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8
37장. 클라라
세상은 넓고 미녀도 참 많다.
사실 지난 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외국 여행은 오늘이 처음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인 나의 대학생활도 역시 가난했다.
취직했지만 비정규직 증권회사 직원에게 국내 여행도 벅찼다.
기껏해야 휴식은 일요일, 유흥은 집에서 맥주 한 잔이 전부다.
회사에 미인들도 많았지만 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나를 반려로 선택하는 순간 평생 어떻게 살게 될지 그녀들은 잘 알았다.
그래서 난 세상 견문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요 근래 많은 미녀들을 봤다.
지금 눈앞에 다가서는 나를 향해 하얀 이를 활짝 드러내고 있는 여인도 그중 하나다.
내 이름이 박힌 푯말을 흔들고 있는 미녀.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혼혈이었다.
혼혈에 미인이 많다는 속설이 증명됐다.
키는 170 후반 정도로 모델 같았다.
검은색 계열의 단추가 달린 플레어 원피스는 심히 보기 좋았다.
센스 있게 목에 두른 칼라 문양의 스카프가 포인트였다.
다리가 길쭉하니 핏이 그냥 살았다.
이렇게 키 큰 미녀는 또 처음이다.
눈도 큼지막하고 입술 라인도 컸다.
검은 머리칼 사이로 반짝이는 푸른 눈동자.
이건……, 뭐…….
“태산 장 대표님?”
“네. 제가 장태산입니다. 다니엘 장이라 불러주십시오.”
“본토 출신이세요?”
오는 동안 외국에서 사용할 이름 하나를 만들었다.
홍콩에서 본토는 중국이 아니라 영국을 의미했다.
“아니요. 한국에서만 살았습니다.”
“그런데 발음이 완벽해요. 저도 따라할 수 없을 정도로 악센트가 멋져요.”
이름도 모르는 그녀는 활발한 성격인 것 같다.
스티븐 벤슨 지점장처럼 몇 마디 듣지도 않고 내 발음을 칭찬했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아! 실례했습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다니엘 장 대표님을 모실 비서실 소속 클라라 리라고 합니다. HSBC의 임직원을 대신해 대표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클라라가 그제야 소속과 이름을 밝혔다.
“저를요?”
“네. VIP로 모시라 했습니다.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클라라를 보낸 것만으로도 VIP급 의전이었다.
그녀는 눈이 부셨다.
수많은 인파가 오고 가는 국제공항에서 단연 눈에 띄었다.
기분이 괜찮았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스티븐 벤슨 지점장에게 연락을 받았다.
서울에 있는 동안 은행 법무팀과 세부 내역을 조율했다.
내 증권계좌는 출금 금지 계좌로 지정됐다.
투자는 가능했지만 출금은 불가능했다.
그 계좌를 담보로 잡았다.
이율은……. 15프로였다.
은행권에서는 거의 사채 수준이다.
아쉬운 입장이라 흔쾌히 사인을 했다.
한국에서는 미성년자라 부모님 동의서도 첨부됐다.
그리고 난 홍콩 본점에 가기만 하면 됐다.
이미 홍콩에 유령 법인이 준비되었다고 한다.
약간의 불법이 동원됐다.
홍콩 법인 설립 최소 나이인 만 18세가 넘어야 했다.
아직 살짝 모자랐다.
본래 내 생일은 양력 2월 중순이었다.
호랑이의 해애 호랑이 달, 호랑이 일, 호랑이 시까지 특이한 사인(四寅)의 사주를 가지고 태어났다.
거기에 태몽도 호랑이다.
부모님이 과거 신혼 시절에 지리산 온천에 봄놀이 가셨다가 날 임신했다고 했다.
꿈속에서 커다란 지리산 암호랑이가 나타나 새끼 호랑이인 날 물어다 줬다고 한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클라라는 성격이 시원시원했다.
바로 내 옆에 서서 앞장을 섰다.
내 키가 크지 않았다면 오징어 신세가 될 뻔했다.
어깨에는 힘을 더 주고 가슴을 폈다.
몸은 단출했다.
어깨에 메는 가죽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여행용 트렁크는 가져오지 않았다.
홍콩은 서울과 다른 국제도시다.
필요하면 이것저것 구입할 생각이다.
“타세요. 대표님 덕분에 저도 호강하네요.”
클라라가 공항 입구에 대기 중인 차를 가리켰다.
“…….”
세상에 롤스로이스 리무진이었다.
도대체 날 얼마나 봉으로 봤는지 호의가 과했다.
최고급 의전이다.
영화에서나 봤던 롤스로이스 리무진.
먼지 한 톨 없이 검정 광택 빨이 쩔었다.
“타십시오.”
나이 지긋한 중년의 유럽인 직원이 차 문을 열었다.
클라라와 내가 탔다.
VIP석인 뒷좌석 우측에 내가 앉았다.
가죽 의자가 그냥 죽여줬다.
이건 바퀴 달린 특급 호텔 수준이다.
감상은 짧게 끝냈다.
앞에는 클라라가 조신하게 한쪽으로 다리를 모으며 앉았다.
동양의 단아함과 서양의 풍요로움을 동시에 품었다.
신비롭다고나 할까?
“아빠가 홍콩 분이셨어요. 엄마는 프랑스 분이시고요.”
내가 궁금할까 클라라는 미리 답했다.
센스가 만점이다.
머리 예쁘고 똑똑하다면 그건 진짜 축복받은 거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우십니다.”
작업 거는 거 아니다.
이곳은 이 정도 칭찬이 먹히는 홍콩이다.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한 칭찬이 나왔다.
미(美)는 숭고해도 괜찮았다.
욕망을 품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만족하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클라라의 눈빛은 푸르고 깊었다.
보고 있으면 편안하게 빨려 들어갔다.
하아…….
하지만 고삐리에게는 고욕이다.
마음은 숭고했지만 육신이 따로 놀았다.
숭고한 미도 욕망으로 승화시키는 이 못된 호르몬 같으니라고!
클라라의 늘씬하고 새하얀 다리로 나도 모르게 시선이 자꾸 갔다.
바람둥이 축구 선수 호날두가 사귀는 탑 모델급이다.
미인계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대표님도 멋있어요. 특히 짧은 머리칼이 인상적이에요. 군대 다녀오셨나요? 한국 남자분들은 의무적으로 병역을 마쳐야 한다고 들었어요.”
아직 내 정보를 정확히 모르는 것 같다.
교복 대신 정장을 착용해서 그러는 것이리라.
“아직입니다.”
군대에 갈 생각은 죽어도 없다.
한 번 복역했으면 됐다.
한 영혼에 두 번 군대는 가혹한 짓이다.
최대한 합법적으로 난 군대 면제를 받을 생각이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장교로 근무할 수 있지만 그것도 관심 없다.
군대는 그 자체만으로도 악몽이다.
“식사는 하셨나요?”
“네. 기내식으로 먹었습니다.”
클라라는 이것저것 질문을 많이 던졌다.
항상 가지런한 치아가 보일 정도로 웃었다.
미녀의 미소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기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훈훈해졌다.
첫사랑 예린 선배 모습이 스쳐 지났지만 애써 지웠다.
애굣덩어리 서련아. 미안하다.
정신연령 30대인 오빠 오늘만 마음껏 살게.
“IT 벤처 사업가세요?”
“아닙니다.”
“흐음……, 한국 재벌 3세?”
클라라도 한국 재벌은 아는 것 같다.
이때쯤 한국 재벌 3세들이 국위선양(?)을 본격적으로 할 시기다.
한류로 드라마들이 세계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주인공들 상당수가 신데렐라를 구해주는 재벌 2세나 3세다.
남자 주인공이 실장님이라 불리는 드라마 대부분이 그랬다.
“미안하게도 재벌도 아닙니다. 아버지는 농부입니다. 유기농 사과를 재배하십니다.”
“아~ 사과, 저도 좋아해요.”
클라라는 모습과 달리 순진한 것 같다.
사과라는 말을 꺼낼 때 진심으로 좋아하는 눈빛이었다.
“언제 한국에 오시면 전화 주십시오. 한국 고택인 집과 농장을 구경시켜드리겠습니다.”
“진짜요?”
“네.”
“정말 약속하셨어요. 저 진짜 놀러 가요?”
클라라가 몇 번 확인한다.
예의상 물어보는 것 같지 않다.
“클라라 방문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명함 주세요. 제 명함은 여기 있습니다.”
클라라와 명함을 빠르게 교환했다.
나 이런 사람 아닌데 요즘 성격이 쿨가이로 변하고 있다.
여자 앞에서 내가 왜 이렇게 당당한지 모르겠다.
통장에 쌓인 머니가 빽인 것 같다.
태극오행양의심법을 수련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도 담대해졌다.
두려움이 없었다.
이런 미녀 앞에서도 결코 주눅 들지 않았다.
“대단하세요.”
“뭐가요?”
“은행에서 이런 대접받는 분들은 드물어요.”
“과분할 뿐입니다.”
“본사에서 투자금융 담당 이사님이 대기 중이세요. 대표님께 잘 보여야 할 것 같아요. 개인이 이사님 만나는 일은 1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대사건이에요.”
지금도 잘 보이고 있다.
더 잘 보인다면 내가 벅찼다.
성공한 남자에 대한 여자의 로망은 남자들의 미녀에 대한 로망과 똑같은 것 같다.
오늘 처음 만난 클라라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내가 만 18세도 안 된 미성년자라는 걸 알면…….
좌우지간 이놈의 나이가 내 발목을 잡는다!
“도착했습니다.”
차가 멈췄다.
그리고 운전기사가 문을 열었다.
낯선 예우다.
거절하지 않았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에는 이런 일이 다반사일 것이다.
‘호랑이에게 급전 한 번 빌리러 가볼까~.’
국내 자금을 해외로 이체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이 방법을 택했다.
까다로운 국내법과 배 아파할 정치인과 금융가들의 눈을 피하는 최상의 선택이었다.
‘휘이~멋지네.’
홍콩상행 은행 홍콩 본사 건물이 떡하니 내 눈앞에 보였다.
대한민국과도 인연이 깊었다.
1872년 제물포 지점을 설립하여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총 자산 5,000억 달러가 넘는 HSBC 그룹의 핵심이었다.
그룹 세전 순이익이 100억 달러에 달했다.
개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내실뿐만 아니라 외형도 거대했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세계 건축물에 뽑힌 걸작이다.
홍콩에 오기 전에 정보를 취합했다.
노만 포스터라는 설계사가 건축한 홍콩상행 은행 본사는 중국 풍수지리에 근거해 터를 잡았다.
지지물이 내부가 아닌 외부에 놓였으며, 네 개의 수직 사다리 기둥 여덟 개가 전체 층을 고정하고 있었다.
11층 아트리움에는 태양빛을 모아 비추는 대형 거울이 컴퓨터에 의해 조절되기도 했다.
총 높이 47층.
녀석이 나를 거대한 어깨로 굽어봤다.
‘뭘 봐~ 짜샤!’
고개를 들어 놈과 맞짱을 떴다.
지금은 겨우 1억 달러나 빌리러 온 채무자지만 곧 입장이 바뀔 거다.
앞으로 1년 뒤 전 세계를 뒤흔들 거대한 폭풍이 금융권을 휩쓸 예정이다.
그때는 내가 절대 갑이 되어 있을 것이다.
절대 기죽지 않았다.
“들어가세요.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
클라라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최고의 의전을 보였다면 그들에게도 목적이 있을 것이다.
부디 내 성질 안 건드리기를 바랄뿐이다.
여차하면…….
아쉬워도 확 엎어버릴 수 있는 자존감이 나에게는 철철 넘쳤다.
뚜벅뚜벅.
난 호랑이 굴로 천천히 느긋하게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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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