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52
653장. 빅딜의 계절(4)
‘이놈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게야!’
전문구는 심시 당황스러웠다.
장태산이 물불 가리지 않는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백악관을 등에 엎고 한국 정부를 상대로 압박할 수 있는 인물.
동생 전문수도 만만한 인사가 아니었음에도 박살이 났다.
안아와 천일, 동룡그룹도 마찬가지.
말이 쉽지 그룹의 회장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한 기업의 수장으로서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인맥과 전천후 공격 무기를 갖춰야만 버틸 수 있는 자리였다.
수십 년 동안 뿌린 정치 자금의 규모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목숨이 좌지우지됐다.
정치인들을 비롯해 검찰과 법원, 경찰 라인까지 공권력을 손에 가득 쥐어야만 시대가 변해도 버틸 수 있었다.
기업 간에 상흔을 남기는 만큼 그룹과 그룹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상대를 공격하지 않았다.
사자들끼리 싸워 봐야 말뿐인 영광의 상처를 입고 서로 적잖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태산은 전혀 달랐다.
그러한 암묵적 룰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목표한 기업을 공격해 섬멸했다.
시간도 길게 걸리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몇 달 이내에 장장한 기업마저 쓰러트렸다.
과거 연대도 모 그룹과 싸워본 적이 있었지만 완벽한 항복은 받아내지 못했다.
장태산은 모든 예상을 비켜갔다.
동생 문수에 관한 일도 마찬가지.
연대중공업은 연대자동차를 비롯해 연대그룹 모든 계열사와 관련이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도 강한 일격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정도 연대와의 맞대응을 꺼리는 게 현실.
이런 상황에 장태산은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놀라운 건 그 결과를 보란 듯이 만들어 낸다는 것.
이렇게 전문구 회장이 직접 사과 자리를 만들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런 큰판 위에서 어리석게 행동했던 동생 전문수.
상대가 누구인 줄도 모르고 장태산을 공격했고 자신에게 뺨까지 얻어 터졌다.
장태산을 결코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기에 형 입장에서 경고를 했던 것인데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장태산이 바라는 대로 무릎을 꿇지는 않을 것이다.
목숨 걸고 대응해 본다면 장태산도 흔들릴 수 있었다.
연대는 수십 년간 대한민국에 깊이 뿌리 내려온 그룹이다.
혼맥을 비롯해 뿌려놓은 돈과 인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 핵심 로비스트들이 존재했다.
‘이러면 막가자는 건가?’
장태산이 눈앞에서 웃고 있었다.
연대로템은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었다.
대웅과 연대, 한중중공업이 IMF를 겪으며 하나의 기업이 됐다.
그걸 연대가 삼켰다.
철도차량 제조뿐만 아니라 고속철도 사업과 방산 기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동시에 로켓 사업까지 다뤘기에 미래 가치가 아주 컸다.
최근에는 자동차 설비와 제철설비, 발전과 중기 사업까지 다뤘다.
철도 차량 부분 기준으로 세계 10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1년 총 매출이 3조를 넘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미래 가치는 절대 낮지 않았다.
장태산이 그런 연대로템 주식을 요구했다.
이건 누가 봐도 전쟁 선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 눈으로 보시면 안 됩니다. 공짜로 가져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올려 10억 달러에 인수하겠습니다.”
10억 달러, 1조가 넘는 돈이다.
어린애 푼돈처럼 거액을 스스럼없이 매각대금으로 언급하는 장태산.
이제는 두렵기까지 했다.
로템은 시가 총액이 1조 5000억 정도.
25% 지분 가치치고는 많은 인수 금액이었다.
“나머지 주식은 매입했나?”
두려움을 뒤로 감추며 물었다.
장태산의 보유 자금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국내외에 투자한 자금 규모가 얼만지 알려지지 않았다.
“제 친구가 도움을 많이 줬습니다.”
월가의 로버트 라이언이 개입됐다는 걸 인정하는 장태산.
“으음…….”
전문구 회장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연대로템 주식 40% 정도를 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해외 매입 주식과 나머지 25%를 더 가져간다면 경영권 확보가 가능했다.
“왜…… 이렇게 국내 그룹들에 대한 적개심이 큰가?”
진작부터 들었던 의문이었다.
지금까지 장태산이 보였던 자본금 정도면 충분히 다른 나라에서 돈을 벌어도 됐다.
대한민국 내에서 그룹을 경영한다는 건 돈을 벌겠다는 의미보다 명예나 권력을 쥐기 위한 하나의 명분 있는 수단에 가까웠다.
게다가 장태산은 명예나 권력을 추구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마음에 안 들어서요.”
“마음에 안 들어? 단지 그 이유라고?”
어이가 없어 전문구는 다시 물었다.
“네. 다들 아주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안아와 천일, 동룡, 삼룡과 연대까지 다 눈에 차지 않습니다.”
“건방진 발언이군.”
전문구의 솔직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나름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연대 자동차 그룹이었다.
연대중공업도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있는 산업체였다.
무너지면 그 파장이 가져올 부정적 영향력이 가늠하기조차 힘들었다.
“다들 공정과 혁신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일본이나 독일 따라가기만 할 겁니까? 내수 기업들은 소비자들을 봉으로 알고, 수출 기업들은 하청업체나 중소기업의 피와 살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에 말씀 드렸듯이 연대도 노조에 휘둘리거나 국내 소비자들에 대한 서비스 마인드가 부족합니다. 결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이웃집 개들이 비웃는 소리가 안 들립니까?”
“이웃집 개? 누구?”
“중국과 일본 말입니다.”
“자네 말은 인정하지만 동의는 할 수 없네. 한때 한국은 나사못 하나 만들지 못하는 나라였어. 지금까지 이 정도 컸던 이유가 일본의 기술과 재료가 공급되었기에 이룰 수 있었던 업적이야. 중국도 지금은 흑자를 안겨주는 중요한 무역 파트너지.”
“그래서 더욱 위기를 맞을 겁니다.”
“쉽지 않아. 글로벌 무역 시장에서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을 수가 없어. WTO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이 두고 보지 않을 것이야.”
“회장님은 일본과 중국, 미국을 믿습니까?”
“……약자의 서러움이지. 믿을 수밖에 없어.”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전문구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일본이나 중국이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기술이나 재료 공급을 하루아침을 끊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힘들겠지만 이겨내야지. 난 아버지께 그렇게 배웠어.”
전문구는 당당했다.
연대자동차는 일본과의 기술 제휴를 통해 엔진기술을 습득했다.
이제는 자체 기술로 엔진과 미션 같은 중요 부품을 제조할 수 있었다.
“회장님은 하늘 앞에 떳떳하십니까?”
“…….”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하늘을 내세워 떳떳하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었다.
연대의 하청업체들은 언제나 비명을 질렀다.
성장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어느 정도 이익이 발생하면 납품 단가를 후려쳐 근근이 목숨만 연명하게 만들었다.
좋은 기술은 기회가 될 때마다 빼돌렸다.
그리고 퇴직 임원들이 차린 공장에 다시 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연대가 다시 흡수했다.
“어쩔 수 없었네. 다들 그렇게 살아.”
“그것까지는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문득 전문구는 자신이 심판관 앞에 선 죄인처럼 느껴졌다.
어이가 없어 장태산을 노려보는 전문구.
“대한민국 그룹과 기업체들은 곧 폭풍을 맞을 겁니다. 소재 개발에 뒤처진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반도체 업체들을 만나는 건가?”
“반도체가 대한민국의 캐시카우니까요.”
“금융투자자인 자네가 왜? 우리 같은 기업가들에게 맡기는 게 낫지 않나?”
“애국하는 중입니다.”
“……애국이라.”
애국이라는 말에 전문구는 입맛을 다셨다.
아버지와 자신도 애국하는 심정으로 연대그룹을 키웠다.
서비스 직종이나 금융업도 결국은 산업 기술이 모태가 되어야만 했다.
미국이 공장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금융과 서비스 산업에 올인하다가 금융위기를 겪었다.
“몇 년 후, 아니 지금도 일본은 한국을 무너트리기 위해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네. 일본 수출 금액과 한국의 수출 금액이 비슷해지고 있지. 그놈들이 자존심이 대단해. 앞에서는 웃지만 뒤에서는 칼을 가는 놈들이지.”
연대그룹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오는 동안 일본 기업들과 수없이 접촉했던 전문구였다.
언제나 한국인을 아랫사람들 대하듯 취급했던 일본인들.
결코 믿지 않았다.
“연대자동차는 어느 정도 버티겠지만 전자나 반도체 쪽은 취약합니다. 정보 기술 혁명이 이뤄진 다음에는 모든 국가가 국수주의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주권자가 손해나는 걸 싫어합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 무역도 종말을 고할 시기가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몇 년 안에 확인될 겁니다.”
“상상력이 가히 심하군.”
“저도 상상으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만. 사실입니다. 미국은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일본과 유럽, 아시아를 뒤흔들어 단물만 빼 마셨습니다. 다음 순서는 중국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은 미국이 상대하던 다른 국가와 다릅니다. 공산주의는 미래 이익을 위해 인민들 수억쯤 죽어나가도 꿈쩍도 안 합니다. 지식과 기술, 통계와 정보가 공유되는 시장 경제와 달리 중국은 그들 내부에서 통제가 가능합니다.”
“미중이 경제 전쟁이라도 한다는 말인가?”
“몇 년 남지 않았습니다.”
“믿을 수 없군……. 그러다 둘 다 자멸할 수 있어.”
“자멸이 아니라 승자독식의 게임이 될 겁니다.”
“승자독식. 승자가…… 미국인가?”
“그건 알 수 없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지금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수출이 주력인 연대자동차도 미세한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각국 정부가 과거처럼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하나둘씩 꺼내들었다.
한국은 벅찰 수밖에 없었다.
OECD 국가 중 GDP 대비 대외무역 의존도가 가장 높았다.
이렇다 할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 수출이 경제의 버팀목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엄청난 타격이 되겠군.”
“미중 무역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등 뒤에서 때를 노리고 있습니다. 배고픈 북한은 쌀을 달라고 떼를 쓸 겁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러시아도 야심이 넘칩니다. 100년 전 구한말과 비슷한 상황이 재현되는 겁니다.”
‘농담은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장태산 눈에서 정광이 뿜어져 나왔다.
눈을 맞추고 있기 두려울 정도로 강한 기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자네가 하는 일이 그것과 관련 있다는 말이지.”
“그럴 겁니다.”
“로템을 달라는 것도 관련이 있는 건가?”
“네.”
“……로템은 연대자동차 그룹의 핵심 기업체야. 비록 지금은 미약하지만 후에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녀석 중 하나야.”
전문구는 로템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동생이 저지른 잘못이 제법 컸지만 로템과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전면전도 불사할 수 있었다.
장태산이 말하는 애국심을 믿고 자산 가치가 높은 사업체를 넘겨준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로템 또한 전씨 가문의 기둥이었다.
지하에 있는 아버지가 좋아할 리 없었다.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전과 혁신 그리고 기술력이 필요합니다. 거기에 더해 안정적인 투자처와 발주도 요구 됩니다.”
“로템은 국방 산업도 포함하고 있네. 굶어 죽을 일이 없어. 국내 고속철도 산업도 진행 중이고 해외에서 수주도…….”
“로템이 뛸 때 중국철도업체는 날고 있습니다. 본토를 넘어 신장과 티벳 그리고 옛 실크로드를 고속철도로 유럽까지 연결하려 합니다. 그런 중국과 로템이 대결이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량에는 장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장태산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님이 느껴졌다.
자존심 상하는 얘기이지만 현실이 그랬다.
로템의 세계 점유율은 겨우 3%였다.
그래도 쉽게 놓을 수 없었다.
로템은 연대그룹과 관련 있는 자동차 설비와 제철, 발전, 환경 설비 및 플랜트 산업을 담당하고 있다.
“15억 달러 드리겠습니다.”
순식간에 거래 요구가가 올랐다.
“자네…….”
현재 환율로 1조 7000억의 거금이다.
전문구의 입에서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현금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
“땅 사셔야죠.”
“!!!”
장태산 말에 전문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뻔했다.
“로템에 남아 있는 지분 15%가 작지 않습니다. 욕심 내지 마시고 주십시오.”
“내가 준다면 버틸 자신 있나? 국내에서 새로운 사업을 따내려면 정부와 협조해야 하는데 자네는 입장이 좋지 않네.”
“제 무대를 한국에 한정 짖지 마십시오. 그리고 현재 수주도 따놨습니다. 대략 100억 달러 정도?”
“뭐라고! 100억 달러!”
믿을 수 없었다.
중국 아니고는 철도에 그런 자금을 투자할 국가가 없었다.
넓은 땅을 소유한 미국도 고속철도 산업은…….
“헉! 설마 러시아!”
빙긋 웃는 장태산.
‘시베리아 철도라면…… 으으.’
광활한 시베리아 철도는 무궁무진한 기회였다.
아직도 개발 여력이 많이 남아 있는 러시아.
그리고 만약 북한과도 철도가 연결된다면 이건 초대박이었다.
한반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대사건.
꿀꺽.
전문구 회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빅딜 받으십시오.”
장기판에서 장군을 외치는 프로 선수 같은 모습의 장태산.
“싫다면…….”
응전을 타진해 보는 전문구.
“그럼…… 연대자동차, 아니 연대그룹 모두를 먹는 수밖에요.”
예상을 빗나간 무서운 선전포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