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8
77장. 순자는 순자다
“……, 진짜 오랜만이야.”
엄마를 모시고 서울에 왔다.
엄마가 서울 하늘을 보며 목소리를 떨었다.
대학교를 합격하고 나자 거처가 필요했다.
호텔 생활도 지겨웠다.
온전한 내 집을 갖고 싶었다.
아직 미성년자였기에 법정대리인인 부모님과의 동행은 필수였다.
엄마 이름으로 구입할 생각이었다.
나와 달리 어머니는 그룹의 후손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웠다.
“그동안 오실 일이 없었어요?”
“응……, 10년쯤 된 것 같아. 아버지 퇴사하고 시골에 내려간 이후로 처음이야.”
엄마와 난 강남 압구정 연대백화점 명품관에 왔다.
그동안 고생하신 엄마를 위해 옷 한 벌 선물하고 싶었다.
엄마는 감회에 젖은 눈으로 강남 거리를 봤다.
“많이 변했네……, 10년 세월이 참 빨라.”
아버지를 만나기 전에 부잣집 막내딸이었을 엄마다.
과거를 회상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미녀들은 왜 강남에만 사는 걸까?’
엄마의 회상과 달리 난 눈 호강을 했다.
제비가 강남으로 간 이유는 나도 알고 제비도 안다.
백화점 주변에는 겨울 코트로 패션쇼 중인 여인들이 활보했다.
다 미녀다.
놀랍게도 얼굴이 비슷했다.
“미팅도 했어요?”
“아마도~.”
눈웃음을 살짝 짓는 엄마는 아직도 고왔다.
주변 어떤 아줌마들과 비교해도 엄마의 기품을 따라오지 못했다.
나와 쌍둥이를 낳고 키웠지만 기본 미모는 어디 가지 않았다.
시골에서 아버지 뒷바라지 덕분에 많이 고생했지만, 이제는 달랐다.
“아빠가 왜 좋았어요? 엄마 미모와 학벌이라면 좀 더 좋은 신랑감이 많지 않았어요?”
아직도 나에게는 미스터리다.
아버지도 학벌에서는 꿀리지 않았지만 엄마에게는 기울었다.
“신기했어……, 첫눈에 반했다고 나와 사귀고 싶다고 대뜸 말하더라. 그 박력이 멋있어서 몇 번 만났는데……, 이 남자 참 착한데 나 아니면 어디서도 구제 못 받을 것 같아 살신성인했단다. 호호.”
엄마가 가볍게 웃었다.
당시를 회상하는 듯 눈빛이 반짝였다.
사는 게 힘들어도 엄마는 아버지를 아직도 사랑하셨다.
천생연분의 인연은 따로 있는 게 확실했다.
‘부럽네. 우리 아버지.’
애틋한 부부의 사랑은 내가 산증인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얻을 수 없는 참행복이다.
“태산아. 그런데 여기는 왜 온 거야?”
자연스럽게 백화점 앞에 들어가려하자 엄마가 물었다.
“구경 좀 해요. 우리가 못 올 곳도 아니잖아요.”
“…….”
결혼과 동시에 집안의 후원이 끊겼던 엄마다.
그 세월이 20년이다.
그 시절 동안 변변한 명품 한 번 걸쳐 본 적 없었다.
겨우 지난여름 홍콩 여행 때 사 왔던 옷과 가방이 전부다.
지금 옷차림은 시내에서 구입한 중저가 메이커다.
엄마에게 입혀 놓으니까 봐줄 만했지 강남 스타일은 아니다.
엄마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회전 유리문 안으로 들어서자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 둘이 고개를 숙이며 맞았다.
‘명품 백화점은 처음이네.’
국내 명품 백화점은 처음 들어와 봤다.
일반 백화점에서 옷은 몇 벌 구입해봤다.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백화점 1층은 유행에 영향을 덜 받는 해외 명품 토털 브랜드와 장신구, 고급 화장품 코너가 즐비했다.
나도 모르는 제품들이 태반이다.
주말 점심시간 무렵이라 백화점 안은 제법 사람이 붐볐다.
한눈에 봐도 강남 스타일 아줌마와 아가씨들이 많았다.
엄마가 살짝 떠는 게 손에서 느껴졌다.
“밥부터 먹어요. 엄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5층으로 향했다.
중세 시대처럼 고풍스러운 아치형 내부 통로들 사이로 럭셔리 상가들이 보였다.
“여기 맛집이래요.”
조용해진 엄마를 이끌고 5층 식당가 유면당이라는 중국집으로 향했다.
인터넷으로 알아놨던 곳이다.
예약을 했기에 창이 보이는 자리로 배정됐다.
“우리만 와서 어떡하니. 쌍둥이들도 서울 와 보고 싶다던데.”
“오늘 바로 내려갈 텐데 뭐가 문제예요. 그리고 고등학생들이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죠. 쌍둥이들이 잘난 오빠 따라오려면 죽었다 생각하고 책만 파야죠. 아빠도 일이 바쁘시잖아요.”
아버지는 새로 구입한 사과 농장에 이만저만한 정성을 쏟는 게 아니다.
누구나 먹고 안심할 수 있는 유기농 사과를 재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먹고살 만한 돈이 있다는 걸 눈치챘음에도 일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가 좋다.
쌍둥이들도 집이 부자가 됐어도 절대 사치를 부리지 않았다.
한 달 용돈은 20만 원이 넘지 않았다.
풍족하지도 많지도 않는 금액이다.
“태산아. 여기 좀 세다?”
엄마가 메뉴판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시내 중국집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호출 벨을 눌렀다.
단정한 복장의 여직원이 바로 다가왔다.
“손님. 주문하시겠습니까?”
“매화 코스 2인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1인분에 15만 원이 점심 코스요리다.
“아들 월급 탔다고 생각하고 많이 드세요.”
일이 바빠 이제 부모님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본격적으로 학교를 다니고 사업을 시작하면 서울이 본거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시간이 앞으로도 많지 않다는 걸 엄마와 나 모두 알았다.
장성하면 둥지를 떠나야 함이 짐승이나 인간이나 같았다.
“…….”
엄마는 내 눈을 빤히 보았다.
그리고 이내 배시시 웃었다.
“아들 덕에 오랜만에 입 좀 호강해 보자.”
그렇게 엄마와 나는 코스 요리를 즐겼다.
한 입씩 먹기 좋게 나와 조금씩 먹어도 배가 불렀다.
“아들, 식사 예절이 되게 능숙하네. 여기 와 봤어?”
게살 수프부터 시작해 나오기 시작한 요리는 엄마에게 완벽하게 서브했다.
아직까지 중국집의 최고 메뉴는 짜장면에 탕수육이다.
“인터넷에서 봤어요.”
“그래? 인터넷이 별 걸 다 가르쳐 준다.”
‘역시 엄마야.’
엄마가 나보다 더 편안하게 식사를 즐겼다.
기품이 달랐다.
몸에 밴 습관은 세월이 지나도 어디 가지 않았다.
나에게는 멀기만 한 외가 덕택이다.
내가 알아내기 전까지 외가는 입에 담지 않았다.
철모르던 어릴 적 외가에 대해 물었었다.
그때 엄마는 한없이 슬픈 눈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한 방울 흘렸었다.
‘나 때문에 엄마가 자존심 많이 상했겠네…….’
다시 살게 되기 전 엄마가 나를 위해 청탁을 했음이 확실했다.
지방대 법대생이 취직하기에 그 당시 사회 분위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그런 나를 위해 이복 오빠를 찾아가 아쉬운 소리를 했을 엄마.
“맛있다~.”
마지막으로 나온 아이스크림 디저트까지 깔끔하게 비운 엄마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빠 옷 사러 가요. 요즘 힘들어 보이시던데 이 아들이 기 팍팍 쏴드릴게요.”
“그럴까? 아빠 옷들이 낡긴 했어.”
어쩔 수 없는 검소함이 몸에 배었다.
4층 남성복과 골프, 아웃도어 매장으로 내려왔다.
“아들, 요즘 더 큰 것 같다.”
나란히 서서 내려오자 엄마가 놀라 물었다.
아직까지 키가 성장 중이다.
며칠 전 187센티미터를 찍었다.
“요즘 입맛이 땡기더니 자고 나면 키가 쑥쑥 커져요.”
“아빠를 닮아서 그래~.”
어머니가 거짓말도 잘했다.
아버지 키는 175센티미터 정도다.
아빠를 향한 엄마의 무한 사랑은 이곳에서도 발현됐다.
“여기 좋네요.”
아버지 나이 때에 적당히 어울리는 닥스 매장에 들렀다.
“응~ 옷들이 편해 보인다.”
쇼핑이 즐거운지 엄마의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옷을 장만하는 여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어서 오십시오.”
공손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 남자 직원이 우리를 맞았다.
“이 스타일 어때? 아빠하고 잘 어울릴 것 같지?”
평소 엄마가 아니다.
능숙하게 아빠 스타일에 맞춰가며 셔츠와 스웨터를 골랐다.
“아빠 양복도 고르세요. 동네 이장님인데 체면도 신경 쓰셔야죠.”
“그래~.”
그렇게 아빠 양복 두 벌에 와이셔츠도 몇 장을 같이 구매했다.
애써 엄마는 가격표에 시선을 두지 않으셨다.
나를 향한 믿음과 배려다.
그리고 엄마와 나는 자연스럽게 디자이너와 수입 부티크가 있는 3층으로 내려왔다.
쇼핑한 물품들은 1층 상품 보관소로 보냈다.
처음 제대로 엄마와 누려보는 쇼핑이 괜찮았다.
“여기 옷들이 엄마와 색감이 맞는 것 같아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명품 매장으로 엄마를 인도했다.
“그래? 색들이 괜찮네.”
엄마도 마음에 들어 했다.
“어머머~ 이게 누구야? 혹시 너 설란이 아니니?”
갑자기 매장에서 싸가지 철철 넘치는 아줌마와 만나기 전까지…….
“수, 순자?”
‘순자? 그 순자?’
순자라는 이름에 나도 자세히 아줌마를 봤다.
2016년도 대한민국을 뒤집어 놓았던 세기의 여인 주순자.
다행히 얼굴이 달랐다.
제대로 얼굴을 갈아엎었는지 쌍꺼풀은 찐했고, 보톡스 맞은 얼굴은 팽팽했다.
몸매는 육덕졌고, 볼은 심술궂어 보였다.
강남에서 대대적으로 성형시술로 창조된 인조인간 아줌마다.
식탐이 많은지 몸매는 어쩌지 못했다.
“순자라니~ 나 주서원으로 개명 했어. 이름 괜찮지?”
‘이 아줌마 하필 개명해도 그 이름이야?’
운명도 얄궂게 주순자 아줌마의 개명 후 이름이 똑같았다.
“오랜만이다.”
엄마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친한 사이가 아닌 것 같다.
“정말 오랜만이다. 내가 20년 전에 너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리에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놀란 게 아니라 고소한 눈빛이다.
말투가 심히 천박했다.
“대학교 때 학교 퀸까지 했던 애가 왜 그랬니? 쯧쯧.”
‘퀸? 엄마가?”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과거가 밝혀지려 했다.
“그 얘기는 그만해 줄래.”
엄마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 그래. 좋은 일도 아닌데.”
염장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순자 아줌마다.
입꼬리에 정체 모를 비웃음이 맴돌았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이야? 지방에 산다는 소식은 들었다만…….”
엄마의 위아래를 빠르게 눈으로 훑는 순자 아줌마.
엄마와 나를 간 봤다.
아랫배에서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올라왔다.
눈빛만 봐도 상대의 의도가 뻔히 보였다.
“맞아.”
엄마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어머. 어떡하니. 시골은 살 만해? 농사일 안 힘들어? 바퀴벌레도 있지 않니?”
시골을 대놓고 무시하는 아줌마다.
걱정하는 말투였지만 의도는 아주 밥맛이다.
“쓸데없는 말 계속 할래?”
오올~ 울 엄마 센데?
내 예상 밖 행동을 엄마가 보였다.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아들 덕에 과거를 찾아가고 있는 엄마가 쫄 리 없다.
우리 시에서는 잘나가는 사모님이다.
“호호~ 미안. 오랜만에 만났더니 내가 너 까칠한 성격을 잊었다. 뭐, 그래봐야 과거 얘기지만.”
엄마를 향한 과거 열등감이 확확 풍겼다.
순자 아줌마의 행동이나 언어가 말하는 의미는 단 하나다.
질투.
순자 아줌마가 명품과 화려한 액세서리로 치장했지만 로션 하나만 바르고 나온 엄마의 순백 피부와 고품격 분위기를 따라오지 못했다.
엄마가 더 강남 40대를 대표하는 품격 있는 중년 부인이다.
‘엄마. 이제는 참지 마세요.’
속으로 파이팅을 외쳤다.
“어머니. 이분 누구십니까?”
내가 어머니라 부르며 나섰다.
엄마라는 말은 이 자리에서 격이 떨어졌다.
“인사해라……, 엄마 대학교 동창이야.”
“처음 뵙겠습니다. 장태산입니다.”
과거 증권 영업하던 시절처럼 정중하게 인사를 던졌다.
“니 아들? 어머~ 키가 훤칠하네? 얼굴도 반반하고……, 공부 잘할 것 같지는 않고, 딱 모델이나 하면 어울리겠네.”
칭찬 뒤에 디스가 바로 붙었다.
어딜 봐서 내가 공부 못할 것 같단 말인가!
“이번에 운 좋게 서울 쪽 대학교에 합격했습니다.”
이런 싸가지 없는 아줌마 앞에서 화를 내봐야 개싸움 밖에 안 됐다.
품격을 잃지 않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다행이네. 인 서울이 어디니. 개천에서 용 났다. 우리 아들이 이번에 경국대 법학과에 떡하니 합격했잖아.”
엄마와 날 동시에 디스하는 아줌마 작태가 역겹다.
아줌마가 나와 맞짱을 원했다.
이럴 때는 확실히 밟아 줘야 한다.
“경국대 법학과요? 좋은 대학에 합격했네요.”
“그렇지? 호호호. 넌 어느 대학 무슨 과야?”
나름 알아주는 학교에 합격한 아들이 자랑스러운 것 같다.
“한국대 법학과요.”
상큼하게 답했다.
아줌마 얼굴이 순간 확 썩어갔다.
“거, 거짓말 마! 어린 녀석이 어디서 거짓말이야! 네까짓 게 무슨 한국대 법학과야!”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세요. 한국대 법학과 장태산. 여기서 확인해 드려요?”
참 친절하게 아줌마 코를 납작하게 비볐다.
순자 아줌마는 나를 노려봤다.
눈을 껌뻑이며 순수한 청년 자세를 취했다.
‘노려봐야. 꼬라지만 나빠집니다~.’
이글거리는 눈빛이 아주 날 잡아 먹으려는 살기까지 담겼다.
“그런데 이곳에 무슨 일? 상품권이라도 선물 받은 거야? 그래도 쪽팔리게 상품권으로 옷 장만하러 온 건 아니겠지?”
아들로 안 되니 돈으로 공격 방법을 바꾸는 순자 아줌마다.
사람 좀 무시한 프로 싸가지다.
“여기요~.”
그리고 그 순간 난 여직원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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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