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03
804장. 가불(2).
“태산아…….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라.”
호텔을 빠져 나온 손대균.
표정이 몹시 차가웠다.
장태산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흔들렸다.
아들 손주혁 검사의 정신 상태가 좋지 않다는 연락을 받았다.
물리적 폭력에서 그쳤다면 손대균도 이렇게 직접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적인 문제는 달랐다.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아내가 아들의 상태를 알게 된다면 어떻게 나올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 역시 아들 못지않은 충격으로 미쳐 버릴지도 몰랐다.
표현은 안 했지만 손대균 역시 내심 자랑스러워했던 아들.
성격이 좀 문제이긴 했지만 야심가들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과거 한때 손대균도 아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행동했다.
몸속에 흐르는 피는 어쩔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장태산에게 아들을 부탁했다.
어느 정도 정신 마사지가 되면 조용히 해외로 내보낼 생각이었다.
눈치 빠른 장태산인 만큼 일정 이상 선을 넘지 않을 거라 믿었다.
아버지 손국중과는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다른 데서 터졌다.
장태산이 직접 연관된 문제는 아니지만 그와 거래를 한 주순자가 청와대의 힘을 이용했다.
아버지 손국중과 리앤장에 반감을 갖고 있던 검사들이 대거 움직였다.
잠깐 리앤장을 비웠을 뿐인데 그사이 여러 일들이 한꺼번에 터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갔다.
게다가 아버지는 연락도 되지 않았다.
최측근에서 모시고 있던 비서도 마찬가지.
아버지 쪽은 장태산이 직접 나섰음이 분명했다.
아들 된 도리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결심이 서자 과거의 습관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어설픈 인정과 유약한 마음 자세로는 이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
띠리리릭.
그 와중에도 스마트폰 벨소리는 바쁘게 울렸다.
– 이사님.
“그래. 아버지는?”
– 지금 경찰이 출동했다고 합니다.
“순찰차 한 대로는 안 돼.”
– 혹시 몰라 기동타격대가 투입됐다고 합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 넵!
리앤장이 관리하는 고위급 경찰청 간부가 나섰다.
띠릭.
통화를 끝낸 손대균의 표정은 씁쓸했다.
“장태산, 난…… 너에게 최소한의 시간은 줬다.”
아버지와의 문제로 갈등했던 손대균.
대표적인 친일파로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 손국중의 일생.
손대균은 아들 손주혁 문제와 별개로 장태산에게 얼마간의 시간을 줬다.
그를 향한 손대균의 마지막 의리.
그 운명의 시간이 다 소진됐다.
이제 남아있는 건 아들로서 메워야 하는 천륜의 시간.
“이사님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호텔 앞에는 프랑스에 파견된 리앤장 유럽 지사 직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덜컥.
검은색 최고급 세단의 뒷문이 열렸다.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는 손대균.
“출발하겠습니다.”
부우우웅.
기사가 손대균을 확인하고 빠르게 출발했다.
무심한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손대균.
오늘따라 짙게 먹구름이 깔린 프랑스의 오후 하늘.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구름 낀 하늘을 보다 손대균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한국에 가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를 운명의 판.
냉철하게 상황을 직시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위용위용위용.
긴급 사이렌을 울리며 평창동 골목을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순찰차와 경찰청 기동타격대.
큰 사건이라도 터진 듯 거침없이 질주했다.
– 코드 제로. 코드 제로. 반복한다. 평창동 401-3번지.
“오 경위님. 무슨 일일까요? 갑자기 코드 제로라니…….”
구기치안센터 소속 순찰차를 몰고 있던 순경이 운전 중에 사수에게 물었다.
“김 순경. 거기 유명한 분이 산다.”
“여기 다 유명한 분들만 사시잖아요.”
“손국중 전직 대법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에 치안센터에 발령 받은 신참 순경은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지역에 오래 거주한 오 경위는 달랐다.
짱짱한 분들이 대거 거주하는 평창동, 그중에서도 손국중은 아주 유명했다.
대법관 현직에서 물러난 지 한참 지났지만 이례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본청뿐만 아니라 검찰청 쪽에서도 치안 확인을 수시로 체크했다.
특별히 경계 순찰도 돌았다.
주변에 CCTV도 더 촘촘하게 배치했다.
본래도 치안이 좋았지만 401-3번지 주변은 더 철통같이 경비했다.
그랬음에도 불시에 떨어진 코드 제로.
강력 범죄가 발생할 때나 떨어지는 긴급 출동 지시 명령이었다.
“이거 느낌이 쎄하다.”
오랜 경찰 생활로 촉이 발달한 오 경위.
“뭐가 말입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원칙대로 처리해라. 괜히 독박 쓸 수도 있다.”
들뜬 신참 순경과 달리 오 경위는 차분하게 주변을 살폈다.
밤이 늦은 평창동 골목.
오늘따라 음침한 기운이 가득 찬 것 같았다.
***
“포인트 가불?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악신이 제대로 비웃듯 찰지게 웃는다.
놈이 봐도 이 상황이 웃기는 모양이다.
지금껏 상당한 포인트를 모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최상급 악신과 이웃집 개들 조상신의 보호막을 깨트리기에는 부족했다.
그렇다고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전생에 이미 악신에게 영혼을 판 손국중.
희열이 번뜩이는 눈빛에 나의 분노가 요동쳤다.
손대균 이사와 맺은 인간적 의리와는 별개의 문제.
손국중은 반드시 처단해야 할 대한민국의 암적 존재였다.
지난 생에도 이런 식으로 살았다는 인간.
영혼을 소멸 시킬 수 있다면 몇 번이고 불태우고 싶었다.
더할 나위 없는 순도 백의 악인.
악신과 한 몸이 되어 민족을 팔고 선한 자들을 괴롭혔다.
“내가 악신으로 사는 동안 포인트 가불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악신이 이죽거리며 제대로 자극했다.
“…….”
그러나 아는 게 없어 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평소와 달리 바로 알림음도 잠잠했다.
신들도 이 상황에 계산이 복잡한 모양이다.
“우주의 법칙은 신도 바꿀 수 없다. 네놈이 꽤나 그럴싸한 선행을 일으켜 회귀의 기회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그것 역시 말도 안 되는 특혜다.”
최상급 악신답게 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꿈속 할배는 역천의 거울을 이용해 나를 회귀시켰다고 했다.
타인을 위해 서슴없이 몸을 던진 공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회귀 인생.
“내가 운빨이 좋아.”
“거짓말을 아주 잘도 하는군. 나는 네 거지 같았던 지난 생을 알고 있다.”
나쁜 놈.
회귀 전 내 인생을 허락도 없이 염탐한 최상급 악신.
저 동네는 개인정보보호법도 없는 모양이다.
“크크크. 만약 네가 포인트 가불을 받을 수 있다면 이놈을 넘겨주지.”
악신이 오버했다.
“정말?”
“물론이다. 난 위대한…….”
신분을 밝히려다 흠칫 입을 다무는 최상급 악신.
감추고 있는 비밀이 많은 놈이었다.
위용위용위용.
그때 밖에서 경찰차의 긴급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이거 아쉬워서 어떡하나?”
악신이 날 보며 이빨을 드러냈다.
표정은 전혀 아쉬워하는 모습이 아니다.
1초가 1분처럼 느리게 흘렀다.
경찰차가 도착하기 전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사이렌 소리로 보아 한두 대가 아니다.
공권력과 맞짱을 뜰 수는 없다.
아직 대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 민족신들.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럴 때는.
“이자 따블!”
눈 질끈 감고 다시 한 번 외쳤다.
가불인 만큼 무이자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율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일단 급한 불은 꺼야만 했다.
싸가지 없는 악신 새끼에게 빅 엿을 먹이지 못하면 장태산이 아니다.
“…….”
그래도 답이 없다.
“케케케케케케케..…….”
악신은 더 신이 나서 비웃었다.
짜증이 머리꼭지까지 치솟았다.
“중금리!!”
이제는 이판사판이다.
고금리는 집안 망하는 지름길.
중금리가 내 선에서 최대한으로 타협할 수 있는 마지노선.
– 중금리 계약이 맞습니까?
오! 드디어 반응을 하는 알림음.
“맞아.”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당황하는 악신.
–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최초로 취급하는 중금리 포인트 대출에 대한 위험도 분산을 위해 재보험 상품이 방금 출시됐습니다.
“!!!”
최초란다.
미친 신들의 세계.
대형 선박이나 항공기에나 적용되는 재보험을 신들도 취급했다.
멋모르고 외친 중금리 이자 제안이 덜컥 두려워졌다.
“너…… 지금 무슨…….”
최상급 악신이 말을 더듬었다.
인간의 탈을 쓴 악신이 떨고 있다.
스윽 자연스럽게 나의 어깨는 펴졌다.
내일부터 당장 중금리가 내 어깨를 짓눌러도 이 악마 새끼는 반드시 처리하고 싶다.
– 재보험이 모두 완판 됐습니다.
– 중금리 포인트 대출을 이용해 신이 되시겠습니까?
이것들이 어디서 약을 팔아!
위급한 상황을 이용해 이 순간에도 신이 돼보겠냐고 꼬시는 신들.
이럴 때보면 악신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신이 되고자 했다면 포인트 획득 천국인 인도에서 시도했을 것이다.
신은 아직 관심 없다.
“신은 됐고. 저 악신 새끼 보호막 깰 만큼 대출 실행!”
결심은 변함없었다.
– 최초 대출이기에 할부는 10년 거치 50년 원리금 분할 상환 상품만 이용 가능합니다. 이용하시겠습니까?
서민에게 평생 짐을 던지는 최악의 아파트 대출 상품보다 더 지독한 상품이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제와 물릴 수도 없는 상황.
“콜!”
– 포인트가 통장에 입금됐습니다.
– 중금리는 매달 말에 자동 출금 될 예정입니다.
– 약관은 상황이 급해 패스했습니다.
– 만약 제 날짜에 원금과 이자 미납 시에는 바로 포인트 신용 불량자로 등록될 예정입니다. 신이 될 수 있는 자격이 박탈될 것이며, 이후에는 육도윤회를 통해 포인트를 갚을 때까지 중생계를 해맬 수 있습니다.
– 저희 중금리 대출 상품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남은 인생도 포인트 넘치는 생이 되시기를 대출 담당자로서 기원하겠습니다.
“…….”
중금리를 던지자 참으로 친절하게 응대해 주는 대출 담당자.
“으으으으…….”
악신이 신음을 흘렸다.
상황이 역전됐다.
우두둑.
손을 깍지 끼며 뼈를 풀었다.
“너……. 너!”
손으로 날 가리키며 악독한 눈빛을 발산하는 악신.
“봤지?”
“…….”
말이 없는 악신.
“꺼져. 개새끼야!!!”
콰득.
손국중의 머리통을 오른손으로 잡았다.
파지지지짓.
스파크가 튀었지만 처음처럼 강렬하지 않았다.
– 통장 포인트가 소멸되었습니다.
– 신들의 보호막이 제거됐습니다.
“죽여! 죽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순식간에 돌변한 악신이 악을 썼다.
나를 끝까지 바보로 알았다.
여기서 인간 손국중의 육신을 죽인다면 경찰이 살인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날 끝까지 핫바지로 보는구나. 크크크.”
나도 악신처럼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국중의 머리통에 기를 불어넣었다.
부르르르르.
기가 들어가며 머리통을 휘젓자 몸을 떠는 손국중.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대신 빙의된 악신이 비명을 토했다.
악신 뜻대로 육신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분노로 지랄발광을 하며 발악했다.
투두두둑.
그 순간 손국중의 머리통 안 혈관 몇 개가 터졌다.
현대 의술로는 절대 치료 불가능한 상태.
콰다다당.
손국중의 몸뚱이가 무너져 내렸다.
“쯧……. 몸 관리 잘하시지.”
연세 지극한 노인들 사이에 자주 일어나는 뇌출혈 사고 현장.
위용위용위용.
끼이이이익.
경찰차들이 현관 쪽에 이르렀다.
중간에 상황이 이상하게 꼬였지만 마무리는 제대로였다.
“마법 해제!”
광범위 슬립 마법을 해제했다.
스르륵.
창문을 활짝 열었다.
마법을 사용한 덕에 족적이나 흔한 지문 따위는 전혀 남지 않은 현장.
파라랏.
어둠에 잠긴 하늘로 날아올랐다.
타다다닥.
급박하게 달려오는 발소리들.
“회장니이이이이이이임!!!”
손국중의 비서가 내지른 비명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