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58
458장. 거래의 조건 (3)
“어서 오게. 페어~ 오랜만이군.”
“늦은 밤에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폐하.”
“결례는 무슨~ 늙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네. 와인 한잔할 텐가?”
아돌프 16세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이 인자한 미소로 페어 라르손을 맞이했다.
스톡홀름 외곽에 위치한 드로트닝홀름 궁전.
야밤의 방문을 허락받은 페어 라르손은 소형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곧장 날아왔다.
밤 12시.
이제는 명목상의 군주에 불과하지만 함부로 만날 시간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인자한 국왕은 페어 라르손의 알현을 허락했다.
대대로 왕가에 충성했던 가문의 역사뿐만 아니라 페어 라르손은 국왕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웠다.
젊은 시절 대학교에서 형 동생으로 지내기도 했었다.
“감사합니다. 폐하.”
아돌프 국왕이 직접 와인을 따라줬다.
“감사는 무슨…… 카리나는 같이 오지 않았나?”
“공주님이 로비에서…….”
“곧 시집 갈 녀석이라 요즘 엉망이야. 말을 안 들어. 고집이 세서 시집 가면 남편이 힘들 게 뻔해.”
“공주님은 잘 하실 겁니다.”
“그래야지. 나 때와 달리 귀족 가문이 아니더라도 결혼할 수 있다는 게 축복이지.”
국왕의 한탄을 들어주며 페어 라르손은 와인을 마셨다.
국왕 아돌프가 대학 시절 좋아하던 평민 여성이 잠시 떠올랐다 사라졌다.
“폐하…….”
페어 라르손이 조심스럽게 왕을 불렀다.
“스웨덴의 미래가 걸린 일이라고 했지? 말해 보게.”
인자한 인상의 국왕 아돌프가 페어 라르손을 바라봤다.
흥미로움이 가득한 시선이 담겼다.
“폐하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이번에 볼부 대주주가 바뀌었습니다.”
“포드에서 미국계 사모펀드로 넘겼다고 들었네.”
“그들이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요구? 눈먼 세금이 필요하대? 청산이라는 협박 카드를 사용하겠지. 돈만 아는 괴물들의 뻔한 수작이지.”
아돌프 국왕은 짐작하고 있었다.
“반쯤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인가?”
“투자자 전권 위임대표가 국가에서 투자금을 지원한 만큼 투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동시에 미국 공장을 가동하고 전기차 시장에 100억 달러 이상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미끼를 던졌습니다.”
“호오, 미국 공장과 100억 달러라고?”
복지 선진국으로 알려졌지만 스웨덴은 인구가 적었다.
1000만 명의 인구가 먹고사는 국가에서 100억 달러는 적지 않은 투자였다.
무엇보다 스웨덴 땅은 춥고 척박했다.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 복지 수준을 계속 늘렸다.
국가를 떠받칠 제조업의 유지는 필수였다.
“법률로 공증 받은 계약서를 준비하겠다고 합니다.”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돌프 국왕은 미국 자본을 신뢰하지 않았다.
하는 행태가 이익이 없다면 과감하게 모든 걸 팔아치우는 돈만 아는 사채업자나 다름없었다.
“지금껏 본 월가의 대리인들 중 가장 신뢰가 가는 자입니다.”
“……미국인인가?”
“아닙니다. 한국인입니다.”
“한국인?”
“나이는 이제 겨우 20대 초반입니다.”
“뭐라고? 그게 진짜인가?”
와인잔을 들고 빙빙 돌리고 있던 아돌프 국왕이 깜짝 놀라며 페어 라르손을 다시 바라봤다.
그가 아는 일반적 상식과 괴리가 컸다.
“월가의 투자자인 로버트 라이언과 돈독한 관계라 합니다.”
“……그래?”
“혀…… 형님. 이번 기회를 놓치기 싫습니다. 볼부를 위해서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싶습니다!”
간절했던 페어 라르손이 폐하가 아니라 형님이라고 불렀다.
왕에 대한 결례지만 그만큼 과거 추억을 소환할 정도로 바라는 바 의지가 강력했다.
“데려와 봐.”
“네?”
“한 번 보고 싶군.”
“아!”
“만약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왕실 재산이라도 담보로 잡혀 투자해야지.”
“폐, 폐하!”
“폐하는 무슨~ 방금처럼 형님이라고 불러. 오랜만에 대학 시절을 추억하며 밤새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보자고! 하하하하하.”
아돌프 국왕의 호탕한 웃음이 궁전에 울려 퍼졌다.
실로 오랜만에 울리는 국왕의 파안대소.
‘됐다!’
페어 라르손은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
찜? 내가 무슨 가오리나 아귀도 아니고…….
야훼가 찜했다는 소리에 어이가 없었다.
신이 날 맛 좋은 먹거리 정도로 보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색은 금물.
“로리아나. 이렇게 야밤에 찾아온 진짜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또로로록.
그 와중에도 와인 잔을 채우는 건 잊지 않았다.
야훼의 신실한 딸을 넘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계에서도 신성 사제 여자는 절대 건드는 거 아니라고 배웠다.
신벌을 받아 평생 저주의 인생을 산다고 그랬다.
“궁금했어요.”
“뭐가 말입니까?”
얼굴의 홍조가 서서히 가시며 로리아나가 날 직시했다.
관상이 실로 대단했다.
평생이 왕의 사주였다.
눈과 턱을 비롯해 모든 대칭들이 균형을 이뤘다.
한마디로 완벽하고 고결한 상이었다.
평생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갈 운명이었다.
“로버트 라이언과 함께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 건지 말이에요.”
야훼의 딸도 됐지만 실재 차일드 가문의 주인이기도 했다.
그녀가 평범한 여성이라고 생각하면 그 자체가 멍청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깊고 예리한 갈색 눈동자가 박혔다.
사람의 심중을 꿰뚫어볼 줄 아는 눈빛이다.
“이유는 간단하지 않겠습니까?”
“…….”
와인을 마셔가며 로리아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긴장감에 등판이 촉촉해졌다.
그녀의 눈은 신의 눈과 같았다.
“뭔가요?”
“돈 많이 벌어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사는 인생을 꿈꿉니다.”
“사람들이 파악하기 힘들 정도의 금액을 벌었다고 했는데 아닌가요?”
“어디까지 아십니까?”
“요즘 환율과 선물 시장에 정체 모를 자금들이 떠다니고 있어요. 대략 1조 달러쯤?”
옆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 1조 달러를 언급하는 로리아나.
내가 볼부 대표를 앞에 두고 몇 십억 달러를 언급했던 것처럼 그녀는 딱 그렇게 말했다.
사는 세상의 단위가 달랐다.
“많군요~.”
“우리 솔직해지죠. 푼돈이 아닌가요?”
‘우리’라고 말하며 로리아나가 묘하게 웃는다.
어서 이실직고하라는 뜻이 담긴 미소다.
“전 빼주십시오.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삽니다. 로버트 라이언을 만나 허세를 떨고 살지만 제 것이 아닙니다.”
재정 상태 확인하려 작업 중이다.
이럴 때 인정하면 바보 인증이다.
어차피 로리아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믿어 드리면 되죠?”
“물론입니다. 전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도덕적 인간의 표상입니다.”
“푸웃!”
갑자기 로리아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뭐지? 나에 대해 뭘 더 아나?
내가 말하고도 무척 찔렸지만 지금 이 자리는 미래를 건 도박장이었다.
상대에게 허점을 보이면 안 됐다.
“그 웃음의 의미는…….”
“모르세요?”
“네~.”
난 꽤 뻔뻔했다.
“갑자기 다니엘의 음성과 얼굴을 보고 있자니 격언 하나가 떠올랐어요.”
“격언요?”
“태양빛은 더러운 곳을 뚫고 지나가도 그 자신은 본래 순수한 채로 남는다.”
로리아나가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에너지가 무척 밝았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장인이 정성들여 완성한 검처럼 날카로웠다.
“제가 부족해 그 말의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돈은 더러운 곳이 아닐까요? 그리고…… 각자 추구하는 신념과 집념은 빛과 같고…….”
로리아나가 말끝을 흐렸다.
핵심 주제로 들어갔다.
파바밧.
서로의 시선이 처음으로 강력하게 부딪쳤다.
“서로 부딪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각자 생각하고 소유한 빛의 크기가 다른데 서로 간섭하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지 않을까요? 본래 큰 빛이 작은 빛을 삼키는 법이랍니다.”
차일드 가문에 영향 주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해먹고 떨어지라는 경고였다.
뭘 계획하는지 몰라도 차일드에 도전하지 말라는 의미.
목이 바짝바짝 탔다.
잔에 담긴 붉은 액체를 입에 털어 넣었다.
누가 본다면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그 말에 담긴 뜻은 거부하기 힘들 만큼 강력했다.
주제 파악.
입안이 썼다.
이런 식의 만남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세계의 금융을 손에 쥐고 있는 차일드 가문의 주인과 이렇게 빨리 마주하게 될 거라고 상상 못했다.
초청은 했지만 응할 거라고는 확신하지 않았다.
물론 로리아나는 내가 가진 자금의 액수를 전부 다 알고 있지는 않았다.
겨우 1조 달러 따위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 입장에서는 1조나 10조 달러나 의미가 없었다.
“한 잔 더 주시겠어요?”
로리아나도 어느새 와인을 비우고 당당하게 잔을 내밀었다.
지금껏 한밤중에 미녀와 마신 술 중에서 가장 독했다.
심장과 뇌리에 팍팍 꽂히는 말들의 비수.
꿈틀 못된 성질머리가 똬리를 풀며 일어났다.
한 번 죽어본 놈만이 품을 수 있는 그 감정.
통!
새로운 와인 병을 오픈했다.
코르크 마개가 열리며 신선한 와인향이 훅 맡아졌다.
정신이 맑아졌다.
“내가 좋아하는 성인께서 남긴 명언이 있습니다. 들어 보시겠습니까?”
사실상 로리아나를 두고 나를 찜한 야훼와 담판을 짓는 자리였다.
신들 또한 인간처럼 감정적이고 편협할 때가 많았다.
특히 야훼는 자기 자식들에게 맹목적인 존재.
그를 홀려야 했다.
또로로로록.
로리아나 잔에 와인을 채웠다.
그것도 듬뿍.
와인을 마시는 데 예법이 아니지만 무시했다.
어차피 지금은 정공법이 통하지 않는 변칙적 순간이었다.
“뭔가요?”
궁금함을 보이는 로리아나.
아마 자신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껏 살면서 차일드 가문의 말에 반기를 든 자는 없었을 게 뻔했다.
“동양의 선현이신 장자라는 분이 하신 말씀입니다.”
뜸을 들였다.
어차피 오늘 밤 편안한 잠자기는 다 틀렸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말하지 않고 가르친다.”
“……!!!”
가만히 듣고 있다가 눈을 동그랗게 드는 로리아나.
자신이 했던 말의 경고를 무시하고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의미였다.
당신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걸 품고 산다는 뜻을 전했다.
차일드에 대한 항명.
죽음의 강을 건너본 나만 할 수 있는 말이고 반기였다.
인간에게 있어 생사(生死)보다 더 중요한 이벤트는 없었다.
그리고 난 이벤트를 직접 경험하고 회귀한 유일한 인간이었다.
차일드 가가 두려운 존재라는 건 안다.
하지만 쫄지 않았다.
어차피 한 번이나 두 번이는 죽는 건 매한가지였다.
꿈 속 할배가 그랬다.
짧은 인생 마음껏 지르고 살라고 말이다.
“그 말…… 책임질 수 있나요?”
와인 잔을 들고 로리아나가 감정을 숨기며 물어왔다.
갈등의 눈동자.
내 한 마디에 미래가 결정됐다.
이제는 상황을 정리할 때.
스윽.
한 걸음 더 가까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
당황하며 놀라 크게 눈을 뜨는 로리아나.
허락도 없이 내 방에 들어와 놓고 이렇게까지 놀라는 모습이 아이러니했다.
“이제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그만하죠. 어차피 제가 어떤 짓을 해도 차일드 가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않습니까.”
고개를 숙였다.
미소를 잃지 않았다.
공격과 방어를 능수능란하게 펼쳤다.
“방금 전에는…….”
당혹해 하는 로리아나.
세상 그렇게 오래 살지 않는 티가 났다.
“제가 가는 빛의 신념은 명확합니다. 이웃집 개들만 때려잡으면 됩니다. 그러니 안심하세요.”
때때로 이런 분들에게 자극이 필요한 법.
내가 건넨 말들에 로리아나의 심리적 방어체계가 날뛰었다.
얼굴에 드러난 당혹, 의혹, 호기심.
“이웃집 개?”
“말 안 듣고 으르렁거리는 이웃집 개들이 있습니다. 패서 고치려고 생각 중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차일드 가의 매를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용도가 끝나면 바로 돌려드리겠습니다.”
“…….”
가만히 날 보는 로리아나.
차일드 가문을 거스리지 않겠다는 계약에 조건을 달았다.
아무리 봐봐야 그놈이 그놈이다.
“그런데 로리아나, 그거 아십니까?”
“???”
스윽.
한 발자국 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호흡하는 달콤한 숨 향기가 맡아졌다.
좋았다.
“당신…… 치명적으로 아름답군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진 로리아나의 눈동자.
야훼의 신실하고 순결한 종은 마법사 아린과 다른 종류의 선과 악을 품고 살았다.
그리고 이 순간 떠오르는 명언 하나.
– 모든 여인이 악이라 할지라도 아직은 필요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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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