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66
870장. 애송이와 고수.
“시진핑 주석까지 합류했다고?”
“그렇다니까요. 세상에…… 베이다이허에서는 처음 있는 일 아니겠어요. 대 사건이에요 대 사건.”
“도대체 장립이 누구에요? 장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에 이어 시진핑 주석까지 한자리로 불러 모으다니…….”
“꽤 어리고 젊은데 그렇게 잘생겼대요.”
“정말?”
“한번 보고 싶은데.”
“린~ 말 좀 해봐. 장립하고 아는 사이라고 했잖아.”
베이다이허가 매 순간 들썩들썩했다.
중국 국가 권력 서열 1위 시진핑 주석은 베이다이허에 도착하자마자 장립이 있는 별장으로 향했다.
모두가 깜짝 놀랄 만한 행보.
장택민과 원자바오가 그 현장에 있긴 했지만 시진핑이 첫날부터 알현할 일은 아니었다.
떠오르는 태양은 지는 해에 먼저 고개를 숙이지 않는 법이다.
그것이 바로 베이다이허의 권력 법칙이었다.
그런데 맞닥뜨리기 힘든 사건이 일어났다.
시진핑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목적은 장립을 만나기 위해서라는 정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소유했다는 단약을 얻기 위해서.
첩들 사이에서는 단연코 첫 번째 가는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권력자들이 이제는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 대가 되었다.
첩들도 돈과 권력을 한손에 쥐기 위해 헌신했지만 그것만 보고 청춘을 허비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권력을 쥔 자들의 수중에 든 이상 감시 대상이 되어 함부로 다른 남자를 만날 수도 없었다.
더러 홍린처럼 자기 재력이 확보되어 있는 여성들만이 극소수로 자유를 맛봤다.
베이다이허에 참석한 권력자들의 첩들 중심으로 쫙 퍼지기 시작한 장립의 단약에 관한 이야기.
하루 만에 소문은 일파만파 번졌다.
지금도 장립과 친분이 있다고 소문이 난 홍린에게 일단의 첩들이 몰려왔다.
차기 중국 권력자들인 정치국 25인 이상의 고위직 공산당원들이 그녀들의 주인이었다.
‘이건 기회야!’
홍린은 장립과의 인연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첩들 사이에 오가는 정보량은 보통 때도 장난 아니었다.
국가 투자 계획들이 그녀들의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졌다.
대규모 개발 사업과 각종 이권 사업에 알게 모르게 첩들이 깊숙이 관여되는 것이다.
상위 권력층의 눈치를 보는 또 다른 권력자들이 첩들을 이용해 이권에 투자하거나 뒷돈을 챙기는 구조다.
홍린은 왕정 상무위원의 첩이기도 하지만 그는 실권자가 아니었다.
상해방을 배려하기 위해 명목상 끼워 넣은 것일 뿐.
“왜 말이 없어. 혹시 홍린 너도 장립에게 관심이 있는 거야?”
붉은 입술을 나풀거리며 끊임없이 질문을 퍼붓는 요염한 자태의 30대 초반의 여성.
그녀는 중국 정치국 25명의 위원 중 한 명이자 다음 대 상무위원으로 승진이 유력시 되고 있는 천해방 중경 서기의 첩 주혜다.
이곳에 모인 첩들 중 가장 서열이 높았다.
현 상무위원 왕정도 시진핑의 다음 대 후계 주자인 천해방에게는 밀렸다.
“설마…….”
“홍린! 장립과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야?”
“부럽다아~. 호호호.”
첩들이 호들갑을 떨며 웃고 있지만 내심 질투를 드러냈다.
잘난 남자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아직도 살아 있는 그녀들.
“전 아니에요. 생각보다 그는 눈이 높아요.”
홍린은 배시시 웃으며 방어했다.
“도대체 얼마나 높은 건데? 린 정도라면 빠지지 않을 텐데.”
주혜가 은근히 관심을 보였다.
“언니 정도는 되어야 눈길을 주지 않을까요?”
“에이. 나도 이제 한물갔어.”
주혜가 싫지 않는 듯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누가 봐도 거짓말.
표정에는 어느 때보다 자신만만함이 넘쳤다.
“무슨 소리에요. 언니는 아직 남자들 피를 뜨겁게 만드는 마력이 넘친다구요.”
홍린도 아부를 아끼지 않았다.
왕정이 물러나도 주혜와 인연이 닿아 있기만 하면 사업을 꾸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신변상 홍린은 상해방 라인으로 분류돼 있는 인물이었지만 첩들 사이에서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돈.
그 뒤에 그걸 지킬 수 있는 권력이 필요했다.
눈을 뜨고 웃고 떠들고 있지만 그녀들의 눈빛은 비상하고 예리하게 움직였다.
본능적으로 누구를 가까이 두어야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지 그녀들은 귀신같이 알았다.
그래서 지금도 상해방 상무위원의 첩인 홍린의 별장에서 모인 것이다.
현재 장립과 연결될 수 있는 가장 빠른 인맥이 바로 홍린이었다.
“그래서 소개시켜 줄 거야?”
주혜가 직접적으로 물었다.
이런 자리까지 직접 와서 주혜가 홍린을 만나야 할 이유는 장립밖에 없었다.
이제는 수다를 멈추고 구체적인 대답을 들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네.”
홍린이 정확하게 대답했다.
“와우!”
“역시 홍린이라니까~.”
“그 말 책임지는 거지?”
“물론이에요. 장립과 전 인연이 깊어요.”
홍린이 여유 있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장립을 만나야 할 이유는 많고 많았다.
그가 홍린과의 만남을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분명한 목적이 있어 베이다이허에 참석한 장립.
이제는 그와 거래를 할 때였다.
‘립……. 넌 굴러 들어온 복덩이야!’
***
미친놈!
시진핑을 제외한 식탁에 둘러앉은 이들 모두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에 중국 국가 주석을 상대로 지분을 내놓으라고 훈수까지 뒀다.
‘말보다는 동전 한 개가 더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장태산.
꿀꺽.
양소려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도를 넘어버린 장립의 도발.
누가 천하의 중국 국가 주석을 상대로 물질로 신뢰를 증명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결코 중국식 대화법이 아니다.
몇 번이나 돌려 말하며 의중을 파악한 뒤에 비유적으로 일을 진행시키는 것.
그것이 사업에 관련한 대화를 나눌 때의 중국식 방법이다.
그러나 화교 출신으로 외국에서 공부한 장립은 역시 달랐다.
우선 장택민과 원자바오를 단약으로 옮아 맸다.
양소려 또한 장립에게 코가 꿰인 상황.
정체됐던 무공 수준이 단약의 효력으로 단숨에 돌파됐다.
과거와 달리 요즘 세상에는 더 구하기가 어려워진 귀한 단약.
그 단약을 쥔 장립이 시진핑과 국가사업을 놓고 보이지 않는 대결을 벌였다.
누가 봐도 이것은 자존심 싸움이 분명했다.
자칫하다가는 시진핑 주석이 화를 낼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밖에 대기하고 있는 경호원들을 부르기라도 하면 장립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장택민이 장립을 보호해 주겠다 약조했지만 국가 주석에게 맞설 정도는 되지 않았다.
당장 장택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여우같은 원자바오는 가만히 눈치만 봤다.
류평을 비롯해 왕정, 조평 상장 등은 차마 입을 떼지도 못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 자신들이 낄 자리가 아님을 잘 알았다.
자칫 말 한마디 잘못 거들었다가는 목이 날아갈 수 있었다.
빠지직.
실내 공기 중에 스파크가 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시진핑 주석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장립의 태도는 중국 주석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애국심으로 포장해 에둘러 말했으면 되었을 텐데 장립은 직설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여기서는 ‘YES’ 나 ‘NO’를 정확하게 언급해야 했다.
장립의 강하게 대답을 요구했다.
“세상 무서운 걸 모르는 친구군.”
시진핑이 그런 장립에 대해 의미심장한 경고의 한마디를 던졌다.
“가문의 유훈입니다. 귀에 거슬렸다면 죄송합니다.”
장립은 바로 사과했지만 뜻을 굽히거나 뒤로 물러서지는 않았다.
조상의 유훈 역시 중국에서는 중요한 삶의 지표가 됐다.
‘애송이인가 아니면…… 고수인가.’
원자바오는 장립 같은 태도를 고수하는 인간을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대면했다.
지켜보면 볼수록 자신의 판단이 착오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갈대 같은 자신과 한 부류일 거라 판단한 인상을 거둬들여야 했다.
장립은 꺾일지언정 허리를 숙이지 않는 대나무 과였다.
이 상황에서 원자바오라면 장립 같은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은 차갑게 내뱉었지만 분명 시진핑은 장립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었다.
충분히 뒤로 물러났다가 다른 기회를 잡아 이권을 챙기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장립은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로 대답을 내놓으라 요구했다.
아무리 시진핑이 국가 주석이라 해도 이런 자리에서 일대일로 같은 국가사업의 지분을 일개 개인에게 약속할 수는 없었다.
장립의 패착이 맞았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도 들었다.
원자바오가 파악한 장립은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다.
아무 계산 없이 이런 말을 꺼냈을 리 없다.
‘오랜만에…… 재밌어.’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정치 막후 선배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왔던 원자바오.
두 사람의 살아 있는 현실 정치 대화가 그의 피를 다시 끓게 만들었다.
정치 인생 중 결코 몇 번 만나기 어려운 대결장이었다.
베이다이허 회의 막바지에나 맞닥뜨릴까 말까 한 치열한 권력의 수 싸움장에서나 볼법한 광경이다.
그것도 일개 개인과 중국 국가 주석의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단약을 쥔 원자바오는 느긋한 심정으로 상황을 주시했다.
오고가는 공수가 무림인들의 대결인 양 긴장감이 넘쳤다.
‘끄응.’
반면 장택민의 표정은 무겁고 참담했다.
자신의 입으로 장립을 목숨처럼 여기겠다고 선언한 장본인이었다.
책임이 막중한 장택민의 입장과 상관없이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자칫 뱉은 말을 주워 담아야 할지도 모를 처지로 내몰리고 있었다.
원자바오 자신도 이제는 몇 수 접고 상대해야 할 시진핑을 상대로 겁 없이 도발하는 장립.
‘허어. 저게 바로 젊은이의 패기인가?’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과거 저 나이 때 자신은 하위 공산당 당원에 불과했다.
살아남기 위해 당에서 내려오는 말도 안 되는 지령을 받고도 저항하지 못하고 충실히 따랐다.
그야말로 생존 뒤에 영광이 따르는 법.
절치부심 노력하여 오늘에 이르렀지만 권력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창때는 자신의 기침 한 번에 중국이 들썩였지만 이제는 소리를 질러도 듣는 이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렇게 저물어가는 시점에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된 장립의 패기.
넉넉한 웃음 뒤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살아온 시진핑이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차갑기 그지없는 최고 권력자의 은근한 분노.
집안 공기가 싸늘하게 식고 분위기는 경직됐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대화에 치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이 해결할 문제.
장택민은 어두운 표정에 숨을 죽이며 시진핑 주석과 장립을 지켜봤다.
***
다들 왜 쫄고 그래?
시진핑의 얼굴 표정 때문에 다들 긴장 탔다.
역시 공산당의 권력이 무섭긴 무섭다.
1인자의 명 한마디면 순식간에 뒤집히는 중국.
그를 톡톡 자극하는 맛이 쏠쏠했다.
“한비자께서 노마지지(老馬之智)라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로 이름을 떨친 관중과 습붕이라 해도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일에 봉착하면 늙은 말과 개미에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지금껏 할머니 말씀을 따라왔기에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 뜻을 어기며 애국과 일신의 영달을 구하겠습니까.”
문자 좀 썼다.
공산당 고위직들은 그래도 배울 만큼 배운 자들.
문화혁명 때 후세에 남길 위대한 인문철학과 가르침을 모조리 불살라 버린 무식한 중국인들.
그래서 마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분서갱유에 비견될 정도의 환란이었다.
문화와 정신이 오염된 민족은 성장에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런 이유 일제시대 쪽바리들이 한민족의 얼과 문화를 아작 내려 안간힘을 썼던 것.
그 여파에 지금도 한국은 신음하고 있다.
친일파 일송회를 비롯해 상당수 정치인과 언론들이 나서서 일본 앞잡이 노릇을 했다.
그들 손아귀에서 벗어나 의식적으로 깨어나기 위해서는 인문철학을 가까이 해 스스로 자각하는 방법밖에 없다.
글자만 읽어내는 게 아니라 그 속의 뜻도 파악하고 음미할 줄 알아야 친일파 토착 세력에 의해 놀아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중국은 큰 문제다.
문화혁명은 작은 역사적 편린이 아니라 대대로 중국을 갉아먹게 될 고질병이 되었다.
민주화의 씨앗이 되어 줄 정신적 거름이 부재 상태인 중국 땅.
중국몽은 언제든 일장춘몽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운명인 셈이다.
“후후훗.”
예상 외로 시진핑이 웃었다.
대신 차가웠다.
분위기 잡기는…….
나도 마음만 먹으면 손 하나 움직여 그의 목숨을 제거할 수도 있었다.
– 최상급 조상신의 보호를 받는 자입니다.
– 죽일 수 없습니다.
– 카르마 포인트가 말도 안 되게 모자랍니다.
알아! 나 요즘 포인트 거지다!
많이 벌었다 싶었지만 적이 강해질수록 소진되는 포인트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게임도 아닌데 레벨업을 하고 나면 상대적으로 강력한 보스들이 등장했다.
“자네 말에 동의하겠네.”
시진핑의 목소리가 장내에 묵직하게 울렸다.
“지분을 주지.”
정말?
“헛!”
“으음…….”
지켜보던 이들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지금 내뱉은 시진핑의 말이 갖는 무게는 어마어마했다.
“단!”
물론 조건이 붙을 거라는 건 예상했다.
“말씀하십시오.”
“올해가 가기 전에…… 1000억 달러를 가져오게!”
“1000억 달러!”
“아!”
역시 모두 깜짝 놀라며 탄성을 터트렸다.
“…….”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진핑.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자 자신의 요구에 응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는 그의 모습이 우스웠다.
지금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다.
“주석님…….”
표정을 유지하며 시진핑을 불렀다.
“말하게.”
자신의 패를 던지고 여유를 되찾은 시진핑의 넉넉한 미소.
승부에 쇄기를 박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씨익.
어쩔 수 없이 입꼬리가 먼저 올라갔다.
그리고.
“1000억 받고……. 1000억 더하죠.”
“뭐, 뭐라고!!!”
회귀의 전설 2부
물 귀신 작전.
2000억 달러!
모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말이 좋아 2000억 달러지 장립이 제안한 자금 규모는 중소 국가의 1년 예산과 맞먹는다.
일대일로를 진행 중인 중국도 짧은 기간 장만하기 벅찬 자금 규모다.
그 큰 액수를 장립은 도박판에 던지는 배팅인 양 질렀다.
‘진심인가?’
시진핑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중국 국가 주석인 자신을 상대로 허언을 할 시에는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죽일 기세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는 전직 국가 주석과 총리도 합석해 있었다.
희롱을 당하는 것이라면 체면이 말이 아닌 상황이었다.
오늘 처음 대면한 해외 화교.
나이도 어리고 젊은 놈이 보통이 아니구나 생각했지만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자신을 정중히 대하는 척하면서 할 말은 다 했다.
마치 정치인을 장사꾼 대하듯 했다.
이제는 확실히 의중을 파악해야 할 때.
한 치의 거짓이 섞였거나 희롱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농담이 과하군.”
시진핑은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다.
오는 도중 리장창이 몇 번이나 강조했던 장립의 장점.
노회한 권력자들을 포섭할 수 있는 귀한 단약을 갖고 있는 자다.
희롱이 확인되면 그 대가로 수십 알은 받아낼 수 있다.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비밀 안가에 신변을 구속하고 강제로 단약을 만들게 할 수도 있었다.
“어찌 주석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장립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립!!!”
리장창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도 더 이상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여기서 더 나갔다가는 장립에 대해 칭찬했던 자신도 문책을 당할 수 있었다.
천지회 단주이긴 했지만 국가 주석인 시진핑 앞에서는 한 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입장.
시진핑은 회주가 선택한 중국의 지도자였다.
‘제정신이 맞는 거야?’
술은 한 잔밖에 마시지 않았는데 리장창의 얼굴은 취한 듯 불콰하게 달아올랐다.
이제는 수습 불가 상황에 내몰렸다.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절 믿지 못하시는군요.”
장립은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자네라면 믿을 수 있겠나?”
시진핑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못 믿는 게 당연합니다.”
“난…… 대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일세. 날 희롱하고도 그 죄를 감당할 수 있겠나?”
“전 주석님을 희롱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으로 자네 말을 믿으란 말인가!!!”
“여기 장주석께서 보증인이 돼 주실 겁니다.”
“???”
불이 장택민 주석에게 옮겨 붙었다.
“!!!”
침묵하고 있던 장택민의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장립이 자신을 끌어들일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화들짝 놀란 것이다.
“어제 저를 자신과 같이 여기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왕정 상무위원님.”
왕정에게 시선을 보내는 장립.
“…….”
왕정도 순간 당황하여 입을 떼지 못했다.
침묵이 긍정이 되어 버린 묘한 순간.
장립이 왕정까지 판에 끌어들였다.
“아닌가요?”
장립이 다시 한 번 장택민을 바라보며 확인을 요청했다.
‘무서운 놈.’
장택민은 그제야 장립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위기에 휩쓸려 호기롭게 내뱉은 말이 부메랑이 되어 뒤통수를 쳤다.
좌중의 시선이 장택민의 입에 쏠렸다.
침묵 속에서 대답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장택민은 젖은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
‘그래!’
이곳에 오기 전 진선으로부터 들은 명이 떠올랐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장립의 말에 무조건 동의하라.’
돌아가는 상황에 당황해 잠시 놓치고 있었다.
진선이 뒤에 있음을 자각하고 나니 마음에 평정이 찾아왔다.
“맞아요. 내가 장립의 말을 보증하겠어요.”
“주석님!!!”
왕정이 크게 놀라며 외마디 비명처럼 장택민을 불렀다.
“!!!”
놀라기는 모두 마찬가지.
도대체 판이 어디로 굴러가는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장립의 말도 안 되는 허언을 장택민이 보증하고 나섰다.
결코 가벼이 취급될 말들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함께한 이들 모두가 두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이거……. 참.”
시진핑이 쓴 입맛을 다셨다.
이런 식이면 장립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수도 없었다.
장택민의 보증은 상해방의 보증과 다를 바 없다.
아직까지는 가장 많은 부를 차지하고 있는 상해방.
“나도 장립의 말을 보증하겠어요.”
예상치 못하게 원자바오까지 나섰다.
“아……버님…….”
류평이 놀라 말까지 더듬거렸다.
중국에서 꽤 큰 사업을 벌이고 있는 류평이었다.
권력 라인 눈밖에 나면 하루아침에 망해 넘어질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웠다.
‘립을 뭘 믿고!’
원자바오의 신중함은 중국 정가에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 인물이 수십억 달러도 아니고 수천억 달러를 제시한 일개 개인에 대한 신원을 보증하겠다고 발언했다.
“두 대인의 보증에 감사드립니다.”
장립이 진중한 자세로 포권을 취했다.
‘어떻게 수습할 생각이란 말이냐! 장립!’
류평은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장립을 바라봤다.
2000억 달러라면 공청단을 탈탈 털어야 겨우 마련할 수 있는 큰 자금이었다.
은행 빚보다 더 무서운 게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오간 말 빚이다.
장립 한 사람으로 인해 상해방과 공청단이 실타래처럼 얽혀버렸다.
진흙탕에 빠진 당나귀 한 마리를 건지려다 다 같이 수렁에 빠져버린 꼴.
“그럼 돈 문제는 보증으로 해결 됐고……. 주석님께서 약조를 해주십시오. 일대일로 지분……. 어디를 얼마나 주시겠습니까?”
간단하게 2000억 달러 보증을 확보한 장립이 공세를 이어나갔다.
“…….”
침중한 표정의 시진핑.
은근한 시선으로 장립을 노려봤다.
***
다들 이런 말도 안 되는 개판은 처음이지?
흐흐흐.
물귀신 작전으로 아주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성향을 겨냥했다.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체면 때문에 죽을 게 빤한 판에 발을 들였다.
그런데 의외이긴 했다.
장택민이 생각보다 빠르게 나에게 동조했다.
당황하는 기색만 확인해도 충분했는데 생각지 못하게 월척이 걸렸다.
게다가 원자바오도 한 발을 걸쳤다.
그 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순전히 원자바오 혼자 결정한 선택임이 확실했다.
의외로 편안한 표정인 원자바오를 바라봤다.
나를 향해 알 수 없는 미소를 건네고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에 상대하기 가장 벅찬 인간형이다.
그에게 나 역시 마찬가지인 상황일 터였다.
같은 부류의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법.
다만.
“어떤 걸 원하나?”
시진핑이 한 발 물러서며 물었다.
이 순간이야말로 본격적으로 딜을 할 시간.
일대일로는 여러 갈래로 뻗어난 길이다.
일대는 세 곳으로 길이 난다.
중국, 중앙아시아, 러시아를 통해 유럽으로 가는 길과, 서아시아 페르시아만, 지중해를 통과하는 길,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를 걸쳐 인도양으로 진출하는 길이 일대의 구상이다.
일로는 중국 연해를 통해 남중국해 인도양 유럽 항로, 남중국해를 걸쳐 남태평양으로 향하는 두 가지 방식.
가는 길에 철도를 놓고 항구를 건설해 세계를 야금야금 먹어치우겠다는 야심찬 중국몽의 핵심계획인 셈이다.
소금을 왕창 뿌려야 한다.
그것도 가장 약하고 고통이 심한 아픈 곳에.
“일대에서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철도 건설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지분은 50.1%. 그리고 일로에서는 스리랑카와 케냐 항구 지분을 받고 싶습니다. 역시 50.1%를 요구합니다.”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지?”
핵심만 콕 찍어 전달했다.
그곳만 차단하면 나중에 중국은 해외 진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내 계획을 멋지게 성공시킬 생각이다.
“일대일로는 공동논의, 공동건설, 공유라는 기본 원칙이 담긴다 들었습니다. 호혜평등을 내세워 상대국 금융 혁신을 추구하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적격입니다.”
“립! 자네는 월가 자본을 끌어들인다 하지 않았나!”
리장창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트집을 잡을 수도 있어. 지분 관계가 복잡하면 분명 일을 어렵게 만들 것이야.”
“그 점은 걱정 마십시오. 전 눈먼 돈만 상대합니다.”
“눈먼 돈?”
“모든 계약서는 공개될 것이고 공식 승인도 받을 겁니다. 월가의 자본이 들어오게 되면 그들은 장기 투자자입니다. 중국 금융보다 싼 이자로 큰돈을 빌릴 수만 있다면 이득입니다.”
“월가의 승냥이들은 이빨이 날카로워.”
“저도 만만치 않습니다.”
“믿을 수 있겠나?”
의심이 많은 리장창.
이쯤에서 도장 한번 찍고 넘어가야 했다.
“제가 비록 화교지만 한족입니다! 절 믿지 못한다면 해외에 있는 동포 누구도 믿으시면 안 됩니다!”
“…….”
예상한 대로 리장창이 입을 다물었다.
사실 중국인들 상당수가 한족이라 주장하지만 다 구라다.
수많은 이민족들이 뒤섞여 살아가고 있는 동네다.
피가 몇 번씩이나 섞이고 섞여 진정한 한족을 찾는다 해도 극소수밖에 없다.
다만 중국이라는 한 지붕 아래 융화되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맞아! 립은 중화민족이야! 그를 믿어야지!”
장택민이 강한 어조로 동조하고 나섰다.
“맞아요. 동족을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습니까? 계약서만 확실하다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원자바오도 지원 사격을 해왔다.
“흠.”
시진핑이 난처한 듯 신음을 흘렸다.
여기서 확답을 줄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니었다.
이럴 때는.
“지금 답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긴장을 풀 타이밍.
더 이상 몰아붙였다가는 판다곰이 뒷목잡고 쓰러질지도 몰랐다.
“이거 하나 드셔보십시오.”
스윽.
자연스럽게 품에서 단약 하나를 더 꺼냈다.
“뭔가?”
이 양반, 알고도 묻는 것 봐라.
눈빛이 금방 초롱초롱해진다.
“주석께서는 태음 체질이십니다. 체질에 맞는 단약입니다.”
“내 체질도 보이나?”
“주무실 때 식은땀을 많이 흘리시지 않습니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 기능이 떨어져 화장실에서 고생하실 겁니다.”
“마, 맞네!”
“풍채는 좋으시나 음이 강하여 전체적으로 내장기관이 허하십니다. 수승하강의 원리가 깨지면 큰 병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걸 보호하기 위해 처방된 ‘태양보신단’입니다.”
“태양보신단!”
시진핑이 환한 얼굴로 좋아라 한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방금 막 지어낸 단약 명칭이다.
양기가 부족한 남자에게 어울리는 상비약 같은 거다.
사실 조 변호사님과 로버트 라이언에게 주려고 따로 만들어 놓았던 것.
당연히 효과는 죽여준다.
오늘 밤 누군지 몰라도 시진핑에게 사랑 좀 받게 될 거다.
“립……. 그 단약 좋아 보이는군.”
장택민 주석이 대놓고 침을 흘린다.
“좋죠. 양기를 듬뿍 북돋워주니 가정이 화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른 이름으로 ‘가화만사단’이라 불립니다.”
“오! 이름이 좋군! 나도 한 알 얻을 수 있나?”
은근슬쩍 한 발 걸치려는 드는 장택민.
저 양반, 약쟁이다.
관심 없는 척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는 원자바오 총리.
“…….”
은근히 기대하며 눈빛을 빛내고 있는 다른 이들의 시선까지.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뿌듯했다.
의외로 쉽게 허점을 드러낸 중국몽.
“좋습니다! 오늘 기분도 좋은데 한 알씩 드리겠습니다!”
“립!”
“고맙네!”
사방에서 쏟아지는 진심어린 고마움의 탄성들.
지금은 누가 뭐라고 해도 ‘단약으로 대동단결’한 현장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베이다이허의 밤이 또 이렇게 하루 더 깊어갔다.
단약 하나로 이루어낸 물귀신 포섭 작전.
이들은 꿈에도 모르고 있다.
나중에…… 몇 십, 몇 백 배로 약값을 토해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야만 영혼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