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80
886장. 보스의 여자.
“설영 왜 그래? 갱들이 또 시비 걸어?”
얼굴을 붉힌 채 주방으로 들어온 설영에게 주방장이 언성 높여 물었다.
차이나타운의 갱들도 무시할 수 없었다.
본토 삼합회와 쌍벽을 이룰 만큼 악랄하고 지독했다.
미국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독기로 무장했다.
대도시에 자리하고 있는 차이나타운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미국 갱보다 더 잔혹해졌다.
본인들의 영역을 침범하면 반드시 피의 복수를 하고야 말았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중국의 갱들.
다른 곳은 몰라도 차이나타운은 완벽하게 통제했다.
다른 인종들로 구성된 갱들이나 미국 공권력도 섣불리 침범하지 못했다.
차이나타운 안에서 또 하나의 완벽한 자치를 구성하고 혜택을 누렸다.
영업주들도 신고는 꿈도 못 꿨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었다 해도 여전히 백인들 위주로 돌아가는 미국 사회.
시민권자인 화교들을 상대로도 빈번히 차별 정책을 펼쳤다.
게다가 차이나타운을 접수한 갱들은 본토 조직들과 의형제를 맺은 상태.
미국 사회 어떤 곳도 피할 곳이 없었다.
또 중국 권력자들이 그들의 뒤를 봐줬다.
비자금 처리에 차이나타운에서 활동하는 갱들 만한 이들이 없었다.
그들 손을 통해 오고가는 금액이 장난 아니다.
이런저런 거래로 인해 차이나타운은 겉보기에 매우 평온했다.
같은 인종이기도 하고 서로 꽌시로 엮여 있는 경우가 많아 조심하는 것도 있었다.
혹 형제가 당하기라도 하면 이웃들이 먹는 밥에 독을 타거나 야밤에 덮쳐 칼을 꽂기 일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갱들 못지않게 차이나타운 화교들의 단합력도 대단했다.
차이나타운의 주인 와칭도 주민들은 건들지 말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럼에도 가끔 일이 터졌다.
귀여운 외모로 암암리에 인기가 많은 설영.
그녀를 노리는 와칭 남자 조직원들이 꽤 됐다.
그러다 보니 주방장을 비롯해 다른 직원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단속했다.
“아니에요…….”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 화난 것처럼 빨갛잖아.”
주방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손에 든 중식도를 들고 당장 홀로 뛰어나갈 기세다.
“그가 왔어요!”
“그? 누구?”
“립이요!”
“뭐라고 립? 그 허우대 멀쩡한 갱?”
“네!”
“……정말? 걔 죽었다고 소문 쫙 돌았는데.”
주방장이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을 보였다.
설영이 장립이라는 갱에게 관심이 있었음은 식당 사람들 모두가 알았다.
이곳에 오는 갱들 중에 가장 사람답게 생겼던 장립.
드러난 몸 어디에도 그 흔한 흉터는커녕 작은 문신 하나도 없었다.
보스의 여자와 도망치다 걸려 죽임을 당했다는 소문만 파다하게 돌았다.
후에 소문을 갱들이 직접 확인시켜 주었지만 그 앞에서도 설영만은 그 얘기를 믿지 않았다.
그때 죽었다던 장립이 지금 나타났다는 말이었다.
“죽긴 왜 죽어요! 립은 지금 식사중이에요. 그가 데이트 신청했어요!”
설영이 발끈하며 말을 잇다 다시 얼굴을 붉혔다.
그녀의 립에 대한 짝사랑은 식당에서 꽤나 유명했다.
처음 식당을 방문했을 때부터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스스럼없이 밝혀 왔다.
그 말을 들은 사람 모두가 말렸던 갱과의 위험한 사랑.
설영은 절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지켜본 장립은 다른 갱들 같지 않았다.
특히 웃을 때 드러나는 순박한 인상이 전혀 갱으로 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팁도 잘 줬다.
또 누구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거친 말을 뱉지도 않았다.
나중에는 명문대학교를 나온 인재라는 소문도 돌기도 했다.
어디를 봐도 갱 같지 않았던 갱.
그를 겪어본 사람이면 다들 이해를 못 했던 장립의 정체.
그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던 것인지 다시 나타났다.
“그래서……. 데이트 할 거야?”
“당연하죠! 얼마나 기다리던 데이트 신청인데!”
설영은 흥분돼 있었다.
반면 심각해진 주방장을 비롯한 요리사들의 분위기.
“립이……. 어떤 사고를 쳤는지 기억하고 있지?”
“……네.”
“주걸이 알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 소문대로라면…….”
주방장이 은근한 두려움을 드러냈다.
와칭의 보스 주걸.
올해 나이 50세로 서른 살 젊은 나이 때 와칭을 접수했다.
무술을 배운 인물이라 어디서든 일당백의 몫을 해냈다.
태생 자체가 살수 집안 출신이라는 후문이 떠돌았다.
전생에 백정이라도 되는 듯 제거 대상의 뒷목을 공격해 정확하게 동맥을 끊는 게 전문이었다.
“정확히는 모르잖아요……. 립이 정말 그랬다면 이곳에 나타날 리가…….”
타다닥.
그때 여자 종업원 한 명이 주방으로 급히 들어왔다.
그리고.
“큰일 났어요!”
사색이 된 채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큰소리로 소리쳤다.
“무슨 일인데?”
식당 주인의 아들이기도 한 주방장이 놀라서 물었다.
“여여(麗麗)가 어떤 남자에게 술을 따르고 있어요!”
“뭐……. 여여가!!!”
***
뭐야? 이 여자?
싸구려 향수마냥 진한 장미향으로 몸을 휘감은 채 나타난 여인.
……예뻤다.
다만 맑고 깨끗한 선한 아름다움의 이미지가 아닌 퇴폐적이고 우울한 기운이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살짝 찡그린 듯한 얼굴이 왠지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
얼굴에 드러나기 시작하는 주름이 전혀 밉게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요물이다.
문제는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술 냄새도 강하게 함께 풍겼다는 것.
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이미 취해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담배 냄새도 풍겼다.
모르긴 몰라도 이 여인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병이 생길 것 같았다.
어쩌면 이미 여러 남자를 병들게 했을지도 몰랐다.
– 여여…….
영혼 장립이 앞에 여인을 알아본 듯 이름을 불렀다.
아는 여자?
– 그녀입니다.
누구?
너도 저런 미녀를 다 알고 있어?
– 보스의 여자입니다.
“아!”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장립 이 녀석 여자 보는 눈이 꽤 높다.
대신 대가가 컸다.
마녀 같은 이 여인에게 영혼을 빼앗겼고, 끝내 목숨까지 잃었다.
그런 여인을 다시 만났다.
“너…… 누구야? 누구냐고!!!”
술잔에 잔을 채우다 말고 다시 묻는 여인 여여.
파르르 그녀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여여의 눈동자에 비춰 다시 내 눈에 보이는 장립의 얼굴.
파바밧.
눈빛과 눈빛이 똑바로 부딪쳤다.
격동에 휘몰아치는 여여.
“여여……. 앉아.”
“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여여가 신음을 흘렸다.
깊은 곳에 처박혀 있던 영혼이 놀란 모습이다.
“너…… 살아 있었어?”
“보시다시피.”
“어떻게……. 넌 죽었는데. 어떻게…….”
장립의 생환이 믿기지 않는 듯 여여는 ‘어떻게’만 연발했다.
혼란을 넘어서 귀신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나를, 아니 장립을 귀신으로 보는 눈빛이다.
“그 술 나 줄 거 아냐?”
여여가 따른 술을 가져왔다.
꿀꺽.
단숨에 잔을 비웠다.
또로록.
안주도 먹지 않고 잔에 술을 채웠다.
“마셔.”
여여에게 술을 내밀었다.
꿀꺽.
독한 술을 단숨에 마셔 버리는 여여.
“…….”
취기 가득한 두 눈으로 가만히 나를 지켜봤다.
그리고.
“너 누구야?”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해오는 여여.
확인해 주었음에도 여자의 촉이 발동한 듯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내가 립의 탈을 쓰고 있는 걸 모르는 여여.
그러나 그녀는 립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자신의 남자를 버리고 함께 도망을 꿈꿨을 만큼 잘 아는.
– 풍취류화만점향(風吹柳花滿店香)…….
그때 침묵하고 있던 장립이 구슬픈 목소리로 읊조렸다.
한없는 슬픔에 젖은 감정에 북받친 목소리.
하아 이 녀석 어쩔 겨?
“버들과 꽃바람이 가득 찬 향기로운 주점…….”
시를 읊었다.
마침 나도 알고 있던 이백의 금릉주사유별(金陵酒肆留別).
주선이 술에 취해 석별의 정을 시에 가득 담았다.
그 시를 장립이 읊었다.
이 녀석, 은근히 나와 같은 종류의 피가 흘렀던 모양이다.
개화되지 못하고 세상을 떴기에 망정이지 뭇 여인들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만들었을 놈이다.
“!!!”
여여의 눈망울이 점점 커졌다.
– 오희압주환객상(吳姬壓酒喚客嘗)…….
시는 계속 됐다.
사방은 어느새 조용해졌다.
여여의 신분이 범상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차이나타운의 밤을 지배하는 보스의 여자.
“오나라 계집은 술을 만들어 손님을 부른다.”
나도 모르게 장립이 느끼는 감정에 전이돼 분위기 흠뻑 잡았다.
시는 멈추지 않았다.
“금릉 자제들이 나를 배웅하는 자리……. 가려 마음먹다 가지 못하고 잔을 기울인다…….”
술잔이 오간 이 자리에 어울렸다.
나의 음성인지, 립의 음성인지 촉촉해진 목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동으로 흐르는 물에 그대여 물어 보소…….”
장립이 여여를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짜르르 심장을 타고 흐르는 진한 감정의 기류.
마치 두 사람만이 알고 주고받는 암호 같았다.
또로로록.
여여의 사슴 같은 눈망울에서 뜨거운 이슬이 흘러내렸다.
이거…… 위험하다.
“이별의 정과 강물은…….”
이번에는 여여의 목소리가 슬픔에 젖은 채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울컥.
여여의 눈물을 보는 내 심장이 미친 듯 아려왔다.
립! 그만! 너 그러다…….
뜯어 말릴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고 말았다.
죽은 자가 되었든 산 자가 되었든 누군가의 이름을 도용한 대가는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보통은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겠지만 포인트와 업장 세계에서는 그 파장이 아주 컸다.
특히 미래 신선이 되는 몸으로 예약된 나에게는 그 양향이 더 컸다.
립이, 진짜 내가 돼 버렸다.
“누가 길고…… 짧으냐고…….”
여여와 내 입에서 동시에 흘러나오는 마지막 시의 구절.
파르르 파르르.
여여가 찬비에 젖은 작은 새처럼 몸을 떨었다.
이 순간과 마주하기 전까지 립을 미친놈이라고 여겼다.
어리석게도 잘난 외모와 학벌을 가지고 갱에 투신한 약 빤 놈.
그런데 놀랍게도 진짜 사랑을 했다.
설영을 볼 때 느꼈던 감정과는 완전히 달랐다.
죽음에 이를 것을 알고도 날개를 펼쳐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이었다.
절절하게 느껴지는 두 사람의 마음이 애달팠다.
서로가 알고 있던 시 하나에도 온 마음과 영혼을 담았다.
“립…….”
여여가 날 본다.
아니 장립!
그리고.
와락.
두 팔을 날개처럼 활짝 펴 품에 가득 안겨왔다.
이것 참.
– 여……여…….
장립이 울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귀신이 느끼는 슬픔도 살아 있는 인간의 슬픔과 다를 게 없었다.
내 뺨에 나도 모르는 이슬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여여를 끌어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천년을 그리워하다 만난 전생의 인연처럼…….
두 사람은 뜨겁고 서럽게 서로를 안았다.
“…….”
정적에 휩싸인 식당.
그때.
“후후훗.”
누군가의 비릿한 웃음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회귀의 전설 2부