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4
33장. 두 번째 불법과외
“소협. 일어나시게.”
소협? 갑자기 이 기시감이 드는 말투는?
한참 숙면 중이었다.
긴 겨울 방학이 시작됐다.
내 통장의 돈은 갈수록 액수 단위가 달라졌다.
전생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거액이었다.
큰 판으로 옮길 때가 가까웠다.
다각도로 준비했다.
그렇지만 나이가 발목을 잡았다.
미성년자라는 딱지는 큰 제약이었다.
이것저것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그때 꿈에서 환청이 들렸다.
“할배예요?”
나를 처음 불렀던 할배가 생각났다.
“난 크리스 반스데일이라고 한다.”
뭐라고? 크리스 반스데일?
웬 외국산 할배?
눈이 번쩍 떠졌다.
‘여긴 또 어디야?’
중국식 붉은 화복을 차려입은 금발 중년 신사가 날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학자풍이다.
교수님들한테서 봤던 특유의 고집이 얼굴에서 묻어났다.
동그란 검은 안경테가 인상적이다.
죽어서 신선 계열에 들어서도 디테일한 아이템은 사용 가능한 것 같았다.
장소는 처마 곡선이 날카롭게 치고 올라간 멋들어진 중국식 정자였다.
평수가 장난 아니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바닥은 맨흙이었고, 정자 주변에 나무와 꽃도 듬성듬성 심어졌다.
터는 넓었지만 보기가 휑했다.
누가 봐도 돈이 부족해 짓지 못한 한참 모자란 미완성의 주택이다.
“여기는…… 어딥니까?”
“내 집이라네.”
말투가 참으로 점잖았다.
“집이요?”
“포인트가 딸려 레벨이 낮아 집이 아직 누추하다네.”
“…….”
이건 또 무슨 참신한 헛소리란 말인가.
포인트는 뭐고 레벨은 또 뭐야?
“상부상조하기를 원해서 소협을 불렀네.”
상부상조?
머리에 번쩍 생각이 하나 스쳐갔다.
“호, 혹시 과외입니까?”
딱 의심 가는 정황이 있었다.
몇 달 전에 나를 호되게 가르쳤던 천룡신군이 떠올랐다.
그때 상황과 너무나 흡사했다.
“소협. 나 말고 다른 이들로부터 과외를 받은 적이 있나?”
서양 아저씨가 기똥차게 고리타분한 말투를 사용했다.
소협이라니!
“갑자기 끌려와 물어보는 겁니다. 그런데 뭐 하시는 분이십니까?”
내 눈치가 엄청 빨라졌다.
사람은 임기응변을 잘해야 성공하는 법이다.
크리스 반스데일이라는 이 외국 할배, 뭔가 순진해 보였다.
“난 언어학자라네.”
“네? 언어학자요?”
“나는 살아생전 21개국의 언어를 내 모국어처럼 사용했지. 그 외에도 다룰 수 있는 언어가 50종에 이른다네.”
“2, 21개국요?”
이게 가능해?
지구에서 통용되는 어지간한 언어는 다 안다는 말이었다.
지금 나는 영어도 벅찼다.
머리가 트였지만 어학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공부가 아니다.
확 구미가 당겼다.
“언어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아네. 내가 도와주겠네.”
“네…….”
뭔가 알고 찾아온 신선이다.
살짝 기가 죽었다.
“인간관계의 기초는 언어라네. 언어는 문화의 다른 말이네.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큰일을 도모할 수 없는 법이지.”
언어학자라더니 말도 참 잘한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하다네.”
정자에 앉아서 차도 한 잔 주지 않고 크리스 반스데일은 썰을 풀었다.
차 한 잔 끓일 돈도 없는 것 같다.
귀를 기울이며 경청했다.
한 번 받았던 신들의 과외는 인간들과 스케일이 달랐다.
받기만 하면 무조건 개이득이다.
“언어를 선택한 후 먼저 자신과 관계있는 내용으로 습득을 시작해야 한다네. 호기심으로 자극해야 뇌가 움직이지. 그리고 언어가 확실한 소통의 도구라 주문을 걸어야 하네. 학문적으로 다가가면 멍청한 짓이야. 언어의 기본은 너와 나의 소통이라는 열린 자세로부터 시작되네. 동시에 많이 듣고 수많은 이미지를 떠올릴 줄도 알아야 하지.”
이 외국 양반 얼마나 심심했던지 줄줄줄 말도 쉬지 않고 한다.
남의 꿈에 침범해서 일장연설 중이다.
꿈속에서 하품이 나오려 했다.
교장샘 훈화와 비슷한 맛이다.
“언어를 배우면 동시에 적절하게 섞어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네. 두려움을 가져서는 절대 안 된다네. 그리고 적절한 언어 선생을 찾아 배워야 함이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습관에 빠져 아류가 되어 버리네.”
말투가 왜 이럴까?
과거 훈장선생님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초반부 썰이 끝났다.
“잘 알겠나?”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크리스, 질문이 있습니다.”
“말하게.”
강의가 흡족했는지 크리스 반스데일 할배는 혼자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요?”
어쩌자는 겁니까? 라는 말이 빠졌다.
이 정도면 언어학자라면 알아듣고도 남았다.
피차 바쁜데 본론을 빼고 서론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다.
한 번 받아본 불법과외의 꿀맛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이런 식의 사전적인 공부는 절대 필요 없다.
교과서적인 학습법 말고 신속, 정확, 핵심의 불법과외를 난 원했다.
“방금 그런 말들을 전수하기 위해서 찾아오신 건 아니죠?”
“…… 그, 그게.”
당황하는 크리스 반스데일.
이 양반 초짜다.
회귀 한번 해봤다면 이렇게 당황하지 않을 거다.
딱 봐도 뭔가 허술한 집구석이다.
과외 듣는 척하며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내가 기죽을 필요가 없어 보였다.
크리스 할배는 처음부터 나에게 카드 패를 다 까서 보여줬다.
‘포인트가 딸린다.’라는 말은 까면 안 됐다.
장사는 처음인 것 같다.
레벨이 낮아 집이 누추하다는 건 바로…….
내가 갑이라는 소리다.
“신 아니세요?”
“맞네.”
어째 자신감이 하나도 없는 신이다.
“그런데 포인트는 왜 그렇게 딸려요?”
자존심을 살짝 건드렸다.
“…… 생전에 연구만 하다 보니까 선행을 쌓을 기회가 적었다네. 돈이라도 많았다면 기부라도 했겠지만…….”
안타까웠다.
공부해서 남이라도 막 퍼줘야 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신은 어떻게 됐어요?”
본격적으로 심문을 시작했다.
이자 화끈한 제3금융권 대출심사관이 된 것처럼 팔짱을 꼈다.
“그냥 언어를 열심히 연구하다 보니 죽을 때 사자가 신이 됐다고 통보했네. 언어 특채라나 뭐라나…….”
호오, 언어 특채였어?
운이 나쁜 분은 아니다.
특별 보너스 받을 정도라면 치열하게 인생을 산 건 맞는 것 같다.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셨죠?”
신용의 기본인 재직증명서와 비슷한 신 임용경력을 물었다.
“5년쯤 됐네.”
“안타깝네요. 신으로 사셔도 돈 같은 포인트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
대출이 안 될 것 같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직업으로 3금융권 사채업자가 돼도 잘 할 것 같다.
입을 다무는 크리스.
먼 하늘만 바라봤다.
죽어서야 안 것 같다.
공부할 때 딱 자기 먹을 것만 벌었던 걸 후회하고 있었다.
‘일단 체크! 선업 포인트 쌓으려면 기부가 필요하다. 열심히 뭘 파다보면 특별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
정보수집에 박차를 가했다.
신들이 인간보다 더 쉬울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던지는 떡밥 속에 비밀을 하나둘씩 캐나갔다.
오늘 배울 게 많았다.
크리스 이 양반이 순진해서 그렇지, 다른 신들이라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천룡신군을 보면 안다.
그냥 GO!를 외치고 날 밀어붙였다.
“방금 하신 언어 습득 노하우는 인터넷 지식정보에 다 나옵니다. 혹시 사기꾼 아니죠?”
담보 물건 확실한지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무슨 소리야! 나보다 뛰어난 언어학자는 없다!”
버럭 화를 냈다.
학자나 교수님 같은 분들이 순진한 건 세상 다 아는 이야기다.
대학교 때 만났던 교수님들 중에도 세상 물정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
때가 덜 묻은 대학생들만 상대하던 그분들이 뭘 알겠는가.
입맛이 다셔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땡겨야 할 때가 왔다는 걸 본능으로 알았다.
“주세요.”
말투가 당당했다.
“뭘 말인가?”
“과외 처음이시죠?”
유도신문도 서슴지 않았다.
“…… 그렇지.”
“이거 정식 등록하고 하시는 거 맞아요? 포인트 벌려고 불법으로 저 소환한 거 아니에요?”
신용도 바닥에 담보도 없는 신을 조졌다.
더 높은 조건을 후려내기 위해 신을 겁박했다(?).
“…….”
화들짝 놀라 눈만 껌벅이는 크리스 반스데일.
이 분도 몰래 불법과외 중이다.
다만 천룡신군과 달리 자발적이란 게 핵심이다.
‘도대체 포인트가 뭐야? 내게 그게 있어?’
나도 벌어놓은 내 포인트가 뭔지 궁금했다.
“포인트 버는 거 쉽지 않다는 거 아시죠?”
“물론이네. 선업을 행해 벌어놓은 카르마 포인트는 귀한 것이지.”
오호! 카르마 포인트!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내가 차에 받혀 죽을 때 아이를 살린 덕분에 할배가 칭찬을 아주 많이 했다.
그리고 최근에 내가 한 일은…….
동네정화사업!
깡패들 모조리 시에서 제거하고 학교와 시에 평화를 가져왔다.
억울한 죽음도 밝혀낸 공로도 작지 않을 것이다.
그게 카르마 포인트로 쌓인 게 확실했다.
“그 귀한 걸 날로 드시면 안 되죠~.”
“그럴 생각 전혀 없다네!”
“그럼 방금 그건 뭐죠?”
“그, 그저 기초 이론을 먼저 전수해 준 것 뿐이라네. 오해를 풀게.”
어설프게 착하면 저렇게 탈이 난다.
“상부상조 원하시죠? 맞죠? 교수님?”
교수라는 말에 얼굴에 화색이 도는 크리스 반스데일이다.
세상에 미련이 많이 남아 보였다.
교수 타이틀이 뭐가 중요하다고.
죽은 게 확실하지만 신의 반열에는 제대로 오르지 못한 것 같다.
“얼마 가져가시려고 했죠?”
“50프로…….”
“그거 막 제 허락 없이 가져가면 엄청난 불법인 거 아시죠?”
“무, 물론이지. 그래서 소협을 정중하게 초대하지 않았나.”
오예!
찔러봤는데 대박이다.
사용처도 모르며 양도 확인 안 되는 카르마 포인트였다.
21개 국어를 배울 수 있는데 다 퍼줘도 그만이다.
하지만 난 남기고 싶었다.
정확한 거래 방법은 모르지만 카르마 포인트가 불법과외비 대용이라는 것은 짐작 가능했다.
“20프로로 거래하죠. 다 넘기세요.”
사채업자도 울고 갈 정도로 후려쳤다.
“안 되네! 너무 부족하네! 본관 짓고 바닥 대리석 깔면 끝이네. 나무하고 꽃이 있어야 정원이지 않겠나!”
와아……. 본관 하고 정원?
내가 쌓은 20프로 포인트가 엄청난 일을 해내는 것 같다.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지려 했다.
보이지 않는 내 카르마 포인트.
다른 집 마당 깔고 집 지어주게 생겼다.
“다른 분 부를까요?”
“부, 부르는 방법은 알고?”
어라? 이 할배 튕기시네?
“에이, 왜 그러세요. 선수들끼리. 저 누군지 아시잖아요~ 그분 자손이에요~.”
“…… 끄응.”
그분 자손이라는 말에 크리스 할배가 끙 소리를 냈다.
대충 찔렀는데 맞았다.
나를 처음 환생시켰던 할배가 대단한 분이 확실했다.
이웃집 애들 확실히 조지라고 할 때 통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이것도 인연인데, 좀 더 쏘겠습니다. 25프로! 캬아, 이거 오늘 막 퍼주네! 인심 좋다! 그렇게 생각하시죠? 고맙죠?”
선이자 조금 덜 떼고 주는 사채업자 심정을 알아버렸다.
이 맛에 중독될 것 같다.
“고, 고맙네! 정말 고마워!!!”
제가 고맙죠.
거래는 이렇게 상부상조하는(?) 맛으로 하는 거다.
크리스 저 양반 나 아니면 누가 거래해 줄 것 같지도 않다.
저렇게 죽어서도 순박하지 말자고 크게 배웠다.
“그런데 왜 건물들이 중국풍입니까? 중세시대 성도 있고, 한국풍 기와집도 많은데.”
궁금함이 일었다.
외국 신선이 왜 중국풍 건축물을 택했는지 말이다.
“그게…….”
“왜요?”
얼굴이 빨갛게 되며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짓는 크리스.
“Made in china가…… 가성비가 갑이야.”
“가, 가성비요?”
“응. 아직 품질은 그렇지만 포인트 없는 우리 같은 초짜 신들에게는 이만한 게 없어. 싸고 그럴싸하잖아. 흐흐흐.”
“아…….”
신음과 함께 입이 다물어졌다.
더 할 말이 없었다.
신들 세계도 인간 세계와 다를 바 없었다.
Made in china…….
이곳이나 저곳이나 가난한 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한(?) 물건이었다.
# 34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