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32
733장. 시절인연(時節因緣)
“엄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계약 종료? 지금 M.T.S를 나가자고?”
대한민국 탑 걸 그룹이 되면서 FOB는 숙소 생활을 청산했다.
멤버 개인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1년에 수십억에 달했다.
그런 만큼 회사 측에서는 파격적인 조건들을 내걸었고 정산도 깔끔했다.
회사에서 일부 재산 관리를 맡아하면서 알짜배기 부동산을 매입했다.
부족한 자금에 대한 대출도 초저금리로 회사에서 빌려줬다.
부모들의 간섭 없이 안정적으로 일궈낸 부가 상당했다.
멤버들 대다수가 암암리에 부동산 부자가 되어 있었다.
미나도 그중 한 명.
일찍 연습을 끝내고 윤나와 친분 있는 선배의 뮤지컬을 보고 집에 돌아왔다.
씻고 난 뒤 방에서 얼굴 마사지를 마무리하는데 엄마 노현정이 들어왔다.
그리고 듣게 된 예기치 못했던 말.
“왜 그렇게 놀라.”
노현정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엄마! 제정신이야? 회사에서 우리를 얼마나 밀어줬는데. 어떻게 계약 종료를 입에 올려? 그리고 그룹 해체되면 이미지에 타격 받아. 당장 나 같은 경우는 일이 없어진단 말이야!”
강미나는 순간적으로 흥분했다.
엄마가 계약 종료를 입에 올렸다면 이미 생각을 굳혔다는 말이었다.
미나는 누구보다 엄마의 성격을 잘 알았다.
유년 시절부터 자신을 손 안에 든 인형처럼 조종했다.
본래 미나의 꿈은 걸 그룹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엄마의 허영은 남달랐다.
미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었지만 엄마의 바람은 그렇지 않았다.
포기하는 심정으로 엄마가 원하는 연예인이 됐다.
힘들었지만 황연태 대표를 만난 뒤부터는 다행히 일이 잘 풀렸다.
무난하게 대한민국 탑 걸 그룹이 됐고 파파라치들이 따라다니는 유명인이 됐다.
내놓은 곡들이 대박을 친 후 수익으로 100억 단위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였다.
물론 회사가 검증해 준 부동산으로 2배 이상 이득도 봤다.
남은 평생 죽을 때까지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 수도 있는 자금 규모였다.
그러나 부모 입장은 달랐다.
아빠가 갑자기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점점 규모도 커졌다.
세상 물정 모르는 미나가 봐도 심상치 않은 규모 확장이었다.
“어차피 너는 들러리잖아. 서련이 들러리.”
냉정한 엄마 노현정의 평가.
“어, 엄마…….”
강미나는 진심으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솔직해지자. 너 내년까지 버틸 자신 있어? 어찌어찌 버틴다 해도 내후년에는? 막내 선미랑 아정이도 그때 되면 이십대 중반이야. 젊고 싱싱한 애들이 치고 올라오는데 어떻게 대처할 거야? 너희들이 그 자리 차지했듯 다른 애들이 곧 뺏어갈 거야. 회사에서도 이번에 새로운 걸 그룹 육성 중이라며. 토사구팽 몰라?”
다다다 퍼부으며 노현정은 강미나의 기를 죽였다.
“…….”
미나는 차마 입을 다물었다.
그녀도 닥친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요즘은 부쩍 피부에 와 닿는 현장 분위기.
그래서 더 회사에 의지하고 있기도 했다.
회사는 영화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에 여러 멤버들을 노출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만.
“장태산 이사가 서련이를 그렇게 밀어준다며?”
“!!!”
미나가 깜짝 놀라며 당황했다.
회사 내에서도 거의 들리지 않던 소문이었다.
“너도 장 이사 좋아하잖아. 그런데 그쪽은 네가 좋대? 그렇게 잘난 남자가 뭐가 아쉽겠니. 재력 있는 명문가에서 채가겠지. 그러니까 꿈 깨. 서련이라면 모르겠다……. 인연이 오래됐다니까.”
“아니야! 서련이가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거라고!”
노현정은 미나의 감정 따위는 개의치 않고 능숙하게 다뤘다.
“너 바보야? 장 이사가 특별히 밀어주니까 서련이가 광고를 많이 찍는 거잖아. 그게 바로 이 바닥 현실이야.”
노현정의 인정사정없는 말투에 강미나는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멤버들 대부분 장태산 이사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누가 봐도 멋진 남자였다.
FOB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큰 도움을 주었던 장태산 이사.
그런 그가 있었기에 다른 멤버들도 이적을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모두 다 재계약 못 해. 멤버들 한 명만 빠져도 무너지는 거 알지?”
“그게 무슨 소리야?”
“윤나 엄마도 동의했다.”
“뭐라고???”
“그래 멍청아. 그러니까 마음 독하게 먹어. 어차피 계약이 내년 1월까지니까 몇 달 동안 조용히 지내. 최대한 좋게 헤어져야 해. 알았지?”
“……하아.”
미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들어 멤버들 사이의 분위기가 과거와 달라진 건 사실이다.
과거에는 멤버들이 한 몸처럼 움직였지만 지금은 따로 따로였다.
숙소에서 부대끼며 지내던 때가 가끔 그리웠다.
이성문제부터 시작해 모든 걸 함께 공유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함께하지 않는 만큼 서로의 사이에 거리가 생겼다.
성인이 넘으면서 각자 확고해진 사고방식의 차이가 더 분명해지기도 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엄마의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더 강하게 거부하지 못했다.
알게 모르게 느슨해졌던 멤버들 간의 연결 고리.
급기야 간신히 연결돼 있었던 끈이 끊어지는 계기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어떤…… 업체야. 엄마에게 바람 넣은 곳이…….”
“어?”
“다 알고 있어. 엄마는 과거부터 뭘 감추고 일을 추진했어. 내가 걸 그룹이 됐던 것도 엄마의 그런 성격 덕분이잖아.”
강미나는 과거 어리기만 했던 딸이 아니었다.
이익에 민감한 엄마가 대책 없이 이적을 입 밖에 내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했다.
“빅토리 스타.”
“빅토리 스타? 그게 뭐야???”
***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FOB가 끝나?”
장태산 이사가 크게 놀라며 되물었다.
‘진짜…… 모르고 있었네…….’
서련은 씁쓸했다.
겉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팀이었지만 속사정은 복잡했다.
멤버들 수가 한둘도 아니고 무려 일곱이었다.
그것도 개성 강한 젊고 예쁜 여성 연예인들.
숙소 생활 시절엔 팀을 위해 누르고 감췄던 서로에 대한 스트레스가 요즘은 거침없이 폭발했다.
멤버들은 마음 맞는 몇몇이 끼리끼리 따로 어울렸다.
그들 중에서 서련은 왕따 아닌 왕따 신세가 됐다.
언니인 주민과만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정도였다.
춤과 노래 연습도 다들 시간이 맞지 않아 따로 할 때가 많았다.
신곡을 준비 중이지만 멤버들에게서는 열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위기감도 가중됐다.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한 멤버들은 단합할 의지가 없었다.
서련은 좀 더 예민하게 느꼈다.
다른 걸 그룹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대로 가다가 해체 수순을 밟게 되리란 걸.
몇몇 보이 그룹들은 재계약을 하거나 이적 후에도 끈끈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상당수 걸 그룹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요즘 부쩍 서련은 우울감이 자주 젖어들었다.
동아줄을 붙잡듯 용기를 내 장태산 이사에게 연락을 넣었다.
마음이 답답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평소 같았다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
간간이 톡으로 연락을 주고받긴 했지만 장태산 이사는 늘 바쁜 시간을 보냈다.
“차분하게 말해봐.”
놀란 것도 잠시 장태산 이사는 마저 잔을 비우며 편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요즘 멤버들 분위기가 예전 같지가 않아요.”
“예를 들어? 어떻게…….”
“며칠 전 주민이 언니 생일이었는데 참석한 애들이 셋밖에 없었어요. 언니가 미리 말 안 한 것도 있었지만…… 멤버들 생일은 다들 알고 있는데……. 그리고 요즘 같이 모인 적이 거의 없어요.”
“신곡 연습 안 해?”
“스케줄이 달라서…… 따로 조를 짜서 연습해요.”
“으음…….”
장태산 이사의 인상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저희들한테…… 실망했죠?”
서련은 장태산 이사가 FOB를 얼마나 많이 밀어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만 특혜를 받은 경우는 없었다.
최대한 공평하게 멤버들 수익을 배분해 주었다.
그리고 서련의 단독 광고 같은 경우는 회사가 관여할 수 없었다.
그 부분에서 갈수록 멤버들과 차이가 커졌다.
서련도 멤버들을 방송에 출현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렇게 주목 받고 특출했던 멤버들이 아니었다.
노래와 춤에 두각을 보인 뛰어난 인재는 딱 둘.
예능에서 포텐을 터트릴 수 있는 멤버들은 거의 없었다.
여건이 되지 않는데 억지로 서련이 끌고 나갈 수는 없었다.
해당 프로그램 담당 피디나 핵심 출연자들이 서련을 콕 찍어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개인이 겸비한 재능이 오해가 됐고 이제는 오해를 푸는 게 불가능할 지경이 됐다.
다만 장태산 이사에 대한 고마움과 이성적 호감에 멤버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오래 버티지 못할 게 뻔했다.
그래서 서련은 장태산 이사에게 술 핑계를 대고 상담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실망이라……. 아니.”
“네?”
“우리 모두 시절인연(時節因緣)이잖아.”
장태산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시절인연요?”
서련은 장태산 이사의 말을 곱씹었다.
듣자마자 뭉클하긴 했지만 정작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게 오고 간다는 뜻이야. 굳이 힘쓰지 않아도 만날 인연은 만나고 헤어질 인연은 헤어지는 거거든. 감나무에 매달린 감도 어느 날 익을 대로 익으면 자연스럽게 떨어지잖아. 모든 인연의 모습이 그런 거야.”
“아…….”
마치 큰 스님의 법문(法問) 같은 장태산의 말은 서련의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만날 수도, 원한다고 가질 수도 없어. 바로 옆에 있어도 허락되지 않는 거지. 헤어짐도 그런 거야. 인연이 딱 거기까지. 세상에 내 것이라 생각되는 물질이나 사람도 모두 영원히 묶어둘 수 있는 건 없어. 그래서 어렴풋이 시절인연을 알고 있는 뜨겁게 사랑하는 연인들이 말하잖아. 그 순간이 영원히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장태산 이사가 말을 이었다.
콱.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서련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또로록.
대신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참으려 했지만 참을 수 없는 진한 아픔의 씨앗.
가슴에 통증이 느껴질 만큼 고통스러웠다.
합숙 시절 모든 날들이 너무 힘들어 울고 싶었을 때 나중에 꼭 같이 살자고 말하기까지 했던 멤버들이었다.
그러나 한때의 사랑처럼 그 맹세는 희미해져 버린 지 오래.
누구를 탓할 것도 없었다.
서련마저도 멤버들에 대한 감정이 옅어져 있었다.
“시절인연을 제대로 알게 되면 특정 사람이나 물질 때문에 아프거나 힘들 일이 거의 없어. 나도 마찬가지고…….”
“오빠…….”
서련이 장태산을 바라봤다.
언제나 폭풍을 막아주는 든든한 산맥 같았던 장태산.
고등학교 때 피자집에서 그를 보며 운명을 느꼈었다.
친구들까지 우르르 몰고 와 보란 듯이 한 턱 쏘던 자리였다.
돈이 있다고 거만하지도 않았다.
친구들이 왁자하게 먹어치우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던 그 눈빛은 아빠 같았다.
장태산의 주머니를 털던 친구들도 그의 눈치를 보지는 않았다.
편하게 욕이 오가고 질투의 화신처럼 장난을 걸면서도 매순간 화기애애했다.
그때 첫눈에 반했다.
저 남자라면 나중에 연인이 되면 듬직하게 자신을 보살펴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당시 서련은 과감하게 대시했었다.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하지만 서로에 대해 정작 아는 게 많지 않았다.
서련은 바쁜 톱스타의 삶을 살았다.
사소한 스캔들도 조심해야 했다.
나쁜 놈들 때문에 큰 사고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장태산 이사가 처리해줬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서련을 큰오빠처럼 돌봐 온 셈이다.
그걸 서련이 모를 리 없었다.
‘오빠도 아팠을 거야……. 어른이 된다는 건 피할 수 없는 독감 같은 거잖아.’
서련은 장태산을 조용히 바라봤다.
어린 나이에 큰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장태산.
사회생활이 뭔지 조금씩 경험해 온 서련.
한 번도 토로한 적은 없지만 장태산의 고민과 번뇌, 삶의 전쟁에서 오는 치열함을 조금이나마 공감했다.
거대한 파도와 홀로 싸우는 남자.
그 모습이 오늘따라 더 눈이 부셨다.
“그 눈…… 나한테 또 반한 거야?”
“뭐라고요? 허어…….”
서련은 장난 섞인 장태산 이사의 말에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진중한 분위기에서 나온 장태산의 농담.
“그래. 서련아 웃자. 죽음 앞에서 인생은 그저 한 편의 희극 같은 거야. 멤버들과 언제까지 함께할 수는 없잖아. 아낌없이 사랑하던 부모님도 때가 되면 다 헤어지는데…… 친구와 멤버들은 그보다는 거리가 멀잖아. 하나둘씩 이별을 경험할 때마다 그 고통으로 어른이 되는 거다.”
“오빠는 달랑 한 살밖에 차이 안 나면서 어떻게 그렇게 어른스러워요? 누가 보면 죽었다 살아 난 사람인 줄 알겠어요.”
서련이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사회에서 한 살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장태산의 어른력은 만랩이었다.
“서련아, 이제 너에 대해 얘기하자.”
“저요?”
“성인들께서 하늘에는 헤아릴 수 없는 바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저녁으로 화(禍)와 복(福)이 분다고 했다. 화에 대해서는 얘기가 끝났으니…… 이제 서련이 갈 길을 생각해 보자. 미래는 생각해 봤을 거 아냐?”
“오빠…….”
든든한 장태산의 말에 서련은 진심으로 감동했다.
방망이질 치듯 두근거리는 심장.
“서련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오빠가 확실히 밀어준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