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02
803장. 가불.
“패?”
– 네. 선배님.
“그래도 명색이 검산데……. 검사실에서 패면 어떻게 하냐.”
– 경석이 성격이 죽이지 않습니까.
“그거야 세월 좋을 때 얘기지. 요즘 같은 세상에 검사가 주먹질하면 못써.”
– 손주혁 그 새끼가 미친놈이죠. 보고 라인 다 무시하고 지검장님께 다이렉트로 갔으니……. 별 말은 안 했지만 그동안 경석이가 얼굴을 못 들고 다녔습니다.
“손국중 회장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 그래서 다들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구 차장이 앰뷸런스 불러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정도야? 얼마나 팬 거야?”
사태가 심각해짐을 느낀 조윤태.
– 선배님, 경석이 아시지 않습니까. 조폭 때려잡는다고 무에타이까지 수련한 놈입니다.
“그랬지.”
– 처음에는 몇 대 때리고 조용히 끝내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새끼가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발령장 가지고 대들었다는 거 아닙니까. 발령장 작성한 놈들 모조리 날려버린다고…….
“미친놈.”
– 거기서 경석이가 눈 돌아간 거죠. 제대로 손을 봤는지 애가 정신이 반쯤 나갔답니다. 엄마 찾고 할아버지 찾고……. 난리도 아니었답니다.
“음…….”
조윤태는 깊은 신음을 삼켰다.
대충 웃으며 넘어갈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멘탈이 터졌네.’
사건 정황을 다 들은 조윤태는 걱정스러웠다.
과거에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신임 검사들 군기 잡는다고 선배 검사들의 폭력 행위가 종종 있었고, 그 과정에 멘탈이 버티지 못하고 망가져 버린 애들도 있었다.
강력범들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인만큼 신임 검사들을 정신적으로 무장시키는 교육은 필수였다.
쪼인트는 교양 과목 수준.
흔한 말로 공부 잘하는 조폭이 바로 검사들이었다.
그런 만큼 상명하복 기강이 엄중했다.
그 오랜 관습을 피라미 한 마리가 파괴했다.
조윤태는 초임 검사 시절 데리고 있던 오경석이 얼마나 기강에 예민한 사람인지 잘 알았다.
– 그래서 사태가 좀 심각한 거 같습니다. 지검장님의 암묵적 승인이 있었던 것 같은데……. 뭐가 있는 게 확실하죠?
차장검사도 조윤태와 인연이 있는 후배.
은근히 감춰진 스토리를 궁금해 했다.
“나도 모르겠다. 그 바닥이 얽히고설킨 게 한두 가지냐.”
말과 달리 조윤태의 표정이 어둡게 굳었다.
장태산 회장이 연관되어 있는 사건.
이것저것 정보를 수집하는 중에 연달아 폭탄들이 터졌다.
‘이러다 제대로 불똥 튀겠는데…….’
이 상태라면 손국중 회장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장태산과 담판을 벌일 게 확실했다.
지금은 손대균이 뒤로 물러나 있지만 아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을 알게 되면 입장이 달라질 것이다.
딸이 있지만 아들과는 달랐다.
손대균이 아무리 장태산을 아낀다 해도 혈육과는 비교할 수 없다.
무엇이 어떻게 얽힌 것인지 모를 복잡한 사건과 사고.
– 다른 정보 들어오면 바로 보고하겠습니다.
“몸 사려라. 폭풍이 몰아칠 것 같다.”
– 그래야죠. 법무부 쪽에 파견 나간 동기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청와대 쪽에서 하달된 지시가 있었던 모양인데…… 반발이 제법 있는 것 같습니다. 손국중 회장이 보통 분은 아니시죠.
보이지 않는 힘과 힘의 대결.
장태산을 돕기 위해 청와대가 움직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주순자의 지시.
법무부 장관이 인사권을 행사했고 그 권한을 이용해 손국중 회장의 손자를 쳤다.
손국중 회장과 리앤장, 손대균 라인이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터.
대한민국 법조계에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칠 게 뻔했다.
장태산이 일으킨 작은 바람이 몰고 올 거대한 후폭풍.
“수고했다. 다음에 술 한 잔 사마.
– 충성! 쉬십시오.
통화가 끝났다.
“이거 문젠데…….”
조윤태는 오랜 세월 법조계에 몸담았다.
대충 판이 어떻게 돌아가게 될지 보였다.
검찰 권력 행사는 몇 개 라인으로 나눠져 움직였다.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라인, 그리고 손국중의 핵심 법조계 성골층이 나머지 그룹들과 정치권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권력 라인이 만들어 낸 혈관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대한민국 법조계가 한 덩어리로 굴러갔다.
일반 시민들 대부분은 대법원장이 중요한 법조계 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핵심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검찰.
그들이야말로 법조계의 진정한 왕이었다.
법원의 한 축인 민사소송 파트는 일정한 법리로 굴러가는 법적 기술에 불과했다.
인간을 직접 처벌할 수 있는 형사 소추권을 소유한 자가 진정한 주인이다.
검찰청의 주인은 청장이 아닌 총장으로 불렸다.
지검장 수십 명이 차관급 대우를 받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정치인과 경제인 대부분은 불법으로 생명을 유지했다.
검찰에 알아서 잘 보일 수밖에 없다.
검찰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시도했던 이들 모두가 비명횡사했다.
검찰들은 권력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코를 타고 났다.
제아무리 검찰총장이라 해도 조직에 이롭지 못하게 되는 순간 제 식구인 검사들에 의해 조직에서 내쫓긴다.
권력의 눈 밖에 난 조직원도 마찬가지.
눈에 띄지 않지만 하극상은 수시로 벌어졌다.
편향된 권력을 감시해야 할 검찰이 정치에 가장 민감했다.
“태산이가 잘 버텨야 할 텐데…….”
냉정하게 말해 지금 검찰 권력 핵심과 장태산이 부딪힌 셈이다.
권력을 지키려는 자들과 권력을 분산시키려는 자.
그만큼 위험도가 급상승했다.
검찰의 집요함과 잔인함을 조직에 몸담았던 조윤태는 검찰의 집요함과 잔인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손대균……. 너 잘 선택해라.”
조윤태는 후배 손대균이 걱정됐다.
어쩌면 이번 일로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손대균.
그의 마음 중심에 있는 추가 어디로 향할지 조윤태는 궁금했다.
“비행기 표는?”
– 발권됐습니다.
“회의 준비해.”
– 넵 이사님!
띠릭.
리앤장 비서실과 연락을 끝낸 손대균.
표정이 달라졌다.
행동도 빨랐다.
어느새 슈트 차림으로 정복도 했다.
면도를 해 파르라니 드러난 턱 선은 베일 듯 날카로웠다.
요즘 들어 온화하게 빛나던 눈빛이 사라지고 과거의 손대균으로 돌아간 듯 냉정하게 번뜩였다.
“지금 가실 거예요?”
“가봐야 할 것 같다.”
지금껏 있었던 사건을 전혀 모른 채 호텔에 놀러왔던 손유리.
차갑고 냉정하게 대꾸하는 손대균에 흠칫 당황했다.
뭔가 크나큰 결심을 한 듯 하루아침에 사람이 달라졌다.
“아빠…….”
손유리는 과거로 돌아간 듯한 아빠 모습에 말을 잇지 못했다.
냉랭하고 어색한 공기가 부녀 사이를 다시 채웠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의 골.
“엄마 잘 보살펴라.”
“엄마 깨어나면 같이 한국에 가면 안 돼요?”
분위기로 보아 감이 좋지 않았다.
돌변한 아빠의 모습은 장태산과 뭔가 연관되어 있을 것 같은 불길함마저 안겨주었다.
“유리야.”
딸의 이름을 힘주어 부르는 손대균.
“네…….”
“넌 프랑스에 남아 있어. 엄마와 함께.”
“아빠…….”
잔뜩 얼어붙으며 다시 아빠를 바라보는 손유리.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갔다.
어제와 완전히 달라져 버린 아빠가 과거처럼 명령조로 말했다.
그건 쉽게 꺾이지 않을 만한 결심을 했다는 증거였다.
“네 오빠가 많이 다친 것 같다. 할아버지는 연락이 안 되시고. 아빠가 한국에 가봐야 한다.”
“무슨 일 있죠?”
“……유리야. 사람이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도 있단다.”
고뇌에 찬 손대균의 대답.
“조심하세요.”
손유리도 더 이상 다른 말을 건넬 수 없었다.
본인은 개입할 수 없는 진짜 어른들의 세계.
“엄마 부탁한다.”
“네…….”
평소 머리가 자주 아파 비상약으로 구비한 신경 안정제를 먹고 잠들어 있는 아내.
손대균은 잠깐 그녀의 얼굴을 무심히 바라보다 돌아섰다.
뚜벅뚜벅.
챙겨 놓은 가방을 들고 방을 나섰다.
멍하니 서 있는 손유리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떠나버린 손대균.
끼릭.
그렇게 손대균은 두 사람을 남겨두고 호텔을 떠났다.
곧 거센 폭풍이 몰아칠 대한민국으로.
***
– 최상급 악신의 보호를 받는 자입니다.
– 타국의 조상신들의 카르마 포인트로 보호막을 쳤습니다.
– 당신의 레벨이 낮아 죽일 수 없습니다.
– 명부에서 저승사자 파견을 거부했습니다.
뭐라고? 죽일 수 없다고?
회귀 후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일반신도 아니고 최상급 악신의 보호를 받는 자란다.
타국의 조상신들까지 개입해 보호하는 자.
호희호식하며 살아남은 악독한 친일파 대부다웠다.
하늘도 용서치 않아야 할 자가 보호를 받고 있는 현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광주 학살의 주범인 인간말종과 아주 비슷한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온시은을 통해 저택에 설치된 모든 CCTV와 방범 장치를 해제했다.
간단한 마법만으로 경호원들과 비서를 수면에 들게 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친일파 우두머리나 진배없는 자를 직접 처리하기 위해 그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손국중.
손국중을 둘러싼 공기 중에는 억울한 한을 품은 혼령의 기운이 차고 넘쳤다.
일제시대 때부터 법관이었으니 그동안 지은 죄가 적지 않을 터.
독재 정권에 빌붙어 부역한 대가로 지금껏 떵떵거리며 살아왔을 일송회의 살아 있는 장로.
손대균 이사의 아버지이긴 했지만 그냥 놔둘 수 없었다.
이번 일로 보아 얼마 남지 않은 생 동안 끊임없이 날 괴롭힐 게 확실했다.
직접 대면해 보니 그 의심이 사실로 더 명확해졌다.
완벽한 이중 관상을 소유한 자였다.
결코 일반인은 구별할 수 없는 자애로운 인상을 본래 얼굴 위에 잘도 깔았다.
자애로운 인상 아래에 감춰진 살모사의 진짜 얼굴.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누군가를 끊임없이 죽이며 연명하는 운명이었다.
지금 시절에 딱 맞는 희생양, 내가 이번에 그의 손에 죽게 될 타깃이 됐다.
“왜 망설여? 뜻대로 날 죽여 보게. 다 늙은 노인의 목도 조를 힘이 없나? 크크크.”
죽음이 목전임에도 전혀 두려움을 보이지 않는 손국중.
그의 입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눈빛이 암녹색으로 변했다.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지독한 비린내가 풍겼다.
살면서 속내에 감춰온 악한 마음이 고약한 냄새로 드러났다.
“넌 누구냐.”
이미 손국중은 손국중이 아니었다.
“몰라서 묻나? 나 손국중이야. 한국변호사협회 회장 손국중!”
음색에서 젊은 혈기가 전해졌다.
나를 정확하게 노려보고 있는 손국중의 두 눈.
눈동자에서 깊숙한 어둠의 빛이 느껴졌다.
그 속에 조롱이 담겨 있다.
조금 전 몸을 떨던 노구 손국중이 아니다.
손국중의 육신과 정신을 강탈하고 지금까지 깊은 심중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사악한 영혼이 눈을 떴다.
나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악신의 숨은 손길.
손국중은 이미 오래 전 자신의 악한 마음에 불씨를 살려낸 악신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자였다.
“누구냐고 물었다.”
냉정함을 유지하고 차갑게 정체 모를 자의 신분을 물었다.
“왜? 궁금해? 인간이 알아서 뭐하게?”
놈이 슬슬 약을 올렸다.
비릿한 미소와 야비한 눈빛이 잠들어 있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
인간의 본성을 악으로 물들이고 선함을 파괴하는 것이 취미인 악신.
사라져 버린 손국중의 본성과 무척 잘 어울렸다.
“언제부터 붙어 있었냐?”
“처음부터.”
“뭐라고?”
“이자는 이미 지난 생에 나에게 영혼을 판 자다. 지난 생에도 이 자는 타락한 판관이었다. 그때 권력자의 감춰진 인척을 탐했다 일가족이 참살 당했다. 참살 직전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나를 만났지. 그때 이자의 영혼을 내가 샀다. 그 대가로 이번 생은 더 기막힌 인생을 살았지. 흐흐흐.”
짐작도 못 했다.
이미 전생에 악신과 손을 잡은 손국중.
그렇다면 그의 친일 행보는 이미 정해져 있던 운명의 수순이었던 셈이다.
“인간의 삶에 최상급 신이 개입하는 건 위법 아닌가?”
“난 괜찮아. 개입하지 않았다. 이 녀석은 나와 한 몸이거든.”
악신은 번뜩이는 눈빛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 틈에도 빈틈을 찾느라 분주한 악신의 눈빛.
이렇게 제대로 빙의된 인간은 처음 봤다.
대응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최상급 악신과 한 몸이 된 손국중.
구별 자체가 무의미했다.
“죽이고 싶지? 그럼 죽여. 넌 신이 될 수 있잖아. 그동안 모은 카르마 포인트를 모두 사용해 신이 돼. 그리고 이자를 죽여. 간단해~.”
악신이 나의 분노를 자극하며 유혹했다.
이 세상과 나를 단절시키려고 하는 간계.
어떻게든 세상에 유익한 인간을 하나라도 더 줄이고자 하는 속내가 훤히 보였다.
으드득.
이가 갈렸다.
언제나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어 악을 퍼뜨리는 악신들의 잔머리.
당장 없애버리고 싶지만 아직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지금 상대하고 있는 자는 손국중이 아니었다.
결국 손국중은 최상급 악신의 또 다른 자아.
“어리석은 놈. 그럴 용기도 없으면서 세상을 구원하겠다!? 네까짓 게 성인이라도 될 줄 아느냐?”
악신은 주저하는 나를 마음껏 조롱했다.
부글부글 임계점이 끌어 올랐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더 용서가 되지 않았다.
스윽.
손을 들어올렸다.
“다시 해 보시겠다? 용기가 가상하군.”
뻣뻣하게 몸을 세운 손국중이 턱을 치켜들며 내밀었다.
“마음대로 해봐. 어리석은 인간. 카르마 포인트가 부족하지? 크하하하하하하.”
“후훗.”
나도 비웃음을 흘렸다.
곧바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대한민국 조상님들! 포인트 가불 좀 부탁드립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