 만든 걸 알고 있습니다! 이런 명작은 오로지 드워프보다 더 정교한 마법의 장인 엘프들만 제작할 수 있습니다!”
뭐, 뭐라고요 엘프요???
# 304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