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9
38장. 호랑이들의 돈을 빌리다
“정말 대단해! 어린 나이에 이런 주식이라니……. 이 보고서가 믿겨지나?”
“법무팀이 확인한 바로 사실이라고 합니다.”
“한국에는 알아봤나? 재벌의 숨겨 놓은 사생아 같은 거 아냐?”
“전혀 아닙니다. 평범함 고등학생이라고 합니다. 다만 외가 쪽이 준재벌이라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준재벌이라……. 미성년자에게 거액의 비자금을 맡길 일도 없고……. 드러나지 않은 상속인가? 그것도 아니면 투자의 천재?”
홍콩상행 은행 47층에 위치한 VIP 접견실.
은행 투자금융담당 이사 레오 스튜어트와 팀장 헤리 로렌스가 대화를 나눴다.
한국에서 얼마 전에 날아온 서류에 그들은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한국 홍콩상행 은행 지점장인 스티븐 벤슨은 뛰어난 재원이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은행 입수합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한 HSBC의 대표 투자 선수였다.
그가 특별대출을 신청했다.
대출 등급은 A+++.
일개 개인은 이런 등급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담보가 충분해 회수 가능성이 높은 거액의 거래라면 가능했다.
이번이 그 케이스였다.
개인이 수천억 주식 계좌를 담보로 1억 달러를 차용하기를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슈퍼개미들이 세상 곳곳에 숨어 있으니 그럴 수도 있었다.
주식 담보 대출도 일상적인 거래 중 하나였다.
하지만 문제는 대출 신청자가 고등학생이라는 거다.
만 18세가 이제 갓 넘은 한국에서는 미성년자였다.
1억 달러의 대출은 적은 게 아니다.
기업이라면 별 문제 없지만 개인에게는 쉽지 않았다.
홍콩상행 은행에서 이사급 회의가 열렸다.
대형 대출은 고위 임원들의 승인이 필요했다.
투자금융 담당 레오 스튜어트 이사가 이 대출을 맡았다.
서류는 미비한 점이 보였지만 담보는 문제없었다.
한국 지점 법률팀이 완벽하게 담보를 확보했다.
이율도 연 15프로였다.
완벽하고 철저한 수익이었다.
삐이이이.
인터폰이 울렸다.
“무슨 일인가요?”
“VIP께서 올라가고 계십니다.”
“바로 안내해요.”
“네. 이사님.”
비서실의 보고가 올라왔다.
두 사람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문을 바라봤다.
재벌가의 상속자인지 투자로 자수성가한 천재인지가 궁금했다.
만약 천재라면 그를 붙잡아야 했다.
미국 월가에서는 수학공학자와 물리과학자들을 통해 새로운 투자 기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얽히고설킨 파생상품을 설계하는 데 천재들이었다.
특히 모기지론 같은 대출 상품을 주력으로 삼아 이익을 엄청나게 창출했다.
HSBC 그룹도 미국 주택시장에 뛰어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지금은 모기지론 투자가 유행이었다.
이럴 때 놀랄 만한 투자기법이 나타난 거라면 무조건 잡아야 했다.
스르르륵.
접대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비서실 직원 클라라와 함께 한국인이 들어왔다.
전혀 위축됨이 없이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미청년.
“…….”
레오는 당황했다.
나이가 어림에도 세계적 금융계의 거물인 자신 앞에서도 여유를 부리는 청년이다.
결코 만만하게 볼 인물이 아니라는 걸 레오는 금융가의 본능으로 알아챘다.
***
심사 담당 호랑이들이 날 보고 있다.
내 표정을 보고 낯빛이 살짝 굳었다.
아마 만만하게 생각했다가 긴장 탄 것 같다.
내공을 운용해 보이지 않는 기세를 뿜었다.
일반인이 충분히 감지할 만한 기였다.
“이사님, 다니엘 장 대표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클라라가 나를 소개했다.
“홍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투자금융담당 이사 레오 스튜어트라고 합니다. 여기 이 친구는 팀장 헤리 로렌스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두 분 다 고귀한 영국 귀족 가문이셨군요. 다니엘 장이라고 합니다. 다니엘이라고 부르십시오.”
내 영어 이름을 잘도 팔았다.
외국인들에게 태산 장이라는 꼬인 발음을 듣고 싶지 않았다.
클라라가 나를 처음 만날 때 불렀던 태산 장이라는 그 발음은 영 아니었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에 따라야 하는 법이다.
동시에 상대에 대해 치켜세웠다.
언어학자 크리스 반스데일이 심어 놓은 기억이 작동한 것 같다.
스튜어드와 로렌스라는 영국 귀족 가문의 뼈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둘 다 성이 명망 있는 귀족 가문의 것이다.
“우리 가문에 대해서 아시는군요. 하하하. 영국 유학생이십니까?”
“명망 있는 스튜어드 가문을 모른다면 문명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학생은 아니고 영국에 관심이 많습니다.”
HSBC 그룹은 다른 미국계 금융그룹과 달리 폐쇄적이었다.
태생은 스코틀랜드인들이 만든 은행이 시발점이다.
대대로 스코틀랜드 왕을 섬겼던 재상 가문이었던 스튜어드가의 귀족이 고위직에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21세기 문명사회에서도 영국 상원의원들 대부분 귀족 가문이다.
영국 귀족들은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팀장 헤리 로렌스의 로렌스 가문도 영화에 그 이름이 언급될 정도로 대귀족이다.
그들에게 말 몇 마디로 호감을 얻었다.
“하하. 이거 보자마자 다니엘 대표에게 호감이 가는군요. 자리에 앉으세요. 클라라, 잠시 자리를 비켜주시겠습니까.”
“네. 이사님.”
클라라가 조신하게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일개 비서 직원에게도 레오 이사는 말투가 부드러웠다.
저게 바로 수백 년을 내려온 진짜 귀족의 모습이었다.
클라라는 나가기 전에 나와 눈인사를 나눴다.
내 말투와 예법에 호감이 플러스 된 것 같았다.
“차를 드시겠습니까?”
“스티븐 벤슨 지점장실에서 마셨던 홍차 향이 아직 코끝에서 느껴지는 듯합니다. 한 잔 부탁드리겠습니다.”
또 홍차다.
중국의 꽌시가 독주로 시작하는 것처럼 영국 남자들은 차로 관계를 트는 것 같다.
영국인들은 미국인과 달리 고리타분한 맛이 있다.
박자에 맞춰줬다.
영국의 귀족들이나 상류층은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는다.
과거 1페니만 주면 마실 수 있던 커피문화에 귀족들과 상류층은 반발했다.
신분 차별을 위해 은으로 구할 수밖에 없던 중국차를 수입해서 마셨다.
아편전쟁까지 발발시켰던 홍차 문화를 생각하면 짐작이 간다.
애프터 티라는 문화를 만들 정도로 차 사랑이 각별했다.
“다니엘……, 정말 당신은 내가 만난 한국인 중 최고예요. 발음도 그렇고 실력도 아주 마음에 들어요.”
25프로로 후려쳤던 크리스 반스데일에게 새삼 미안했다.
일이 이렇게 잘 풀렸다.
언어는 그 나라 국민들의 문화와 문명의 총화라는 말을 요즘 실감한다.
몇 마디 나누자 이 영국 신사들이 또 나에게 빠져들었다.
미국식 영어가 널린 세상에서 영국식 악센트를 사용하는 이방인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한 번 찾아가 나무라도 몇 개 심어줘야겠어.’
크리스 반스데일 교수가 격하게 보고 싶었다.
시간 나면 보너스를 지급해도 될 것 같다.
또로로로로록.
홍차를 즐겨 먹는 민족답게 사무실 한쪽에 고급진 다기 세트가 있었다.
레오 스튜어트 이사가 홍차를 내렸다.
손님이 오면 주스나 커피 같은 마실 거리를 제공하는 우리네 풍습과 다를 바 없다.
차가 내려지는 시간 난 그들을 유심히 살폈다.
한국 지점장 스티븐 벤슨과 또 달라 보였다.
진짜 영국 고위 귀족가의 후손들이었다.
하얀 머리칼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회금발은 멋졌다.
셔츠 위에 받쳐 입은 연회색 카디건은 편안해 보였다.
자연스러운 후광과 행동 하나하나에 기품이 스며있다.
졸부들은 절대 따라할 수 없는 일상의 품격이 절로 풍겼다.
가만히 지켜보고 눈에 담았다.
크리스 반스데일 교수도 귀족가 일원이 분명했다.
레오 이사와 헤리 팀장의 행동이 눈에 익었다.
그가 심어준 보너스 기억.
아주……, 성능이 죽여줬다.
“트와이닝에서 특별히 판매하는 로열 레이디 그레이라는 제품입니다.”
“아! 왕실에 납품한다는 그 홍차군요.”
“오! 그것도 알고 있었습니까?”
레오가 확실하게 내 팬이 된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사이좋게 차를 마셨다.
느긋한 이들의 행동 봐라.
행동과 달리 눈빛은 빛났다.
호랑이들의 잔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다.
차와 함께 쿠키가 나왔다.
점잖게 홍차 맛을 음미했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다니엘. 담보 서류는 잘 봤습니다. 주식을 담보로 대출은 가능합니다. 홍콩에서는 만 18세라면 누구나 1인 법인을 설립할 수 있습니다. 그 부분은 본 은행이 책임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SBC 은행의 호의는 잊지 않겠습니다.”
홍콩 법인 계좌는 반드시 필요했다.
외국 투자금 이익에 대해서는 무과세였다.
조세조약까지 체결되어 있어 혹시 모를 세무조사 때 국내 면세가 가능했다.
물론 홍콩은 중간기착지로 사용할 예정이다.
가장 안전한 스위스 계좌뿐만 아니라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개설할 생각이다.
이곳저곳 몇 단계 거치면 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세계적 핫머니의 진짜 소유자를 누구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법인 설립과 동시에 계좌에 입금될 예정입니다. 동의하십니까?”
“네. 동의합니다.”
한국 HSBC 지점에서 법무팀과 법률적 문제는 끝낸 상태였다.
“이 서류에 사인하시면 됩니다. 당분간 홍콩에 법인 회사가 안정적으로 굴러갈 때까지 모든 행정, 법률, 회계 서비스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무실 비서 기능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이자 15프로에 얘들이 지극정성이다.
내 사인 하나면 난 1억 달러를 홍콩 법인 계좌로 받게 된다.
참 꿈만 같았다.
일개 고삐리에게 1억 달러씩을 빌려주는 은행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이때 팀장 헤리가 나섰다.
“말씀하십시오.”
이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직접 질문 드리겠습니다. 혹시 새로운 주식 투자 프로그램이라도 개발하셨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상당한 로열티를 지불할 의향이 있습니다.”
레오와 헤리 눈빛이 그냥 날 잡아먹을 듯 빛났다.
쯧쯧. 사람들이 날 바보로 아나?
설사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미쳤다고 그걸 팔아먹을까?
나 혼자 쓸어먹기도 바쁜 세상이다.
“제 투자는 오로지…….”
호랑이들의 침 흘리는 모습을 구경하며 느긋하게 손에 홍차 잔을 들었다.
우아하게~.
“감입니다.”
“네? 감요?”
“네.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주식을 보고 있으면 언제 오를 거라는 느낌이 팍 옵니다.”
“…….”
내 말에 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웬 개소리냐는 얼굴들이다.
숫자와 원칙에 살고 죽는 금융맨들에게 주식을 감으로 투자한다고 하면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다.
지금처럼 말이다.
한 번 더 놀려주고 싶었다.
뭔 유령 식빵에 쨈 발라 먹는 소리인가 하는 표정이다.
“뭐라고 할까? 쉽게 말해 서양에서 말하는 심령술사들의 초능력 비슷한 것입니다. 이게 특화돼서 모니터에서 주식을 보고 있으면 상승할 주식들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가만히 주식을 보고 있으면 빛이 반짝거리는 놈들이 있습니다. 그때 탁! 하고 매입을 합니다. 그러다 빛이 깜빡이면 매도를 합니다. 투자를 하고 있지만 저도 두렵습니다. 언제 신 빨이 떨어져서 쫄딱 망할지 저도 모릅니다. 신이 주신 보너스 같은 겁니다.”
둘은 서로를 보며 어이가 없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욕심내면 안 되지.
정 억울하면 죽다 살아 돌아오면 된다.
나처럼~.
“레오 스튜어트 이사님.”
“네? 네.”
“계약을 변경하고 싶습니다.”
“어떤 내용을 말입니까? 서류는 이보다 완벽할 수 없습니다. 이자는……, 투자 위험이 있어 그 정도로는 책정이 되어야 합니다.”
은행 직원답게 쪼잔하게 1프로 이자에 목을 맸다.
그래서 당신들이 모기지론 사태 때 미국 집귀신에 물려 100억 달러나 손해 보는 거야!
무너지는 느낌이 왔으면 확실히 정리했어야지.
난 앉아서 그들의 미래를 보았다.
그러나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그들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 될 것이다.
“그 내용이 아닙니다.”
“그럼???”
주도권이 나에게 넘어왔다.
자! 이제 찌를 던져보자고!
“대출 금액을 상향했으면 합니다.”
“상향요? 얼마 정도를 생각하십니까?”
이사 레오가 정색하며 본다.
집중력이 아주 좋다.
금융가로서 좋은 자세다.
“미화로 2억 달러.”
“헛!”
아저씨들 놀라기는!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다니까.
“이자는 20프로, 기간은 1년입니다. 어떠십니까? 제 조건에 구미가 당기지 않습니까?”
맛있는 고깃덩어리가 대롱대롱 걸려 돈 많은 호랑이들을 유혹했다.
훗~ 니들이 안 먹고 버틸 것 같아?
돈 많은 호랑이들아!
어서 눈먼 돈을 내놓거라!
# 39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