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8
87장. 이벤트의 시작
“태산아, 이 차는…….”
엄마가 벤틀리 앞에서 당황했다.
졸업식은 화려하게 피날레를 장식했다.
교복이야 더 이상 입을 필요가 없어 애들 분풀이용으로 보시했다.
누가 봐도 열 받을 상황에 교복으로 끝난 게 다행이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통 크게 빌린 시내 대형 중국집에서 참석 가능한 반 아이들과 뒤풀이를 치렀다.
같은 반 아이들 상당수와 부모님들이 참석해 요리를 마음껏 먹고 술도 마셨다.
졸업식이고 지역사회라 친구들도 부모님들에게 술을 배웠다.
꽐라까지는 아니더라도 준성인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그렇게 친구들과 석별의 정을 나눴다.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공부했던 지난 시간들이 짧지 않았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불릴 인연이다.
이제 각자의 길로 가는 갈림길에서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억지로 채울 수 없는 우정은 완성됐다.
그리고 난 다음날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 올라왔다.
우리 가족 전용 주차장에 들어서다 깜짝 놀랐다.
낯선 차 두 대가 위용을 자랑했다.
“엄마 서울에서 사용할 자가용.”
“이게? 이 차 비싸잖아. 가정주부가 사용하기에는 무리 아냐?”
엄마가 처음으로 무리라는 말을 했다.
아들 덕분에 나를 제외하고 국내 제일의 현찰 갑부라는 사실을 몰랐다.
엄마가 벌어들인 수익으로 자동차 회사를 구입할 수 있다는 건 비밀이다.
지금도 기하급수적으로 돈이 불어나고 있다.
엄마 명의로 법인 몇 개를 계획 중이다.
사회적 명성 확대를 위한 재단법인과 투자법인 등등이 준비됐다.
“엄마 부자야.”
“무슨 소리야. 엄마는 농부의 아내야. 아들이 잘나서 덕을 보고 있지만.”
엄마는 날 따뜻하게 바라봤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자신의 총 자산이 수조를 훌쩍 넘어가는 걸 몰랐다.
“아빠와 엄마 덕분에 내가 있잖아. 그러니까 덕이라고 말하지 마. 이 세상 태어난 것 자체가 축복이야.”
엄마 앞에서는 죽을 때까지 어린 자식일 뿐이다.
엄마의 행복함은 자식을 보는 눈에서 충분히 읽혔다.
애교도 부리고 자랑질도 아끼고 싶지 않았다.
“엄마, 오늘 입고 갈 정장 한 벌 구입하자.”
“됐어. 동창회인데 무슨 옷이야. 이거 입으면 돼.”
그건 내가 안 된다.
갈수록 엄마는 동안이 됐다.
돈에 대한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하고 싶었던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된 영향인 것 같다.
동생들도 무탈하고 아들도 한국대에 합격하자 마음이 편해지셨다.
그렇다고 가정주부의 본분은 잃지 않았다.
언제나 우리 가족 식탁은 엄마의 사랑으로 넘쳤다.
“아들 학교에 입고 다닐 옷 살 건데 싫어?”
“그래? 그럼 가야지.”
엄마도 여자다.
핑계가 생기자 바로 얼굴이 화사해졌다.
사랑한다는 말과 옷을 싫어하는 여자는 드물다는 건 회귀 전에 배웠다.
여자 친구들은 항상 사랑한다는 말을 요구했다.
알바비를 벌어 비메이커 옷이라도 하나 사주면 입이 귀에 걸렸다.
참……, 순수했던(?) 시절이다.
“엄마. 대학 동창들하고 어땠어?”
“뭐가?”
“오랜만에 만나서 설레는 친구 없어?”
“음……, 있지~.”
“남자 친구?”
“아빠가 첫 남자 친구이자 마지막 남자란다.”
엄마의 철벽 방어는 완벽했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도 전생에 연애는 쫌 해봤다.
“동기 분들하고 친했어?”
삐빅.
차 문을 열고 엄마를 조수석에 태웠다.
“그랬지……, 대학시절 다 그렇지만 교수님 과제 끝내고 저녁에 마시는 소주 한 잔에 삼겹살은……, 정말 끝내줬다. 미대 특성상 야간작업이 많았어. 그러는 날에는 족발 배달시켜서 실습실에서 한 잔 꺾을 때 그게 인생의 참맛 같았어.”
오! 우리 엄마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지금은 술도 한두 잔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 엄마가 소주에 삼겹살 맛을 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런데 연락은 안 해?”
“……, 집에서 쫓겨나고 아버지하고 살 때 가끔 했지만 30대 들어서는 그렇게 안 되더라. 다들 가정을 갖기 시작하고 바쁜 시절이라 잊었어. 생각날 때가 많았지만 마음으로만 담았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하고 생각했어.”
엄마의 말에 가슴이 아렸다.
회귀 전 내 생에서는 엄마에게 그런 호사가 없었다.
아버지 빚에 쪼들리고 나와 쌍둥이들은 냉혹한 사회에서 바닥을 기었다.
부릉.
절제되고 둔탁한 배기음이 시동을 걸자 전달됐다.
“엄마, 이 차는 버튼 키로 시동 걸어야 해.”
“그러네? 정말 편한 세상이야.”
2008년도에 버튼 키는 쉽게 만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다.
앞으로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이 정도는 소형차에 옵션으로 장착되는 날이 금방이다.
“출발~.”
6,000cc급 엔진이 주는 느낌은 포르쉐를 장난감으로 만들었다.
묵직하게 치고 나가는 맛이 남달랐다.
그렇게 엄마 기 살리기 프로젝트가 가동됐다.
‘순자 아줌마! 기다려. 오늘도 눈치 없이 나오면……, 박살을 내버릴 거야!’
갑질을 좋아하진 않지만 상대를 대놓고 무시하는 인간에게까지 참고 살 필요는 없었다.
꿈속 할배도 말했다.
음흉한 놈들은 결코 개과천선 못하니 박살을 내버리라고 말이다.
***
“준비는?”
“완벽하게 끝냈습니다. 총지배인님.”
서울 팰튼 호텔의 연회부 담당 지배인 안창수가 믿음직하게 대답했다.
긴장하고 있는 총지배인 에릭 벤슨 모습이 이해가 갔다.
며칠 사이 팰튼 호텔 그룹의 대주주가 바뀌었다.
워낙 긴급하게 변동된 사항이라 하급 직원들은 몰랐다.
총지배인 에릭 벤슨도 그제 알았을 정도다.
그리고 어제 총지배인에게 그룹에서 연락이 왔다.
오늘 호텔에서 동창회를 여는 한 인물에 대해 최고급 VVIP 대우를 하라는 명령이다.
누군지 정체를 모르지만 그룹의 새로운 대주주가 요구한 사항이다.
주식회사는 대주주가 곧 주인이다.
올해 한국을 떠나 홍콩 팰튼 호텔 총지배인으로 가고 싶은 에릭 벤슨에게는 기회였다.
‘도대체 누구지? 대그룹 회장도 못 받는 서비스가 요구되다니…….’
VVIP 의전은 대통령이나 국가 원수급에 한해 제공되는 의전 서비스다.
호텔 식기도 최상품으로 교체가 된다.
직원들도 에이스급이 투입된다.
주방장이 직접 코스요리를 제공한다.
총지배인이 직접 손님의 기분을 체크해야 한다.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이다.
“안 지배인. 실수하면 안 됩니다.”
에릭 벤슨의 말에 안창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연회실 아르망고에 특급 자재와 알베르 총괄수석 쉐프, S급 서빙팀이 대기 중입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믿겠습니다. 안 지배인도……, 내가 떠나면 총지배인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니까요.”
“감사합니다. 총지배인님!”
아직까지 한국인이 팰튼 호텔 총지배인 자리에 오른 역사가 없었다.
팰튼 호텔은 미국에서 출발해 90년 동안 전 세계 90개국 4,000개의 크고 작은 호텔, 67만 개의 객실을 소유 경영하고 있었다.
그 긴 역사에도 총지배인에 오른 한국인은 전무했다.
경영인이 아시아인에 대해 은근히 평가를 절하했다.
하지만 대주주가 바뀌었다는 소식에 안창수는 내심 욕심을 냈다.
호텔리어의 최종 꿈은 총지배인이다.
한 호텔 전부를 책임지고 경영하고 싶은 욕망은 안창수에게도 있다.
그동안 영어, 일어, 중국어에 능통하도록 꾸준히 공부해 왔다.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획득하기도 했다.
모든 게 준비된 안창수다.
다만 기회를 얻지 못해 날개를 펴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기다리던 천운이 찾아왔다.
정확히 모르지만 새로운 대주주와 연관된 이가 오늘 손님으로 온다.
점수 따기에 이만한 날이 없다.
“걸그룹이 축하 행사로 초청됐다고 합니다.”
“네. 연락을 받았습니다.”
“……, 뭔지 모르지만 그 걸그룹에게도 신경을 쓰세요. 대주주 쪽과 관련된 이들이 확실합니다.”
기가 막힌 촉을 소유한 에릭 벤슨이 지시를 내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해요. 손님들이 도착할 시간이 됐으니 직원들에게 최고의 친절을 지시하세요.”
“바로 하달하겠습니다.”
안창수가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내려가 봐요.”
“넵! 총지배인님.”
안창수가 사라지자 에릭 벤슨도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며칠 사이로 거대 그룹의 대주주가 된 이가 누군지 모른다.
요즘 미국발 불황으로 호텔 경영에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경제가 풀려야 사람들이 여유롭게 여행을 즐긴다.
편안한 숙소와 맛있는 요리가 보장되는 호텔은 그 여행의 중심에 있다.
사치소비재에 속하는 호텔업은 세계 경기에 민감했다.
갈수록 떨어지는 호텔 경기 지수.
이때 새롭게 등장한 대주주는 복병이다.
불경기에 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이익 수단은 호텔 매각과 인원 감축이다.
“휴우.”
짧게 숨을 들이키며 에릭 벤슨은 긴장을 느슨하게 풀었다.
호텔리어가 된 지 어느새 20년이다.
최상의 마무리를 위해서는 아직 10년 더 현역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
“효숙아. 이제 오는 거야? 넌 언제 봐도 질투 나게 예쁘니~.”
“순자, 아니 서원아. 안 보는 사이 예뻐졌네? 어디서 한 거야?”
“윤자 남편 솜씨 좋더라.”
“윤자 남편이면 성형외과 의사지? 그럼 나도 한 번 가볼까?”
“와이프 친구라고 30프로 깎아줘.”
“어머머. 그렇게나 많이?”
“오늘 온다니까 견적 한 번 내달라고 그래.”
팰튼 호텔 현관에서 홍인대학교 회화과 동창 주순자와 장효숙이 만났다.
강남에서 사모님 소리 듣고 살아가는 그들의 차는 괜찮은 수입차다.
최근 유행하는 모피 코트를 입고 둘은 서로를 칭찬했다.
얼굴은 팽팽해도 몸은 통통한 그녀들의 수다는 좀 더 이어졌다.
도어맨과 주차요원들이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결코 내색하지 못했다.
오늘 중요한 손님의 방문으로 1급 친절 경계령이 내려졌다.
복장도 깔끔하게 세팅한 채로 손님들의 수다를 지켜봤다.
“네 남편은?”
“조금 있다가 온대. 오늘 클라이언트가 좀 까다로운가 봐. 네 남편은?”
“퇴근하고 바로 온대.”
“다른 애들은 다 왔나 모르겠네?”
장효숙은 기분이 들떴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상당히 많았다.
대학교 시절만 생각하면 몸이 젊어지는 것 같았다.
“대부분 오지 않겠니. 오늘 걔가 온다는데~.”
“걔? 누구?”
“소문 못 들었어? 가출 퀸.”
순자는 가출 퀸이라 말하며 은근히 주설란을 무시함을 감추지 않았다.
“가출 퀸이면……, 설마 주설란???”
“맞아~ 흐흐. 그 계집애 오늘 참석할 거야~.”
“진짜!”
장효숙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 반해 주순자의 표정은 득의만만했다.
주순자는 오늘을 위해 이를 갈았다.
예전과 변함없는 주설란의 미모와 잘난 아들에 대한 질투로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쳤다.
옷을 비롯해 액세서리 모두 비싼 것들로 치장했다.
남편의 지원사격도 부탁했다.
주설란과 아들이 잘나 봤자 사회적 위치는 차원이 달랐다.
철저하게 친구들 사이에서 깔아뭉개리라 마음먹었다.
‘오기만 해봐! 다시는 서울 바닥에 얼굴 못 내밀도록 밟아버릴 테니까!’
언제나 비교 대상이었던 주설란이다.
성씨가 같아 학교에서 더 회자됐다.
미녀 주설란과 마녀 주순자라는 소문이 오고 갔다.
한때는 미모와 실력으로 촉망받았던 친구였지만 그때부터 시기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던 주설란이다.
친하게 지내는 척했지만 주순자는 설란이 집에서 쫓겨난 이후로 가장 많은 뒷담화를 깠다.
안 좋은 소문을 부풀려서 친구들에게 뿌린 게 주순자다.
“이복 오빠들하고 화해한 거야?”
“화해는 무슨. 호적에서 파버렸다고 소문 자자하잖아. 그냥저냥 시골에서 사과 농사짓고 있잖아.”
“그래? 그런데 어떻게 연락이 된 거야? 설란이 연락처 누가 알아냈어?”
“내가 얼마 전에 봤잖아. 제비 같은 아들놈하고 나타나서 싼 티 나는 옷들 보고 있더라고.”
“네가 초대했어?”
“어~. 내가 오늘 꼭 참석하라고 알려줬어. 잘했지?”
“어? 어…….”
장효숙은 주순자의 표독함을 익히 알고 조용히 대꾸했다.
시아버지가 전직 다선 국회의원에 남편은 잘나가는 로펌의 중견 변호사다.
괜히 척 져봐야 좋을 게 없었다.
주순자 성격이 까칠하고 예민하다는 걸 친구들 모두 알고 있었다.
“고객님. 다른 차가 대기 중이니 차를 빼도 되겠습니까?”
주차요원 둘이 다가와 정중히 물었다.
“다른 차? 그래요.”
주순자가 친구와의 대화에 끼어든 주차요원에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갑질이 평소 생활화되어 있었다.
한 대의 차가 라이트를 켜고 정문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딱 봐도 대단한 수입 고급차였다.
판매 가격이 3억씩 가는 최고급 명차다.
“어떤 집안 차야? 벤틀리 저거 몇 대 없는 찬데…….”
장효숙이 들어서는 검정색 벤틀리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강남은 의외로 바닥이 좁았다.
상류층에 대한 정보는 빠르게 퍼졌다.
특히 눈에 띄는 벤틀리 같은 대형 고급차를 소유한 집안은 소문의 타깃이었다.
스르르르르릇.
주차요원들이 두 대의 차를 빼자 벤틀리가 정문에 멈췄다.
주차요원이 빠르게 다가가 조수석 문을 잡았다.
달깍.
문이 묵직하게 열렸다.
명차답게 열리는 소리까지 남달랐다.
그리고…….
광택 나는 구두와 함께 날씬한 다리가 먼저 땅에 닿았다.
클래식한 명품 코트 차림의 중년 여인이 차에서 내렸다.
한눈에 봐도 고상함이 풀풀 풍기는 미모의 중년 여인.
기다리는 친구들을 발견했다.
“나 기다리고 있었어?”
그녀가 활짝 웃으며 효숙과 순자에게 다가와 활짝 웃었다.
“서, 설란이???”
두 여자는 경악에 휩싸인 채 설란을 맞이했다.
# 88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